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광모 시 모음 5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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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을 편지
양광모
9월과 11월 사이에
당신이 있네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천진한 웃음 지으며 종일토록 거니는
흰 구름 속에
아직은 녹색이 창창한 나뭇잎 사이
저 홀로 먼저 얼굴 붉어진
단풍잎 속에
이윽고 인적 끊긴 공원 벤치 위
맑은 눈물처럼 떨어져 내리는
마른 낙엽 속에
잘 찾아오시라 새벽 창가에 밝혀 놓은
작은 촛불의 파르르 떨리는
불꽃 그림자 속에
아침이면 어느 순간에나 문득 찾아와
터질 듯 가슴 한껏 부풀려 놓으며
사ㄹ랑 사ㄹ랑 거리는 바람의 속삭임 속에
9월과 11월 사이에
언제나 가을 같은 당신이 있네
언제나 당신 같은 가을이 있네
신이시여,
이 여인의 숨결 멈출 때까지
나 10월에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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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장 아름다운 사람
양광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당신의 얼굴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태양은 당신의 미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별은 당신의 눈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노래는 당신의 콧노래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붉은
노을은 당신의 빰 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풋풋한
과일은 당신의 입술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날씬한
사슴은 당신의 목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나무는 당신의 어깨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풍요로운
들녘은 당신의 가슴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바람은 당신의 손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춤은 당신의 발걸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설레는
약속은 당신과의 만남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은
소리는 당신의 숨소리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갖고 싶은 보석은
당신의 마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은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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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장 위대한 시간
양광모
꽃은 언제 피어나는가
태양은 언제 떠오르는가
바람은 언제 불어오는가
다시!
사랑은 언제 찾아오는가
희망은 언제 솟아나는가
용기는 언제 생겨나는가
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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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겨울 편지
양광모
부탁이 있다
첫눈처럼 찾아와 다오
그리움으로 몆 번이고 하늘 바라볼 때
문득 내 가슴에 살포시 내려 앉아다오
부탁이 있다
첫눈처럼은 오지 말아 다오
닿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져
찾아온 듯 아닌 듯 애태우지는 말아다오
부탁이 있다
첫눈처럼도 아닌 척 찾아와 다오
내 일찌기 한 번도 본 적 없는 큰 눈으로
무섭게 무섭게 폭설로 쏟아져 다오
부탁이 있다
첫눈처럼이 아니라도 찾아와 다오
봄날에야 내리는 마지막 눈발처럼이라도
한 번은 약속이었다는 듯이 내 가슴에 다녀가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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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국엔 만날 사람
양광모
내 가슴에
한 번은 만날 사람 있어요
내 가슴에
결국엔 만날 사람 있어요
그를 만나
영원보다 길게
태양보다 뜨겁게
운명보다 더 운명적으로
사랑 나눠야 할 사람 있어요
만약 그가 끝끝내
만나지 못할 사람이었다 해도
내 가슴에 한 번은 만나야 할 사람 있어요
겨울이 길다고 어찌 봄이
오지 않을 것이라 믿을 수 있겠어요
내 가슴에 한 번은
꼭 만나야 할 사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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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굿나잇 슬픔이여
양광모
슬픔이여 안녕!
과
안녕 슬픔이여!
는
다르지
굿바이 내 사랑!
과
굿모닝 내 사랑!
이 다르듯
나이를 먹었나봐 자꾸만
안녕 슬픔이여!
인사를 하네
하하, 별 일이야 있으려고
굿나잇 슬픔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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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권주가
양광모
이 세상에 사랑이 없다면
인생이란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그러나 이 세상에 술이 없다면
사랑은 또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우리 살아가는 동안
세 잔쯤은 흠뻑 마셔야 하리
사랑이여 내게 오라!
사랑이여 영원하라!
사랑이여 행복하라! 권주가
양광모
이 세상에 사랑이 없다면
인생이란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그러나 이 세상에 술이 없다면
사랑은 또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우리 살아가는 동안
세 잔쯤은 흠뻑 마셔야 하리
사랑이여 내게 오라!
사랑이여 영원하라!
