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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주의 개(趙州狗子) *조주무자
*분별하지 마라
조주 화상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조주가 말했다.
“무(無)!”
무문은 말한다.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의 관문[祖師關]을 꿰뚫어야 하고, 묘한 깨달음은 반드시 생각의 길[心路]이 끊어져야 한다. 조사의 관문을 꿰뚫지 못하고 생각의 길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모두가 풀과 나무에 빌붙어 사는 귀신일 뿐이다.
그렇다면, 말해보라! 어떤 것이 조사의 관문인가? 다만 이 한낱 “무(無)!”란 말이 바로 선종의 한 관문이다. 그래서 이것을 가리켜 ‘선종 무문관(禪宗無門關)’이라 한다. 이것을 꿰뚫을 수 있는 사람은 비단 조주(趙州)화상을 직접 뵐뿐만 아니라, 역대의 조사(祖師)들과 손을 잡고 함께 행동하며, 눈썹을 맞대고 같은 눈으로 보고 같은 귀로 들을 수 있으니, 어찌 기쁘고 유쾌하지 않겠는가?
이 관문을 꿰뚫고 싶지 않은가? 365개의 뼈마디와 8만4천 개의 털구멍을 가지고 온몸에 의심덩이를 일으켜 이 “무(無)!”라는 말을 참구하라. 밤낮으로 들어보되, ‘허무하다’는 알음알이도 짓지 말고 ‘있다’, ‘없다’의 알음알이도 짓지 말라. 마치 뜨거운 쇠구슬을 삼킨 것 같아서 토하고 토해도 나오지 않게 된다. 이전의 잘못된 지식과 관념을 모두 없애서 오래도록 잘 익히면 자연스레 안팎이 한 덩어리를 이룰 것이다.
마치 벙어리가 꿈을 꾼 것과 같아서 다만 스스로 알 수 있을 뿐이나, 문득 드러나면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울려서 관우 장군의 큰 칼을 빼앗아 손에 쥔 것처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삶과 죽음의 언덕가에서 커다란 자유를 얻어 중생살이[六道四生] 가운데에서도 삼매를 즐긴다.
그렇다면 어떻게 들고 있을 것인가? 평생의 기력을 다하여 “무(無)!”란 말을 들어보라. 만약 끊어짐이 없다면 법의 촛불에 단박 불붙듯 될 것이다.
게송으로 이른다.
개의 불성,
불법[正令]을 온전히 드러냈도다.
조금이라도 ‘있다·없다’에 걸리면
목숨을 잃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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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나 문자에 걸려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을 일
으킨다면 자기의 밝음을 잃고 만다. 어리석으므로
일어나는 일체 마음의 의심 덩어리를 벗어버리고
참선의 관문을 통과하여야만 비로소 선지식으로서
의 면목을 바로 세우게 되는 것이다.
2. 백장과 들여우(百丈野狐)
*말에 떨어지지 않는다.말에 어둡지 않다. 같은 말이다. 분별하지 마라
백장 화상이 설법할 때마다 한 노인이 항상 대중을 따라 법문을 듣다가 대중들이 물러가면 노인 또한 물러가곤 했는데, 하루는 설법이 끝나도 물러가지 않고 있기에 스님께서 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뉘시오?”
노인이 말했다.
“네, 저는 사람이 아니올시다. 과거 가섭불 시대에 이 산에 머물고 있었는데 어떤 학인이 ‘크게 수행을 한 사람도 또한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라고 묻기에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不落因果]’라고 대답했다가 5백 생을 여우 몸에 떨어졌습니다. 이제 청컨대 스님께서 제 대신 한 마디 말씀을 해주시어 여우 몸을 벗어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는 물었다.
“크게 수행한 사람도 또한 인과에 떨어집니까?”
스님께서 말했다.
“인과에 어둡지 않느니라.[不昧因果]”
노인은 말끝에 크게 깨닫고 절을 올리고 말했다.
“저는 이미 여우 몸을 벗어나서 산 뒤쪽에 있으니 송구스럽지만 화상께서는 죽은 승려의 사례에 따라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님께서는 유나(維那 ; 선원 대중을 지도하는 직책을 맡은 승려)로 하여금 목탁[백추(白槌)]을 쳐서 공양 후에 죽은 승려의 다비식이 있음을 알렸다. 대중들은 ‘모든 대중이 다 평안하고 열반당(涅槃堂 ; 노승이나 병든 승려가 머무는 곳)에도 또한 아픈 사람이 없는데 무슨 까닭에 그럴까?’ 하고 수군거렸다. 공양 후에 스님께서는 대중을 이끌고 산 뒤쪽 바위 아래에 이르러 지팡이로 한 마리 죽은 들여우를 끄집어내어 화장을 하였다.
