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계시록에 나타난 전적견인의 증거(이미 구원받을 자는 결정되어 있습니다) ->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요한계시록 13:8)'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은 창세 전에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의 어느 시점에서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위의 본문은 그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이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이들에 대한 말씀은 따로 있습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 3:5).
여기에서 “흐리지 아니하고”는 “지우지 아니하고”가 정확한 번역입니다.
이기는 자는 생명책에서 지우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기지 못하면 어떻게 된다는 말씀일까요?
그리고 그 이후에 나오는 계 20:15, 21:17의 말씀은 지워지는 사람들은 모두 지워지고 난 생명책에 관한 것입니다.
2.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태복음 24:31)
감람산 강화는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재림에 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당신의 대환란 개념, 성경적인가 전통적인가’(나침반)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강림-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과 성전 파괴-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본문은 이 땅에서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구원받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3.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로마서 8:30)'
이 본문도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부르심을 받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시제가 모두 동일하지요.
4.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6:39)'
이 부분은 저의 앞의 글 ‘하나님의 뜻’에 설명되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부르신 이들을 위하여 하늘에서 기도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의 소욕으로, 설교를 통하여, 성도간의 교제 가운데, 환경을 통하여.
이 모두에 대하여 당사자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전적으로 당사자의 몫입니다.
주 예수님의 모든 역사가 인격적이기 때문입니다.
상급관련 성구
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마태복음 11:11)'
이 본문은 계시 역사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모든 사람은 구약 시대와 비교하여 월등한 차원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상급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어떤 차등이 있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2.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5:19)' -- 천국에 큰자와 작은자가 있습니다.
본문의 천국은 미래의 완성된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이 땅에서의 천국입니다.
예수님께서 본문 앞에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느니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천국입니다.
3.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립보서 3:14)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 무엇인데요? 앞의 본문을 읽어보시지요.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입니다. 육체의 부활입니다.
이 본문은 흔히 말하는 상급이 성경의 가르치는 바가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2-2.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5:19)' 말씀을 왜곡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아야겠지요. 비록 순종이 부족하면 작은 천국 백성이 됩니다.
2-3.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립보서 3:14) 더 엄밀히 보면 (하나님의 더 높으신 부름의 상급을 받으려고 달려 가노라.) 이 내용은 많은 지식으로 오히려 주님을 핍박하던 바울이 자기의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여 부활을 향해 가고 있는 자신의 신앙고백이기도 함.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출 32:32). 주의 기록하신 책 곧 생명책이지요. 그 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지요. 절대 지워지지 않는데, 모세가 그것을 알면서 이렇게 말했다면 하나님을 우롱하는 것과 다르지 않겠지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출 32:33).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롱하는 모세의 말에 장단을 맞춰주신 것일까요? '내 책'은 생명책 맞지요. 하나님께서 범죄하는 자를 지우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인생과 그렇게 비교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니 성경의 가르침이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지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 23:19). 하나님을 헛말하는 인생과 비교하여 헛말하는 인생보다 못한 존재로 만드는 그 태도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까요? 그리고 저는 하나님을 본받아 제 자식이 하나님 앞에 망령되면 실제로 호적에서 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출교할 것이고요.
님들의 눈에는 이런 본문들이 전혀 들어오지 않겠지요? 성경 기자들이 잘못 기록한 것일까요? 성령님께서 실수하신 것일까요?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시 69:28). 생명책에서 기록되어 있었기에 "도말하사"라는 말이 가능한 것 맞지요? 제가 국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까? 여기에서 '저희'는 언약의 백성이면서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는 사람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이제 와서 생명책에 관하여서도 구약과 신약이 다르다고 말하지는 않겠지요? 아니 님들의 행태를 보면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구원과 관련하여 구약과 신약이 일치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 말입니다. 구원과 관련하여 구약을 인용하는 신약 성경 기자들이 제 정신이 아닌 이들로 여기는 것과 다르지 않는데도 전혀 고칠 여지가 없어 보이니...