사랑이여 행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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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대 가슴에 별이 있는가
양광모
그는 가슴에 별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가슴에 별이 없어
슬픈 사람이다
우연히 바라본 밤하늘에
별똥별이 떨어질 때
자신도 모르게 두 손 가지런히
모아지지 않는다면
그는 어두운 밤하늘에 홀로 떠 있는
별과 같은 사람이다
그는 어두운 밤하늘을 홀로 떨어지는
별똥별 같은 사람이다
가을이 와도 밤하늘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아
그대,
가슴에 별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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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리운 어머니
양광모
서러운 날엔
서쪽 바다로 가네
노을이 있고
개펄이 있고
어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곳
해질 무렵에야
노을 빛 얼굴로 돌아오시던
어머니, 이제 막 개펄에서
잡은 꼬막을 넣어 보글보글
된장찌개 맛있게 끓여 주실 테지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가 되어
어머니가 차려주신 저녁 밥상에 다가앉다가
왠지 그만 목이 꽉 메이겠지만
서러운 날엔
서쪽 바다로 가네
아직 내가 걸어가야 할 길 멀지만
그리운 어머니 서쪽 바다 일출 되어
내 발길 비춰주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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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꽃으로 지고 싶어라
양광모
바람 한 점에
꽃잎 수십 점
꽃잎 한 점에
시름 수십 점 흩어지네
꽃으로 피어나지 못했어도
꽃으로 지고 싶은 봄날에는
왜 사냐 건 웃지요
왜 웃냐 건 또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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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꽃을 모아 시를 쓰네
양광모
나는 예쁜 꽃들을 모아
시를 쓰네
장미는 주어
백합은 목적어
목련은 형용사
철쭉은 부사
국화는 동사
코스모스는 토씨
그러면 그 시는 꽃시가 되어
사랑하는 사람들의
언약을 위해 바쳐지려니
그 시를 건네는 사람의 손에
향기를 남기고
그 시를 받는 사람의 가슴에
꽃잎을 남기고
그 시를 주고받는 사람의 생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으리
당신은 이것을 시적 비유라
생각할 테지만
나는 이것을 인생에 대한 지침이라
말하고 싶네
꽃을 모아 시를 쓰듯이
맑은 마음을 모아
고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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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꽃잎이 모여 꽃이 됩니다
양광모
꽃잎이 모여 꽃이 됩니다
나무가 모여 숲이 됩니다
햇살이 모여 노을이 됩니다
냇물이 모여 바다가 됩니다
미소가 모여 웃음이 됩니다
기쁨이 모여 행복이 됩니다
두 손이 모여 기도가 됩니다
너와 내가 모여 우리가 됩니다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이 됩니다
작은 것이 모여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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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꿈속 그대
양광모
그대가 나비일런가
나비가 그대일런가
고운 날개 몸에 걸치니
꿈길 백리 꽃길 천리 열리네
향그런 바람 타고 날아오를 제
온 세상 꽃 수줍어 고개 숙이니
그대여 날개짓 조심하시오
내 가슴 속 태풍 불어온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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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나는 참 떨리는 사랑을
양광모
그대를 만난 후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커다란 바윗돌 쿵쿵
떨어지는 소리
누군가 첨벙첨벙
물위를 걸어오는 소리
문득, 문득, 들려오기에
이것이 사랑인가, 이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참 떨리는 사랑을 하고 있구나
생각할 때에 그대는 다시 더욱 커다란 바위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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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나의 그리움은 밤보다 깊어
양광모
그대를 사랑하기엔
하루가 짧고
그대를 사랑하기엔
일생이 짧다
어둠이 내려앉기 전
새벽 밝아 오니
그대를 향한 그리움
밤보다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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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내 사랑 지지 않는다
양광모
꽃이 져도
나는 지지 않는다
낙엽이 져도
나는 지지 않는다
사랑이 져도
나는 지지 않는다
사랑에 져도
나는 지지 않는다
그 사람 지지 않는 한
내 사랑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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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내 사랑은 가끔 목놓아 운다
양광모
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너를 사랑하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내 사랑은 가끔 목놓아 운다
내 사랑은 늘 목메어 운다
사랑아,
사랑을 위해 사랑을 떠나온 사랑아
꽃이라도 잎을 위해서는 져야만 하는 것
내 슬픈 목련 같은 사랑,
오늘도 흰 눈물 뚝뚝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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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내 안에 머무는 그대
양광모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아침이 밝아왔는데
당신을 만난 후로는
사랑이 밝아옵니다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어둠이 밀려왔는데
당신을 만난 후로는