스님께서 저녁에 상당(上堂)하시어 앞서의 인연을 이야기하자 황벽이 곧바로 물었다.
“옛날 분이 한 마디 말씀을 잘못 대답하여 5백 생을 여우 몸에 떨어졌는데, 한 마디 한 마디 어긋나지 않았다면
도대체 무엇이 되었을까요?”
스님께서 말했다.
“가까이 오너라. 너에게 말해주마.”
황벽은 앞으로 가까이 가서 스님의 뺨을 한 대 후려 갈겼다.
스님께서는 손뼉을 치며 웃으며 말했다.
“오랑캐[보리달마(菩提達磨)]의 수염만 붉다고 여겼는데 여기 붉은 수염 달마가 또 있구나!”
무문은 말한다.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不落因果]’ 하면 어째서 들여우에 떨어지고, ‘인과에 어둡지 않다[不昧因果]’ 하면 어째서 들여우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만약 여기에서 외짝 눈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여우 노인[前百丈]이 5백 생 동안 풍류를 즐겼다는 사실을 곧장 알리라.
*일척안 [ 一隻眼 ] :
두 개의 육안(肉眼)이 아닌, 하나의 심안(心眼).
게송으로 이른다.
떨어지지 않는다, 어둡지 않다,
한 주사위의 두 가지 무늬일 뿐.
어둡지 않다, 떨어지지 않는다,
천 번 틀리고 만 번 어긋난다.(천번 만번 착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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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나는 법이 인과이
다. 인과법을 따르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인과를
초월하는 것이 해탈이자 열반이다. 집착과 수용이
없으니 인과가 없는 것이다. 야호선(野狐禪)이라고
하여 경지에 이르지도 못한 자가 깨달은 척 하며 선
지식 흉내나 내는 엉터리 선으로 야호선으로 가는
길을 경계해야 한다.
안주하면 여우요 사람이고 중생인데, 경지에 이르
고 분별을 섞지 아니하면 깨달은 자가 된다.
결국 경계와 구분이 없는 것인데 착각을 벗어나지 못하니 규정 짓는 것이다. 흔적없는 경계에 살아라.
3. 구지가 손가락을 세우다 (俱胝竪指, 구지수지)
*
구지 화상은 누가 무엇을 물어 올 때마다 오직 손가락 하나만 들어보였다.
나중에 구지 화상 처소의 어떤 동자에게 한 방문객이 “화상께서는 어떤 법을 설하시느냐?”라고 묻자, 동자도 역시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구지가 이를 듣고 급기야 칼로 동자의 손가락을 잘라버렸다. 동자가 아파서 엉엉 울며 달아나는데 구지가 다시 그를 불렀다. 동자가 머리를 돌리자 이번에는 구지가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이에 동자는 문득 깨달았다.
구지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되어서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천룡의 한 손가락 선을 얻어 일생을 쓰고도 다 쓰지 못했다.”
그렇게 말을 마치고는 입적했다.
무문은 말한다.
구지와 동자가 깨달은 곳은 손가락 끝에 있지 않다. 만약 여기에서 알아차리면 천룡과 구지와 동자, 그리고 자기를 한 꼬치에 꿰어 버릴 것이다.
게송으로 이른다.
구지는 늙은 천룡을 바보 취급하고
날카로운 칼로 동자를 점검하였네.
거령신이 아무렇지 않게 손을 들어
천만 겹 화산(華山)을 쪼개버린 것처럼.
▶거령신: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신. 옛날 황하(黃河)가 용문(龍門)이라는 곳에서 동쪽으로 흐르려 하자 대화산(大華山)이라는 큰 산이 솟아 있어서 흐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호우가 내리면 강물이 넘쳐 피해가 매우 컸다. 그것을 거령신이 화산(華山)과 수양산(首陽山)이라는 두 개의 산으로 찢어 갈라놓았으므로 강물은 그 사이로 해서 동쪽으로 흐르게 되었고 그 덕분에 강가 사람들은 수해를 면하게 되었다는 고사(故事)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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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달마는 수염이 없다 (胡子無鬚)
혹암이 말했다.
“서천(西天)의 오랑캐(胡子 ; 보리달마)는 어째서 수염이 없는가?”
무문은 말한다.
참구하려면 모름지기 실답게 참구해야 하고, 깨달으려면 모름지기 실답게 깨달아야 한다. 이 오랑캐를 한 번은 직접 만나 봐야 하지만, 직접 만났다고 하면 벌써 둘이 되어버린다.
게송으로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 앞에서는
꿈 이야기를 하지 말라.
오랑캐는 수염이 없다는 말,
밝고 분명한 것을 애매하게 만드네.
