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10:1~11)
일곱째 나팔 심판 때
결국 어둠의 모든 권세가 심판받고
사탄과 그를 따르는 모든 추종자가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진다.
서슬퍼런 계엄과 반란을 자행한 이들,
당시에는 기세등등하고
세상 만물을 다 얻은 듯 했지만
그들의 말로는 초라하고 불행하다.
박정희, 전두환의 말로가 그랬고
지금 국가 리더의 말로도 예외 없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fragile creature."
'두루마리를 먹으라!'
오늘 드디어 악이 불 못에 던져지는
최악의 심판을 면하려면
정의와 사랑 안에 서는 수밖에 없다.
그것을 위해서는 두루마리, 즉 말씀을
충분히 소화해 내면화하는 것 외에는 없다.
단지 말씀을 듣고 고개를 끄떡이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먹어서
위에서 갈고 액을 넣어 분해시켜
온 몸의 양분으로 제공하거나
남은 찌꺼기를 배출하는 등의
철저한 공정을 통해 마땅히 섭취해야 할 것을
철저히 섭취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헌법'의 내용을 무시하거나
헌법의 정신에 대해서 심각하게 사유해보지 않은 이들이
공동체와 자기 자신을 파괴의 자리로 내몬다.
<오늘의 명언>
주님 말씀을 믿고 행하는 이들에게 천국 문은 열리고 지옥문은 닫힌다.
-로버트 채프먼
<묵상에세이>
인내로 십자가를 견뎌 내는 것은
슬픈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뜻이 아니다.
옛 스토아학파는 인간성을 완전히 벗어 버려서
힘들 때나 좋을 때나 감정의 변화가 조금도 없는 사람,
마치 돌처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지향했다.
그러나 인내는 무감각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나무 기둥과 같은 사람이 용감하고 믿음이 좋다는 것은
우리의 인간적 생각이다. 성경은 힘든 상황에서 괴로워하면서도
끝까지 무너지지 않는 사람, 비통해하면서도 영적 기쁨이 충만한 사람,
근심에 시달리면서도 하나님의 위로하심에 힘입어
편히 숨을 내쉬는 사람을 인내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한다.
(중략)
병에 걸리면 신음하고 몸부림치며 건강을 갈망한다.
가난에 쫓기면 슬픔과 근심이 몰려온다. 치욕과 경멸,
불의 앞에서 우리는 영혼을 무겁게 짓누르는 고통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선 눈물이 쏟아진다.
하지만 우리의 결론은 언제나 그 모든 일이 주님의 뜻이라는 것이어야 한다.
비통으로 신음이 절로 나고 눈물이 멈추지 않을 때도,
그분의 뜻을 따르겠다는 깊은 사랑으로 고난을 견뎌야 한다.
-'그리스도인을 살다' // 장 칼뱅.
"하나님, 오늘 묵상에세이의 위의 글을
목장 톡에 올릴까 하다가 멈췄습니다.
저런 글을 썼다는 것도
저런 글을 읽는다는 것은 더욱,
그저 힘들게 느껴질 정도의 고통과 낙망에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지금의 어두운 시간은
하나님과 그와 침묵으로든지, 통곡으로든지
대화하고 해결할 시간입니다.
물론 주변은 최대한의 격려와 위로를 해야겠지만요.
(큰 효과는 당장 없겠지만)
하나님, 그들을 보호해 주세요.
이것 저것 수도 없이 깔린 기도제목을 보면
머리가 아플 때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신다는 것으로
저는 안식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영원히 주님을 선택하며, 절대 주님을 놓지 않기만을
원하고 또 원합니다.
감사드리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