설악산 종주 산행여행

[구본황]

내설악의 수려함이여!

공룡능선의 장엄함이여!

 천불동계곡의 오묘함이여!

과연 금수강산의 백미가 바로 여기로구나!

   당곡고에서 공룡능선 산행 이야기가 여러 해 전부터 오르내렸지만, <산악인>이 되는 코스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힘들고 긴 코스라 실행되지 못하다가, 드디어 현충일 연휴를 이용하여 무사히 완등할 수 있어서 글을 쓰는 지금도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저와 함께 산행에 참여한 분들은 기우현(서초고), 이상기, 신장수, 김진덕(이상 당곡고), 이정호(동덕여고)선생님이었는데, 모든 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이끌어주어서 보람찬 산행여행이 이루어진 것에 대하여,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이상기선생님과 주간 날씨예보를 매일 체크하다가, 인터넷으로 동서울터미널 사이트에 들어가서 6월 5일 1시 35분 백담사행 버스예매를 하면서 최종 참여인원을 확인하고, <당곡 산사랑 설악산 공룡능선 등반 계획안>을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서 작성하니, 산행여행하는 실감이 비로소 나는 것이었습니다.

   6월 5일, 동서울터미널에서 이번 여행의 <사진 작가> 이정호선생님을 만났는데, 산뜻한 반바지 차림에 멋진 사진기를 걸치고 있어서 신선한 젊음이 절로 느껴졌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룡>을 4번 올랐지만 생생한 등반 사진을 남기지 못하여 아쉬웠었는데, <사진작가>의 참여로 오랜 숙원이 해결되는 순간이었고, 이선생님은 산행팀의 후미에서 멋진 정경을 담아 주었습니다.

   버스 자리에 앉은 후 계획안대로 신장수선생님이 총무인 것을 팀원들에게 확인시켜드리고 회비 12만원을 납부하였는데, 신선생님은 수고를 마다하지않고 여행 살림을 맡아 주었습니다.

2시 50분 경, 화양강휴게소에 내려서, 구름이 감싸고 있는 동쪽 하늘을 가리키며 이제 비 구름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걱정스런 예측을 하면서(오늘 6시까지 우천이라는 날씨 정보를 휴대폰으로 확인) 휴게실에 들어가니, 굽이도는 홍천강(화양강은 홍천강의 옛이름)의 물줄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주었습니다.

   <나라 지키미>아저씨들 덕분에 평생 처음 원통리까지 돌아보고 나서 십이선녀탕계곡이 숨어 있는 남교리를 지나자, 우등버스 기사 아저씨가 <백담사 내릴실 분!>이라고 크게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으나, 우의를 준비하지 않은 기선생님과 이정호선생님께 비닐우의를 구입할 것을 은근히 권유하였습니다.

슈퍼에서 장흥정이 끝나가자, 김진덕선생님은 아름다운 조경이 돋보이는 <백담순두부> 집으로, 4시 밖에 되지 않았지만, 석식을 위해 일행을 서둘러 인도하였습니다.

(김석선생님이 불참하여 숙박 가능여부가 불투명한 오세암에 7시 30분까지 도착하기 위해서)

   식사 후 용대리 주민이 운영하는 공용버스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니, 5시 출발인 막차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15분 후 백담사 주차장에 내린 다음, 일행의 여러 추억들이 숨어 있을 백담사를 곁눈질하면서 씩씩하게 산길로 접어드는데, 낯선 현수막-<산행 가능 시간, 3시에서 15시까지>이 우리팀의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오세암에 예약되어 있으니까 가능할 것입니다."

라고 안심시켜드리면서 산굽이를 도는데, 갑자기 낡은 트럭이 앞길을 가로막는가 하는 순간, 산적 같은 공단 직원들이 우루루 뛰어내리면서 막무가내로 뒤돌아갈 것을 강요하지 않는가!

5월 16일부터 규정이 바뀌었다면서 가로막는 것에 분개하였지만, 어쩔 수 없이 백담사로 후퇴하였습니다.