▶혹암 사체(或庵師體 1108~1179) : 초산 사체(焦山師體). 남송대(南宋代) 스님. 초산은 주석 지명. 속성은 나(羅)씨. 태주(台州) 출신. 호국 경원(護國景元)의 법사로서 초산(焦山) 등에 머뭄.
5. 향엄이 나무에 오르다 (香嚴上樹)
향엄 화상이 말했다.
“가령 그대가 나무에 올라가서 입으로 나뭇가지를 문 채 손으로도 가지를 잡지 않고 발로도 나무를 딛지 않고 있는데, 나무 아래의 어떤 사람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을 묻는다고 하자. 대답하지 않으면 그가 묻는 것에 어긋나고 만약 대답한다면 목숨을 잃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때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무문은 말한다.
설사 물 흐르듯 거침없는 말솜씨가 있더라도 전혀 소용없고, 팔만대장경을 모두 설할 수 있어도 또한 소용없다. 만약 여기에 대답할 수 있다면 이전까지 죽어있던 것을 살리게 되고, 이전까지 살아있던 것을 죽이게 될 것이다. 아직 그렇지 못하다면 곧 다음 세상을 기다려 미륵(彌勒)에게 물어보라.
게송으로 말한다.
향엄은 참으로 터무니없고
악독하기가 이를 데 없네.
납승의 입을 틀어막고
온몸에 귀신 눈 솟게 만든다.
6. 세존께서 꽃을 들다(世尊拈花)
세존께서 옛날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셨다. 그때 대중들은 모두 말이 없었으나 오직 가섭 존자만 빙그레 미소 지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내게 정법안장(正法眼藏), 열반묘심(涅槃妙心), 실상무상(實相無相)인 미묘한 법문이 있으니, 문자에 의지하지 않고 교설 이외에 따로 전하여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
무문은 말한다.
누런 얼굴의 석가는 주위에 아무도 없는 듯 양민(良民)을 억눌러 천민(賤民)으로 만들고, 양(羊) 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파는구나! 제법 기특하다 할 수 있으나, 만약 그때 대중들이 모두 웃었다면 정법안장을 어떻게 전했을까? 만일 가섭이 웃지 않았더라면 정법안장은 또 어떻게 전했을까?
만약 정법안장이 전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누런 얼굴의 늙은이가 세상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고, 만약 정법안장이 전해 줄 수 없는 것이라면 어째서 가섭 한 사람에게만 허락하였는가?
게송으로 이른다.
꽃을 들어 올렸을 때
이미 꼬리까지 드러났도다.
가섭은 빙그레 웃는데
사람과 하늘 어쩔 줄 모르네.
7. 조주의 발우 씻기(趙州洗鉢)
조주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저는 이제 막 총림에 들어 왔으니 스님의 지시를 바랍니다.”
조주가 말했다.
“죽은 먹었느냐?”
승려가 말했다.
“먹었습니다.”
조주가 말했다.
“발우나 씻어라.”
그 승려는 문득 깨달았다.
무문은 말한다.
조주는 입을 열어 쓸개를 내보이고 심장과 간마저 드러냈지만, 이 중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니 종(鐘)을 항아리(甕)라고 하는 셈이다.
게송으로 이른다.
다만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도리어 얻기에 더디도다.
일찍이 등불이 불임을 알았던들
밥은 이미 되고도 남았을 것을.
▶ 옛날 중국에 한 우둔한 자가 있어 해가 저물어 밥을 지으려고 하는데 솥가마에 불씨가 없음을 알고 등에 불을 붙여서, 꽤 떨어진 옆집까지 불을 구하러 갔다는 속화(俗話)에 기반을 둔 이야기로, 자기가 들고 있는 등불이 불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벌써 밥은 지어져 있을 것인데, 라고 하는 이야기이다.
8. 해중의 수레(奚仲造車)
월암 화상이 어느 승려에게 물었다.
“해중(奚仲)이 백 개의 바퀴살을 가진 수레를 만들면서 두 바퀴도 뽑아버리고 바퀴 축도 떼어버린 것은 어떤 일을 밝히려는 것인가?”
무문은 말한다.
만약 곧바로 밝힐 수 있다면 안목(眼目)은 유성(流星)과 같고, 기틀은 번갯불(掣電)과 같으리라.
게송으로 이른다.
기륜(機輪)이 구르는 곳에선
달자(達者)조차 오히려 헤매네.
사유상하(四維上下)에
동서남북(東西南北)이로다.
※해중:중국 고대 하(夏)나라 사람으로 수레를 처음 발명한 사람.
※기륜:원문은 기(機). 기발(機發)이라는 뜻. 즉 연(緣)을 만나서 발동(發動)될 만한 가능성. 교법(敎法)에 의해서 격발되는 중생의 심기(心機). 선기(禪機).
