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역사는 달린다
페이지 한장한장을 넘길 때마다
역사는 달린다.
한걸음 한걸음 전진한
세계 역사는 어느덧 근대에 들어서고 있다.
원래 인류 역사가 그런 것인가?
그리 기쁜 일은 많지 않고, 우울한 일들이 많은 편이다.
재미는 있지만,
아이들에게 역사가 이렇게 우울하고 전쟁과 죽음이 난무하는 것이라고
단정짓게 될까 생각도 든다.
1. 유럽은 개척시대
3권은 샤를5세라는 황제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샤를 5세의 아버지는 스페인 국왕이었고,
할아버지는 네덜란드의 국왕이었으며,
또다른 할아버지는 독일 국왕이었다.
이들은 죽으면서 모두 샤를 5세에게 왕위를 물려주어
그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평생 가난과 외로움과 함께 하다가 세상을 등졌고,
아들과 동생에게 나라를 나누어 주었다.
그래서 그의 아들 펠리페는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왕이 되었다.
펠리페는 남아메리카에서 금채취를 하여 돈을 벌었다.
그는 가톨릭 신자로써 프로테스탄트를 탄압하였는데,
이로 인해 프로테스탄트들은 네덜란드 빌렘을 중심으로 잔란을 일으켰고,
네델란드에서 독립을 선언하였다.
네덜란드가 페르페의 스페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하나의 독립국이 된 것이다.
...
스코틀랜드는 메리 여왕이 왕위에 있었는데, 역시 프로테스탄트와 갈등을 겪고 있었다.
특히 의회는 프로테스탄트 일색이었다.
의회는 이에 메리 여왕의 아들 제임스 6세를 왕위로 세우게 되었다.
메리 여왕은 영국으로 도망을 갔는데,
당시 영국은 사촌인 엘리자베스 여왕이 왕위를 지키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메리한테 왕위를 빼앗길까봐 그녀를 죽였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죽고, 왕위를 제임스 6세에게 물려주어
제임스 6세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프로테스탄트였던 제임스 6세는 영국국교회를 개혁하고자는 하는 청교도들과 대립하였고,
기존의 가톨릭과도 대립하였다.
그 뿐만 아니라 왕의 권력을 남용해서 의회와도 대립을 하게 되었다.
국내에서는 이런 대립을 보였지만,
국외에는 다른 나라들처럼 신대륙 개척에 박차를 가했다.
금을 찾아 북아메이카의 식민지 개척을 지원하여 제임스타운이라는 도시를 건설하였다.
...
프랑스에서도 북서항로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였는데,
북서항로는 찾지 못하고,
오늘날 캐나다 위치에 식민지를 개척하고, 뉴프랑스라고 하였다.
이 뉴프랑스는 오늘날 퀘벡지역이라고 한다.
..
영국의 헨리 허드슨이라는 탐험가가 있었다.
당시 많은 탐험가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대서양에서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강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 강을 찾으려고 하였다고 한다.
일명 북서항로 찾기였다.
그런데, 헨리 허드슨은 남들과 다른 경로를 찾았다.
북아메리카 대륙의 북쪽을 우회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빙하가 가로막고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러시아 위쪽을 공략하였다. 역시 얼음이 그를 가로막았다.
그는 다시 북아메리카에서 북서항로를 찾으려고 하였는데, 역시 실패하였다.
그대신 그가 찾아낸 만과 해협이 있는데, 뉴욕에 있는 허드슨 해협과 허드슨 만이 그것이다.
2. 아시아에서는...
그렇게 유럽에서 신대륙 개척에 바쁠때,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한국과 중국으로 침입하였다.
긴 전쟁 끝에 결국 정복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가 죽고 난 뒤 일본은 그의 아들을 지지하는 서군과
도쿠가와 이예야스를 지지하는 동군으로 나뉘어 전쟁을 하여 도쿠가와 이예야스가 승리하였다.
이로 이에 도쿠가와 막부 시대가 열렸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대항하는 반란이 생기지 않도록
스모, 시, 음악을 권장하였다고 한다.
