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 말씀( 2025.1.5) 말씀/ 신명기 8:2-12 하나님의 역사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
HAPPY NEW TEAR. 2025년 새 해 첫 주일입니다. 다사단나 했던 한 해가 지나고 새 해를 ㅁㅈ이하면서 오늘은 역사에 대해서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보통 세상 역사를 말할 때 역사는 강자의 역사라는 말을 합니다. 그 말은 무슨 뜻인가 하면 세상을 통치하는 강자가 자신의 힘의 논리를 이용해서 자신들에 유리하게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잘못한 것은 감추고, 조금 잘 한 것은 소설처럼 미화하여 영웅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면 세상 역사에는 진실성이 결여되는 경우가 많고, 거짓된 것이 진실이 되어 사람들에게 세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독재자들은 백성들이 알면 말 안 듣고 대들고 골치 아프니까 문맹, 문화 말살정치를 많이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들을 많이 하였습니다. 현대정치의 독재자들은 신문 방송을 틀어잡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백성들은 그 소리만을 듣게 하는 수법을 씁니다. 이런 것이 일반 정치 사회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기독교 사회 속에서도 많이 있었습니다. 교황, 신부만 성경을 읽고 나머지 신도들은 성경 대신 무오하다는 교황의 말만 듣고 아멘 아멘만 하게 하였습니다. 그런 인간의 왜곡된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은 아프고 슬프고 억울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소연도 못하고 묻혀버린 일들이 이루말 할 수 없이 많습니다. 과거에 십자군 운동, 캐톨릭의 마녀사냥, 식민지 정복전쟁에서 원주민들의 학살 등등 우리는 교과서 공부를 하면서 별로 듣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가해자 강자들이 역사를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이야기를 자세히 나쁘다고 기록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SNS가 통용되지 못한 시대이다보니 강자들이 기록하고 말하는 내용만 듣게 되고, 진실이 거짓되고, 거짓이 진리로 둔갑하게 됩니다. 강자들은 이유를 들어 그렇게 악을 행한 것들이 정당하다는 논리를 세워 거기서 당한 사람들은 피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아무리 진리를 위한다 해도 어떻게 이런 강자의 독재를 정당화할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기독교 역사에 캘빈의 영향은 엄청 큽니다. 기독교 강요를 쓴 내력을 보거나 그가 이룩한 업적들을 보면 그저 놀라울 정도로 찬미가 나옵니다. 그러나 진실한 역사 속으로 들어가면 그도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예정론을 비난했다고 죽이고, 세례를 거부했다고 80 노파와 딸을 죽이고, 반대당을 죽이고.... 저도 캘빈의 신학을 조금 배웠고 신학공부를 하고 믿음의 길을 걸어왔지만 좋은 것만 듣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자! 긍정적인 삶의 태도, 좋습니다. 그것은 역사를 바라보는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역사 공부를 하면서 배워야할 것은 진실에 눈을 뜨는 것입니다. NO 와 YES를 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역사의 사전전 정의를 보면 과거 돌아보면서 현실을 바로 세우며 밝은 미래를 설계 해 나가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대로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지난 과거지만 그 때 어떠했는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잘 못을 반성하고 청산했는지 안했는지?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았어야 했는지 돌이켜 좋은 교훈을 얻어 오늘을 바르게 살고, 복된 미래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신명기 8:2-6절을 보면 가나안 정복 역사 이전에 먼저 지난 역사를 돌아보도록 하여 하나님이 당시 이스라엘로 광야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하면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찌니라. 역사 공부를 잘 해서 교훈을 얻으면 더 발전하게 될 것이고, 교육을 안 하면 똑같이 실수하고 똑같이 잘 못을 반복하게 되는 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0장 8-12절을 보면 바울도 이렇게 역사 공부를 시키고 있습니다. 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러면서 결론은 이렇게 말합니다.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역사는 잊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본보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깨우치기 위해! 고등학교 2학년 때 역사시간에 선생님이 수업하기 전에 역사를 왜 공부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아무도 대답을 못하지 제가 일어나서 이런 내용을 분명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만 역사에 대해서만 알았지 역사공부 잘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단 지 사실을 아는 것을 넘어서 현실의 역사를 정확하게 보는 눈을 뜨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눈이 안 떠지면 제대로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름다운 꽃길을 지나고, 낙옆 떨어지는 길을 걸으면 저절로 시가 나옵니까? 시성의 눈이 떠지지 않으면 안 보이는 것입니다. 명화를 봐도 눈이 안 떠지면 안 보이는 것입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역사의 눈을 뜨게 된 것은 인문고전 고전 독서를 하면서 였습니다. 그전까지는 무지였습니다. 