9. 대통지승불(大通智勝佛)
흥양 양 화상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대통지승불이 십 겁(劫) 동안 도량(道場)에 앉았어도 불법이 앞에 드러나지 않아서 불도를 이룰 수 없었다는데 이러할 때는 어떻습니까?”
양 화상이 말했다.
“그 질문이 매우 합당하구나!”
승려가 말했다.
“이미 도량(道場)에 앉았는데 어째서 불도를 이룰 수 없었습니까?”
양 화상이 말했다.
“그가 부처를 이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문은 말한다.
다만 늙은 오랑캐가 깨달아 아는 것만 허락할 뿐 늙은 오랑캐가 알음알이로 이해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범부라도 만약 깨달아 안다면 곧 성인이요, 성인이라도 만약 알음알이로 이해한다면 곧 범부이다.
게송으로 이른다.
몸을 닦는 것이 어찌 마음을 깨달아 쉬는 것만 하겠는가?
마음을 깨닫고 나면 몸을 근심하지 않나니,
만약 몸과 마음을 모두 깨닫는다면
신선이 어찌 다시 벼슬자리를 받겠는가?
10. 청세의 가난(淸稅孤貧)
조산 화상에게 청세라는 승려가 물었다.
“저는 외롭고 가난하니 스님께서 불쌍히 여겨 도와주십시오.”
조산이 말했다.
“청세 스님!”
청세가 “네.” 하고 대답했다.
조산이 말했다.
“청원의 백가주를 석 잔이나 마셔놓고도 오히려 아직 입술도 적시지 못했다고 하는구려.”
무문은 말한다.
청세의 행동은 어떤 속셈이었을까? 조산은 안목이 있어 상대의 기틀을 깊이 간파했다.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번 말해 보라. 어느 곳이 청세 스님이 술을 마신 곳인가?
게송으로 이른다.
가난하기는 범단(范丹)과 흡사하나
기개는 항우(項羽)와 같구나!
살아갈 계책이 비록 없으나
감히 더불어 부(富)를 다투도다!
▶백가주:지금의 복건성(福建省) 천주(泉州)에서 나는 유명한 술.
▶범단:범염(范冉)이라고도 하며 후한(後漢) 시대에 청빈하기로 유명한 선비.
11. 조주가 암주를 간파하다(州勘庵主)
조주가 한 암주의 처소에 이르러 물었다.
“있는가? 있는가?”
그러자 암주는 주먹을 들어 보였다.
조주가 말했다.
“물이 얕아 배를 댈만한 곳이 아니군!”
그러고는 곧 가버렸다.
또 다른 암주의 처소에 이르러 물었다.
“있는가? 있는가?”
그러자 그 암주 역시 주먹을 들어 보였다.
조주가 말했다.
“능히 놓아주기도 하고 능히 빼앗기도 하며, 능히 죽이기도 하고 능히 살리기도 하는구나!”
그러고는 곧 절을 했다.
무문은 말한다.
주먹을 들어 보인 것은 한 가지인데 어째서 한쪽은 긍정하고 한쪽은 긍정하지 않았을까? 자, 말해보라. 잘못이 어디에 있는가?
만약 여기에서 한 마디 뒤집는 말을 할 수 있다면 곧 조주의 혀끝에는 뼈가 없어서, 붙들어 일으키고 놓아 넘어뜨림에 크게 자재함을 알아차릴 것이다. 비록 이와 같더라도 도리어 조주가 두 암주에게 간파(看破) 당했으니 어찌 하겠는가?
만약 두 암주에게 우열이 있다고 한다면 아직 공부하는 안목을 갖추지 못한 것이고, 만약 우열이 없다고 해도 또한 아직 공부하는 안목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게송으로 이른다.
안목은 유성 같고,
기틀은 번개 같네.
사람을 죽이는 칼이자,
사람을 살리는 검이로세.
12. 서암이 주인공을 부르다(巖喚主人)
서암 언 화상은 매일 스스로 “주인공아!” 하고 부르고 다시 스스로 “예!” 하고 대답하였다. 이어서 “깨어있어라!”, “예!”, “훗날 남들에게 속지 말아라!”, “예, 예!” 하고 말하였다.
무문은 말한다.
서암 노장은 자기가 팔고 자기가 사면서 허다한 귀신 탈바가지들을 장난스럽게 내어 놓으니 무슨 까닭일까? 자, 하나는 부르고, 하나는 응답하고, 하나는 깨어있고, 하나는 남들의 속임을 받지 말라고 하는데, 그런 줄로 알면 여전히 옳지 못하고, 만약 그를 흉내낸다면 모두 들여우 같은 견해이다.
게송으로 이른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진실을 알지 못하는 것은
다만 예전부터 식신(識神)을 자기로 알았기 때문이네.
헤아릴 수 없는 과거부터 생사의 근본을
어리석은 사람들은 본래의 자기라고 부르네.
