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볕 같은 생애도 꽃은 핀다.
숨쉬기도 어려운데 불볕 속에 꽃을 피우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닭의장풀!
아침 설거지가 끝날 무렵 피어난 꽃이 점심을 먹고 나면 시들었다.
‘목사님! 구순을 장담할 수 없네요.
안 아픈 곳이 없어 남편이 교회 식구들 점심 대접하고 싶데요.’
‘뭘 드시면 좋을까요?’
‘목사님 알아서 맛집으로 정하세요.’
예배 후 초콜릿 케이크에 촛불을 밝혔다.
기타 반주에 맞추어 축하 노래를 불렀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 23:6)
키 작은 권사님!
나이를 어디로 드셨는지 박 권사님, 정 권사님보다 먼저네요.
눈물 골짜기 더듬으며 산전수전을 겪으셨지요.
거친 인생의 굴곡을 넘어설 때마다 주님을 붙잡으셨고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팔십 평생 권사님을 따라왔네요.
인생의 어둠과 빛이 녹아들어 지금 나이 빛깔이 되었네요.
석양 노을과 영원의 아침 햇살이 포개지는 날을 바라볼 때가 되었어요.
최종 목적지는 하나님의 집에서 영원히 사는 것, 잊지 마세요.’
여유 있게 맛집에 앉아 음식을 즐겼다.
시장이 반찬이라 삼삼오오 둘러앉은 얼굴마다 정겨웠다.
맛보라고 닭볶음과 비빔밥을 정 권사님이 내밀었다.
배를 두드릴 만큼 푸짐하여 포장한 분도 계셨다.
오는 길에 장로님이 눈에 밟혀 찾아갔다.
통증 호소에 마음이 무거웠다.
무지렁이 같은 지난 삶을 토설할 때 킴벌리 커버거의 시가 떠올랐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나눴으리라..’
위로하고 기도한 뒤 일어섰다.
도중에 지인에게 안부를 물었다.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목사님, 문화 해설사 수료하면 AI 학습 받으려고요.
방통대 7년 만에 졸업하고 박사 학위를 못 받은 게 아쉬워요.
재활의학에 도전해 보려고요.
아들은 경영대학원 다니며 고등학생 손자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요.
공부가 취미인가 봐요.’
‘그래요, 박사보다 밥값 잘 내는 밥사가 위지요.
얼마나 배웠느냐보다 얼마나 나눴느냐가 마지막 성적표 아닐까요?’
‘처음 듣는 말이네요.’
그날 자정, 전화가 허공을 깨뜨렸다.
낯익은 목소리가 장로님 형편을 물었다.
간호사실에 확인하여 별 징후가 없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음 날, 교회 냉장고 문을 열고 요플레 꾸러미를 꺼냈다.
‘류 집사님! 어제 깜빡하고 요플레를 못 챙겨 드렸어요.
식당으로 서둘러 가면서 놓쳤네요.
아침 운동 길에 경비실에 맡겨 놓을게요.’
‘목사님! 거기에 사람 없어요.
안 주셔도 되는데요.
곧 내려갈게요.’
전날 지인에게 자극을 받아 도서관 가려고 책을 챙겨 내려왔다.
하 집사님이 놓고 간 빈 깡통에 개미 떼가 장사진을 이뤘다.
열람실에 앉자 마음 한쪽에 시 한 편이 찾아왔다.
‘개미 맛집’-이상래-
‘빈 음료수 깡통 모아/ 대문에 내놓았다//
부지런한 개미가/ 식당을 차렸다//
누가/ 소문낸 걸까?//
먼저 찾아온 손님/ “여기 맛집이다!”//
친구들 데려오자/ 둘, 셋, 넷, 다섯…//
끝없는 까만/ 기차 줄//
한두 방울 남은 콜라/ 웃음 보글보글한 맛집//
작은 입으로/ 함께 나눈/ 달달한 행복’
개미에게는 콜라 몇 방울이 잔치였고,
사람에게는 작은 관심 하나가 큰 사랑이었다.
일찍 받아 둔 9월 호 ‘좋은 생각’을 펼쳐 읽으며 코끝이 찡하였다.
‘법정에서 핀 꽃’ 가사 전기 집의 담백한 글맛도 좋았다.
박열 열사와 한원주 의사의 삶에 가슴이 뛰었다.
‘고전이 답했다’(고명환)를 읽으며 새로운 생각도 얻었다.
그때 선교사님의 카톡이 울렸다.
‘목사님! 더위에 잘 지내시지요.
한국에 잠시 다녀온 동역자가 여기 못지않게 더웠단 말에 믿기지 않았네요.
성도님들 평강하신지 궁금하네요.
신 장로님 건강도 염려되고요.
다름 아니라 '박0은' 사모님께서 일백만 원 선교비를 보냈어요.
고마움을 전하려고 연락드리네요.
사실 직접 뵙지 못했는데 귀한 섬김이 감사할 뿐이어요.
목사님께서 저희 마음을 대신 전해주세요.
늘 기억하고 깊은 마음 써 주시는 목사님,
신광의 식구들에게도 사랑을 전하네요.’
‘선교사님! 복된 기별 감사합니다.
기온이 조금 내려가 살만하네요.
도서관을 피서지 삼아 독서 삼매경에 빠졌네요.
장로님은 고질적인 허리 협착증으로 고통을 호소하네요.
화장실 출입이 어렵고 식사도 죽으로 드셔요.
주일 심방 후 전화로 기도해 드리며 위로의 말씀을 전하네요.
카톡 보실지 모르지만 안부 물으면 큰 힘이 되실 거예요.
박 사모님, 기도하며 감동되어 거룩한 부담으로 선교비 보낸 것 같아요.
감사할 일이네요.
선교사님 마음 전해 드릴게요.
힘내시고 행복한 가정, 기쁨의 사역 이어 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더 기도하겠습니다.’
박0은 사모님에게 카톡 내용을 그대로 보냈다.
‘마음이 오길래 언능 보냈나이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사실 맥추절 헌금으로 73만 원 보냈어요.
처음으로 일백만 원 채우지 못해 마음에 걸렸어요.
하나님께서 귀한 손길로 더 공급하셨네요. 감사해요.’
다음 날, 장로님을 다시 찾았다.
간호사가 ‘이 시간에 오시면 안 되는데요?’
‘기도해 드리려고요?’
고개 숙이며 장로님의 얼굴을 뵈었다.
‘목사님! 차도가 보이는데 회개할 일도 많아요.
걱정을 끼쳐 드려 죄송하고요.’
애들은 아프고 나면 몸이 자라지만 어른은 아픔을 지나며 영혼이 자란다.
불볕 같은 생애도 꽃은 핀다.
인생에서 놓친 것은 많아도 사랑할 때를 놓치지 않는 삶은 참 아름답다.
2026. 8.15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