사랑이 밀려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내 안에 머무는 그대
당신을 만난 후로는
사랑 안에 내가 머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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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내 안에 부는 바람
양광모
어떤 이는 팔 할이라도 말하고
어떤 이는 살아야겠다 말하고
어떤 이는 스치운다 말하지만
내 안에 부는 바람은 이리 말하네
날아올라라 저 하늘 끝까지
뛰어들어라 저 태양 속으로
잠들지 않는 내 안에 바람은
늘 그리 뜨겁게 속삭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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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내 일생쯤 너에게
양광모
사무치다는
말 좋으다
사랑에
사무쳐
그리움에
사무쳐
뼛속 깊이
사무쳐
심장 깊이
사무쳐
내 일생쯤 너에게
사무쳐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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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양광모
당신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듯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 안에 존재하는 영혼의 불꽃이
당신을 사랑하도록 나를 운명짓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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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너를 처음 만나던 날
양광모
내가 살아온
모든 봄날의
모든 꽃잎
내가 살아온
모든 여름날의
모든 빗방울
내가 살아온
모든 가을날의
모든 낙엽
내가 살아온
모든 겨울날의
모든 눈송이
너를 처음 만나던 날
일제히 쏟아져 내렸네
물론, 꿈만 같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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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너의 꽃말
양광모
진달래는 불타는 사랑
벚꽃은 흩날리는 이별
목련은 순결한 그리움
작은 꽃 한 송이,
너는 나의 운명
진달래처럼 사랑하다
벚꽃처럼 이별해도
목련처럼 그리워할
너의 꽃말은,
나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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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눈물 흘려도 돼
양광모
비 좀 맞으면 어때
햇볕에 옷 말리면 되지
길가다 넘어지면 좀 어때
다시 일어나 걸어가면 되지
사랑했던 사람 떠나면 좀 어때
가슴 좀 아프면 되지
살아가는 게 슬프면 좀 어때
눈물 좀 흘리면 되지
눈물 좀 흘리면 어때
어차피 울며 태어났잖아
기쁠 때는 좀 활짝 웃어
슬플 때는 좀 실컷 울어
누가 뭐라 하면 좀 어때
누가 뭐라 해도 내 인생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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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다시 일어서는 삶
양광모
잠시 기다려 줄 수 있겠니
눈물이여 이별이여 죽음이여
다시 돌아와 줄 수 있겠니
기쁨이여 사랑이여 영광이여
다시 손 내밀어 줄 수 있겠니
순수여 자유여 정열이여
다시 말해 줄 수 있겠니
희망이여 용기여 신념이여
이 모든 것들을
다시 나의 품으로 돌려줄 수 있겠니
그대, 스스로 일어서야 할 나의 영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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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달은 빛나건만
양광모
달이 밝으니
별이 빛을 잃고
사랑이 깊으니
마음이 갈 곳을 잃네
만월은 손가락 끝에 있건만
내 님은 어느 하늘 천 리 밖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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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당신도 그런가요
양광모
비가 오는 날이면
눈이 내리는 날이면
하늘이 흐린 날이면
그대가 너무 그리워요
비도 오지 않고
눈도 내리지 않고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햇살 눈부시게 밝은 날이면
그대가 너무 너무 그리워요
어디선가
나를 그리워할
그대여, 당신도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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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동백에게 죄를 묻다
양광모
동백꽃 피었다 질 제
선운사에 발길 닿았네
바람은 천 년
부처님 미소는 일만 년
나그네, 찻잔 들었다 놓아도
영겁의 시간 흐르건만
동백꽃, 불타던 가슴아
봄 한 철이 어인 덧없음이냐
사랑이 수이 짐이
네 탓이라 말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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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마음 꽃
양광모
꽃다운 얼굴은
한 철에 불과하나
꽃다운 마음은
일생을 지지 않네
장미꽃 백 송이는
일주일이면 시들지만
마음꽃 한 송이는
백 년의 향기를 내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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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멈추지 마라
양광모
비가와도
가야할 곳이 있는 새는
하늘을 날고
눈이 쌓여도
가야할 곳이 있는 사슴은
산을 오른다
길이 멀어도
가야할 곳이 있는 달팽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길이 막혀도
가야할 곳이 있는 연어는
물살을 거슬러 오른다
인생이란 작은 배
그대, 가야할 곳이 있다면
태풍 불어도 거친 바다로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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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목련꽃 피거든
양광모
순백의 웨딩드레스
곱게 차려 입은 봄의 신부
한 잎 한 잎 옷을 벗어
백의의 침대 만드네
뉘라서 저 장미 꽂보다 붉은
사랑 뿌리칠 수 있을까
오늘도 목련꽃 아래 서성이며
베르테르는 로테를 기다리네
사랑이여! 사랑이여!
