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슬로시티 여정-정겨운 마을 길 따라 걸으며 느끼는 정취
예산슬로시티대흥 느린꼬부랑길 안내문 (한국관광공사)
예당호 느린호숫길
예당호 출렁다리
수덕사
수덕여관
의좋은 형제 공원
충남 예산군 대흥면에 자리한 슬로시티대흥은 교촌리와 동서리, 상중리 등 예당호 주변 마을을 아우릅니다. 슬로시티답게 자연과 문화, 역사적인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2009년 9월 국제슬로시티연맹이 슬로시티로 공식 인증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6번째, 세계에서 121번째입니다. 슬로시티(slow city)는 '느린 도시 만들기 운동'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치타슬로(cittaslow)의 영어식 표현입니다. 1986년 패스트푸드(즉석식)에 반대한 슬로푸드(여유식) 운동의 정신을 삶으로 확장해 '전통과 자연 생태를 슬기롭게 보전하면서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도시'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슬로시티는 조금 더 느리고 세심하게 여행을 해야 합니다. 인간이 걷는 속도는 평지 기준으로 시속 4km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슬로시티는 그보다 느린 시속 3km 정도로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예산 슬로시티대흥은 천천히 걸으며 정다운 마을 풍경을 담기 좋은 곳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낙조가 아름다운 호수 예당호와 인기를 끌고 있는 출렁다리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예산 내포지역을 대표하는 여행지인 수덕사와 수덕여관(충남기념물)도 있습니다.
예산 슬로시티대흥의 출발점은 방문자센터다. 이곳에서 각종 정보가 담긴 지도와 홍보물을 구할 수 있다. 본격적인 마을 여행에 나서기 전, '의좋은 형제'에 대해 잠깐 알아보자.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접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옛날에 우애가 좋은 형제가 살았다. 어느 가을날 밤, 추수를 끝낸 형제는 서로의 살림을 걱정해 자기 볏단을 지고 가 상대 볏단에 쌓았다. 둘 다 똑같이 행동한 나머지, 볏단은 줄지도 늘지도 않았다. 그러다 어느 밤, 볏단을 지고 가다 만나 진실을 알게 된 형제는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옛이야기라고 여기던 이 이야기는 1978년 대흥면에서 '우애비'가 발견되며 실화로 확인됐다. 마을 입구에 이들 형제의 이야기를 테마로 의좋은형제공원을 꾸몄다. 옛집과 당시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조형물, 볏짚으로 만든 학과 움집 등이 볼 만하다.
본격적으로 느림보 여정을 떠나보자. 슬로시티대흥 여행은 복잡할 것 없다. 마을길을 따라 걷다 보면 웬만한 명소는 다 가볼 수 있다. 마을 곳곳을 잇는 '느린꼬부랑길'은 3개 코스로 나뉜다. 방문자센터에서 얻은 지도를 참고해 걷고 싶은 길을 택하면 된다.
1코스(옛이야깃길)는 5.1km로, 90분 정도 걸린다. 처음 만나는 곳은 '배 맨 나무'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나당 연합군과 백제 부흥군을 공격하러 왔다가 배를 묶은 나무라고 해서 이렇게 부른다. 수령 1000년이 넘은 느티나무다. 여기서 봉수산자연휴양림과 애기폭포 등을 지나 대흥동헌으로 내려온다.
2코스(느림길)는 4.6km로, 약 60분이 걸린다. 애기폭포, 대흥동헌이 1코스와 겹친다. 대흥동헌(충남유형문화재)은 예산군에 유일하게 남은 관아 건물이며, 1914~1979년에는 대흥면사무소로 쓰였다. 대흥동헌 건너편에 자리한 달팽이미술관은 대흥보건지소 건물을 개조했다. 슬로시티대흥에 대해 알아보고, 느린 생활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2코스는 동서리천 물길을 따라가며 봉수산 중턱을 거친다. 중간 중간 만나는 마을 풍경도 정겹다. 애기폭포를 지나면 야트막한 언덕을 걷는 '사색의 길'이다. 숲 내음과 콧속으로 스미는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고즈넉한 시간을 만끽하자. 사색의 길 뒤에는 한때 보부상이 다녔다는 '보부상 길'이 나온다. 예산은 조선 후기 보부상의 근거지인데, 이 길을 따라 보부상이 홍성과 예산을 오갔다고 한다.