...
중국의 명나라는 이자성의 반란으로 명나라 마지막 황제가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이자성의 반란을 막기 위해 명나라 장수 오삼계는 만주족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그것이 화를 불렀다.
만주족은 그대로 군사를 데리고 내려와 북경을 점령하고 청나라를 세웠다.
처음에는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지 못하였지만,
4대인 강희제가 한족도 존중하여 인재등용을 하면서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고 번영을 이어갔다.
강희제에 이어 그의 손자 건륭제에 청나라는 전성기를 이루었다.
몽골, 오스만투르크 일부, 타이완, 남부 지방을 차지하면서 영토를 최대로 확장하였다.
인구도 3억이나 되었다고 한다. 당시 지구의 전체인구가 9억정도 했다고 하니 엄청난 숫자이다.
...
인도에서는 무굴 제국이 통치하고 있었다.
세계의 지배자로 자칭하던 자한기르는 공포정치로 나라를 다스렸고,
대외적으로는 영국과 무역을 실시하여 경제 성장을 이루기도 하였다.
그의 아들 샤자한은 스스로 세계의 왕이라 불렀으며,
업적보다 아내가 죽자 그녀를 기리기 위한 무덤을 20년간은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그 무덤이 바로 타지마할이다.
샤자한의 아들 아우랑제브는 자신을 세계의 정복자라 불렀다
힌두교를 탄압하고, 남부 데칸 지역 정복에 집착을 보였다.
남부 데칸 지역이 힘은 없지만, 의지가 강해서 끊임없는 독립투쟁을 벌였고,
아우랑제브는 데칸 지역을 진압하는 많은 힘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했다.
그로 인해 영국인에게 쉽게 허가를 내주어 그들이 인도내에 도시를 건설하게 하였다.
그렇게 건설한 도시가 캘커타이고, 영국군대가 주둔하게 되었다.
이것이 후에 인도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3. 식민지 현황
한편, 영국의 청교도들은 탄압에 못이겨 네덜란드로 도망갔다가
다시 북아메리카로 건너가기로 하였다.
그들은 메이플라워라는 배를 타고 자신들을 순례자란 뜻의 필그림이라 하고
북아메리카의 메사추사추에 정착하였다.
그들은 만민평등을 골자로 자신들만의 법을 만들었다.
그 이후 많은 필그램들이 건너와 그들의 정착지에 뉴잉글랜드를 만들었다.
...
네덜란드는 동인도 회사와 서인도 회사를 만들어 식민지를 만들었다.
허드슨강 근처에 정착하여 뉴네덜란드를 건설하고,
뉴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를 지어 엄청난 번영을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북쪽의 뉴잉글랜드 세력이 영국의 왕 찰스2세의 지원을 받아 공격을 해왔고,
이 싸움에서 뉴네덜란드는 패배하여 뉴암스테르담은 뉴잉글랜드의 땅이 되었다.
이후 뉴암스테르담을 찰스2세의 동생 요크공작의 이름을 따서 뉴욕이라고 하였다.
...
영국이 개척한 제임스 타운에서는 담배농업이 성행하였다.
담배농업 특성상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는데,
이를 노예로 충당하였다.
포르투갈이 노예 무역을 위해 아프리카를 침입하였다.
많은 나라가 포르투갈에 무너졌지만, 은장가 공주가 지킨 은돔바 왕국은 끝까지 항전하였다고 한다.
그녀가 죽고 나서야 정복당했다고 한다.
은돔바 왕국 사람들은 은장가 공주를 전쟁군주란 뜻의 은골라라 불렀고,
포르투갈은 이 발음을 본따 자신들이 정복한 나라를 앙골라라고 하였다.
이후 앙골라는 300여년동안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있다가 1977년이 되어서야 독립했다고 한다.
4. 유럽의 전쟁
유럽 전체가 종교 갈등으로 인해 한바탕 전쟁이 벌어졌다.