제가 79년도 대학을 졸업하고 군 시절을 강원도에서 보냈는데 그 때 박정희 대통령 서거를 하고, 전두환이 들어서도 광주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제대하고 와보니 사건들이 덮혀져 있었고, 울분하는 사람들을 보고, 또운동권 학생들이 일어나 데모도 계속하곤 하였는데 저는 잘 몰랐습니다. 학생들이 목숨 걸도 독재와 맞서 싸우고 울분을 통할 때 왜 저렇게들 난리를 피는가 생각을 하고 우리는 오직 복음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양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정치적인 것 관심두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문제는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그랬다면 모르겠는데 모르고 그렇게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은 결국 진리를 옹호하는 것 같았지만 불의에 대해서 못 본척 침묵하는 결과를 낳게 되고, 불의 편에 서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 나중에 증거되었습니다. 결국 신군부가 물러나고 민주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당시 기독교 목사들 중에 살인마 전두환 대동령과 조찬기도 한 사람들 많았지 않습니까? 조금이라도 광주사태나 정부를 비방하면 쥐도새도 모르게 잡혀가는 시대에 진실 편에 서서 말하지 못하고 전두환을 축복하는 기도만 한 것이 어찌 옳다고할 수 있겠습니까? 희생자수가 800명에 이르는데도 말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제주 4,3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1947년 3·1절 기념집회에서 미군정 경찰이 제주도민들에게 발포하여 6명이 사망하였고, 이에 대항해 1948년 4월 3일 제주도민들은 폭력적 탄압 중지, 단독 선거 반대, 단독 정부 반대, 민족 통일, 미군정 반대, 민족 독립 등의 정치적 구호를 내세운 이들에게 미군정은 군을 투입해 진압에 나서 약 28만 명의 도민들 중 약 10%에 해당하는 3만여 명이 군·경 토벌대에 의해 학살 되었습니다. 우주 교회 오승학 집사님 가족도 희생자입니다. 명목은 빨갱이 학살인데 말도 안 되는 이 일도 역사속에 잘 들어나지 못한 것은 강자의 정치 속에 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오늘날 2024년 이 시대에도 버젓이 일어났습니다. 검찰 독재에 눈이 먼 윤석열이 헌법에도 위배되는 계엄을 발표하고, 무고한 정치인들, 언론인들 국회위원들을 잡아들이고 말 안 듣는 의사들도 처단하고자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북풍 조작 전쟁도 불사했다는 정황이 들어났습니다. 다행히 실패로 끝났지만 실행되었다면 피비린내가 났을 것이며 40년 민주주의가 거꾸로 돌아갈뻔하였습니다. 그리고 과거와 똑같이 전광훈이나 이영훈 같은 대형교회 목사들이 계엄을 지지하고, 내란 괴수와 공모자들을 지지하며 제 2내란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경제는 어렵고 서민들은 죽어가고 백성들은 불안해 하는데 말입니다. 여러분 역사를 바로 보고 인식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진실입니다. 옳은 것만 보고 옳다고 하는 것은 바른 역사관이 아닙니다. 옳지 않은 것 역시 옳지 않다 하고 NO라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진실에 눈이 떠져야 제대로 역사를 살아가는 자가 되고, 나 자신도 바른 역사속에 진정 삶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한 사람이라도 악의 편에 서서 불의에 동조하게 됩니다. 구분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권력 독재 횡포 불법이 지배하는 시대가 오면 우리는 숨도 제대로 쉬며 살지 못합니다. 끔직한 일입니다. 조정래 작가는 우리가 정치에 무관심 하면 안 되고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보다 더 못하고 나쁜 독재자들의 지배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불완전한 역사입니다. 잘 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습니다. 좋은 일만 있을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입니다. 특히 우리 믿는 사람들은 내 편 네 편 하면 안 됩니다. 우리 입장에서만 서도 안 됩니다. 진실 편에 서야 합니다. 예수님은 항상 우리에게 말씀 하실 때 “내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리 자체이시고 모든 말씀과 삶이 진실하셨습니다. 죽음의 선고를 받는 빌라도 앞에서도’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내가 그로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 권력자들응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검은 돈 거래가 오고 갑니다. 대통령 탁핵으로 체포영장을 받아 체포하러 가는 중에도 차기 대권을 생각하고, 대통령의 편지로 극우들은 돈을 버는 궁리를 합니다. 또 분명이 헌법을 위반하여 내란죄를 범한 대통령을 옹호합니다. 진실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기 가 옳다고 땅바닥에 벌렁 누워 농성을 합니다. 그 중에 이재명 죽이라는 팻말을 들고 나온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2025년 전에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라고 소리 지른 무리들 입니다. 진실을 모르는 무지가 얼마나 무서운가 보여주는 예입니다. 모르면 악의 편에 서게 되고, 악의 역사는 거듭 반복됩니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 진실에 눈을 뜨고 정의의 깃발을 들어야 합니다. 신명기를 보면 율법에서 금하는 것 중에 하나가 옳은 것을 그르다, 그른 것을 옳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미화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울이 못된 짓을 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 하다고 칭찬받는 다윗이 간음 살인을 하며 죄를 지었어도 그대로 상세히 기록해서 보도로 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제자중 한 사람 유다기 배난하 사건, ,수제자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일 등 하나님이 자존심 상하실일인데 주금도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성경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에게 진실한 역사 교육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역사 공부를 통해서 신앙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완전부결이 아닙니다.