보부상 길을 지나 쭉 내려오면 대흥향교에 닿는다. 대흥향교(충남기념물)는 3코스(사랑길)와 겹친다. 대흥향교 앞 은행나무는 수령이 600년이 넘고, '사랑나무'라는 애칭이 있다. 약 150년 전, 은행나무 몸속에 느티나무가 뿌리를 내렸고 지금은 한 몸으로 살기 때문이다. 3코스는 3.3km로, 50분 정도 걸린다. 교촌리 들녘 사이로 난 논두렁길을 지나며, 가을에 특히 운치 있다. 느린꼬부랑길은 어느 코스나 60~90분이면 걷기 충분하고, 전체를 돌아보는 데 3시간 남짓 소요된다.
마을에서 소원 모빌 만들어 달기, 부채 만들기, 제기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가장 인기 있는 체험은 달걀 꾸러미 만들기다. 마트에서 파는 달걀판만 보던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억세 보이는 짚이 부드러워, 설명을 듣고 따라 하다 보면 만들기 쉽다. 달팽이미술관에 주민들 작품을 전시한다. 항아리와 바구니, 가방도 있는데, 짚으로 이 모든 걸 만들다니 놀랍다. 체험 프로그램은 현재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중단한 상태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완화될 경우 진행이 가능하다.
마을 건너편은 예당평야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든 예당호다. 1963년 완공했으며, 둘레가 40km에 달한다. 호숫가를 걷는 약 5.2km '느린호수길'이 있다. 호수 위로 난 나무 덱을 따라가며 늦겨울 호수의 정취를 느껴볼 수 있다. 호수 가운데 띄엄띄엄 떠 있는 낚시 좌대가 다가오는 봄날의 따뜻한 풍경을 예고하는 듯하다. 2019년 개통한 예당호출렁다리도 걸어보고 예당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예당호조각공원도 들러볼 만하다.
예산은 슬로시티대흥을 벗어나도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여행지들이 많다. 그 중 예산 내포 지역을 대표하는 고찰, 수덕사를 빠뜨릴 수 없다. 수덕사 대웅전(국보)의 배흘림기둥은 보는 이에게 아~하는 탄성을 절로 불러일으킨다. 장식 하나 없는 문살은 그 앞에 선 이의 마음을 지그시 눌러준다. 문살을 뒤로 두고 법당에서 두 손을 모으는 여행객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대웅전 옆으로 돌아가면 수덕사 대웅전이 지닌 아름다움의 극치를 만난다. 맞배지붕의 멋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측면은 군더더기를 배제한 단순미의 정수다.
수덕사 아래 수덕여관이 있다. 수덕여관(충남기념물)은 가수 윤심덕과 함께 한말 3대 신여성으로 불리던 문인 김일엽, 화가 나혜석의 자취가 있다. 또 고암 이응로 화백이 1958년 프랑스로 유학 가기 전까지 살던 곳이다. 수덕여관 앞의 바위 조각은 고암이 남긴 암각화다. 동백림 사건으로 귀국했을 때 새겼으며, 글자 같기도 하고 사람 모양 같기도 하다.
추사 김정희가 태어난 고택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선 시대 전형적인 대갓집 형태인 ㅁ자 집인데, 방 어디선가 추사의 칼칼한 헛기침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고택 왼쪽에 추사의 묘소가 있다. 경기도 과천에 있던 것을 1930년대에 이장했다고 한다. 그 옆으로 추사기념관이 자리한다.
예산=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
◇여행메모
△가는길=수도권에서 승용차로 예당호에 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당진분기점에서 당진영덕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예산수덕사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국사봉로와 예당관광로를 따라 달리면 의좋은형제길과 슬로시티방문자센터가 나온다.
△먹거리= 광시한우마을은 30여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부드러운 육질과 저렴한 가격 등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타운이 형성됐다. 삽교읍에는 소머리국밥과 돼지곱창구이 식당이 몰려있다. 수덕사 입구에는 산채정식과 산채비빔밥을 내놓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조용준 여행전문(jun21@asiae.co.kr)
첫댓글 얼마전 예당호 출렁다리
가봤는데요
일정에 쫒기니 잠시 보고만..
담엔 천천히
야경도 보고오고싶네요
돼지곱창구이랑
산채비빔밥 먹구싶네여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