목련꽃 피거든 모두 다 이루어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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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무료
양광모
따뜻한 햇볕 무료
시원한 바람 무료
아침 일출 무료
저녁 노을 무료
붉은 장미 무료
흰눈 무료
어머니 사랑 무료
아이들 웃음 무료
무얼 더 바래
욕심 없는 삶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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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바람 부는 봄날에는
양광모
벚꽃나무 아래
꽃비 흩날리니
술잔마다 꽃잎 떠있네
가난이 무슨 걱정이랴
오늘은 꽃잎 깔고
내일은 꽃잎 덮으리
바람 부는 봄날에는
동백꽃 닮은 여인을
만나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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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봄
양광모
어둠이 아니라 빛을 봄
어제가 아니라 내일을 봄
미움이 아니라 사랑을 봄
내가 아니라 우리를 봄
비바람 불고 눈보라 치는 날에도
나의 눈에는 언제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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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비 오는 날의 기도
양광모
비에 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소서
때로는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소서
사랑과 용서는
폭우처럼 쏟아지게 하시고
미움과 분노는
소나기처럼 지나가게 하소서
천둥과 번개 소리가 아니라
영혼과 양심의 소리에 떨게 하시고
메마르고 가문 곳에도 주저 없이 내려
그 땅에 꽃과 열매를 풍요로이 맺게 하소서
언제나 생명을 피워내는
봄비처럼 살게 하시고
누구에게나 기쁨을 가져다주는
단비 같은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 이 세상 떠나는 날
하늘 높이 무지개로 다시 태어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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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사랑아 내 부르거든
양광모
사랑아,
내 부르거든
너 바람같이 달려 오거라
천 리 길
가시덤불
산과 바다
뛰어 넘어
사랑아,
내 찾거든
너 벼락같이 날아 오거라
천당 길
지옥 길
여름과 겨울
뛰어 넘어
사랑아,
내 목놓아 울거든
너 벼르던 운명처럼 다가 오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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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사랑을 위한 기도
양광모
내가 사랑한 사람이
나를 사랑한 사람보다 많게 하소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보다
더 깊이 그를 사랑하게 하시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보다
더 오래 그를 사랑하게 하소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보다
더 뜨겁게 그를 사랑하게 하시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보다
더 순결하게 그를 사랑하게 하소서
어느 날 불현듯 나를 미워하더라도
흔들림 없이 그를 사랑하게 하시고
어느 날 불현듯 나를 잊어버리더라도
변함 없이 그를 그리워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누군가에게 사랑 받으며 산 날보다
누군가를 사랑하며 산 날이 더 많게 하소서
그것이 자신의 영혼과 삶을
참사랑 하는 하나뿐인 길임을
사랑 속에서, 오직 사랑의 힘으로 깨닫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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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슬픔이 강물처럼 흐를 때
양광모
슬픔이 강물처럼 흐를 때
차라리 나는 깊은 강이 되리
슬픔이 파도처럼 밀여올 때
차라리 나는 넓은 바다가 되리
슬픔이 절벽처럼 찔러올 때
차라리 나는 높은 산이 되리
그러며 끄떡없지
그러면 아무 일 없지
슬픔이 아무리 큰들
내 생보다야 더 크겠나
입술 지그시 깨물고
꿀꺽 목넘겨 그 슬픔 삼키리
그러면 끄떡없지
그러면 아무 일 없지
☆★☆★☆★☆★☆★☆★☆★☆★☆★☆★☆★☆★
《39》
아내
양광모
장미꽃보다
아름답던 그 여인
코스모스로
동백으로
목련으로
피고 지더니
이제는 내 가슴속
무궁화 꽃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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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애인을 구합니다
양광모
애인을 구합니다
까다롭거나 사람을 많이 가리는
성격은 아니므로
그저,
예쁘고
상냥하고
날씬하고
세련되고
섹시하고
지적이고
유머가 넘치고
미소가 아름답고
문학을 좋아하고
노래를 잘 부르고
춤을 멋지게 추고
음식을 맛있게 만들고
보석보다는 꽃을 더 좋아하고
신보다는 사람을 더 사랑하고
안주보다는 술을 더 잘 먹으며
무슨 말을 하던지 깔깔깔 잘 웃어주고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하늘처럼 생각하는 여자,
그런 여자를
찾는다고 말하면
따뜻한 눈빛과 잔잔한 미소 지으며
꼭 찾아봐 주겠노라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줄 그런 여자를 구합니다
설마,
욕심이 과한 건 아니겠지요?