13. 덕산이 발우를 들고 가다(德山托鉢)
덕산이 하루는 발우를 들고 식당으로 내려가다 이를 본 설봉이 “이 노인네가 종도 아직 울리지 않고 북도 치지 않았는데 발우를 가지고 어디로 가는 거요?” 하고 묻자, 덕산은 곧 방장(方丈)으로 돌아갔다.
설봉이 이 일을 암두에게 말하자 암두는 “대단하다는 덕산도 아직 마지막 구절을 모르는구나!”라고 말했다. 덕산이 그 말을 듣고 시자를 시켜 암두를 불러 오게 하고는 “네가 이 늙은이를 긍정하지 않느냐?”라고 물었다. 암두가 남몰래 그 뜻을 말씀드리자 덕산은 곧 그만두었다.
다음날 법좌에 오르니 과연 평소와는 같지 않았다. 암두가 승당(僧堂) 앞에 이르러 손뼉을 치고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기쁘구나! 노인네가 마지막 구절을 알았도다. 이제부터 천하의 사람들이 그를 어쩌지 못하리라!”라고 하였다.
무문은 말한다.
만약 마지막 구절이라면 암두와 덕산 모두 꿈에도 보지 못했다. 자세히 점검해 보면 한바탕 꼭두각시 놀음 같다.
게송으로 말한다.
맨 처음 구절을 알 수 있다면
곧바로 마지막 구절도 알겠지만,
마지막 구절과 맨 처음 구절도
이 한 구절은 아니로다!
14. 남전이 고양이를 죽이다(南泉斬猫)
남전 화상은 동당(東堂)과 서당(西堂) 스님들이 고양이를 가지고 다투기에 고양이를 들어 보이고는 말했다.
“대중들이여, 한 마디 이를 수 있다면 살려줄 것이요, 이르지 못한다면 베어버리겠다!”
대중들이 대답이 없자 남전은 마침내 고양이를 죽였다.
저녁에 조주가 밖에서 돌아오자 남전은 낮에 있었던 일을 조주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조주는 신을 벗어 머리에 이고는 나가버렸다. 남전이 말했다.
“만약 자네가 있었다면 고양이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
무문은 말한다.
자, 말해 보라. 조주가 짚신을 머리에 인 까닭은 무엇일까? 만약 여기에서 한 마디를 할 수 있다면 곧 남전의 명령이 헛되이 행해진 것이 아님을 알리라.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위험하다!
게송으로 이른다.
조주가 만약 있었다면
그 명령을 거꾸로 행했으리.
칼을 빼앗기고
남전도 목숨을 빌었으리.
15. 동산의 세 방망이(洞山三頓)
운문에게 동산이 가르침을 받으러 왔기에 운문이 물었다.
“최근에 어디를 떠나왔는가?”
동산이 말했다.
“사도에서 왔습니다.”
운문이 말했다.
“여름엔 어디에 있었는가?”
동산이 말했다.
“호남의 보자사에 있었습니다.”
운문이 말했다.
“언제 거기를 떠났는가?”
동산이 말했다.
“8월 25일에 떠났습니다.”
운문이 말했다.
“네게 세 차례 방망이질 할 것을 봐주었다.”
동산이 다음 날 다시 찾아가 문안을 드리면서 물었다.
“어제 화상께서 세 차례 방망이질 할 것을 봐주셨는데 허물이 어느 곳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운문이 말했다.
“밥통아! 강서와 호남으로 이렇게 돌아다녔느냐?”
동산은 이에 크게 깨달았다. .
무문은 말한다.
운문이 그때 곧바로 본분초료(本分草料)를 주어 동산으로 하여금 따로 한 가닥 살아날 방도가 있게 함으로써 가문이 쓸쓸해지지 않았다. 하룻밤을 시비(是非)의 바다 속에 빠뜨렸다가, 곧바로 날이 밝아 다시 오는 것을 기다려 또 그에게 가르침을 베푸니, 동산이 즉시 깨달았으나 아직 영리하다고 할 수는 없다.
자, 여러분에게 묻노니, 동산이 세 차례의 방망이질을 받을 만한가, 받을 만하지 않은가? 만약 받을 만하다고 한다면 초목과 수풀도 모두 방망이를 받아야 마땅하고, 만약 받을 만하지 않다고 한다면 운문은 거듭 헛소리를 한 것이다. 여기에서 분명하다면 바야흐로 동산과 더불어 같이 호흡하게 될 것이다.
게송으로 이른다.
사자는 새끼를 당혹케 하는 방법으로 가르치나니
앞으로 뛰려고 머뭇거리자마자 얼른 몸을 뒤집는다.
느닷없이 거듭 펼쳐 정통으로 맞추었으니
앞 화살은 오히려 가벼웠으나 나중 화살은 깊도다.
