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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살 , 취업을 준비 하던 중 일본에 있는 친척분의 호출을 받는다.
친척분이 동경에서 기계부품 사업체을 운영 하셨고, 그 일을 도와 드리러 떠난다.
# 히비야 공원
나의 일본 시절, 그것은 히비야 공원에서 걸린 2가지 마법,그것을 풀려는 안간힘 그것이었다.
그것은 사랑 이었다, 사랑의 다른 말은 운명이나 저주...
풀려나오지 못하고, 죽어도 그를 향해 나가야하는.....
## 첫사랑 1
동경에서 나의 첫 번째 사랑- 200그램 짜리 쇳조각이였다.
먼소리냐고?
동경의 히비야 공원 근처에서 일본 부품 소재 박람회가 열렸다.
하는 일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참관을 했다.
부품 소재 산업의 최강국 일본 답게. 최고의 기술력과 디자인을 자랑하는 제품 들이
선을 보였고, 실오라기 하나 빠져 나올 수 없는 예술적 경지를 자랑하는 제품들의
마력에 나는 정신이 쏙 빠졌다.
혹자는 단순한 부품에 매혹 당하느냐고 하시겠지만?
나같이 기계를 공부한 사람들은 그 위용을 충분하게 알고도 남는다.
전 세계 부품 시장의 70%를 넘게 휩쓰는 ....
거기서 2주를 살다 시피 했다. 회사는 아침에 출근하고 그냥 히비야 공원으로 갔다.
그러면서 내 인생의 죄표를 정한다.
나는 인생의 목표를 부품 소재 산업에 투신하기로,
그래서 세상을 휩쓰는 일본 기업들과 맞짱을 떠보고, 그 선두 주자 미쓰비씨를 잡아 보기로...
당장 우리 회사에서 사용하는 기계부품을 타켓 삼아 연구해 보기로 하고,
퇴근후에 연구할 수 있는 연구실을 마련했다, 히비야 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빌딩에....
정말 신났다, 실패하면 실패 하는 대로 성공하면 성공하는대로...
그 자체가 내게는 영광이고 기쁨이었다. 그러다 아주 작은 성과를 얻었고,
엄청난 자신감을 얻었다.
머리를 식히려 히비야 공원을 걷다,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 나름 인생의 선언문,,,
나는 연구자로 살다 죽겠노라....
미쓰비시 잡아 보고 죽겠노라...( 나의 히비야 공원 선언문 96,7.1)
지금 생각하면,젖냄새 풍기는 결기였다만,
나는 진심으로 사랑했다.연구실을.....
그러다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
#, 첫 사랑 2
일하고 연구하는 틈틈히 강한 체력과 의지를 기르고 싶어서, 체육관 나가서 운동 했다.
일본어가 서툰 나는 친구들을 많이 사귈수가 없었지만,
같은 체육관에서 운동 하는 동포 친구들과는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는다.
재일 동포는 총련계의 조선국적( 북한 국적이 아니다.조선적을 북한 국적으로 오해하면 안된다), 북한 국적.
민단 계의 한국 국적, 이렇게 구분 된다.
요즘은 민단 총련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동포들이 훨씬 많다.
체육관에서 같이 운동 했던 친구들 중에 조선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수원 삼성에 입단한 정대세 선수 같은
사람들이다.
일장 일단이 있겠지만,
이들은 일본에 그냥 섞여 살려고 하거나 한국 국적임을 숨기고 사는 한국 국적의 동포들보다 훨 자존심 강하고, 이타적이었다.
그중에 한 조선국적의 동포 청년과 깊은 우정을 맺으며 친구가 된다.
#96년도 일본 동경에서 조선고에 다니는 동포 학생이 일본 학생들에게 타살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때만 해도 조선고 다니는 북한 국적 동포 학생들은 치마 저고리를 입고 다녔고.
그것이 시비거리를 제공 했던 것이다.
민단이나 총련이 다함께 참여하는 범동포 차원의 대책위가 꾸려지고,
체육관에서 만난 조선 국적의 청년의 권유로 그 모임에 매번 참석 했고
그곳은 재일 동포 뿐만 아니라 양심적인 일본인도 다수 참여 하는 일본에서 보기 드문 아름다운 장면.....
