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과제빵 분야 아홉번째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된 마인츠돔 과자점 홍종흔 사장은 비피더스 유산균액을 듬뿍 넣은 최고의 건강빵을 만드는 것이 필생의 목표입니다.
맛은 기본입니다. 소비자의 건강과 입맛에 맞춰 장인 정신으로 이 시대의 '제빵왕'이라고 불릴만합니다.
<홍종흔 제과제빵 명장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건강하고 맛있는 빵을 만들겠다는
철칙을 추구한다.>
2012년 제과제빵 분야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된 마인츠돔과자점 홍종흔(48) 사장은 충북 진천이 고향입니다.
아들만 다섯인 집의 막내인데,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돌아가셨습니다.
가장이 없는 집안 형편은 짐작할 수 있는 대로였습니다.
어려운 집안 사정을 생각하여 고교 2학년 때 학교를 중퇴하였습니다.
형들에게 손 벌리는 게 싫었던 그는 서울에 올라와, 제과제빵기술자였던 둘째 형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레 제과제빵 분야에 발을 디뎠습니다.
홍 사장은 1981년 3월 서울로 올라와 경복궁 옆 백장미제과에서 일을 배웠습니다.
보수가 좋은 것도 계기가 됐습니다.
“제가 중2 때 둘째 형이 서울에서 빵집 공장장을 하고 있었는데 봉급이 많았습니다.
15년 경력의 교사 월급이 12만7천원이었는데 당시 23세이던 형은 20만원을 받았거든요.”
그런 뒤 둘째 형의 소개로 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나폴레옹제과점에서 본격적으로 제과제빵 기술을 배웠습니다. 나폴레옹제과점은 ‘제과업계의 사관학교’로 불리는 유명한 제과점입니다.
새벽 4시 ~ 밤 11시 근무 ··· 혹독한 수련 견뎌
나폴레옹제과점의 수련은 혹독했습니다.
당시 도제식 수업이 보편적이었지만 특히 이곳은 우리나라 제과점의 최고봉이었기 때문에 강도가 높았습니다.
“새벽 4시에 기상해서 밤 10시, 11시까지 근무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는 나폴레옹제과점에서 6년가량 근무했습니다.
도중에 1985년부터 1987년까지 군대를 갔다왔습니다.
공수부대에 차출돼 11공수 특전여단에서 근무했습니다. 성격이 군대에서 바뀌었습니다. “
천성이 내성적이었는데 군대 가서 외향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게 사회생활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제대한 후 나폴레옹제과점으로 복귀해 일하던 그는 1989년 서울 강동구 명일동의 홍종식과자점으로 옮겨 일했습니다.
이 과자점은 둘째형이 운영하던 곳이었습니다.
그 좋은 나폴레옹제과점을 나온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큰 집에 있으면 감각을 잃어요. 작은 집에 가서 손을 풀어야 합니다.”
무슨 뜻인지 몰라 설명을 요청했습니다.
“큰 가게에 있으면 특정 분야 일만 하니까 시야가 좁아지고 능력 계발이 잘 안 됩니다.
좀 지나면 관리자가 되니까 남을 시키기만 하고 빵을 만들 기회가 없어요.
나폴레옹에서 오래 있다가 나가서 잘리는 선배를 많이 보며 ‘나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1991년 5월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둘째 형의 이름을 딴 홍종식과자점을 오픈했습니다.
여기서 4~5년 제과점을 운영하며 장사가 엄청 잘되었는데, 빵이 맛있다 보니 주민들이 홍 사장에게 “빵에 마약을 넣었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맛 추구···유산균 발효액 넣은 빵 히트
그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으로 옮겨서 프랑세즈제과점을 운영했습니다.
그는 이 제과점을 점포 수 30~40개 정도인 프랜차이즈 비슷한 형태로 운영하며 동료, 후배들과 기술을 공유했습니다.
이 정도면 국내에서는 아쉬울 것 없는 경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진 제과제빵 기술을 배우러 2000년에 독일과 프랑스로 연수를 떠났습니다.
그는 유럽 연수를 통해 자신만의 제과제빵 철학을 확립했습니다. 2001년 2월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마인츠돔과자점을 열었습니다.
마인츠돔(MAINZ DOM)은 그가 연수를 했던 독일의 도시 마인츠(Mainz)의 돔(DOM)이라는 제과점의 이름을 따서 합성한 것입니다.
그의 기량은 이 무렵부터 무르익기 시작합니다.
유럽 연수를 가기 전인 1989년 서울국제제과제빵전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했던 그는
2003년부터 각종 국내외 경연대회를 석권하기 시작했고 2007년부터는 유명 국제대회에서 국제심사위원으로 활약했습니다.
화려한 수상 경력 못지않게 소비자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맛입니다.
그는 맛뿐만 아니라 건강에 좋은 빵을 만드는 것을 추구했습니다.
그는 유럽 연수에서 유산균 발효액을 넣은 건강빵의 가치에 눈을 떴습니다.
“우리 제품은 대학 교수가 특허를 받은 비피더스 유산균 발효액을 넣어 만듭니다.
그러면 빵을 먹어도 속이 더부룩하거나 거부반응이 안 생깁니다.”
좋은 재료를 고집하는 것도 그의 철학입니다. “마가린을 쓰지 않고 버터와 치즈만 씁니다.
한때 마인츠돔과자점이 전국에서 치즈를 제일 많이 썼습니다.
요즘은 우리보다 규모가 큰 프랜차이즈가 많아 치즈 소비 1위 자리는 내놨지요.(웃음)” 소금은 남미 안데스산 청정소금을 씁니다.
사람들은 “좋은 재료를 쓰면 맛은 저절로 나온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릅니다.
같은 재료를 써도 맛은 결국 감각에 좌우됩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음식솜씨가 좋았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엄마가 하시는 것을 보고 밀가루에 베이킹파우더나 막걸리를 넣어서 빵을 만들었어요.
가족들에게 맛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혹독한 수련과 타고난 손맛, 좋은 재료가 어우러져서 마인츠돔과자점이 탄생한 셈입니다.
CEO 아닌 제과제빵사로 돌아갈 것
그는 현재 직영점 6개와 가맹점 17개 등 총 23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울, 경기도가 대부분인데 특이하게 지방에는 포항점이 하나 있습니다.
생각보다 점포 수가 적다 싶어 까닭을 물어봤더니 “가능하면 규모를 안 늘리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제과점 CEO(최고경영자)가 되었으니 앞으로 사업을 더 키우겠거니 생각하고 그에게 꿈을 물었는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10년 후에는 사업 규모를 줄이고 유산균을 더 많이 넣어서 건강에 좋고 맛있는 빵을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최고의 빵집을 하고 싶습니다.”
그는 점포가 하나, 둘 늘어나고 CEO가 된 이후로 직접 빵을 만들 기회가 예전만큼 많지 않아 아쉬운 모양입니다.
몇십 년 동안 반죽을 해 왔으니 지겨울 법도 한데 말년에는 다시 제과제빵사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 그는 천생 장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10여 년 후 그가 만들 최고의 빵이 궁금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