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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국에서는 "우리 사귈까"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주위에서 서포팅을 해주기 때문에 어느샌가 연인관계로 발전하는 케이스도 많다. 연애경험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나도 그랬다.
하지만 상대가 외국여자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어떤 시점에 도달했을 때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주위에서 누가 어떻게 공인해 줄 것인가? 결국 전부 혼자서 헤쳐 나가야만 했다.
물론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때만 하더라도 나는 아내를 사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다.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한국이야기를, 아내는 눈빛을 반짝거리며 듣고 있다. 그 모습이 귀엽고 깜찍했다.
지금처럼 한류붐이 불던 시절이 아니다. 아내의 한국에 관한 지식은 그야말로 제로(0) 였다. 오죽하면 유일하게 아는 한국인이 박정희였겠는가.
마치 하얀 백지에 그림을 그려나가듯 군대, 대학, 삼겹살, 야끼니쿠, 명동, 지하철, 동대문 패션상가 등을 설명해 나갔다.
아내는 내가 말하는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였고 또 신기해 했다. 그 중에서도 아내는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먹는다는 말을 듣고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는게 말이 되요? 매운 걸 더 맵게 해서 먹다니.. 정말 매운 거 좋아하는 거 같아요. 으으"
이때 설명을 못해서 그런 걸까? 지금도 아내는 고추장에 고추를 찍어먹는 모습을 보면 "으으"라는 짦은 신음소리를 낸다. 아내의 이런 반응들이 너무 신선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라는 키워드가 접점이었다면, 이런 잡담들은 그 접점을 선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일 테다. 그리고 아내는 이러한 선(線)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나에게 몇번이고 신호를 주었다. 이를테면 이런 말이다.
"전 외국인들이 일본여자들한테 가볍게 추파던지는 거 진짜 싫어요"
물론 이 말이 뜬금없이 나온 건 아니다. 아내에 의하면 자기가 가르치는 영국인이 심심하면 "알라뷰(I love you), 아이시테루(愛してる)"를 사용하면서 집에 놀러오라고 그런단다. 윗 말은 이런 걸 설명하면서 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또 이 말은 지극히 계산된 것이었다. 나중에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하하하. 난 그때 정말 불안했거든. 오빠가 사귀자는 말만 하면 사귈 마음의 준비는 다 되어 있었는데, 장난스럽게 '너 괜찮은데? 나 너 사랑한다. 그러니 우리 사귈래?' 같은 식으로 나오면 정말 '으으으' 되니까. 그래서 그러지 말라고 경고 겸 부탁한 거였어. 정말 간절하게 말이야."
여자는 역시 무섭다. 만국의 남성들은 여성의 은연중 나오는 말들을 유심히 체크해야 한다. 물론 과대해석해버리면 불필요한 오버를 낳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둔감하게 반응하면 기회가 기회인지도 모른 채 한줄기 연기처럼 사라질 수도 있다. '둔감'보다 '오버'가 낫다. 이건 불변의 진리이다. 만번 찍어 안 넘어간 나무없다는 말이 그냥 나온게 아니다.
그렇게 아내와 나는, 비록 일주일에 한번 만나는 사이였지만 금세 친해져 갔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나에게 있어 아내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를 좋아하고 이제 한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볼란티어 선생님'에 불과했다. 이 생각이 깨진 건 그 다음주였다.
그러니까, 6주째 수요일이었는데, 기숙사를 나서면서 당연히 오늘도 아내를 만나겠지 생각했는데, 아내가 이날 모임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이 볼란티어 모임은 구속력이 없는지라 선생들이 안 나올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아내가 나오지 않은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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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7년이 지난 지금도 아내가 나오지 않았던 6주째 수요일을 기억한다. 옆자리의, 텅빈 아내의 자리를 보면서 내내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던 그 수요일.
아내는 그냥 감기로 나오지 않은 것인데, 나한테는 그게 아니었다. 정말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이내 패배주의로 빠졌다. 혹시 나 보기가 역겨워 오지 않았던 건 아닐까? 류의 자책같은 것.
자책은 또다시 확장된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고추장으로 엮어지기 시작한 우리의 선(線)은 단단한 밧줄이 아니라 언제라도 끊어질 지 모르는 썩은 동앗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아내에 대해 실제적으로 아는게 아무 것도 없었다. 전화번호는 물론 이메일 어드레스, 남자친구가 있는지 없는지, 기숙사와 가깝다는 그녀의 집은 어딘지, 취미, 특기...등등 내가 아내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오직 '미와코'라는 이름밖에 없었다.
