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여행은 잊지못할 기억을 남긴다.
가슴이 뭉클하게 만드는 풍경, 친절하거나 혹은 불친절했던 사람들, 아무 걱정없이 빈둥거린 기억,
패키지 여행이라서 정신없이 관광지를 찍고 찍으며 움직이고 하던 기억에 이르기까지 남는 기억도 다양하다.
그중 어느것 하나 그건 여행이 아니라며 폄하될 일은 아니다.
그 여행에의 기억이 어떤 것이었든 여행은 여행 자체만으로도 삶이 충분히 풍요로워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여행자체가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기에 가치있는 일이지만
정말 좋은 여행은 인생을 바꾼다고 한다.
인생의 새로운 길을 여행속에서 찾기도 하고 자신의 삶이 더 나아지도록 행동하게도 되고,
나 이외의 사람을 배려하게도 만든다.
그게 세상을 바꿀 정도로 거창한 것은 아니라해도 우리에게 삶의 기쁨과 다시 또 열심히 살아볼 기운을 북둗아 주게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인도여행에서 이렇게 제일 기억에 남을 일이 벌어진거다.
어제 저녁부터 설사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행은 계속 되어야 한다.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6시 30분 아침 식사지만 아침은 거를 생각을 하고 침대에서 게으름을 피우다 일어나 아침 갠지스강 보트타기를 하러 간다.
두명의 사공이 노를 젓는 배하나에 모든 여행 멤버들이 안전조끼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출발을 한다.
인도에서 구명조끼까지 기대한다는 건 사치겠지만 언젠가 인명사고가 나면 익사까지 가능할 분위기인데 안전까지 생각할 여유같은건 아직 인도에는 없어보인다.
디아(Dia)를 갠지스강에 띄우며 소원을 비는 것이라는데 새벽같이 디아를 띄우는 사람들 모습이 강가쪽에 보인다.
어제 밤에도 디아를 사서 초에 불을 붙여 강물에 띄우며 소원을 빌었다.
이런 꼭두 새벽에도 디아를 팔러 나온 아이들이 많다.
제일 먼저 눈에 띈 아이에게 10루피(2백원)을 주고 디아를 산다.
오늘은 보트를 타는 날이니 강물 중간까지 가서 띄워 보기로 한다.
디아는 손바닥 만한 것 위에 국화꽃같은 꽃을 두르고 중간에 작은 초를 놓아 불을 붙여 띄울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이른 새벽 제법 쌀쌀한 날씨임에도 갠지스강에 목욕을 하러 나온 힌두교인들도 멀리 보인다.
종교적 신념에 의한 것이니 타다남은 시체를 던지고 생활폐수에 온갖 짐승들의 배설물까지 뒤석인 강물이라 더럽고 아니고는 그들에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으리라.
갈매기인지 비둘기인지 모를 새들이 강물에 뭔가 먹을것이 많은지 새벽부터 떼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
보트 뱃사공이 철수는 아니지만 이른 새벽부터 생업 전선에 나와 이렇게 일하는 사람은 그래도 구걸하고 있는 사람들 보다는 비빌 언덕이나마 있는 사람일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 골목들이 미로라고 알려진 이런 길을 소와 소똥과 뒤엉켜 지름길로 빠져 나와 바라나시 소재 힌두대학을 잠깐 들르러 간다.
힌두대학 내에 상가도 있고 아래 사진처럼 힌두 사원도 있고,,'''
오전 8시도 되기 전인데 대학내 이런 모습들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속을 비우는게 나을것 같아서 아침식사는 거르고 아침 8시에 관광버스로 바라나시를 출발하여 카주라호로 향한다.
바라나시 시내도 한국의 60년대초 수준의 모습이지만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한국의 전쟁직후 50년대의 한국모습과 비슷한 것이 현재 인도의 모습인것 같다.
버스 정류장의 모습..
이런 차도 교통 수단으로 훌륭한 수준인지 사람들이 뺴곡이 타고 있고....
바라나시에서 카쥬라호로 가는 길가의 모습들을 달리는 차에서 찍어본다.
이런 길가의 집들이 문열때 보면 문을 열자마자 바로 방이며 한 이불에 여러명의 가족들이 덮고 있고
집앞에는 저녁 무렵 모깃불처럼 모닥불을 피워 음식도 만들고 그러는 모습들이 일상적인 민가의 모습들이다.
관광버스로 바라나시에서 카쥬라호로 가는 길은 포장된곳이 반정도고 포장하느라 공사중인 곳이 반이고 비포장인곳이 또 반인 도로사정이다.