일주일쯤 함께 술을 마시며
지구에서 10억 광년쯤 떨어진 B612 행성에
작은 살림방 하나 마련하는 것에 대한
진지한 의논을 주고받을까 하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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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언약
양광모
사랑이란
천국으로 가는 계단
이따끔 미끄러져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져도
나의 눈물은
당신의 미소보다 눈부시고
나의 상처는
당신의 사랑보다 찬란하다
이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 지라도
이것이
마지막 정열은 아니리니
오직 한 가지 맹세하는 것은
사랑이여, 지옥불 앞에서도 뒤돌아서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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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우리 더불어
양광모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자*
냇물이 냇물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강이 되자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마을이 되자
내가 당신에게 말합니다
우리 더불어 사랑이 되자
☆★☆★☆★☆★☆★☆★☆★☆★☆★☆★☆★☆★
《43》
우산
양광모
삶이란
우산이다
삶이란
우산을 펼쳤다 접었다
하는 일이요
죽음이란
우산이 더 이상
펼쳐지지 않는 일이다
성공이란
우산을 많이
소유하는 일이요
행복이란
우산을 많이
빌려주는 일이고
불행이란
아무도 우산을 빌려주지
않는 일이다
사랑이란
한쪽 어깨가 젖는데도
하나의 우산을
함께 쓰는 것이요
이별이란
하나의 우산 속에서
빠져나와 각자의
우산을 펼치는 일이다
연인이란
비 오는 날 우산 속 얼굴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요
부부란
비 오는 날 정류장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갈 줄 알면
인생의 멋을
아는 사람이요
비를 맞으며
혼자 걸어가는 사람에게
우산을 내밀 줄 알면
인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비요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우산이다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의
우산이 되어줄 때
한 사람은
또 한 사람의 마른 가슴에
단비가 된다
☆★☆★☆★☆★☆★☆★☆★☆★☆★☆★☆★☆★
《44》
운명 같은 사랑 그리운 날엔
양광모
운명 같은 사랑 그리운 날엔
뿌리마저 뽑아들고 동쪽바다 성끝마을
슬도(瑟島)로 가자
눈 기둥처럼 흰 등대
우뚝 서 있고
흐린 날이면 비가
맑은 날이면 파도가
슬픈 사랑의 노래, 365일 비파(琵琶)로
연주하는 곳
이따금 섬 뒤편으로 날아드는
갈매기 두 마리,
우산 속에 몸 가리고 날개 부비면
등대의 심장에도 붉은 피 돌아
먼바다 돌고래 떼 가슴께 까지 불러들이는 곳
결국에야 갈매기 떠나고 나면
또 한 사연 현무암 바위에
작은 구멍 되어 새겨지고
바람 부는 날이면 수 만개의 구멍
일제히 잔울음 터뜨리는 곳
운명 같은 사랑 그리운 날엔
슬도 바위에 앉아
흰 새 되어 기다려 보라
가을 아침처럼 다가와
꺼지지 않는 불빛
가슴속 등대에 밝혀놓는 사람 있으니
그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
☆★☆★☆★☆★☆★☆★☆★☆★☆★☆★☆★☆★
《45》
조명빨
양광모
골목길 어귀
가로등 불빛을 받아
유난히 반들거리는
담쟁이 푸른 잎사귀의
머쓱한 표정
흉내내며, 나는
곤한 잠에 빠져 있는
백열전등 같은 아내의 얼굴 위로
무언의 빚, 무언의 빚
세례를 쏟아붓나니
네 덕분이었구나
내 삶은 조명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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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짝
양광모
짝이 있다는 건 좋은 일
숟가락이건
젓가락이건
신발이건
친구건
연인이건
새건
꽃이건
은행나무건
바퀴벌레건
슬픔이건
詩건
술잔이건
짝이 있다는 건 기쁜 일
그것은 이 서운하기 짝이 없는 우주에서 혼자는 아니라는 뜻일려니
오늘은 그대와. 그대의 짝을 위해
짝 짝 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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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춘일서정
양광모
봄밤
꽃피는 소리에
잠을 깨고
봄비
꽃 지는 소리에
꽃잎을 헤아리네
욕심도 아서라 슬픔도 아서라
봄볕 꽃 그늘에도 꽃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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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하루종일 비
양광모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꼭 저리하겠지
이른 새벽 첫차를 타고
서둘러 찾아오더니
늦은 밤 막차를 타고
아쉬워 아쉬워 돌아가네
그리도 보고
싶었던 겔까
하루종일 당신에게
묻고 싶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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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하루쯤
양광모
1년에 하루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저 웃기만 해도 좋을 일이다
