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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자 효육(기원전 3천년경) |
1. 히타이트 민족의 뿌리
아나톨리아의 전역을 누비며 막강한 힘을 과시했던 히타이트인들 그들은 누구인가?
히타이트 민족에 대한 역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히타이트 제국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고대의 국가 중 하나에 불과 했다. 히타이트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88년에서 1892년에 걸쳐서 독일의 고고학자 루우샨을 중심으로 하는 조사단이 터키의 동남단 진지르리에서 독특한 스타일의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고대 도시를 발굴하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그들이 발굴한 곳은 동서 1킬로미터, 남북 2킬로미터의 바로 핫투샤쉬라는 히타이트 왕국의 수도였다. 핫투샤쉬에서 발견된 수많은 고대 점토판이 해독되기 시작하면서 미지의 제국이었던 히타이트의 존재는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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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큘테페에서 발견된 물항아리 |
기독교 성경에는 노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노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그리고 야벳의 후손들 중에서 일부는 현재의 터키 땅인 아나톨리아에 살았다 그들 중에는 아람족, 앗수르족, 메데족, 메섹족, 리디아족, 헷족속 등이 있다. 노아의 후손 중에서 헷족속이 바로 히타이트 민족이다. 아나톨리아 곳곳에서 헷족속(히타이트 민족)의 유적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기독교 성경에 보면 이외에도 히타이트 민족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가 더 나온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은 히타이트 족인 에프론에게서 막벨라굴을 사들였다(창세기 23장). 다윗과 솔로몬은 히타이트 사람들을 용병 등으로 고용하였다.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도 히타이트 사람이었다 (사무엘하11장). 솔로몬은 히타이트 여자들을 아내들로 삼았다.
2. 히타이트 제국의 건설 그리고 번영
기원전 17세기 이전에는 아나톨리아의 거대한 땅은 다양한 작은 소국가로 분리 되어 있었다. 힘의 지배 원칙에 의하여 같은 영토가 여러 번 주인이 바뀌면서 비교적 안정되지 못한 시기들을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기원전 17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아나톨리아의 대부분의 지역을 통일한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났다. 그가 바로 히타이트의 왕국을 건설한 핫투시리시 1세이다. 그는 통일 왕국의 수도를 크즐강 만곡부의 중심 지점으로 옮기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핫투샤쉬(Hattusas)라고 명명했다. 핫투시리시 1세는 통일 왕국을 핫티 왕국이라고 불렀고 스스로를 핫티의 왕이라고 칭하였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지명과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히타이트 왕국이라고 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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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타이트 시대의 전차 |
핫투시리시 1세에 의해 통일된 세력을 형성한 히타이트 제국은 점차 그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기원전 1530년경에는 무르실리시 1세가 군사를 이끌고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남진하여 함무라비 왕의 후손이 통치하고 있던 바빌로니아를 멸망시켰다. 그때 불행하게도 히타이트 왕실 내부에서 권력 투쟁이 일어났다. 제국의 내정부터 평정시키기 위하여 히타이트는 바빌로니아 통치를 포기하고 철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왕실 내부의 권력 투쟁은 결국 왕이 암살되는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다.
막강한 제국의 힘을 과시했던 히타이트 제국은 이러한 내부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힘이 꺾이게 되었고 이를 회복하는데 1세기 반이 소요되었다. 오랜 침체기를 거치면서 서서히 제국은 회복되고 히타이트의 기상은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기원전 15세기 후반부터는 제국의 힘을 결집하여 1세기 동안이나 인접 지역의 강력한 왕국 미탄니와 격렬한 전투를 계속했다. 미탄니 왕국은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히타이트의 동쪽에 위치한 미탄니가 가장 번성할 때는 미탄니 군이 히타이트의 영토 내에 깊숙이 침입해 온 적도 있다. 이때 히타이트 제국은 수도 주변만 방어할 정도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기도 했다.
시대는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이 시기에 등장한 히타이트의 영웅 슛필룰리우마시 1세는 수도를 중심으로 거대한 성을 쌓고 방어 체제를 튼튼히 하였다. 그리고 후방 지역의 여러 소국가들과 동맹을 맺어 후방의 위협을 배제하였다. 주변의 위험 요소를 정리한 슛필룰리우마시 1세는 장기간 동안 히타이트를 위협해 오던 미탄니 왕궁을 공격했다. 슛필룰리우마시 1세의 전략은 적중되었다. 그의 공격으로 미탄니 왕국의 수도는 함락되었다. 아나톨리아를 중심으로 한 히타이트 제국은 주변의 대부분의 소 국가들을 주중에 장악함으로써 명실 공히 아나톨리아의 완전한 주인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