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子曰 父母在 不遠遊 遊必有方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부모가 살아 있으면 멀리 나가지 않고, 나가게 되면 반드시 일정한 장소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遠遊, 則去親遠而爲日久, 定省曠而音問疏; 不惟己之思親不置, 亦恐親之念我不忘也. 遊必有方, 如己告云之東, 卽不敢更適西, 欲親必知己之所在而無憂, 召己則必至而無失也. 멀리 놀러 가면, 곧 부모로부터 거리가 멀어지고, 날짜도 오래 걸리는데, 아침저녁 문안 인사가 텅 비게 되고, 소리로써 문안하는 것이 드물게 된다. 이럴 경우, 단지 자신이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할 뿐 아니라, 또한 부모님이 나를 생각하면서 잊지 못해 하실까 두렵기도 한 것이다. 遊必有方은 마치 자신이 동쪽으로 간다고 고한즉, 감히 바꾸어 서쪽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과 같다. 부모가 반드시 내가 간 곳을 아셔서 걱정함이 없고, 나를 부르면 즉 반드시 기별이 이르러서 실수함이 없도록 하고자 함이다.
慶源輔氏曰 詳味集註 非身歷心驗之 不能盡其精微曲折之意如此 事親者宜身體之 又曰 有親者 遠遊固不可 近遊亦當有方 경원보씨가 말하길, “집주를 상세하게 음미해보니, 자기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정미하고 자세한 뜻을 다 풀어내기를 이와 같이 할 수가 없다. 부모를 섬기는 자라면 자기 몸으로 그것을 체행해야 마땅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부모가 계신 자라면 멀리 놀러 가는 것은 본래부터 불가한 것이고, 가까이 놀러 가는 것도 역시 마땅히 일정한 행방이 있어야 한다.”라고 하였다.
問有不得已而遠遊 如之何 雙峯饒氏曰 不遠遊 是常法 不得已而遠出 又有處變之道 聖人言常不言變 누군가 묻기를, “부득이하여 멀리 놀러 가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하였다. 쌍봉요씨가 말하길, “멀리 놀러 가지 않는다는 것은 일상적인 법도이고, 부득이하게 멀리 출행하는 것에는 또한 변화에 대처하는 법도가 있는 것이다. 성인께서는 일상적인 것을 말씀하셨을 뿐, 응변하는 것은 말씀하시지 않으셨다.”라고 하였다. |
2 | 范氏曰: “子能以父母之心爲心則孝矣.” 범씨가 말하길, “자식이 능히 부모님의 마음으로 제 마음을 삼을 수 있다면, 그것이 효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父母愛子之心 未嘗少置 人子愛親之心 亦當跬步不忘 주자가 말하길,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일찍이 조금이라도 내려놓은 적이 없으니,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도 역시 반걸음 걷는 동안이라도 잊지 않아야 마땅하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遠游特事之至近者爾 惟能卽是而推之 則凡可以貽親之憂者 皆不敢爲矣 范氏之說 深得其旨 호씨가 말하길, “멀리 놀러 가는 것은 단지 일 중에서 지극히 가까운 것일 따름이다. 오직 이에 나아가 미루어갈 수 있다면, 무릇 부모에게 근심을 끼칠 수 있는 것은 모두 감히 하지 못할 것이다. 범씨의 말은 그 취지를 깊이 터득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朱子十四歲喪父韋齋先生事母盡孝 所以發明此章曲盡孝子之心 老杜曰 頗覺良工心獨苦 信哉 신안진씨가 말하길, “주자는 14살에 아버지 위재선생을 여의고 어머니를 섬기면서 효도를 다하였다. 그래서 이 장에서 효자의 마음을 세밀한 데까지 지극하게 하였음을 드러내어 밝힐 수 있었던 것이다. 두보가 말하길, 훌륭한 장인의 마음이 홀로 고통스럽다는 것을 잘 깨달았다고 하였으니, 진실로 믿을만하구나!”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