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예표한다.
요한복음 3장
1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불뱀에게 물리면 죽는다.
뱀은 사단을 상징한다.
사단에게 물리면 죽는다.
영적으로 사단의 거짓 진리 거짓 복음에 미혹되면 그 영혼이 멸망한다.
장대 위의 놋뱀은 사단이 십자가에 달려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일까?
예수님이 뱀 즉 사단과 똑같다라는 것인가?
그 이유가 무엇일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는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신 분이시다.
우리의 죄 때문에 저주를 받으셨다.
갈라디아서 3장
1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놋은 심판을 상징한다.
예수께서 우리가 율법의 저주로 죽어야 하는데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신 심판받고 저주를 받아 죽으셨다.
광야에서 모세가 든 놋뱀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고 살아나심으로 마귀가 심판받아 죽어있는 모습이다.
사단은 심판을 받아 죽을 것이 확정되었다.
창세기 3장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마귀는 머리를 상해 죽을 것이 예언의 성취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어째서 사단은 아직도 살아서 인간들을 괴롭히는 것일까?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졌다.
하나님 앞에서는 사단은 이미 심판 받아 죽었다.
그러나 땅에서는 아직 진행형이다.
또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사단은 여전히 그들의 아비이다.
율법의 저주아래 죽어있는 죄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쳐다보면 산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쳐다본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해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불뱀에 물리면 육체가 죽는다.
사단에게 물리면 영혼이 죽는다.
놋뱀 죽어 있는 뱀을 쳐다보면 산다.
사단이 죽어서 달려있기때문에 우리는 죽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가 구원을 이루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창세전에 구원의 계획을 세우시고 아들을 보내사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하셨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쳐다보면 산다.
쳐다 본다는 것이 단순히 한번 쳐다본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바라 보는 것이다.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음 속 깊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 십자가를 쳐다보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사단도 죽었다.
사단은 마지막 종말때 영원한 불못으로 들어가지만 영적으로 십자가에서 이미 심판받아 죽은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