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들의 분노
찬송: 새 찬송가 220장 (찬송가 278장)
[누가복음(Luke) 15:25 – 15:32]
큰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동생을 위한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절합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있었지만 마음은 집 밖에 있었던 ‘탕자’였습니다.
{누가복음 15:25~32}
25 그런데 큰 아들이 밭에 있다가 돌아오는데, 집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음악 소리와 춤추면서 노는 소리를 듣고,
26 종 하나를 불러서, 무슨 일인지를 물어 보았다.
27 종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건강한 몸으로 돌아온 것을 반겨서, 주인 어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28 큰 아들은 화가 나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나와서 그를 달랬다.
29 그러나 그는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이렇게 여러 해를 두고 아버지를 섬기고 있고, 아버지의 명령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는데, 나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습니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삼켜 버린 이 아들이 오니까, 그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31 아버지가 그에게 말하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
32 그런데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5,26절 큰 아들은 아버지가 베푼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합니다. 상속을 요구하고 집을 나갔던 둘째 아들과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실추된 명예에 연연하지 않고 두 아들을 위해 버선발로 뛰어나갑니다.(20,28절) 아들을 십자가의 수치에 넘겨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탕자와 같던 우리를 구원하여 자녀가 되게 하였습니다.
28,31,32절 아버지는 두 아들의 무례함에 분노하기보다 그들을 달랩니다. 둘째 아들의 배반에는 풍성한 환대로, 큰 아들의 분노에는 간곡한 설득으로 대합니다. 그리고 둘째에게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킨 것처럼, 첫째에게는 애정을 담아 그의 아들 됨을 재확인합니다. 이분이 우리 하나님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그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27,28절 큰 아들은 아버지가 베푼 잔치에 참여하지도 않고, 아버지가 나와서 간곡히 타이르는데도 분노를 그치지 않습니다. 자기 몫을 침해한 동생도 받아들일 수 없고, 아버지의 지나친 환대도 참을 수 없었습니다. 큰 아들의 분노는 죄인들을 영접하여 함께 식사하시는 예수님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비난과 닮았습니다(1,2절). 참 신앙은 자격 없는 자에게 조건 없이 베푸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데서 시작합니다.
29~32절 큰 아들은 아버지를 인색하게 만들고 동생의 과오를 격하게 들추어내면서 불만을 터트립니다. 자신의 ‘자격있음’을 내세우며 아버지의 부당함을 비난합니다. 감사보다는 불평 속에서 살았고, 겉으로는 복종했지만 속으로는 불순종했습니다. 동생보다 자기 재산을, 아버지와의 관계보다 자기만족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기쁨이 아니라 근심이었고, 아버지 곁을 떠난 적이 없지만 아버지의 ‘아들 됨’을 전혀 누리지 못한 ‘집 안의 탕자’였습니다. 우리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다면 내가 추구하는 것은 모두 아버지의 근심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기도>
공동체- 함께 웃어주지 못하는 옹졸함과 함께 울지 못하는 매정함이 없게 하소서.
열방- 이슬람 급진단체에 의한 테러가 발생하고 있지만, 터키 정부는 이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터키인들이 참 보호자이신 하나님을 만나고 의지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