아니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그냥 넘기는 수법을 발휘하겠지요. 눈에 선히 보이네요. 아, 카이로스님이 결정적이라고 한 부분은 앞에서도 계속 강조하였지만 불가항력적인 은혜에 관한 구절들입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하)와 같은 의미이지요. 좀 더 깊이 생각하고 바르게 알고 주장을 펼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잘못된 주장인 것으로 밝혀지면 인정하는 모습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이 어떻게 믿음의 순간만 구원받고 영원한 작정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기자는 지금 믿음 후에 한참 지난 신앙의 시기에 작성한 것입니다. 님의 입맛대로 해석을 자제하십시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시편 139:16) ]
이 말씀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구약에 아브라함,모세,여호수아에게 공통으로 주신 말씀이며, 신약시대엔 모든 믿는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성령께서는 결코 떠나지 않으심 =>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3:5)
제가 해석해주지 않은 본문이 있습니까? 해석해 드렸지요. 질문마다 성실하게 답변하였지요. 그 말은 자신에게 적용하셔야 할 말입니다. 성령께서는 결코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 어디 성경의 가르침입니까? 절재적 견인론자들이 만들어낸 말이지요.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창 6:3도, 다윗의 회개 기도에서의 고백(시 51:11)도. 실제로 사울 왕에게 임하셨던 성령님께서 그가 범죄한 이후에 떠나가심도.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말씀도.
이 말씀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구약에 아브라함,모세,여호수아에게 공통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그들에겐 성령님이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신약시대엔 예수님의 공로로 모두에게 혜택이 간 것입니다. 모든 믿는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성령께서는 결코 떠나지 않으심 =>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3:5)
첫댓글 이렇게 본문을 가지고 논의하게 됨에 감사를 드립니다. 다만 제가 노회 이명- 울산에서 인천으로- 관계로 내일 오후까지는 답글을 적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해석이야 자유니 어찌할 수 없죠.. 그럼 구약에 나온 생명책에 관한 몇가지를 더 올리겠습니다.
전적견인 증거1 ->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시편 56:8)'
전적견인 증거2 ->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시편 139:16) ......... 결정적이지 않습니까?
전적견인 증거3 ->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다니엘 12:1)
성령께서는 결코 떠나지 않으심 =>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3:5)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예:사랑안에 거하면)(예:그리스도예수안에 거하면) 그인자(사랑과용서)가 너희에게 있으리라>.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롬,11:22)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롬:10:21)
21절에 말씀하고 있는 내용은 (예수그리스도대속사건>을 믿지아니하고 <자기의 의를 주장>하는 백성들이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손을 <불순종하는 백성들>에게 종일토록 벌림으로써 당신의 사랑(은혜)을 거두지 아니하는 모습을.. 말씀하고 있다.할렐루야~
1.(계3:1-3)--구원 받지 못한 자들에 대한 교훈 (계3:4-5)--구원받은 자들에 대한 칭찬과 격려--이기지 못하면에 대한 우려가 아니라 이기는 자에게 절대로 너를 놓지 않을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
2. 마24장은 유대인의 멸망뿐 아니라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 재림에 즈음한 지구상 사회의 현상들과 종말에 대한 교훈. 의당히 31절 말씀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확실한 표현임.
3. 31절--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 하리요.(그런 고백을 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떠날 수 있습니까?)
4. 당사자는 둘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와 세상을 저버리지 못하고 벗 하는 성도들. 성경은 두 주인을 섬기지 못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과 벗하는 성도는 성도가 아닙니다.
2-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마태복음 11:11) 이 세상에 그 어떤 큰 것이라도 천국의 것에 비하면 보잘것 없을 것입니다.
2-2.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5:19)' 말씀을 왜곡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아야겠지요. 비록 순종이 부족하면 작은 천국 백성이 됩니다.
2-3.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립보서 3:14) 더 엄밀히 보면 (하나님의 더 높으신 부름의 상급을 받으려고 달려 가노라.) 이 내용은 많은 지식으로 오히려 주님을 핍박하던 바울이 자기의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여 부활을 향해 가고 있는 자신의 신앙고백이기도 함.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출 32:32). 주의 기록하신 책 곧 생명책이지요. 그 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지요. 절대 지워지지 않는데, 모세가 그것을 알면서 이렇게 말했다면 하나님을 우롱하는 것과 다르지 않겠지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출 32:33).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롱하는 모세의 말에 장단을 맞춰주신 것일까요? '내 책'은 생명책 맞지요. 하나님께서 범죄하는 자를 지우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 보이지 않습니까?