그곳이 히비야 공원이다...
바로 ~~~ 거기서 번갯불 같이 .... 숙명적인 한 사람을 만난다,
법학을 전공하는 일본인 학생이었고, 재일 조선인 인권에 관심이 지대하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맑고 고운 눈매... 옥구슬 구르는 듯한 목소리.
그에게서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체험을 했다면 ..... 게임은 끝이다.
남자들에게 그 여자는 전부다.
사회 운동에 관심 있는 척 하며 인권센터에 매일 찾아갔다,
난 사실 학교 다닐 때 데모 한 번 안해본 사람이다.
책 보는 것도 별로 안좋아해서
사회운동 하는 사람들이 읽었다는 책 한 페이지도 안봤다.
오로지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체육관도 드문 드문 나가도, 퇴근 하면 기냥 찾아가서 이것 저것 도와주고.
그 사람의 미소 한 번 ,옥음 한 번 들어보려고 생지롤을 하는 26살 어린왕자.... 귀여운 놈
남자는 어떤 여자 때문에 안드로메다까지 간다,
연애 사업하다가 부수적으로 배운 것도 많다.
일본 사회에 퍼져있는 극우 파시스트 대한 생생한 공부를 하게 된다,
내가 자칭 극우 파시스트 전문가가 된 것도 이때 부터다.
글구 잼나는 것도 했다, 센터에서 자원봉사로 한국 가곡 교실이라는 것을 했는데.
이 어린왕자가 강사로 지원하여 한국 가곡 가르쳤다.,
내가 소시적에 아주 잠시 음악을 공부한 적이 있었고,
오로지 그녀에게 잘 보이고 픈 욕망으로 지원 했다.
가고파, 그리운 금강산...
일본인 아주머니들도 많았고..
마치 동네 노래 교실 같은 분위기였지만, 배우는 분들은 정말 진지했다,
머 맨날 가곡만 한 것은 아니고 끝 판에는 신나는 트로트나 엔카로 마무리 하는 센수...
#그녀의 주위를 맴돌다 보면 언젠가는 기회라는 것이 오게 된다.
어느날 퇴근하고 그녀가 좋아하는 파인에플을 사가지고 인권센터로 쫄래 쫄래 갔는데
건장한 남자들이 난립하여 행패를 부리는 중이다, 그 들은 극우 단체 행동대원...
일본에서는 이런 일이 흔하다, 진보 시민단체와 야쿠자풍의 극우단체 회원들의 실랑이....
시민 단체 사무실에 난립하여 행패를 부리거나 간부들을 괴롭히거나....
단순무식하며 나름 운동으로 다진 젊은 나이의 어린왕자
운동으로 안다져 저도 상관없다 그녀가 보고 있는 것 그것으로
초인적인 힘이 마구 솟는 우리 남자들....
거기다 그녀를 보호해야 하는 하늘이 주신 기회.
일대 활극이 벌어지고, 경찰이 오고,
극우 단체에서 피고발 건으로 겁이나 주려고 왔는데 느닷 없는 강공에 그들도 당황 했는지.
꼬리를 내렸다.
하여간 이 일이 있고 부터 굉장한 친근감을 표해 오는 그녀..
고발건이 마무리 될 때 까지 그녀의 집까지 에스코트를 해주는 영광까지....
오!! 나를 현해탄 넘어 일본까지 불러 주신 친척분 감사 합니다...
어머니 잘 해서 며느리 데려 갈게요.일본 사람 이라고 머라 하지 마세요...
떡 준다는 사람은 없는데 혼자서 생쇼하는 이 남자.... 왜 이럴까요?
근 한 달은 집에까지 에스코트 해주었다.
먼일 있었을까?
기대와는 다르게 아무 일도 없었다 ....
일이라면 마음속의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된 것...
# 그리고, 그 운명의 밤이 왔다.
우리는 술에 취해서 동경 거리를 걸었다.
그러다 내 연구실이 있는 히비야 공원에서 발길을 멈췄고,
어깨를 맞대고, .... 그녀의 진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에게도 삶은 아픔이었다,
폭력적인 아버지 슬하에서 보낸 유년시절의 치명적 트라우마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며 학업에 매진 하는 불굴의 의지
일본의 소수자 재일 교포에 대한 책임감과 평화 일본을 위한 구도자적인 헌신 .....