16.종소리에 칠조 가사를 입는다(鐘聲七條)
운문이 말했다.
“세계가 이렇게 드넓은데 어째서 종소리가 울리면 칠조 가사를 입는가?”
무문은 말한다.
무릇 참선하여 도를 배움에는 소리를 따르고 색을 쫓는 것을 삼가야 한다. 비록 소리를 듣고 도를 깨닫고 색을 보아 마음을 밝히더라도 그것은 예삿일이니, 납승의 집안에서는 소리를 올라타고 색을 뒤덮어 하나하나에 밝고 하는 일마다 묘하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한번 말해 보라. 소리가 귓가에 오는 것인가, 귀가 소리 곁으로 가는 것인가? 설사 소리와 고요함 둘 다 잊을지라도 이에 이르러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만약 귀로 듣는다면 알기 어렵고 눈으로 소리를 들어야 비로소 가까우리라.
게송으로 이른다.
알면 곧 매사가 한 집안이요,
알지 못하면 천차만별이로다.
알지 못하면 매사가 한 집안이요,
알면 곧 천차만별이로다.
17. 국사가 세 번 부르다(國師三喚)
국사(國師)가 시자(侍者)를 세 번 부르자 시자가 세 번 대답했다.
국사가 말했다.
“내가 너를 저버렸다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도리어 네가 나를 저버렸구나!”
무문은 말한다.
국사의 세 번 부름은 망상을 피운 것이고, 시자의 세 번 대답은 본바탕을 공손히 드러낸 것이다. 국사가 나이 들어 마음이 외로웠는지 소머리를 눌러 풀을 먹이려 했건만, 시자는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니 맛있는 음식도 배부른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는 법이다.
자, 말해보라. 어느 곳이 저 시자가 국사를 저버린 곳인가? 나라가 맑으면 재주 있는 사람이 귀하게 대접받고, 집안이 부유하면 자식이 버릇없다.
게송으로 이른다.
구멍 없는 쇠칼을 사람에게 씌우려 하니,
그 허물이 자손에게 미쳐 등한할 수 없도다.
선가(禪家)의 문호(門戶)를 떠받치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맨발로 칼산을 올라야 하리라.
18. 동산의 삼 서 근(洞山三斤)
동산 수초 화상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동산이 말했다.
“삼 서 근.”
무문은 말한다.
동산노인은 그저 그런 조개껍데기 선을 얻어서 두 입술을 열자마자 속내를 다 드러내 보였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한번 말해보라. 어디에서 동산을 보는가?
게송으로 이른다.
불쑥 내뱉은 삼 서 근,
말도 가깝지만 뜻은 더욱 가깝도다!
와서 옳다 그르다 따지는 자가
바로 시비(是非)에 떨어진 사람이로다.
19. 평상심이 도(平常是道)
남전에게 조주가 물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남전이 말했다.
“평소의 마음이 도이다.”
조주가 말했다.
“찾아 나아갈 수 있습니까?”
남전이 말했다.
“헤아려 나아가려 하면 곧 어긋난다.”
조주가 말했다.
“헤아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도인 줄 알겠습니까?”
남전이 말했다.
“도는 아는 것에도 속하지 않고, 모르는 것에도 속하지 않으니, 안다고 하는 것은 망령된 깨달음(妄覺)이요, 모른다는 것은 깜깜한 것(無記)이다. 만약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도에 통달한다면 마치 허공과 같이 텅 비고 탁 트일 테니, 어찌 굳이 옳고 그름을 따지겠는가?”
조주는 이 말끝에 단박 깨달았다.
무문은 말한다.
남전은 조주의 물음을 받고 곧바로 기왓장이 깨지고 얼음이 녹듯하여 할 말이 없었다.(생각이 다 사리지게 되어 법을 설명할 수 없게 되었음을 말한다.) 조주가 비록 깨달았다 하지만 다시 삼십 년은 더 참구해야 했다.
게송으로 이른다.
봄에는 갖가지 꽃, 가을에는 두둥실 달,
여름에는 서늘한 바람, 겨울에는 하얀 눈.
만약 쓸데없는 일에 마음 두지 않는다면
곧 이것이 인간 세상 좋은 시절이어라.
20. 큰 능력을 가진 사람(대역량인,大力量人)
송원숭악 화상이 말했다.
“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어째서 다리를 들어 올리지 못하는가?”
또 말했다.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은 혀에 있지 않다.”
무문은 말한다.
송원은 창자를 꺼내고 뱃속을 뒤집어 보였다 하겠으나 다만 받아들인 사람이 없을 뿐이다. 설령 곧바로 받아들였다하더라도 무문의 처소에 와서 아프게 몽둥이를 맞는 것이 좋을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진금(眞金)인지 알아보려면 불 속에 넣어봐야 한다.