5번 만났고, 밤길을 같이 거닌 것도 3번이나 되는데 뭐가 그리 잘났다고 내 얘기만 지껄였을까? 전화번호라도 한번 물어볼 것을. 그러면 이렇게까지 초조하지 않았을 텐데. 집까지 한번 바래다 줄 것을. 그러면 미친 척하고 초인종이나 눌러볼 수 있을 것인데...
그 다음 수요일이 다가오기까지 일주일간을 무작정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운명의 7번째 수요일. 볼란티어 일본어 교실의 도어를 열기 직전까지 내 가슴은 전례없는 두근거림에 휩싸였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도어의 문을 조용히 여는 순간 조금은 핼쓱한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온 몸의 힘이 빠지는 듯한, 나른함과 안도감이 몰려왔다. 아내도 나를 발견하고선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짓는다.
막 화가 났다. 일주일간 얼마나 걱정했는데 저런 미소라니. 인상을 팍팍 쓴 채 그녀한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나) 전화번호 몇번이예요?
아내) 네?!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나 당돌한 행동이었다. 아내도 나중에 정말 황당했다고 말한다. 물론 아내는 내가 전화번호나 메일어드레스를 요구하면 말할 생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게다가 엄청나게 무서운 인상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움찔했다고 한다.
아내) 왜요?
나) 걱정했어요. 일주일간. 많이.
아내는 후일 이 단답형의 짧은, 하지만 핵심만을 간추려 놓은 듯한 이 세 단어에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내는 그때 조금은 심한 감기에 걸려 회사를 며칠간 쉬었는데, 쿨(Cool)한 가족들은 아무도 신경을 써주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기본적인 신경은 써줬겠지만, 나처럼 '걱정했다'는 단도직입적이며 간결한 말을 타인에게 들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고 한다. 근데 이건 아내의 오해다.
지금에사 밝히지만 당시 내가 아는 일본어 단어가 딱 이 정도였다.
"걱정했어요. 일주일간. 많이"를 지금 말해보라고 한다면 아마도 "아휴. 너 정말. 내가 일주일간 너 때문에 얼마나 진지하게 걱정한 줄 아니? 전화번호도 모르고 메일도 모르잖아. 정말 짜증나 죽는 줄 알았어" 라고 말했을 거다. 내가 봐도 후자보다 전자가 낫다. 이처럼 어떨 때는 모르는 게 약이 될 때도 있다.
아내는 빙그레 웃으면서 "고마워요. 걱정해 줘서"라고 답한 후 이메일 어드레스와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나도 내 전화번호를 적어서 건넸다.
아참, 아내는 이것도 재미있었다고 나중에 말했다. 착발신 번호가 뜨니까 보통은 한쪽이 전화번호를 건네거나 불러주면 바로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 등록하는게 일반적인 데 나는 아내의 전화번호를 고이 접어 지갑속에 넣고 또 내 전화번호를 고이 적어 아내에게 건넸으니까 말이다. 아날로그는 때때로 감성을 자극한다는 말은, 적어도 이때만큼은 진리였다.
그리고 나역시 바보가 아니다. 이 가슴의 두근거림 및 엔돌핀 지수의 급상승은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고서는 나오지 않는 생리학적 반응이다. 내 마음은 지난 일주일간 아내쪽으로 기울어진 게 확실했다. 하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나는 아내가 나를 좋아하고 있는건지 아닌건지 감이 잘 오지 않았을 뿐더러,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도 있었다.
넘어야 할 벽은 아직도 너무나 단단했는데, 아내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날이 찾아왔다. 이날은 으례 우리들이 만나던 수요일이 아니라 전화번호를 주고 받았던 7번째 수요일에서 불과 이틀밖에 지나지 않은 금요일 밤이었다.
아내가 밤 12시가 지난 시간에, 기숙사 앞까지 찾아와서 나에게 '첫' 전화를 걸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까지의 멀쩡하고도 전형적인, 정숙한 일본인 여성 캐릭터를 집어치우고, 술에 취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해 왔다.
"난데요. 지금 기숙사 앞에 있는데, 막 이야기 하고 싶은데. 나와주면 좋겠는데. 될 수 있으면 빨리 나와주면 고맙겠어"
라고 말이다.
일본 여친 "보고 싶어요. 갑자기 생각났어요" (4부)
전화번호를 교환한 우리들의 첫 전화는 아내가 나에게 건, 바로 그 술취한 전화였다. 그리고 핸드폰 저편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술취한 목소리는, 유독 크게 느껴졌다.
