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 되어, 또 하나 굴레를 만든 점. 처음은 그냥 예사롭게 보았다. 액체가 묻어서 번지는 작은 인연쯤으로 받아들였다. 밝은 햇빛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내놓고 보니, 어느새 검은 점으로 변해 버렸다. 밉다. 보기 흉하다. 어떻게 지워야 할지 고민도 한다. 점은 내가 필요하고 선택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생긴 흔적이 된다. 피부에 점이 있듯이 사람의 만남도 하나의 점처럼 연결된 인연이다.
처음에는 부모 밑에 엮어진 인연의 점은 형제고 자매였다. 우애와 사랑이 전부였다. 긴 시간 속에 몸을 부대끼며 생활하던 혈연의 점을 두고, 또 하나 점을 찍으려는 나래를 편다. 결혼으로 새 가정을 꾸미는 일이다. 결혼하기까지 점은 다양하다. 요즘은 부수적인 부가가치와 함께 새로운 점을 찾는다. 결혼은 남녀 둘 양가 부모들의 성향에도 크게 좌우한다. 때로는 우연히 찍은 점보다, 고르고 고른 점이 하나가 되어도 더 불편하다. 원래 점에서 보태지는 점이 무채색이라면 더 할 바 없이 좋은 일이지만, 그건 하늘별 따는 만큼 어렵다.
사람은 크게 두 가지 부류다. 처음부터 좋다고 느껴지는 사람과 첫 만남부터 별로인 사람이 있다.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느낌이 달라진다. 전자와 후자가 기대치가 바뀐다. 어쩜 후자의 인연은 화롯불에 온기처럼 서서히 정이 들어서다. 첫눈에 반하는 온점은 짚불이 활활 타올라 꺼지고 나면 금세 식어버린다. 불 꺼진 잿더미 같다. 이내 차갑다. 한번 식으면 영원히 이어질 수 없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훅 날린다. 가슴에는 자욱이 크게 남는 점 하나 자리 잡는다. 아픈 흔적뿐이다.
얼마 전, 아들 친구 엄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30년을 만나면서 지내온 사이다.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뜬금없는 말을 했다. 나를 무슨 말이 든 해도 이해해 줄 사람이라고 했다. 뭔지 모르지만 빨리 만나고 싶었다. 찻집에서 두 시간 넘게 그녀의 말을 경청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들 이혼 소식을 전했다. 그간 고통과 아픔이 절절했다. 아들을 보면 고통스러워했던 순간이, 떠올라 힘들었던 시간까지 등에 업고 쏟아냈다. 한번 굳어진 석고가 떨어지면 산산조각이 나듯 모든 생각까지 조각 나버렸다고 말했다.
며느리가 어설픈 주식 투자와 게임으로 재산이 다 없어지고, 이혼을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아들과 힘들었기에 섬망 증세까지 나타났을까. 그녀는 사람을 대면하고 엉뚱한 말로 남편과 딸을 당황하게 해서인지, 인지기능 검사까지 했단다. 머리는 이상이 없었지만, 식구 모두 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딸이 틈새 전화를 두세 차례 하곤 했다. 섬망까지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자식 이혼은 정신 줄을 놓을 만큼 어미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순간이었음이 짐작됐다.
오랫동안 미움은 일방적일 수 있지만, 갈등은 혼자만의 몫이 아니다. 어쩜 내 안에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는 그저 평범한 일상이라고 지나치고 싶을 때도 있었단다. 마음 비우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태양에 그을리다 생기는 점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기도 하고, 그대로인 체 함께 하다가 저절로 무디어지기도 한다. 미움의 점은 세월 속에서 그저 퇴색되기를 바라면서 차츰차츰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서 산다.
그녀 며느리는 참 좋은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십 년을 살았으니 영원히 깨지지 않을 놋그릇처럼 단단한 관계일 거라고 믿었다. 믿고 부러워했던 만큼 아픔이 내게도 크게 와 닿았다. 누구나 살면서 고통은 있지만, 정신적으로 오는 피로감 때문에 더 많이 힘들 때도 있다. 한번 뱉고 나면 주워 담을 수 없는 감정의 말은 가능하면 1절만 하고 2절은 아껴두면 좋다. 대화에서는 1절은 아무 감정 없는 즉흥적인 말이라 이해가 되지만, 2절에서는 감정이 들어있고 미움이 보태진다. 그러니 감정의 골이 더 길어질 수밖에. 이건 부모든, 자식이든, 부부이든, 형제이든, 직장에서든 다 공감되는 말이 아닐까.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속이 후련하다며 일어섰다.
얼마 전, 내 직장에서 아무것도 아닌 일에 예민해진 사람이 있었다. 사소한 것에 자존심을 내세워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것을 보았다. 이유는 자기 뜻을 따라주지 않는다는 단순한 원리뿐이다.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던 일에 난데없는 점을 찍으면서 일어난 사건이다. 분명 나와 같은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고 믿었기에 서로 스스럼없는 말이다. 매일 주고받던 말인데도 다르게 받아들인다. 나는 대상의 겉을 생각하고 말을 했지만, 그는 내면의 감정을 가지고 받아들였다. 이견이 올 수밖에 없었다. 감정싸움이 일어났다.
요즘은 사람들이 조연보다 주연이 되기를 바라니 정신은 더 고달픈 삶이다. 핸드폰과 카드 하나로 무엇이든 할 수 있어서 편리하고 풍족한데 여유는 없다. 보이는 지면과 화면 속에 오늘은 행복한 사람이었는데, 내일이면 주인공이 아니고 1순위도 아니라 조금은 우울하고, 그저 일상이 주는 평범한 행복은 가슴속에 숨 쉬고 있을 뿐이다. 나는 평범한 점 하나를 찍기 위해 오늘도 조연이 할 대사를 무던히 찾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