게송으로 말한다.
다리 들어 향수해(香水海) 밟아 뒤집고
머리 숙여 사선천(四禪天) 내려다본다.
이 한 개의 몸뚱이를 둘 곳 없으니
청컨대 나머지 한 구절을 이어주게나.
▶향수해(香水海):수미산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큰바다
▶사선천(四禪天):사선정(四禪定)을 닦아서 나는 색계(色界)의 네 하늘. 초선천(3천), 2선천(3천),3선천(4천),4선천(9천). 모두 18천(天). 수미산 위에 있는 욕계육천(欲界六天)을 지나 그 위의 하늘에 있는 색계십팔천(色界十八天)임.
*강신주: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면 들어올릴 수 있다.의식해서 하면 안될 수가 있다. 말을 할때 혀끝을 의식하면 말하기가 어렵 듯이.생각은 일상적인 삶과 흐름이 깨졌을 때 나온다. 대역량인이라도 다리를 들어올리는 복잡한 메커니즘을 의식하면 다리를 들어올릴 수 없게 된다.
21. 운문의 똥 닦는 막대기(雲門屎橛)
운문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운문이 말했다.
“똥 닦는 막대기이다!”
무문은 말한다.
운문은 집안이 가난해서 밥 한 그릇 차리기 어렵고, 일이 바빠 글을 휘갈겨 쓸 틈도 없었다 하겠다. 여차하면 곧 똥 닦는 막대기를 가져다 문호(門戶)를 떠받치니 불법의 흥망성쇠를 가히 알 만하다.
게송으로 이른다.
번개가 번쩍이고
불꽃이 튀는구나!
눈 깜짝할 사이에
이미 지나갔도다!
22. 가섭의 찰간(迦葉刹竿)
가섭에게 아난이 물었다.
“세존께서 금란가사를 전하신 것 이외에 따로 어떤 물건을 전하셨습니까?”
가섭이 아난을 불렀다.
“아난아!”
“예.”
“문 앞의 찰간을 넘어뜨려라!”
무문은 말한다.
만약 여기에서 한 마디 알맞은 말을 분명히 할 수 있다면 곧 영산(靈山)의 법회가 아직도 엄연히 흩어지지 않았음을 볼 것이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비바시불이 일찍부터 불법에 마음을 두었음에도 지금에 이르기까지 묘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게송으로 이른다.
묻는 곳이 어떠하건 답한 곳은 뚜렷하니
몇 사람이나 여기에서 눈을 활짝 뜨겠는가?
형의 부름에 동생이 대답하여 집안의 추태를 드러내니
사계절에 속하지 않는 특별한 봄이로다!
※비바시불(毘婆尸佛):과거 칠불(七佛) 중의 첫번째 부처.
23. 선도 악도 생각 말라(不思善惡)
육조(혜능)는 명 상좌가 쫓아와 대유령에 이른 것을 보고 곧 의발을 돌 위에 던져놓고 말했다.
“이 옷은 믿음을 표시하는 것이니 어찌 힘으로 다투겠는가? 그대 마음대로 가져가시오!”
명 상좌가 마침내 그것을 들어 올리려 했으나 산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어쩔 줄 모르고 벌벌 떨면서 명 상좌가 말했다.
“저는 법을 구하러 온 것이지, 옷 때문에 온 것이 아닙니다. 바라옵건대 행자께선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육조가 말했다.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마시오. 바로 이러한 때에 어느 것이 명 상좌의 본래면목입니까?”
명 상좌가 그 자리에서 크게 깨닫고는 온 몸에 땀을 흘리고 눈물을 쏟으며 절을 하고는 물었다.
“좀 전의 비밀한 말씀과 비밀한 뜻 이외에 또 다른 가르침이 있습니까?”
육조가 말했다.
“내가 지금 그대를 위해 말한 것은 비밀이 아니오. 그대가 만약 자신의 본래면목을 되비추어 본다면 비밀은 오히려 당신 쪽에 있소.”
명 상좌가 말했다.
“제가 비록 황매에서 대중을 따랐으나 실로 자기의 본래면목을 알지 못했는데, 이제 들어갈 곳을 가르쳐 주시는 은혜를 입으니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시고 차고 더움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행자께서 바로 저의 스승이십니다.”
육조가 말했다.
“그대가 만약 그러하다면 곧 나와 그대는 황매를 함께 스승으로 모시는 것이오. 스스로 잘 지켜나가기 바라오.”
무문은 말한다.
육조는 이 일을 급박하게 했으나 노파심이 간절했다 하겠다. 비유하자면 신선한 과일을 껍질도 벗기고 씨도 빼서 그대 입 안에 넣어 준 것과 같으니, 다만 그대는 한 번 삼키기만 하면 된다.