그렇게 느껴졌던 건, 물론 이유가 있다. 그때까지 우리들은 매주 수요일에만 만났고 주로 내가 떠들었다. 원래부터 말하기를 좋아했던 것도 있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었던 것도 있다.
앞서 몇번이나 말했듯이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아내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래서요?", "오! 신기하다", "그렇군요"를 반복했다. 만약 지금이라면 가뿐하게 "그렇죠. 그런데 당신은 어때요?"라는 식으로 가볍게 물리치고 재역습을 가하겠지만, 그땐 세상물정을 전혀 모른데, 눈을 반짝거리며 물어오니 이건 필사적으로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아직 일본어가 짧았던 때다. 아는 단어가 총동원되면서, 당연히 그것들을 내뱉는 시간 역시 길어진다. 그때까지 아내와 나의 데이트(?)는 일주일에 한번, 볼란티어 일본어 교실에서 돌아오는 전철안 10분과 역에서 내려 기숙사까지 걸어가는 10분이 전부였다. 나에 대한 인상을 '오타쿠'에서 '공유자'로 바꾸어 놓은 '헌책방'만 제외하면 전부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내가 7번째 금요일, 그러니까 수요일이 아니다, 술에 취해서 밤 12시가 지나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을 때까지, 내가 아내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건 아내의 이름과 전화번호, 이메일 어드레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를 좋아한다, 그리고 한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정도에 불과했다. 수치적으로 보자면 20분의 대화중 17분은 내가 말했고, 나머지 3분은 아내의 간단한 추임새였던 것 같다.
그런데 7번째 금요일 자정12시를 지나면서 나는 아내에 대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아내가 나를 심하게 좋아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렬하게 받았다.
연애는 결국 어떠한 인상을 주고 받는 것이다. 그 인상은 첫인상이 될 수도 있고, 나중인상이라도 상관은 없다. 연애론을 갈파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던 남녀가 어느날 갑자기 연인이 되는 경우, 나는 많이 봐 왔다. 어떤 타이밍과 시공간적 분위기에서 이쪽을 향해 보내오는 상대의 인상에 따라 "우린 그냥 친구지?"였던 게 "나 너 정말 사랑하는데..."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전화를 끊고 내려갔다. 아내는 기숙사 정문옆 가로등 불빛 아래 음료수 자판기 옆에서 이쪽 기숙사 출입구 도어를 줄곧 쳐다보고 있었다. 자동 유리문 너머로 보인, 아내는 검정색 코트에 모자를, 그리고 왼쪽 어깨엔 포터(porter) 가방, 오른쪽 손엔 커다란 사각 쇼핑백을 들고 있다. 자동문이 열리고 내 모습이 보이자 아내는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외쳤다.
아내) 보고 싶었어요!
7번째 금요일에, 내가 아내로부터 받은 '인상'이었다. 안 본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밤 12시에 친구들과 술먹고 돌아가는 길에 이제 막 전화번호를 받은 사람에게 연락을 해, 얼굴을 보자마자 환한 미소를 띠며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나는 이 '인상'을 거부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물론 거부할 힘도 생기지 않았다. 자판기에서 120엔짜리 캔커피를 두개 뽑아 자판기 옆의 벤치에 걸터 앉았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아내가 보내오는 '인상'을 한껏 느끼고 싶었다.
아내는 5년전 규슈 요론토(与論島)에서 알게 된 인디밴드의 도쿄 시모키타자와(下北沢) 공연을 다녀왔다고 한다. 공연이 끝난 후 뒷풀이에 참가해서 꽤 마셨던 것 같다. 항상 가벼운 미소만 띠던, 정숙했던 아내는 그날만큼은 시종일관 "하하하" 모드였다.
아내) 세상에! 뒷풀이 하는데 사람이 얼마나 많던지. 하하하. 앞으로 도쿄에서도 자주 공연하면 좋겠는데 또 돌아간다는 것 있죠? 계속 도쿄에 있으면 좋을텐데. 아쉽지만 할 수 없죠. 하하하.
무슨 말만 끝나면 호쾌(?)하게 웃었다. 일본사람들 12시 지나면 이웃집 잠자리 훼방놓지 않으려 조용해진다고 하던데 그도 아닌가 보다. 아니 금요일만의 특권일 수도 있다. 아내가 '하하하' 모드에 돌입해 있을때 벤치앞을 지나간 전화통화했던 중년의 샐러리맨도 '허허허' 모드에 빠져 있었고, 팔짱을 낀 연인은 뭐가 그리 좋은지 서로의 가슴을 가격하며 '하하호호' 웃어댔다.