인생의 아버지가 성질이 나서 아들에게 '호적에서 니 이름 빼버린다"라고 했을 때, 진정으로 호적 정리 들어간 사람 보셨습니까? 하나님이 인생보다 못하다는 말이신지?
하나님을 인생과 그렇게 비교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니 성경의 가르침이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지요.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민 23:19). 하나님을 헛말하는 인생과 비교하여 헛말하는 인생보다 못한 존재로 만드는 그 태도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까요? 그리고 저는 하나님을 본받아 제 자식이 하나님 앞에 망령되면 실제로 호적에서 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출교할 것이고요.
인생은 회개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죽기전까지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먼저 그 사랑부터 회복하셔야겠습니다. 탕자처럼 살다가 결국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된 어거스틴 같은 자녀가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거든요
님들의 눈에는 이런 본문들이 전혀 들어오지 않겠지요? 성경 기자들이 잘못 기록한 것일까요? 성령님께서 실수하신 것일까요?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시 69:28). 생명책에서 기록되어 있었기에 "도말하사"라는 말이 가능한 것 맞지요? 제가 국어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까? 여기에서 '저희'는 언약의 백성이면서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는 사람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다윗을 괴롭혔던 대적들은 애초에 생명책에도 없었죠
국어 읽을 줄 모르시나요? "도말하사." 애초에 없었는데 이런 말이 가능합니까? 없는 것을 지운다는 말이 성립되나요? 성경 기자들 나아가 성령님을 어떻게 생각하기에 그런 말이 가능하지요?
기자가 하나님의 생명록을 봤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제 와서 생명책에 관하여서도 구약과 신약이 다르다고 말하지는 않겠지요? 아니 님들의 행태를 보면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구원과 관련하여 구약과 신약이 일치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 말입니다. 구원과 관련하여 구약을 인용하는 신약 성경 기자들이 제 정신이 아닌 이들로 여기는 것과 다르지 않는데도 전혀 고칠 여지가 없어 보이니...
아니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그냥 넘기는 수법을 발휘하겠지요. 눈에 선히 보이네요. 아, 카이로스님이 결정적이라고 한 부분은 앞에서도 계속 강조하였지만 불가항력적인 은혜에 관한 구절들입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8하)와 같은 의미이지요. 좀 더 깊이 생각하고 바르게 알고 주장을 펼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잘못된 주장인 것으로 밝혀지면 인정하는 모습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이 어떻게 믿음의 순간만 구원받고 영원한 작정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기자는 지금 믿음 후에 한참 지난 신앙의 시기에 작성한 것입니다. 님의 입맛대로 해석을 자제하십시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시편 139:16) ]
이 말씀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구약에 아브라함,모세,여호수아에게 공통으로 주신 말씀이며, 신약시대엔 모든 믿는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성령께서는 결코 떠나지 않으심 =>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3:5)
복음자랑님이 전적견인은 성경에 없다는 논리로 지금까지 글을 썼습니다. 이에 반박하여 성경에 명백히 있는 말씀을 제시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님의 논리를 합당히 전개하려면 제시하는 말씀을 모두 성경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제가 해석해주지 않은 본문이 있습니까? 해석해 드렸지요. 질문마다 성실하게 답변하였지요. 그 말은 자신에게 적용하셔야 할 말입니다. 성령께서는 결코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 어디 성경의 가르침입니까? 절재적 견인론자들이 만들어낸 말이지요.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창 6:3도, 다윗의 회개 기도에서의 고백(시 51:11)도. 실제로 사울 왕에게 임하셨던 성령님께서 그가 범죄한 이후에 떠나가심도.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말씀도.
이 말씀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구약에 아브라함,모세,여호수아에게 공통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그들에겐 성령님이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신약시대엔 예수님의 공로로 모두에게 혜택이 간 것입니다. 모든 믿는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성령께서는 결코 떠나지 않으심 =>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