   진퇴를 상의한 결과, 기선생님의 의견대로 용대리로 돌아가서 새벽에 산행 출발을 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는데, 돌탑 사이로 흐르는 백담계곡의 물 소리가 오늘 따라 더욱 쓸쓸히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아까운 2300원 공용버스비를 다시 지불하면서 하릴 없이 6시 막차에 몸을 싣고 돌아와서는 차례로 민박 집을 돌아본 결과, 친절한 주인 할아버지가 안내해준 <용아장성>으로 정하였습니다.

   식당 <사계절>에서 산행 대비 주먹밥을 부탁하고나서, 오늘 불운을 달래고 내일의 장도를 다짐하는 간단한 모임을 가졌습니다.(석식을 하였던 <백담순두부>는 이미 폐점)

   다시 민박집으로 돌아오니, 추녀 위의 제비집과 새끼 제비들이 어린 날의 추억과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데, 내일 새벽 3시 산행 출발에 대비하여 8시 경 나란히 누워서 취침모드로 들어갔습니다.

자상한 김운상선생님의 위로 전화 목소리를 들으면서 눈을 붙이려 애를 쓰고 있는데, 방 한쪽에서는 천둥 같은 코골이 소리가

시골 밤 공기를 울렸습니다.^^*

   어제 취침 전 휴대폰의 알람을 2시 40분에 맞추어놓고 대비하였는데, 일행 모두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숙련된 조교들처럼 2시 30분에 벌떡벌떡 일어나서는, 척척 침구와 배낭을 정리하는 것이 아닌가!

다만 어느 선생님도 시원하게 뱃속을 비우고 숙소를 나올 수가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정확하게 3시, 인적이 끊긴 컴컴한 시골 길을, 행군하는 병사들 같이, 이상기선생님의 헤드라이트 불빛, 손전등 불빛의 인도를 받으면서 저벅저벅 전진하여 나갔습니다.

도중에 백담사로 가는 여성팀(리더는 남자)은 만났지만 한적하여, 심해어군이 몰려오고 밀려가는 것 같았던 설악동 코스와는 너무나 달라서 낯설기만 한데, 컴컴한 구름장 사이로 간간이 봄철 별자리 별빛이 반짝여서, 우천등산은 면하겠구나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딱딱한 아스팔트 길 7km를 새벽부터 걸어서인지, 오른쪽 무릎 언저리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는 것이었습니다.

4시 30분 경, 쾌적한 백담사 주차장화장실에서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다시 길을 나섰는데, 다행히 이후로는 통증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백담사를 지나면서부터는 여명이 밝아와서 이제는 회중전등 불빛이 필요없게 되었는데, 대체로 수렴동계곡 시냇가로 3.5km 산길이 이어져 있어서, 비록 가뭄 속이라 수량은 적었지만, 수려한 내설악의 모습을 가슴에 담고 올라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너무나 맑아 파르스름하게 비치는 소와 티끌 한 점도 내려앉지않은 듯한 해맑은 바위로 마음 속의 찌꺼기를 청소하면서 오르내리다 보니, 저멀리 낯익은 영시암 건물이 손을 내밀어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날 어둠 속에서 자취 조차 잊은채 지나쳤던 조그만 암자가 아니라, 이제는 대찰 같은 넉넉한 풍모를 뽑내는 <영시암> 앞에 서니, 감회가 솟구쳐나오는데, 벌써 시계 바늘이 6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기선생님은 오세암에서 식사하자고 주장하였으나, 선생님들의 생체리듬에 맞추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다른 분들의 동의를 구해서 절 앞 긴 의자에 앉아 맛난 야외 아침 식사를 하였는데, <사계절>에서 준비해온 주먹밥이 꿀맛이라는 칭찬이 이어져서, 다음 산행 식당 예약이 즉석에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식후에는 신선생님이 보시를 받으시는 여스님에게서 커피를 사 돌리자, 이상기선생님이,

   "총무가 공금으로 음료를 사면 안됩니다."

라고 애교 있게 항의(?)하자,

   "이 커피는 <총무 커피>가 아니라, 신장수 개인이 낸 <신커피>입니다."

라고 재치 있게 말을 받아서, 절집에서 즐거운 웃음꽃이 피어났습니다.