아내는 그간 말못했던 서러움을 한번에 만회하려는 기세로 폭포수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쏟아냈다. 바쿠쇼몬다이(爆笑問題)의 오오타 히카루가 어쩌고, 스차다라파(schadaraparr)의 보즈군이 저쩌고. 물론 지금은 각각 만담콤비, 힙합그룹인 걸 알지만, 그땐 이들이 뭐하는 양반인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또 하나 느낀 것은 절망감이었다. 진짜배기 일본어는 이런 거구나라는 좌절감과 함께 매주 수요일 아내가 과연 얼마나 답답했을까라는 미안함이 절로 일었다. 한동안 "오! 그렇군요", "그런데 그건 뭐죠?"라는 추임새를 넣어가며 듣기만 했다.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그리고 커피가 바닥을 드러낼 쯤 아내는 말했다.
아내) 그래서 다 끝나고 전철타고 오는데, 같은 방향 친구들 다 내리고 나혼자 되니까... 하하하. 글쎄 웃긴다니까, 참.
나) 뭐가요?
아내) 갑자기 당신이 생각나는 거예요.
아내는 내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지금 아내는 이 부분에 대해 "몰라. 기억이 안나. 술 취했었나 보다"라고 발뺌(?)하지만 맨정신인 나는 그날의 광경을 뚜렷히 기억한다.
나란히 앉아 정면을 쳐다보며 120엔짜리 캔커피의 마지막 한 모금을 삼키려고 했을때, 아내는 나의 옆모습을 똑바로 쳐다보며 "당신이 생각났어요"라고 분명히 말했다.
커피는 이미 바닥을 드러내었지만,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는 아내의 눈을, 웬일인지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었던 나는 황급히 캔커피를 다시 홀짝거렸다. 남아 있을리가 없는데 말이다. 쩝쩝하는 소리가 들리자 아내가 자기가 들고 있던 캔커피를 내민다.
아내) 하하하. 이거라도 마셔요.
나) 아, 아! 네...
건네 받았지만 완전하게 비었다. 황당해하는 내 표정이 재미났던 것일까? 아내의 '하하하' 모드는 '깔깔깔' 모드로 바뀐다.
아내) 아! 정말 너무 재미나. 깔깔깔.
나) ..................-_-;;
연애는 공유과 인상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공유와 인상을 집대성시키는 것은 "결단"이다. 공유된 것은 인상을 통해 성숙하고, 종국에 그 인상은 "결단"을 요구한다. 그리고 결단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서로에게 애인이 없을 경우, 속칭 솔로일 경우엔 "우리 사귀자"는 연애선언이 될 것이며, 어느 한쪽, 아니 양쪽 다 애인이 있을 경우엔 이별이라는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공유와 인상은 추억속에서만 자리잡게 된다. 먼훗날 과거를 돌이켜 봤을 때 추억의 한페이지에 문득 떠오르는 그녀, 혹은 그. 물론 이것도 나쁘지는 않다.
아무튼 내 식으로 말하자면 연애의 3요소는 공유, 인상, 결단이다.
아내는 이때 운좋게 솔로였다. 하지만 나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즉 이번에 결단을 내려야 할 사람은 나였다. 무엇보다 나는 아내를 추억속의 여인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한시간 동안 벤치에서 대화를 나누고 처음으로 아내를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그러면서 여자친구가 있다는 말을 했다. 아내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술은 깬 것 같았는데 별다른 리액션도 없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날 아내와 함께 걸었던 10분동안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 이미 '결단'하기로 마음 먹었던 탓일까? 내용이 아니라 분위기만 기억난다. 나는 아주 덤덤히 말했고, 아내는 아주 담담히 들었다는 느낌 말이다.
아내와 헤어진 후 기숙사로 돌아와, 나로서는 처음으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화의 내용도 깊어졌고, 시간도 길어졌다.
나) 잘 들어갔어요?
아내) 하하하. 집 앞까지 바래다 줬잖아요.
나) 아참, 그랬군요.
아내) 잠 안와요?
나) 네.
아내) 뭐할 거예요?
나) 음. 글쎄요. 일본어 공부?
아내) 나랑 대화하면 되겠네. 다 공부잖아.
나) 회화말고 문법하려고 했는데. 하하
아내) 쳇.
나) 갑자기 회화하고 싶어졌어요......-_-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아내는 다시 말했다.
아내) ... 만나서 할래요?
나) 뭘요?
아내) 회화공부.
나) 지금?
아내) 응. 지금.