%유년시절의 폭력적인 가정 환경은 당신의 딸이 성장하여 연애하고 결혼 할 때 심대한 악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당신의 딸을 사랑하는 어떤 남자의 일생도 악영향을 미친다.
가정 폭력 그것은 당신의 딸과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 모두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의 아픈 사연을 듣고서 그날 밤은 잠을 들 수 없었다.
가슴 한 쪽에 가시가 박힌 듯 한 아픔이 밀려 왔다.
역시 사랑은 어느새 내 마음 깊숙이 침투해 밖혀 있었던 것이다.
그의 진지한 삶 앞에서 그냥 연애나 하자고 덤벼드는 것은 모독이다.
유관순 열사에게 뽀뽀 하자고 달려 드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는 잔다르크였다, 자신의 상처와 맹렬하게 싸우고 있던....
꽃을 꺽을 때가 아직은 아니구나.
난 꽃에 물을 주며 장미를 보호하는 어린왕자가 되려 마음 먹었다.
잠을 자도 잠을 깨도 밥을 먹어도 굶어도, 그 사람 생각 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갔고, 그녀는 그렇게 원하던 법률가가 되었다.
재일 교포 사회에서도 진심으로 축하했다.
그 동안 보여준 정의롭고 용기 있는 행동을 보인 그에게 거는 기대는 대단했다.
# 나의 연애 작업은? 글쎄~~~
솔직한 내 심정은 그녀가 변호사가 되는것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나같은 날건달과 변호사라.... 그냥 이대로 남아 주었우면 하는 바램이...
또 다시 시작되는 번민...
사랑은 그냥 번민에서 시작하여 번민으로 쫑치는 것이다.
어느날 그녀의 어머니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가장 믿을 만한 친구라고 소개를 했다.
행복감이 마구 밀려 왔다...
남자에게 자신을 알아주는 여자의 존재는 청하늘이다.
생명이다.
충성을 바치고 픈 군주다.
손가락을 베어내 핏빛 오선을 그어 사랑의 연가를 바치고 픈 그대이다.
그리고 어떤 남자는 그 여자를 위해서 전부를 건다.
# 그리고 2주후 나는 한국으로 떠난다.
더 이상 시간 낭비 하지 말고 기반을 잡아야한다는 생각...
일본에서 시작하고 싶었지만, 만만치 않고 아무래도 한국이 성공 확률이 높을 듯 했다.
그리고 당당하게 청혼 하리라.
그러면서 특허에, 창업에 매진한다.
저번 글에 썼듯이 반짝 성공했던 1년간의 황금기가 있었고,
이제는 정말 청혼하리라 마음 먹고 동경으로 떠난다.
헌데, 그녀는 1년동안 유럽 연수를 떠나고.
아직 사랑의 여신은 내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1년후 회사 망하고, 그 못지 않게 충격적인 ,
그녀가 유럽에서 만난 일본인과 결혼한다는 소식.....
만감이 교차했다.
그냥 일본에, 그녀의 곁에 머물렸어야 했나?
충격 ,충격... 근 1달을 쇼팽의 이별곡만 들으며 술만 먹었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이 가장 사랑했던 이별곡 Etude, Tristesse in E major, Op.10-3
그의 짝사랑 콘스탄치아와의 이별에 가슴 아파하며 쓴 명곡이다.
내가 북한산 바위로 오른 것은 외려 연애 사업에 실패 한 것 또한 거대한 원인....
남자는 어떤 여자 때문에 요단강도 건넌다.
# 그의 결혼식 몇 일 전에 우리는 히비야 공원에서 만났다.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하며 나는 먹먹한 미소를 보냈다.
그도 미소로 화답했다.
가을의 하늘위로 , 우리의 시작도 못한 사랑이
증발되어 흩어졌고....
혀 속에서 뱅글 뱅글 돌기만 할 뿐 처연한 공기를 뚫고
그의 고운 빰까지 가지 못한 사랑의 언어가.
조용히 태어나지도 못하고 요절을 했다.
그의 결혼식에 가지 않았다.
나의 찌질함이 .. 쿨하지 못한 촌스러움이 부끄럽다...