게송으로 이른다.
묘사할 수도 없고 그릴 수도 없고
칭찬도 못 미치니 괜한 수고 그만두게.
본래면목은 숨길 곳 없으니
세계가 무너질 때도 그는 없어지지 않네.
24. 언어를 벗어나라(離却語言)
풍혈 화상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말하는 것도, 침묵하는 것도 들어가고 나옴(離微)에 걸리니 어떻게 하면 통하여 어긋나지 않겠습니까?”
풍혈이 말했다.
“항상 강남의 3월을 기억하나니, 자고새 우는 곳에 온갖 꽃이 향기롭다네!”
무문은 말한다.
풍혈의 기틀은 번개 같아서 길을 찾으면 곧바로 가거늘, 어찌하여 앞 사람의 혀끝을 끊지는 못하고 앉아 있는가?
만약 여기에서 정확하게 알아차렸다면 스스로 몸을 벗어날 길이 있을 것이다. 자, 언어의 세계(語言三昧)를 떠나서 한 마디 해 보라.
게송으로 이른다.
격조 높은 말귀 드러내지 않아도
말하기 전에 벌써 전해 주었네.
앞으로 다가와 주절주절 입을 연다면
그대야말로 어찌할 수 없음을 알겠네.
25. 셋째 자리의 설법(三座說法)
앙산 화상은 꿈에 미륵이 계신 곳에 가서 세 번째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때 한 존자가 백추를 하고는 말했다.
“오늘은 세 번째 자리에 앉은 분이 법을 설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앙산은 일어나 백추를 하고는 말했다.
“대승(摩訶衍)의 법은 사구를 떠나고 백비를 끊었으니 자세히 듣고 자세히 들으시오!”
*사구:변증법의 일종, 백비: 부정을 계속
무문은 말한다.
자, 말해보라. 이것은 법을 설한 것인가, 법을 설하지 않은 것인가? 입을 열면 곧 그르치고, 입을 닫고 있으면 목숨을 잃는다. 입을 열지도 닫지도 않으면 십만 팔천 리 떨어져 있다.
게송으로 이른다.
햇빛 쨍쨍한 밝은 대낮에
꿈속에서 꿈을 이야기하도다!
해괴하고도 해괴하여라,
한 무리 사람들을 속이는구나!
▶백추(白槌):설법을 하고자 할 때 먼저 대중에게 알리는 말을 하여 대중을 경건하고 엄숙하게 만드는 절차. 선종에서는 법을 아는 존숙에게 그 소임을 맡겨서, 장로가 법좌에 앉자마자 말하기를 "법회에 모인 여러 스님네들이여, 마땅히 제일의제를 보아야 합니다."라고 한다.
▶사구백비(四句百非):사구분별(四句分別) · 사구문(四句門)이라 하여 변증법의 한 형식. 사구는 정립(定立) · 반정립(反定立) · 긍정종합(肯定綜合) · 부정종합(否定綜合)이니, 이제 유(有)와 공(空)으로 만유제법을 판정할 때에 제1구의 유(有)는 정립, 제2구의 무(無)은 반정립, 제3구의 역유역무(亦有亦無)는 긍정종합, 제4구의 비유비무(非有非無)은 부정종합이며, 처음 2구를 양단(兩單), 뒤의 2구를 구시구비(俱是俱非) 또는 쌍조쌍비(雙照雙非)라 한다. 백비는 부정을 거듭하는 것으로서, 몇 번이고 부정을 거듭할 지라도, 참으로 사물의 진상을 알기 어려울 때에 써서, 중생들의 유무에 견해에 대한 걸림을 없애게 하는 것.
26. 두 승려가 발을 말아 올리다(二僧卷簾)
청량 대법안은 대중들이 점심 공양 전에 설법을 들으러 오자 손으로 발을 가리켰다. 그 때 두 승려가 함께 가서 발을 말아 올렸다.
법안이 말했다.
“하나는 얻었고, 하나는 잃었다.”
(허공을 얻고 허공 놓음을 잃었다)
무문은 말한다.
자, 말해보라. 누가 얻은 것이고 누가 잃은 것인가? 만약 여기에서 외짝 눈을 얻는다면 곧바로 청량국사가 실수한 곳을 알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렇더라도 결코 얻었느니 잃었느니 헤아리지는 말아야 한다.
게송으로 이른다.
말아 올리니 밝고 밝게 거대한 허공에 사무치나
거대한 허공도 오히려 나의 종지(宗旨)에는 맞지 않네.
어찌 허공마저도 모두 놓아버려서
전혀 빈틈없어 바람조차 통하지 않음만 같겠는가?
첫댓글 https://youtu.be/eAJ79n64V8k?si=s-WZdIRNM25iWt_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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