사랑에 빠지면 이렇게 된다. 모든 시공간을 공유하고 싶어지는 것. 사랑이 가지는 위대함일수도, 혹은 피곤함일수도 있다. 이때 나는 물론 위대함을 느끼고 있었고, 또 그러고 싶었지만 그 전에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나) 회화하기 전에 할 일이 있는 것 같아요.
아내) ...
나) 조금 있다가 전화할께요.
아내) 그래요. 기다릴께요. 대신 꼭 전화해요.
전화를 끊고 베란다로 나가 조그마한 의자에 걸터앉아 마일드세븐 슈퍼라이트를 2개피 연달아 피었다. 일본으로 건너오기 전 1년간 사귀었던 그녀에게, 물론 8년이 지난 지금 내 머릿속 한켠의 공유와 인상의 페이지에만 남아있는 그녀에게 나는 헤어지자는 '결단'을 알려야만 했다.
핸드폰을 열고 국제전화 번호를 누르고 신호음이 건너 간다. 신호음을 들으면서 벽에 걸린 시계를 문득 쳐다보았다. 11월 10일 새벽 1시 40분이다. 그리고 나는 줄곧 시계를 쳐다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영화 <아비정전>의 도입부는 시간의 공유에 대한 철학적 수사를 N85 블루 젤라틴 필터의 영상으로 보여준다. 필터 대신 전자식 핸드폰이고, 영상 대신 음성이었지만 11월 10일 새벽 1시 40분부터 48분까지 8분간을, 나는 아마도 영원히 잊지 못할 듯 하다. 이제는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있을 그녀가 원치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 '8분'을 오직 둘이서만 보냈다는 건 절대적 진실이니까.
1시 48분, 전화를 끊고 다시 마일드세븐 슈퍼라이트를 꺼내 물었다. 담배연기는 밤하늘로 올라가는데, 눈물은 뺨을 타고 내려 온다. 2개피 째에 불을 붙이자 핸드폰 벨이 울린다. 아내다. 그런데 전화가 아니라 문자메시지다.
"잘께요. 그냥 오늘은 문법공부하세요. 내일 아침에 전화할께요. 그리고... 많이 고마워요."
왜 많이 고마워했는지는 다음에 말할 수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이 부분은 아내의 허락을 받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내는 날이 밝기가 무섭게 전화를 해왔고, 우리는 그날 오전부터 만났고, 그날 밤 나는 사귀자는 고백과 동시에 첫 키스를 나누었다. 신사(神社)에서, 말이다.
일본 여친 "한국 남자들은 다 그래?" (5부)
"지금 기숙사 앞으로 갈께요."
아내는 잠에서 깨자마자 전화를 했다고, 나중에 말했다. 나도 잠결이었다. 얼결에 '오세요'라고 응대한 후 무심히 벽시계를 쳐다보니 오전 11시다. 일본에 와서 이렇게 늦게 일어난 건 처음이다. 아내도 그때까지 잤다고 하니까, 결국 나도 아내도 잠 못 이루는 밤이었던 셈이다.
그로부터 한 시간후인 11월 10일 오전 12시부터 아내와 나는 돌아오는 전철'안', 볼란티어 교실'안'이 아닌 '밖'에서 공식적인 첫 데이트를 가졌다. 말이 쉬워 데이트지 거창할 게 없다. 아내와 함께 K시의 공원, 절, 신사를 걸어 다니면서 대화를 나누는 정도?
지난 회에서 날짜를 어떻게 그렇게 잘 기억하냐는 류의 댓글이 있었는데, 여기엔 이유가 있다.
내가 아내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귀자'고 고백한 시간이 데이트로부터 딱 12시간이 지난 11월 11일 0시였기 때문이다. 11월 11일로 넘어가는 바로 그 시간 나는 아내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당신이 좋아요. 사귀고 싶어요"라는 말을 건넸고, 아내는 웬일인지 무표정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눈을 스르륵 감았다.
그러니까 11월 11일이다. 아내와 내가 사귀기 시작한 날. 2001년 11월 11일. 기억 못하는 게 오히려 힘들다. 연애에 있어 숫자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element)다. 누구에게나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던 경험이 있을테다. 연애한 지 100일 째에 뭘하고, 또 1주년엔 거창한 기념식을 했었던, 또는 해보려 했던 기억 말이다.
아내와 나는 이런 숫자적 요소가 우연적으로, 몇번이고 겹쳐질 때가 상당히 많았다. 예를 들어 혼인신고서를 시청에 제출한 8월 22일이 그렇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실질적인 결혼기념일인데 내 생일은 2월 22일이고 아내의 생일은 8월 2일이다. 마치 둘의 생일을 더한 후 나눈 것 같은 '숫자' 조합이다.