   식사 중 속속 도착한 여성팀을 비롯한 다른팀들과 작별을 고하고 다시 산행길에 올랐는데, 곧 갈림길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그간 정들었던 시내길을 버리고 오세암 방향의 왼쪽 산 비탈길로 묵묵히 걸음을 옮겼는데, 대부분의 산행(여행)객들은 봉정암 쪽(시내길)으로 가버린듯, 인적이 끊겨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에게 시내길이 무척 수려하다고 설명하자, 이구동성으로 다음 산행여행은 봉정암으로 가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세암길은 얕은 경사로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지는데, 비탈길이 나타나면 기선생님은 번번이,

   " 여기만 지나면 고생이 끝납니다."

라고 예언하는데, 워낙 뻔한 양치기 말(오세암길은 2.5km, 1시간 20분 여정의 꽤 긴 트레킹 코스)이라서, 우리 일행 중 유일한 이과생 출신인 이상기선생님에게 핀잔을 받곤 하였습니다.

   다만, 밀림 같은 숲속을 헤치고 전진해서 다소 답답했지만, 우뚝우뚝 우람한 자태로 가로막는 전나무, 금강송들을 바라보면서, 감탄사가 이어졌습니다.

   7시 30분 경, 오세암이 발치에 모습을 드러내는 마지막 고개에 오르자, 나는 <No Trail> 안내판을 무시한 채, <오세암 만경대>로 가는 비탈길로 인도하였는데, 기선생님은 사양하여서 배낭지기 임무를 부여해드렸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된비알을 오르게 되자, 하나 둘 불안, 불평의 소리가 나타났지만, 마침내 만경대 바위 정상에 서서, 신선세상 같은 용아장성능선과 가야동계곡을 마주대하자, 이구동성 감탄사가 뿜어져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야, 대한민국에 이런 아름다운 곳이 숨어 있었구나."

   "저 수려한 계곡, 웅장한 산줄기들을 보니, 설악산이 명산인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해야할까!

우리 일행은 설악산 여우에게 홀려서, 갑자기 산길을 30분 가까이나 헤매게 될 줄을 어찌 짐작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산 길에서 우리팀은 김선생님을 앞잡이로 한 <여우파>와 신선생님을 리더로 한 <반대파>로 갈라졌습니다.

   그런데 여우파의 첨병 역할을 한 김 선생님은 여우에게서 여의주로 받은 <초코파이 봉지 2개>를 증거물로 내세워, 앞장서서 여우의 마술로 모든 선생님들을 홀리는 바람에, 일행은 오세암을 눈앞에 두고 대낮인데도 반대 방향으로 흔적도 희미한 산길을 빙빙돌며 헤매었으니, 선생님들 입에서 한결같이 <초코파이 부장>이라는 원성이 터져나올 수밖에.....^^*

   그러나, 어제 <사계절>에서 15시간 산행을 굳세게 다짐한 우리 용사들이 이만 일로 의기소침해질 수야 있겠습니까?

오세암에 내려와서 절 약수와 초콜렛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가다듬은 다음, 8시 10분 경 보무당당하게 공룡능선의 출발점인 마등령을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오세암이 해발 800m 가량이고, 마등령 삼거리가 1260m이니 표고 차가 500m 가까이인데 산행 거리가 1.4km라, 마등령 코스는 대단한 된비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선생님들에게 북한산 의상봉(해발 502m) 오르는 셈이니 별로 어렵지 않다고 용기를 불어넣어드렸습니다.

   그러나 헤맨 시간까지 5시간의 긴 트레킹에 지친 일행의 발걸음이 한없이 늦어지자, 김선생님은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는데, 이후 비선대 휴게소까지 김선생님과 다른 팀원들간의 토끼와 거북 경주가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10시 10분 경, 마침내 머리 위 숲 사이로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밀고 능선 길에 오르자, 장터 같은 삼거리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반갑게 들려왔습니다.