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잘못 없는 사람 없습니다. 때론 원치 않게 상처도 주고 살인까지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진실 할 때 바로 바로 고쳐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이 진토임을 아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회개이ㅡ 기회를 주시고, 죄악을 도말하시고 진홍같이 붉은 죄도 흰 눈처럼 씻어주신다 하신 것입니다. 5.18의 아픔 세월호의 아픔, 용산 참사 이 가시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진실이 숨겨지고 밝혀지지 않고 책임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비는 사람이 없어서 용서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독일이 유태인들에게 저지른 만행은 꿈찍합니다. 700만이 개스실에서 죽었습니다. 그냥 죽은 거이 아니라 기름을 짜서 비누를 만들도, 머리로 양탄자를 짰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독일 사람을 미워하고나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철저히 잘못을 인정하고, 보상할 뿐 아니라, 후손 만대에 잘못을 바르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용서받을 뿐 아니라 세계인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반면에 일본은 똑같은 만행을 저질렀어도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역사를 왜곡시키고 아무것도 모르는 후손들에게 거짓을 심고 있습니다. 정신대 문제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진정한 참회가 없으니 해마다 문제가 반복됩니다. 이번 무안 공항에서 비행기가 추락하여 180여명이 희생당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유족들은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 와중에도 악풀이 달립니다. 한 유족이 말하는 것, 진실 규명이라 하였습니다. 새 떼로 인해 일어났다고도 하지만 단지 그렇게 치부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제주항공이 정비 소흘, 무리한 항해 시간 등 문제점들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다시는 그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은 진실 규명입니다. 그래야 사후 조치가 이루어지지 그렇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또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 희생자들이 이 우리 전남 광주 지역 분들인데 애도의 마음을 갖고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 하셨지만 우리가 어떻게 완전할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존중하는 모세도 살인을 하였고 감정으로 돌판을 깨트렸고, 다윗과 솔로몬 마져 죄악에 빠져 나라가 풍지박산 나지 않았습니까? 오순절 성령을 체험하고 솔로몬 광장에서 한 순간에 5000명이 회개하고 돌이키는 역사 일어난 베드로가 나중에 유대인의 눈치를 보다가 바울에데 책망을 받았고, 또 계시록의 소아시아 교회도 보세요, 예수의 피로 사심 받고 성령으로 세워진 교회들이 타락하여 육체가 되고 주님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진실을 인정하고 돌이키는가 인정하지 않는가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완전함은 무엇일까요? 인간 의의 완전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입니다. 죄를 인정하고 진실할 때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나와서 은혜를 입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완전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죄를 인정하지 않고 잘못을 시인하지 않으면 십자가의 의에 이르지 못하고 용서도 받을 수 없습니다. 새로운 삶도 시작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있는 모습 그대로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 나가 주님의 피로 의롭다 여기심을 받는 것입니다. 요한 일서 1:9,10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솔직하고 진실하는 것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며 화목해지는 길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역사를 살아가는 우리의 기본자세입니다. 이번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란 공모자들이 되었습니까? 진실하게 죄를 인정하고 자백함으로 최소한 긍휼의 심판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역사 공부를 해야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지만 성경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입니다. 그 역사는 오늘의 거울이 되어 나를 돌아보게 하고,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할 것입니다. 그리고 후손들이 잘 되기를 바란다면 역사를 공부시켜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도 역사 공부입니다. 이미 지난 기록들이지만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성하게 해주는지 모릅니다. 저와 여러분들 모두가 올바른 역사관 속에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진정한 믿음의 길을 가는 자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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