가톨릭 교와 프로테스탄트 간의 전쟁이었다.
가톨릭교는 독일, 스페인, 네덜란드가 한편이었고,
프로테스탄트는 프랑스, 덴마트, 스웨덴 등이 한편이었다.
발단은 사소하였지만, 참여했던 왕들이 다 죽고 나서야 전쟁이 멈추었다.
30여년간 이어져서 이를 30년전쟁이라 하였고,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화해를 하였다고 한다.
...
제임스 1세의 뒤를 이어 영국은 찰스 1세가 다스렸다.
그는 카톨록 신자인 프랑스의 공주 암리에타 마리아와 결혼하였는데,
영국국교회로 이루어진 의회와 대립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에 찰스 1세는 강경하게 대처해 의회를 해산하여 11년간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그는 청교도를 박해하여 많은 청교도들이 영국을 떠나게 되었다.
의회가 계속 맞서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내란이 발생하였다.
찰스 1세를 중심으로 한 왕당파와 올리버 크롬웰이 지휘하는 의회파간의 내전이 시작되었다.
의회파는 스코틀랜드의 지원도 받았고, 이 내전에서 크롬웰이 승리하였다.
이후 찰스 1세에 대한 처리 방안으로 놓고, 의회파 내에서 갈등이 일어났는데,
크롬웰은 반대파를 내쫓고, 찰스 1세를 반란죄로 처형시켰다.
그리고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공화국을 선포했지만, 법개혁에 있어 지지부진을 거듭하자,
크롬웰은 의회를 해산시키고, 청교도로 이루어진 의회를 조직하였다.
이를 두고 역사는 청교도 혁명이라고 한다.
크롬웰은 호국경이라는 새로운 지위를 갖게 되었는데,
이는 왕만큼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권력으로 청교도 이외의 모든 시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활동도 금지시켰다.
그렇게 되자 백성들의 비난이 커졌다.
그는 결국 말라리아로 죽었는데, 호국경은 그의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의회는 그가 죽자 찰스1세의 아들 찰스2세를 데리고 와 다시 왕위에 세웠다.
왕정복고가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고 안정을 찾은 것은 아니다.
흑사병이 돌아 런던의 2/5 가 사망하였고,
대화재가 발생하여 런던의 4/5가 불태버렸다.
런던은 그렇게 폐허가 되었다.
...
프랑스에는 절대군주라 부르는 루이14세가 통치하고 있었다.
절대 권력으로 그는 전쟁을 통해 영토 확장에 야욕을 가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50년 공사를 통해 베르사유 궁전을 짓게 하여 백성의 원성을 샀다.
말년에는 아들과 손자들이 잇달아 죽음으로써,
5살짜리 증손자에서 왕위를 물려주고 세상을 떠났다.
그 증손자가 루이 15세이다.
...
프로이센에서는 프리드리히 1세가 이웃한 브란덴부르크와 프로이센을 통일시켜 왕위에 올랐다.
5. 식민지 전쟁
영국 내 새로운 종교 모임인 퀘이커교란 것이 생겨났다.
영국국교회와 왕은 이 종교모임을 승인하지 않았다.
퀘이커교도들은 영국을 떠나 아메리카 펜실베니아의 필라델피아에 정착하였는데,
그들은 남녀평등 뿐만 아니라, 인디언들과도 평화적인 교류를 하였다.
...
영국은 가톨릭교도인 제임스 2세가 왕위에 올라 프로테스탄스를 탄압하였다.
의회는 다시 왕족인 메리와 남편 윌리엄 3세를 왕으로 추대하였고,
겁많은 제임스 2세는 알아서 물러났다.
피흘리지 않은 혁명이라 해서 명예혁명이라고 불렀다.
입헌군주제의 시작을 알렸다.
전쟁과 싸움만이 시간을 끌고 가는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사상도 등장했으니 뉴턴, 로크 등이 주도했던 계몽사상이라 하겠다.
이 계몽사상은 생활과 농업 등에 영향을 미쳐
윤작법, 품종 개발 등이 이루어져 농업혁명을 이루어냈다.