중요한 건 이게 의도한 게 아니라는 것. 다만 아내와 나는 며칠, 혹은 몇달이 지난 후 "어? 그러고 보니!"라는 뒤늦은 깨달음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깔깔거리고 웃었을 뿐이다.
그 날도 그랬다.
'사귀자'는 고백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눈을 감았던 아내. 내가 할 일은 오른팔로 아내의 목을 부드럽게 감싸면서, 조금은 천천히, 물론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아내의 윗입술의, 웬지 레몬맛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 감촉을 조심스럽게 빌리거나 공유하는 것. 물리적 시간은 10초정도였겠지만, 정서적으로는 분명 멈추어 주었을, 그래서 공백이 되어버린 영원한 시간, 혹은 꿈.
그러나 아내는 금세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다. 아마도 10초정도 되었을 그 시간이 끝난 후 아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시계를 나에게 들이대며 "너무 늦었어요. 12시가 지났잖아요. 나 빨리 집에 가야 해요"라고 뭐가 그리 급한지 쏘아 대던 아내. 그런데 또 그때 나의 눈에는 아내의 눈이 아니라 '숫자'가 들어왔다. 아내가 내밀던 시계가 가리키던 숫자다.
11월 11일 0시 3분. 아내와 내가 사귀고 또 첫 키스를 나눈 '숫자'는 그래서 11월 11일이 되었다. 의도하지 않은 '우연'이었다. 평생 잊어버리기 힘든 '숫자'를 '우연'히 부여받은 셈이다.
사실 연애가 잘 되려면 이런 우연적 요소가 꽤 들락날락거려야 한다. 우연은 '깔깔거림'과 같은 소소한 즐거움을 준다. 이 소소한 즐거움이 그, 혹은 그녀와의 공간에서만 일어난다는 것을 어느날 문득 느낄 때 그 우연은 필연을 넘어 인연이 된다.
하지만 아내는 우리가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한 지 한달쯤 지나 "첫 데이트 정말 최악이었어!"라는 진심(本音)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것도 아내의 친구에게 나를 소개시키는 자리에서다. 첫 데이트의 내용을 듣던 아내의 친구 A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나중엔 내 눈조차 쳐다보지 않고 시푸드 화이트소스 스파게티에 애꿎은 포크질만 해댔다.
A는 나중에 물론 나와도 친해졌고 그때 첫 소개자리에서 왜 나를 외면했는지 그 진짜 이유를 털어 놓으면서 "아마 일본 남자였다면, 아니 일본 남자들은 그럴 리도 없겠지만, 아! 정말 상상하기조차 힘든 짓을 그렇게 태연자약하게..."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아내도 다시금 그날 일을 떠올렸는지 에스프레소 커피를 넘기면서 "진짜 심했어, 그지?"라고 맞장구를 친다.
나는 첫 데이트에서 잘못한 게 없다, 고 생각했었기에 아내와 A의 이런 말들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내가 잘못했었다면 부모님과 같이 사는 정숙한 아내가 밤 12시가 지나서까지 나와 같이 있을리가 없다. 물론 사회인인지라 간혹 12시를 넘길 수도 있지만, 토요일도 12시를 넘겨 버리면 이틀 연속 오밤중 귀가가 되어 버린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보면서 A가 말을 꺼낸다.
A) 그날 미와코가 빨간색 부츠를 신고 갔다고 하던데 기억나?
나) 아! 기억나. 뭐였더라? 유..유나이팃...음...
아내) 유나이텟도 아로우즈 (ユナイテッドアローズ).
나) 아. 그렇지. 유나이티드 애로우즈 (United Arrows).
아내) ...아니, 유나이텟도 아로우즈(ユナイテッドアローズ) 라니까.
나) 아, 일본식...유나이텟도 아로우즈.
일본을 한번이라도 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일본식 영어발음을 접했을 때 가슴이 휑해지는 절망감과 좌절을. 그렇지만 평소에는 그냥 넘어갈 법한 이런 영어발음이 본격적으로 대화의 테마로 등장할 때는 이미 뭔가 불만이 있다는 말이 된다. A가 가볍게 물어온다.
A) 그거 어땠어?
너무 가벼웠기에 나도 가볍게 답했다.
나) 음 뭐랄까.. 안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지.
A는 순간 손발이 오그라드는 답답함을 느낀듯 이마를 치며 괴로워 했고, 아내는 옆에서 길디긴 한숨을 내쉬었다.