# 그 사람에게 대한 원망도 서운함도 없다.
외려 젊은날 좋은 추억과 깊은 인생 공부를 하게 해 준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얼마전에 그가 살던 동네에 갔다,
그의 어머님이 그곳에서 식당을 운영하셨다,.
그는 살지 않지만 오빠가 살고 있었고, 어머님은 몇 년 전에 돌아 가셨고...
그는 3자녀의 엄마가 되어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전언만 들었다.
그의 오빠는 나를 알아 보고 무척 반겨 주셨다.
어머님이 하시던 식당은 오빠가 물려 운영하고 있었다.
그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이런 저런 옛날 얘기가 오가며...
헌데 벽에 걸려 있는 사진 중 하나가 눈에 띈다,
우리도 식당들 가면 유명인 방문해서 처먹는 사진 걸어두지 않은가?
그런식으로 걸린 사진 속에 눈에 거슬리는 인간이 하나 있다.
한국인들도 알고 있는 전 수상 나카소네 ..... 대머리 벗겨진 그 사람
순간 밥 맛이 뚝,,,,
나카소네는 태평양 전쟁중에 해군 장교로 , 오사카 부근에서 근무 했고, 부하들의 스트레스를 풀어 준다는
미명하에 위안소를 설치한 장본인인다,
그리고 후쿠시마 핵 발전소 사고의 숨겨진 원흉이다,
비극이다 ...악질적인 성범죄자가 수상이되는 나라, 자기 나라 국민들을 핵 위협에 노출시키고도
책임이 면피되는 나라,,,
그 사람의 오빠도 그 깊은 내막을 모르고 유명인 이려니 하고 생각 없이 걸었으리라....
이런 애기를 하면 내가 독립운동 하는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난 천성이 날날이다.
일본 영화 , 음악 넘 좋아하고, 하루키의 소설 광팬이다.
아주 친한 사람들하고 술먹으면 엔카 부른다,
내가 즐겨 부르는 엔카 감상 함 해보시라....
키타노야도까라 (北の宿から、都はるき)
최고의 엔카 가수 한국계 미야꼬 하루미 (한국명 이춘미)의 데뷔작이다.
최고의 엔카 가수로 명성을 날릴 때 일본 언론에서는 하루미는 한국계라고 퇴출 시키라는 둥...
지롤 지롤들 했다.
하지만 엄청난 가창력으로 일본 열도를 사로 잡았다.
차별을 딛고 일어선 재일 교포의 불굴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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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비야 공원의 마법...
내가 일본에서 만난 타도 미쓰비시의 열망과 한사람에 대한 사랑
그 모두가 히비야 공원의 조우 였다.
그리고 숙명 처럼 히비야 공원에서 헤어졌다.
타도 미쓰비씨의 꿈도 좌절했고, 한사람에 대한 사랑도 좌절했고,
실연이였다.
실연(失戀) 이면서 실연(失鍊) 이였다.
나는 10년을 저 먼 중동과 아프리카의 광야를 헤매었다.
이제는 그 젊은 날의 치열한 열망보다는 , 실패할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
실패할 확률이 훨씬 많다는 것이 인생이라는 , 실존적 각성이 앞선다.
그러니 애태우는 것, 안절 부절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이든 사랑이든 놓아 버리는 것 ,
성공이 떠날까봐 ,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버리고 떠날까봐 벌벌 떠는 사람은 어린아이다...
그 곁에 있으면서도 놓아 주는 것.... 그것이 아름다운 인생이라는 것,
난 그것을 알게됐다.
그리고 나니 그 마법이 조금씩 풀려 나간다,...
상세한 것은 생략한다.
# 나는 일본을 사랑한다. 내 가슴 뛰는 첫사랑의 나라였고. 이성과 양심을 간직한 고운 친구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일본을 사랑하기 때문에 일본을 망쳐 놓으려는 극우파가 정말 증오 스럽다.
부디 일본인 이라서 미워하지는 말자, 국적 인종만을 가지고 애오의 감정을 가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일본 제국주의의 문법이다
마지막으로 일본 극우 정권과 한 판 승부를 벌이는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첫댓글 책 쓰셔도 되겠습니다. 문장력이 훌륭하십니다. :-) 재밌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