...
러시아에서는 표드로 1세가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였다.
이에 흑해를 개척하려고 하였으나,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막히고,
발트해로 방향을 바꾸어 스웨덴과 전쟁을 벌여 승리를 하여 발트해 주변의 땅을 점령하면서
유럽 문물을 받아들여 빠르게 유럽화(서구화)되었다.
...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 간의 전쟁이 일어나 식민지로 이어지고,
식민지에서의 전쟁이 유럽으로 이어져 영국과 프랑스 사이 7년전쟁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식민지 전쟁에서는 영국이 프랑스를 이기민셔
북아메리카 대부분이 영국의 땅이 되었다.
영국은 조례를 통해 식민지에 대한 세금을 높이 책정하였다.
이에 식민지와 영국 본토간의 대립이 발생하여 보스턴 차사건 같은 일이 발생하였다.
식민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식민지와 영국 본토 간의 전쟁이 시작하였다.
토머스 제퍼슨은 '독립선언서'를 공표하였고,
영국에 대항하는 식민지를 영국의 경쟁국인 프랑스와 스페인이 지웒아ㅕㅆ다.
결국 식민지가 승리하여 그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였다.
13개주 연방정부를 만들고, 의뢰, 대통령, 재판소 등을 구성하였다.
1대 대통령은 워싱턴이 되었으며,
13개주 이외의 땅에 수도 워싱턴 DC를 만들어 어느 한 곳에 치중되지 않도록 하였다.
6. 경쟁의 시대
제임스 쿡이라는 영국 선장이 있었다.
그는 영국 국왕의 특명을 받고 남쪽의 미지의 대륙을 탐험하였다.
또다른 신대륙으로 항해였다.
그는 뉴질랜드와 호주를 발견하고, 하와이를 발견하였다.
처음에는 하와이 원주민들의 환대를 받았지만,
원주민과 그의 부하들 간이 싸움이 벌어졌다가 그도 죽고 말았다.
...
영국의 고민이 생겼다.
미국이 독립한 이후 죄수들의 수용시설이 부족했던 것이다.
전에는 식민지에 죄수들을 보냈는데, 이젠 그럴 곳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영국은 죄수들을 제임스 쿡 선장이 발견한 호주로 보냈다.
필립이라는 관리는 죄수들을 데리로 오늘날 시드니 근방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그곳에서 터전을 마련하여 사람살만 곳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후 죄수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자발적 이주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영국 사람들의 이전으로 인해 원주민 에보리진의 세력은 크게 약화되었다고 한다.
...
미국의 독립은 유럽에 영향을 많이 주었다.
특히, 전쟁으로 폐허가 된 프랑스.
거기에 절대군주 루이16세와 아내 아투아네트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어 있었다.
3급 계급인 평민 계급이 반란을 일으겨
바스티유 감옥을 점거하여 무기를 빼앗고, 루이 16세를 몰아냈다.
국민공회를 만들었지만 루이16세의 처리를 놓고 대립하였다.
여기에 또다른 독재가 권력을 휘둘렀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의회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로 인해 프랑스는 왕이나 지배자가 없는 나라가 되었다.
이 사건은 주변국의 왕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왔다.
자신들의 나라도 프랑스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법이 없으니 말이다.
...
러시아에서는 예카테리나가 황제가 되었는데,
그녀는 무능한 남편을 몰아내고 황제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황제로써 인정했을 만큼 능력도 탁월하였다.
그녀는 영토 확장에도 힘써 알래스카를 점령하기도 하였다.
..
청나라의 전성기를 이끈 건륭제.
그는 영국을 무시할 만큼의 힘이 있었지만,
아편에 서서히 무너지는 것은 알지 못했다.
뒤늦게 아편 무역을 금지하였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편중독이 되어 밀수입이 성행하였다.
...
프랑스는 혁명을 이뤄냈지만, 규칙이나 법률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로마제국을 본따 원로원을 만들어 과두정치로 이어지다 3명의 집정관 체제를 두었다.