A) 아휴 인간아. 설사 어울리지 않았다고 해. 그래도 그렇지, 그걸 첫 데이트에 대놓고 '그거 안 어울려요'라고 말하는 남자가 어딨어? 정말 비상식적이야.
아내) 그래, 그래. 그때 나 정말 쇼크 먹었었어.
A의 공격에 아내는 즉시 동조했다. 아마도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을 테다. 그리고 뒤이어 등장하는, 외국인을 사귈 때 피해 갈 수 없는, 너무나 전형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A) 한국 남자들은 다 그래?
하나 더 있다. 아내는 첫 데이트를 했을때 내가 점심을 먹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 니꾸망(肉まん)과 앙망(アンマン)을 편의점에서 사가지고 왔다.
▲ 고기육질로 채워진 니꾸망(肉まん). 지금은 정말 좋아하는 데 그땐 왜 그렇게 충격이었던지...(사진은 이미지)
니꾸망은 문자 그대로 쇠고기가 들어간 호빵이고, 후자는 한국에서 흔히 보는 앙코가 들어간 호빵이다.
니꾸망이 앙망보다 10엔정도 비싸다. 아내는 날 생각해서 니꾸망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한번도 니꾸망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당시 호빵에 대한 내 인식은 고정되어 있었다. 당연히 검정색 앙코가 튀어 나올꺼라 생각했는데, 고기 기름과 육질이 주루룩 입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얼결에 외치고 말았다. 하필이면 일본어로 말이다.
"아! 이게 뭐야? 뭔 맛이 이렇대?"
그땐 왜 아내가 '털썩' 공원의 벤치에 주저앉았는지, 그리곤 말없이 내가 한 입 베어문 '니꾸망'과 아직 새끈새끈한 '앙망'을 교환한 건지 몰랐다.
A는 이 이야기도 이미 알고 있었다. '유나이텟도 아로우즈' 부츠 사건 후 나온 '상처받은 니꾸망'은 A의 분노 게이지를 극한까지 올렸다. A는 아사히 드라이 캔맥주를 마저 비우고, 바닥에 '퍽' 소리가 나도록 내려 놓으며 이렇게 쏘아 붙였다.
A) 이해할 수 없어. 매너 꽝이야. 미와코는 정말 생각해서 사가지고 온 건데 정말 너무 심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대? 이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남자 모습이야. 아! 정말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주저리주저리.
아내) 그래 너무 심해. 정말 심했어. 난 정말 그때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했어. 내가 어쩌자고 이런 사람과 데이트라는 걸 하고 있는지라는 절망감과 아득함이 정말 난 이런 사람이... 어쩌고저쩌고.
나) ......................(먼산)
아무튼 A는 이날 저녁 약 1시간에 걸쳐 나를 공격했고, 그 이후에도 아사히 드라이 맥주만 들어가면 이 얘기를 꺼낸다. 무려 만 7년이 지난 지금도 별로 변한 게 없다. A에게 있어 나는 오징어 땅콩보다 더 감칠맛나는 안주거리가 된 셈이다. 그리고 그녀가 내뱉는 안주씹기의 마지막은, 대부분 이렇게 끝난다.
"한국 남자들은 다 그래?"
나는 A를 친구로서 정말 좋아하지만 A가 아직 연애를 못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간혹 생각한다. 아내는 한국남자인 나를 만났다기 보단 그냥 나를 만난 거다. 나역시 일본여자인 아내를 만난게 아니라 그냥 아내를 만났을 뿐이다. 즉, 어떤 국적을 가졌는 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전부 좋은 사람이 아닌 것과 같은 원리다.
즉 내 실수는 한국남자가 그런게 아니라 내가 그런 것이고, 물론 '상처받은 니꾸망'에 대해선 나도 충분하게, 또 진지하게 반성했다. '조금만 참고 끝까지 먹자'는 이성적 행동을 왜 하지 못했을까 라는 자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말이다. 앙코가 나올거라 철썩같이 믿고 있었는데 갑자기 고깃점이 씹힌다고 생각해 보자. 당사자 입장에선 얼마나 황당했을까를.
그래서일까? 아내는 지금도 첫 데이트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첫키스만 선연히 기억난다. 그 멈춘듯한 무중력의 시간속에서 레몬맛이 나던 아내의 윗입술(첫 키스에서 나는 아내의 윗입술만 터치했다)과 아내가 보여줬던 '숫자'의 이미지를, 말이다.
그렇다고 아내는 첫 데이트를 격하하진 않는다. 아내는 첫 데이트에서 내가 보여준, 이건 어떻게 보면 한국남자들의 보편적인 행동일 수 있지만, 적극적인 취사선택에 너무나 편했다고 말했다.