내설악 종주 코스 15km를 7시간 10분 만에 주파한 셈인데, 오세암 만경대에서 여우에 홀린 시간과 아침 식사한 시간을 감안하면 선전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원래 예정시간은 6시간)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듬직하게 버티고 서 있는 마등령(해발 1320m), 세존봉(해발 1025m)과 맞은 편 화채능선(화채봉은 해발 1328m, 이 능선이 권금성 케이블카까지 연결됨), 그리고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공룡능선과 공룡능선에서 감상하게 될 천화대능선을 가리키며 선생님들께 설명해드리니, 모두 감개무량한 듯, 다투어 사진 작가에게 몸을 맡겼습니다.

   10번 째 공룡능선을 밟게 되는 기선생님은,

   "9수를 지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이번 산행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라고 역전의 용사답지 않는 고백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호츠크기단에서 저기압이 밀려와서인지 동해 쪽은 뿌연 연무가 띠를 이루고 가로막고 있어서 아쉬운데, 공룡능선 방향은 청명한 날씨에 푸른 숲이 길 좌우를 감싸고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어서, 뙤약볕을 피하며 전진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중간 봉우리를 지나면 그리스 신화의 아틀라스 같은 거대한 나한봉(해발 1276m)이 두번 째 관문을 지키며 여행객들을 호령합니다.

기선생님이,

   "예전에는 이곳을 네발로 기면서 지나갔습니다."

라고 이전 고생담을 꺼내자, 내가 이어받아서,

   "당곡에서 재량휴업일에 학생들을 데리고 이곳에 와서 돌길을 놓아, 이렇게 편히 지나다니게 되었지."

라고 웃음으로 응수하여, 산행에 지친 선생님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여드렸습니다.

   워낙 웅장한 나한봉이라, 정상은 우러러만 보고 허리띠 같이 가로놓인 좁은 암릉길을 마주오는 이들을 피하면서 오르내리는데, 내리막은 밧줄을 타고 끝도 없이 내려가니, 선생님들이 혀를 내두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얼른,

   "마등령을 향해 거슬러 올라오는 저분들은 이 구간을 통과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라고 일행들을 위로하여드렸습니다.

   나한봉을 지나 중간 봉우리까지 통과하자, 우리 일행 앞에 <거대한 손바닥 바위>가 가로막고 나타났습니다.

지난날 <우리산악회>의 임경유 대장님이 병풍바위 귀신이라고 치를 떨었던 험난한 4번째 관문인데,

이 봉우리가, 통과하고 나서 보면, 거대한 독수리 날개와 부리를 자랑하는 멋진 공룡능선의 수호천사-<큰새봉>이란 것을 알려드리고, 저 위에서 점심 식사하겠다는 것을 선생님들께 공약하였습니다.

   큰새봉 고개 마루에 11시 50분 경 올라 뒤돌아보니, 거대한 탑처럼 우뚝 솟은 세존봉 너머 웅장한 울산바위(해발 876m, 길이 2km)가 지난 해 가족여행의 추억을 잊지않고 있다는 듯, 빙긋이 웃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야 할 공룡능선 건너편에서는, 설악산 마루금을 이루는 대청봉(해발 1708m)과 중청봉(해발 1676m)이 의좋은 형제 같이, 오른쪽으로는 대청 형님에게서 귀때기를 맞고 멀리 도망가 움츠리고 있는 서북능선의 귀때기청봉(해발 1577m)과 안산(해발 1430m)이 개구쟁이들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여 우리 일행을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얼음굴처럼 찬바람이 바위 사이에서 솟아나온다고 좋아하는 이상기 선생님을 중심으로, 편하게 자리를 잡고 꿀맛 같은 점심 식사를 하였습니다.

아침 식사처럼 찰밥, 햇반, 주먹밥, 빵 등 다양한 메뉴가 독수리 품속에서 펼쳐졌는데, 산행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진수성찬 보다 오이와 토마토라는 것이 다시 입증되었습니다.