1년에 하루쯤은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그저 따뜻한 말만 건네도 좋을 일이다
그래도 364일,
마음껏 아파하며 슬퍼할 수 있고
마음껏 투덜거리며 화낼 수 있으니
1년에 하루쯤은
모든 상처와 눈물 잊어버리고
그저 감사만으로 살아도 좋을 일이다
언제나 그 하루를
내일이나 모레가 아닌 오늘로 만들며
365일 중 하루쯤, 하며 살아도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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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한번은 詩처럼 상아야 한다
양광모
누구라도
한 때는 시인이였나니
오늘 살아가는 일 아득하여도
그대 꽃의 노래 다시 부르라
누구라도
일평생 시인으로 살순 없지만
한 번은 詩처럼 살아야 한다.
한 번은 詩인양 상아야 한다
그대 불의 노래 다시 부르라
그대 얼음의 노래 다시 부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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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함께 눈물이 되는 이여
양광모
낮은 곳에선
모두 하나가 된다
빗방울이 빗물이 되듯
강물이 바다가 되듯
나의 마음자리
가장 낮은 곳까지 흘러와
함께 눈물이 되는 이여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우리 함께 샘물 같은 사랑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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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행복의 길
양광모
당신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인생을 잘 산 것입니다
당신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인생을 더욱 잘 산 것입니다
그리고 행복은 그때 찾아옵니다
당신이 자신의 행복보다는
누군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기도할 때
사랑의 기쁨이 바로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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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사람이 그리워야 사람이다
양광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니
따뜻한 것이 그립습니다
따뜻한 커피
따뜻한 창가
따뜻한 국물
따뜻한 사람이 그립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조금이라도
잘 하는 것이 있다면 그리워하는 일일게다
어려서는 어른이 그립고
나이드니 젊은 날이 그립다
헤어지면 만나고 싶어 그립고
만나면 혼자 있고 싶어 그립다
돈도 그립고
사람도 그립고
어머니도 그립고
네가 그립고
또 내가 그립다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졌다
어떤 사람은 따뜻했고
어떤 사람은 차가웠다.
어떤 사람은 만나기 싫었고
어떤 사람은 헤어지기 싫었다
어떤 사람은 그리웠고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누군가에게 그리운 사람이 되자
사람이 그리워야 사람이다
사람이 그리워해야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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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6월 장미에게 묻는다
양광모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붉은 열망과
푸른 상처를
만지작거리며
6월 장미에게 묻는다
누군가를 다시
사랑할 수 있겠니
누군가를 다시
그리워할 수 있겠니
누군가의 가시에 콕 찔려
다시 소스라치게 놀랄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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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3월 예찬
양광모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이제 곧 끝난다는 것 알지?
언제까지나 겨울이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것 알지?
3월은 판도라의 상자에서
기지개를 켜며 말하네
아직 꽃 피지는 않았지만
이제 곧 활짝 피어나리라는 것 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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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을 편지
양광모
9월과 11월 사이에
당신이 있네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천진한 웃음 지으며 종일토록 거니는
흰 구름 속에
아직은 녹색이 창창한 나뭇잎 사이
저 홀로 먼저 얼굴 붉어진
단풍잎 속에
3월 예찬
양광모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이제 곧 끝난다는 것 알지?
언제까지나 겨울이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것 알지?
3월은 판도라의 상자에서
기지개를 켜며 말하네
아직 꽃 피지는 않았지만
이제 곧 활짝 피어나리라는 것 믿지?
김 시인님 멋진
시인님 글 모아 주심에
즐감했어요
위크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