아내와 나는 그날 2시 K시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고급 스파게티 가게를 갔는데, K시에서 26년을 살아온 아내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왜 그런 심리 있지 않은가? 깡촌에서 자란 심약한 녀석이 자기네 동네에 후터스가 들어왔다고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것. 강북에서 놀던 이가 강남의 줄리아나를 한남대교 건너편에서 쳐다보기만 하는 그런 심리.
아내는 한번 가보고 싶은데 한번도 못 가봤다고, '상처입은 니꾸망'을 먹어가며 말한다. 아내의 말을 들은 나는 아주 당연하게 응수했다.
"그럼 오늘 거기 가지. 뭐"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는 이런 말들이 아내를 편안하게 해줬다. 지금도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오빠를 만나면서 정말 편한 거는 오빠가 다 알아서 결정해 주는 것. 보통 남자들, 일본남자라고 해야하나? 내가 경험한 사람들이 일본남자들이 많으니까 그럴 수 밖에 없겠는데, 항상 뭘 할려고 하면 상담을 해야 했거든. 그런데 이거 너무 에너지 낭비잖아. '우리 뭐할까?'라고 일일이 상담해야 하는 거 말야. 근데 오빠는 다 알아서 휙휙 쉽게 정해 주니까 너무 편한 거 있지?"
그리곤 마지막에 덧붙인다.
"한국 남자들은 다 그래?"
현상적으로는 A가 내뱉은 것과 똑같은 문장이지만, 맥락(Context)이 다르다. 아내와 내가 연애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맥락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현상(Text)에만 치중하면 안된다. 현상은 드문드문 구체성을 띤 형태로 추억을 불러일으킬 때만 작용할 뿐이다. 연애는 추억이 아닌 현실이다. 사소한 것에 목숨걸지 말고 길게 그 맥락을 음미해야 오래 간다.
나는 A의 물음에는 '먼산'을 쳐다봤지만, 아내의 물음에는 이렇게 대답한다.
"한국 남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닌데, 리더쉽은 있다고 봐. 군대 같은 것도 거의 경험하고 그러니까. 난 그 안에서도 좀 더 그런 스타일인 것 같아."
그러면 아내는 군대에 대해서 물어온다. 결국 적절한 과장이 섞인 내 군대얘기를 듣고, 내 손을 부여잡으며 눈가에 눈물방울이 맺힌 채 이렇게 말한다.
"오빠. 살아서 돌아와 줘서 정말 고마워..."
이 순간 '유나이텟도 아로우즈'와 '상처받은 니꾸망'은 저멀리 기억너머로 사라진다. 군대 역시 그 자체로는 이들과 같은 레벨의 텍스트에 불과하지만, 중요한 건 어떤 맥락에서 나오냐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맥락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순간, 연애는 시작된다.
그렇게 몇 차례 데이트를 했다. 아내의 안심감을 충족시켜주는 든든한 오빠라는 인식(혹은 맥락)은 데이트를 거듭하면서 점점 더 강고해져 갔다. 그렇게 데이트를 거듭해 가던 12월 어느날. 또다시 '숫자'의 신(神)이 강림해 주신 12월 12일. 아내는 작정을 한 듯 말을 꺼내었다.
"나 집에서 나오고 싶어. 오빠와 같이 살고 싶어"
그리고 나는 어렸을 때 소일거리로 배워두었던 '바둑'이 며칠 후 갑자기 '절대마공'을 발휘할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했었다. 이때만 하더라도 말이다.
출처:http://www.jpnews.kr/sub_read.html?uid=597§ion=sc4
첫댓글 일단 게이오보이를 납치한 뒤에 헌책방에 꾸겨넣고 특이한 영화 하나 말하다가 지하철 타고 돌아다니다가 캔커피랑 호빵 먹고 키스를 해야 되겠구나. 바쁘다. 바빠. 님들 제가 게이오보이랑 잘 되면 님들 가지치기 해드릴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럼제가 일빠..사랑합니다^^ㅋ
아이바로 가지치기 해주삼ㅠㅠ
저도 껴주세요ㅋㅋㅋㅋ 님 잘되길 기다리고있을게요~
전 준이염 ^*^
응원합니당..^*^
이싸람들이!!
소설인가여................(정독 중 입니다)
이거 왜 계속 올라오는 겆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한번에 다 올리시는게.,
아띠발그럼 일본에 유학가있는동안 바람나서 한국에 있는 여친 버린겨..............????
내남자친구가 저럴까바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