정담을 꽃피우며 식사를 마치고 나니 시원한 이곳에서 낮잠자고 가고 싶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는데, 우리 일행 자리가 부러운 듯 기웃거리는 부부팀에게 일행은 싹싹하게 자리세를 받지 않고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길고 거친 능선코스이고 오고가는 산행객이 많다 보니, 출입금지 구역 표시줄 넘어 숲속에 자연스럽게 간이화장실이 만들어져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가장 급한 신 선생님께도 눈짓하며 권유하는 아주머니가 있었으나, 내키지않는 듯 독수리 다리 아래로 빠져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큰새봉을 내려오면 카멜레온바위를 만나게 됩니다.

거대한 암벽이 칼질한 것처럼 일정한 무늬로 잘려져 있는데, 빛의 방향에 따라서 달리 보이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 같습니다.

4년의 시간이 흘러 이곳에 다시 와보니 아예 사진 촬영 장소가 표시되어 있었고, 울산바위까지 시원하게 조망하면서 이곳에서 다시 사진 모델이 되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카멜레온바위부터 이어지는 된비알이 공룡능선 구간에서 가장 긴 오르막이고, 이곳을 지나야 공룡 등정에서 제일 좋은 전망을 할 수 있는 청아봉(1275봉)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구간과 달리 이곳은 숲이 없는 벌거벗은 코스라서, 오후의 뙤약볕과 싸우면서 오르려니 이만저만 고역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특히 땀이 많고 80kg이 넘는 중후한 몸매를 자랑하는 신선생님과 이상기선생님은 무척 힘들어하셨는데, 5번째 관문인 이곳만 오르면 사실상 <공룡 고생 끝!>이라고 용기를 불어넣어드리자, 이정호선생님은 마등령 코스에 비하면 이곳은 <약과>라고 거드는 것이었습니다.

   중간 오르막에서 엉덩이를 걸치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천천히 전진하여 오르막 공터에 오르자, 마등령 삼거리처럼 산행객들이 북적거렸습니다.

그러나 모두 지쳐서 그늘에 숨어서 휴식만 탐할 뿐, 청아봉을 등정하여 <신선이 되어 한조각 구름을 타고> 설악산을 굽어보는 용사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우리산악회의 임대장님 부재가 아쉬웠습니다)

경험이 부족한 나로서는, 선생님들을 저 바위 꼭대기까지 모시는 것이, 안전 사고의 위험이 높을 것 같아서 감히 도전하지 못하고,

<최고의 전망대>-1275봉 바위를 배경으로 모델이 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청아봉에서 6번째 관문인 1184봉으로 향하는 절벽 같은 내리막길에는, 2007년 2차 공룡능선 등반 때 인부들이 박아놓았던 쇠말뚝과 쇠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지난 추억이 떠오르는데, 올 여름에는 아직 비가 부족한 듯 물줄기를 볼 수 없어서 안타까왔습니다.

   내리막길이 끝나고 일반인 접근을 막는 청아봉 바위가 끝나는 지점에 역시 <No Trail>안내판이 있는데, 출입금지 표시줄을 넘어가면, 천화대를 가까이 조망할 수 있는 명소가 나타납니다.

먼저 하산하였던 기선생님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일행을 안내해주었는데, 발 아래는 아찔한 절벽이라 스릴감이 있어서 오히려 재미 있었습니다.

   천화대는 연화대라고도 하는데, <하늘 아래 꽃밭>이라는 의미로, 공룡능선에서 20여 개의 봉우리가 천불동계곡을 향하여 내려간 능선을 가리키는데, 마치 신선세계를 떼어다 놓은 듯, 칼날 같은 암봉들이 늘어서 있어서 절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일반인 등산은 금지구역)

   6번째 관문인 1184봉으로 가는 길은 계곡쪽으로 가는 내리막길로 이어져 있습니다.

