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연대記 / 조성국
사람이 중심이라는 세계를 고무하고
찬양하다 수배 생활 몇 년 감옥 살며 영치금 받듯
아버지가 준 돈으로 대학 정문에다
사회과학서점 차리고
권리금커녕 본전 밑전까지 다 까먹고 몇 년
본가 담보 잡히고 전문 건설업 건축용 유리공장 빚보증 서고
생산 영업 공사현장관리에 전력 다해 뺑이 쳤는데도
부도 맞고 몇 년
뜻하지 않게 철학인문 대안학교 행정실장 폼 잡고 행세하다가
구조조정 당하고 또 몇 년
거저 공짜이다시피 한 원고료의 전업시인 노릇 몇 년
실컷 놀다가 아버지 부름을 받았다
이를테면 급구한 직장인 이름하여 간병인이 되었다
사다리 타고 뒤란 삼밭 단감을 따려다 고꾸라져
목뼈 부러진 아버지가 중환자실 와병 중이어서
내가 구완을 한다 누나와 여동생은
맨날 아랫도리 까 내리고 똥오줌기저귀 갈거나 씻겨 주어야 해서
난색을 드러내고 형은 시도 때도 없이
심한 간질경기를 앓는 중이라서 내가 아버지 곁을 지킨다
행여 이 자리를 쫓겨날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야말로 아버지가 오래 사셔야
나도 그만큼 떳떳이 자리보전할 터인데, 연로한 아버지가 그만
갖가지 합병증까지 도져
육 개월도 못다 채우고 나를 실직시켰다 이렇다 할 말도 없이
무단 해고시켜 삼일 낮밤을 엉엉 울었다
-『시인수첩』2020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