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
고명제
꽃을 밟고 건너서 볼에 닿는다 빛은 오후 네 시가 되면 창문을 넘어와 여자가 가진 것을 가지런히 누른다 천진난만한 손가락처럼 피아노 위에, 교복에, 여자의 얼굴에 함부로 앉는다 어린 손이 잠시 볼에 닿는다 눈을 뜨면 진달래가 찍힌 것 같다 여자가 일어선다 이불의 자수가 휘청거린다 머릿속엔 도라지꽃이 미쳐서 구른다 허기 속엔 뒤집힌 혀의 보라가 보이지 목구멍엔 젖은 꽃이 헐떡거리지 너무 고단해서 여자는 뱀처럼 아이를 삼켰나 울면서 터널을 내려간 아이, 목구멍엔 구석구석 찍어둔 손자국이 메밀꽃처럼 하얗게 출렁거리고 여자는 가장 긴 손가락을 목에 집어넣는다 새빨간 기차가 단번에 머리통까지 온다 게워낼 때마다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 같아서 여자는 이 짓을 자꾸 한다고, 그러다 완전히 텅 빈 씨앗의 기분이 될 때 냉장고를 연다 비닐봉지를 가로로 찢는다 핏물에 부르튼 고기를 굽는다 약불에 선홍빛 피가 올라오면 몽골몽골 매화가 이렇게 올라왔었지 불처럼 두렵고 아름다웠어 마음만큼 느리게 배가 불러왔었지 이렇게 얇은 꽃잎 같은 게, 죽어서도 계속 피를 흘리는 게, 기도 같다고 여자는 생각한다 그것은 덧없고 뜻 없는 오후의 빛이다 여자는 긴 손가락으로 살점을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