내리막 오르막이 파도처럼 반복되어 나타나는 공룡 산행에서 내려간다는 것은 또 다른 고생길이 나타난다는 반갑지 않은 신호라서

속이 쓰라린데, 뱃속이 불편하고 고된 산행에 지친 신선생님은 더욱 힘들어보였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1시 30분을 지나가는데, 1275봉(청아봉)을 지나왔으니 5.1km의 공룡 길을 반은 돌파한 것이고, 점심시간과 한낮 등반을 감안하면 정상적인 산행을 하고 있는 셈이라서, 선생님들에게 천천히 쉬며쉬며 가실 것을 권유해드렸습니다. (원래 예정시간은 2시간 40분인데, 3시간 20분 걸림)

   그러나 <고진감래>, 좌우로 코를 치켜든 코끼리 바위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고개 마루에 올라서니 또 다른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는데, 이상기 선생님은 이 아름다운 봉우리가 이름이 없는 것을 아쉬워하였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시원한 답변을 못하였으나, <코끼리봉> 혹은 완도에서처럼 <상황봉>으로 명찰을 달아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멋진 사진 촬영을 위해 전망대 바위에 선 이정호 선생님을 따라 오르니, 머리 위에서는 대청봉과 중청봉이 어서 오라는 듯 넉넉한 푸른 품을 벌려 우리 일행을 감싸주고 있는데, 바로 건너편에서는 용아장성능선이, 발치 어느 봉우리에 가려져 있을 오세암 만경대에서 달려온 여정을 멈추고, 봉정암을 해리포터 영화의 웅장한 판타지 바위들 속에 숨긴 채,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맞은편에서 손짓하는 1275봉은, 큰새봉 쪽에서 바라볼 때는 둥그런 거인 같은 모습이었는데, 여기서는 괴도 루팡이 주인공인소설 <기암성>의 바늘성처럼 하늘을 찌를듯 날카롭기 그지 없어서, <청아봉- 날카로운 이빨>이란 이름이 명불허전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신선생님은 <코끼리봉>에서 이상기선생님으로부터, 중간봉 넘어 아득히 노려보고 있는 신선대 꼭대기를 지나쳐야 공룡코스가 끝난다는 소식을 듣고는, 부르르 떨면서 분개(?)하였다고 합니다.

얼마나 힘겨웠으면......^^*

   그러나 중간봉 자연화장실에서 숙원이었던 볼일을 보고난 뒤에는 한결 여유가 넘쳐나서 반가웠는데, 똑같은 숙제를 안고 있었던 이상기선생님이 부러워하였습니다.

   마침내 7번째 관문인 중간봉을 지나서, 그다지 내려가지 않고 공룡능선의 마지막 관문이자 전망대인 신선대(해발 1218m)에 3시 40분 경 오르자, 뮤지컬 무대의 마지막 장면처럼, 공룡의 수많은 주인공들이 일제히 손을 흔들면서 우리 일행을 배웅해주고 있어서, 눈물이 솟구쳐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우리 일행은 이 무대의 또 하나의 관람객인 것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배낭에서 종료시켰던 휴대폰을 꺼내들고서는 돌아가면서 서로 인증샷을 찍어주었습니다.

   신선대에서 희운각으로 이어지는 하산 길은 숲속으로 이어져 있지만 다소 길어서, 이상기선생님이나 신선생님은 오색코스가 생각난다면서 힘들어하셨습니다.

신선생님은 이제 온몸의 근육 힘은 다 소진되었고 오직 뼈힘으로만 버티고 있다고 말씀하셔서, 안타까왔습니다.

   드디어 산굽이를 지나서 4시 10분 경 희운각 삼거리에 도착하니, 앞서 간 기선생님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또 하나의 토끼>인 김선생님은 자취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17시간 산행의 절정부, 공룡능선 5.1km를 6시간 만에 완등하여, 4분의 새로운 <산악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는데, 여름날 다소 늦은 한낮 시간 등반임을 감안하면, 역시 <양호>한 산행이라고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겠지요^^* (원래 예정시간은 5시간 20분)

   그러나 공룡능선 종주를 마쳤다고 하더라도 바로 천불동계곡이 바통 터치하는 것이 아니라서, 선생님들이 힘들어 하셨습니다.

갈래 능선에 가려져서 바람도 불지 않는 30분 가량의 하산길을 터덜터덜 더 견뎌내야, 겨우 시냇물 소리가 들리고, 발치 아래 시냇가에서 환호하는 산행객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 일행도 서둘러 달려가서, 많지 않는 수량이지만 얼음 같이 시원한 시냇물로 머리까지 담그고, 피로와 더위를 씻어냈습니다.