어찌나 먼지가 많이 나는지 2천년전 로마가 전세계를 재패한 것이 모든길이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정도로 도로 닦기에 능했기에 가능했던 것인데 인도도 다른 무엇 보다도 도로부터 빨리 정비하는 길이 발전을 당기게 하는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바라나시를 벗어나 교차로를 지날때면 신호등이 없어서인지 차 머리부터 디밀고 서로 가려는 통에 50미터앞의 교차로를 건너기까지 30분이상을 차가 엉킨채로 서 있기도 하면서 아침 8시에 출발한 관광버스는 오후 7시 20분이 되어서야 카쥬라호에 도착한다.
11시간 20분이 걸릴 거리는 분명 아닌데 도로사정이 이 구간은 정말 인도스러운(?) 곳이었다.
바라나시면 세계적인 관광도시일것 같은데 먹고살기 힘들다보니 여행하러 오는 관광객을 위한 도로정비보다 산적해있는 다른 급한 일이 많은 곳이 인도인가 보다.
그런 바깥의 모습과는 다르게 도착한 Clark호텔 내부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쾌적한 모습니다.
도착해 저녁도 역시 거르고 병원에 가기로 한다.
꼬마가이드 영수씨의 고향이다보니 마사지샵에서 오토바이를 빌려와 병원으로 진료를 하러 갔다.
개인 병원이라 그런지 밤9시까지 진료를 한단다.
병원에 가보니 우리나라 보건소 만도 못한 열악한 환경의 진료실에서 늙수그레한 의사양반이 진료중이다.
속이 뒤틀리면서 아프지 않는지 묻고 무얼 먹었는지 묻고 혈압도 재고..
그러고는 처방을 해준다.
급체는 아니고 물갈이만 하는건지 복통은 심하지 않다
국립병원은 거의 무료라는데 줄이 길어 진료가 힘들다고 알려져 있어 개인 병원으로 간거다.
가이드 영수씨가 패키지 여행은 병원을 가도 보험처리가 된다며 극구 병원가기를 추천한다.
진료비 500루피 (1만원) 약값 286루피(5천 7백원)나오던데 영수증을 받아가봐야 개인병원 1만원 제외하고 약값도 하루 얼마 이상분만 보험 처리받으면 보험처리로는 받고말고 할게 없을것 같은데
외국서 병원이용의 경우 가입 여행자보험의 효력은 어느정도인지도 알겸 경험삼아 청구해보기로 하고 영수증은 착실히 받아 챙겨본다.
병은 알리랬기에 멤버들에게 물이나 음식에 대한 주의도 환기시켜드릴겸 두루 두루 알렸더니
한국에서 가져온 지사제를 5팀의 여행자에게 받게 된다.
악명높은 인도의 물갈이를 들어선지 대부분의 팀들이 지사제를 준비해 왔다.
받은 지사제를 모두 먹어봐도 좋아지지 않고..
인도에서의 설사는 세균성 설사라 인도 현지약이 잘 듣는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나서 병원 가서 처방받은 약을 먹어봤지만 진통제가 들어가 있는지 크지 않게 느껴지던 복통은 좋아지던데 설사가 멈추지는 않는다.
그동안 먹었던 닭고기 요리, 란, 커리,등은 먹지 말라고 주의를 듣고보니 아무리 호텔에서 나오는 음식이지만 먹을 것이 없다.
하여 내리 7끼를 굶으며 바나나 그리고 생수로 끓인 커피 믹스만 한두잔 먹으며 버텨본다.
그래도 기운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엑스트랄 이라는 것을 처방해 주어 1리터 물에 타서 마시라는데 이걸 타서 마셔보니 기운나게 하는
보충제라는데 맛이 대장검사시 속 비우게 할때 마시게 하는 그 약의 맛과 흡사하여 먹기가 그리 수월하지가 않다.
그래도 세봉 처방해준거 한봉은 꿀떡같이 마셔본다.
그래서인지 계속 굶는데도 기운이 없지는 않아 여행에 큰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
여행에서의 기억은 소중한 일인건데 인도에서 강렬하게 남을 기억은 배탈 설사에의 기억이라니 씁쓸할 여력도 없이 이날 이후 멤버중 반정도는 똑같은 증상에 시달렸다.
심지어 구토증세까지 보이는 멤버까지 있어 내 증세는 그나마 가벼운 정도에 해당한거 같다.
여행은 그래도 좋다.
여행은 내자신의 인생을 생동감있게 만드는 것이기에 이정도의 배탈 설사가 여행에의 즐거움을 막지는 못하는 지라 25불에 한다는 님(Neem)이라는 치약원료나무 오일 마사지까지 옵션으로 참여를 하고 기분 좋은 잠을 청해본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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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길잡이★유럽 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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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감하고갑니다 이리자세하게 소개주시니 아주좋아요 감사합니다
관심 가지고 읽어 주시니 제가 감사합니다~
즐감하고갑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여행 수필을 쓰셔도 되실만큼 리얼합니다.
여행도 되새김질 할겸해서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