당시 군대를 담당하던 나폴레옹이 인기를 누려 세를 확장하여
1인 집정관 체제로 바뀌었다가 스스로 황제 자리를 차지하여 대관식까지 하였다.
나폴레옹은 정복욕이 강한 사람이었다.
영국을 점령하려고 쳐들었지만, 넬슨 제독이 있느느 영국 해군에 패배를 하고 말았다.
그는 다시 눈을 돌려 유럽 대륙을 점령하기 시작하였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프랑스와 나폴레옹을 공공의 적으로 생각하였다.
프랑스내에서도 나폴레옹을 반대하는 세력이 있었다.
나폴레옹이 원정을 떠났을 때 루이18세를 황제에 앉혀 버렸다.
나폴레옹은 연합국에 의해 체포되어 지중해의 작은 섬 엘바 섬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엘바섬에서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정보를 수집하고,
프랑스 내의 자신들의 측근과 연락을 취하며 재기를 노렸다.
한편 황제가 된 루이 18세는 이런저런 이유로 백성들의 민심을 잃었다.
그리고 점점 나폴레옹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폴레옹은 이런 여론을 파악하고 파리로 진군, 무혈입성에 성공한다.
정권을 잡은 나폴레옹은 다시 영국군과 전투를 벌였지만,
워털루 전투에서 다시 패배하여 100일만에 황제 자리에서 쫓겨났다.
이를 두고 백일천하라고도 한다.
그는 이번에는 대서양의 외딴섬으로 유배를 가서 다시는 재기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하였다.
7. 식민지의 독립운동
미국이 독립한 이후 식민지 여기저기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
식민지와 유럽 본토간의 대립과 전쟁, 그리고 독립의 일련의 과정이 일어난 것이다.
아메리카의 작은섬 생도밍그 섬이 있었다.
프랑스가 점령하였고, 이곳은 커피와 설탕 농업으로 부유한 생활을 하였지만,
많은 노예들이 핍박을 받고 있었다.
노예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노예출신 투생 루베르튀르가 섬의 지배자가 중재를 하여
잠시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투생이 체포되고, 나폴레옹이 프랑스 군대를 보내면서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프랑스 군대가 말라리아에 많은 군사들이 죽으면서 패배를 하고 말았다.
그렇게 생도밍그섬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하였고,
나라 이름을 '아이티'라고 하였다.
그들은 프랑스 깃발에서 왕을 나타내는 흰색을 빼버려 그들의 국기에는 파란색과 빨간색만 있다고 한다.
...
볼리바르란 사람은 스페인으로부터 베네수엘라 독립 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것도 식민지와 본국 간의 심한 차별에 불만이 있었던 것이다.
그의 꿈은 베네수엘라의 독립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아메리카를 영국이나 미국처럼 하나의 나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주변국의 독립을 돕기도 하였다.
하지만, 황제가 되려는 욕심 때문에 결국 쫓겨나고 말았다.
...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사이에는 커다란 식민지 뉴스페인이 있었다.
이곳도 식민지 차별에 대해 신부 미겔 이달고의 연설을 통해 부당함을 역설하였다.
이 연설은 돌로레스의 외침으로 유명한데,
이 연설 이후 미게 이달고는 직접 독립운동을 이끌어 독립을 뉴스페인의 독립을 이끌었다.
그들은 나라 이름을 멕시코로 정했는데,
후에 내분이 일어나면서 영토의 많은 부분을 미국에 팔아 넘겼다.
그 외 남아메리카에서도 식민지들이 하나둘 독립을 이루었다.
...
제목 : (교양 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세계 역사 이야기 3 - 근대편
지은이 : 수잔 와이즈 바우어
펴낸곳 : 꼬마이실
페이지 : 624 page
펴낸날 : 2004년 7월 1일
정가 : 20,000 원
읽은날 : 2010.12.14 - 2011.12.19
글쓴날 : 2010.12.23,24,2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