   기운을 차려 발걸음을 옮기는 일행 앞으로 드디어, 어떤 국보 만다라도 감당하지 못할, <천불동 계곡의 속살 - 신비롭기 그지 없는 부처님 세계의 오묘한 얼굴>이 파노라마 영화처럼, 계곡 굽이를 감돌 때 마다 차례차례 얼굴을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13시간이 넘는 산행의 피로가 선생님들의 다리를 뒤로 잡아당기고 있었지만, 건드리면 깨질 것 같은 해맑은 바위 살결을 계곡 아래로 내려다보고, 만물상을 옮겨놓은 듯, 삼국지의 뭍 호걸들을 모셔와 열병을 하는 듯, 한없는 영감을 심어주는 능선의 바위 봉우리들을 올려다보니, 저절로 가슴 속은 시원해졌습니다.

   마침내 5시 40분 경, 산행객들이 한가로이 휴식을 즐기고 있는 양폭대피소에 도착하니, 우리의 <집나간 또 하나의 토끼> 김선생님이, 진지한 얼굴로 천당폭포에서 <천연기념물> 열목어떼를 발견했다면서 일행들을 반겼습니다.

   신선생님은 언제나 비선대 휴게소에 도착하느냐고 물어보았으나, 원래 예정시간 2시간 20분을 차마 얘기하지 못하겠는데, 옆에서 기선생님이 시원하게 1시간이면 된다고 말하여 웃음이 나왔습니다.

   6시 30분 경, 힘겨운 오르막길이 나타나자 일행이 이구동성으로 천불동계곡 산신령을 원망하는데, 나는 이 비탈길은 귀면암 저승사자가 이승의 업보를 시험하는 자리이니, 당연히 힘든 코스라고 위로하여드렸습니다.

그러나 신선생님, 이상기선생님은 물론 공룡 최고참 기선생님 마저 아무렇게 부려놓은 보릿자루처럼 염라대왕 옆에서 철푸덕 쓰러져버렸습니다.

   그런데 한시바삐 휴게소에 도착하여 시원한 막걸리를 마시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기적을 만들어내서인지,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에 점점 가속도가 붙는 것이 아닌가!

특히 스틱까지 잊어버린 채 엉덩이를 털고 내리막길을 재촉했던 이상기 선생님은 갑자기 제트기를 탄 듯 쌩쌩 휴게소를 향해 내달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버렸습니다.

   7시 10분 경, 비선대 휴게소에서 비로소 <다시 집나간> 김선생님과 <제트기를 탄> 이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선생님은 뱃속 사정이 더는 버틸 수 없는 임계점에 이르자 갑자기 초인적인 힘이 솟아났다고 실토하여,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천불동계곡 5.5km를 3시간 만에 주파한 셈이라 선생님들의 정신력이 놀랍기만 한데, 기선생님도 거의 탈진한 듯, 노란 옥수수 막걸리 대신 막국수를 시켜서 물만 들이켜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예정시간은 3시간 50분)

   설악동에 도착하니 땅거미가 지는 8시이어서, 손목시계의 시계바늘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참여한 선생님들의 놀라운 정신력과 적극적인 협조가, 설악산 내설악, 공룡능선, 천불동계곡 종주 28km 코스를, 무사히 17시간에 완등하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작은 기적을 이루어낸 셈입니다. (원래 예정시간은 16시간)

   친절한 안내양이 전화를 받는 속초시외버스터미널과 가까운 동명항 2층 횟집에 앉아서 달콤한 정담을 나누면서 술잔을 나누니, 장터 같이 밀려오고 몰려가는 인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들이, 모두 오늘 <당곡 산사랑>의 설악산 종주 산행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만 같았습니다.

( 2014년 6월 14일 적음 )

[구본황]

설악산은 우리나라에 가장 아름다운 산이고, 지리산과 함께 가장 큰 산입니다.
큰 산이라서 무리한 산행은 위험이 따르지만, 산불 경방 기간을 피해서 자신에게 알맞은 코스로 산행한다면, 심신의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멋진 추억을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힘든 설악산 종주여행을 통하여, 친구들에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진 정경을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어서 보람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