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페스트다!" "인간은 짐승이며 구더기다!"
처음 것은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에, 다음 것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희랍인 조르바>에 나오는 말이다.
그들의 작품엔 하나님과 인생의 의미를 부정하고 반항하는 어두운 정신이 흐른다.
그들의 세계관과 인생관은 세상과 인생에 대한 강한 부정을 보여준다.
얼마 전 자신이 낳은 4개월 짜리 남자 아이를 한동안 밟고 때리고 던지면서
늑골 20여개를 부러뜨려 죽인 여자의 기사를 접한 적 있다.
아이는 엄마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본능적으로 공포스러워했다고 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프다 못해서 눈물이 돌아 고개를 숙였다.
사랑을 받아도 시원치 않을 그 어린 아이가... 어떻게 친모가...
왜 우리가 사는 현재의 세상은 이렇게 악하고 잔혹한 것인가?
이런 식으로 사람이 거부와 학대를 당하고 지옥 같은 세상을 경험하면서 살아왔다면
까뮈나 니코스카잔차키스 같은 종류의 세계관을 갖는 사람에 대해 동감할 만도 할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그들의 견해에 공감한다.
세상을 낭만적으로 또는 환상적으로 바라보는 세계관은 거짓말이니까.
하지만 그렇더라도 까뮈나 카잔차키스의 견해엔 찬성할 수 없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그들도 페스트에 감염된 존재요 짐승이며 구더기일 수밖에 없다.
자신만이 불의의 늪에서 제외된 의인 행세를 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아닐까?
더구나 나름대로 세상의 꿀을 빨아먹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다면 위선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 세상이 비참한 본질과 상태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틀린 말만은 아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처한 이 세상의 한 극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세계가 하나의 극으로만 버려진 세계가 아니다.
또 다른 극이 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3장에서 어둠의 영역과 빛의 영역을 언급하신 바 있다.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3:19)"
이 세상에는 참혹한 어둠의 영역과 별개의 영역이 있다. 빛의 영역이다.
그곳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역, 하나님 안의 세계다.
아무리 인간이 과학과 기술을 동원하여 이 세상을 지상 천국으로 만들려고 해도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 신앙 없이 의도되고 계획된 인간의 세계는 결국
"인생은 페스트다!" "인간은 짐승이며 구더기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장소가 될 것이다.
회칠한 무덤처럼 인간의 문화와 기술이 이 세계에 페인트칠을 해도
그곳은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의 죄악과 고통이 득실거리는 참혹한 어둠의 지대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이 세계를 비참한 어둠의 영역으로만 버려두시지 않았기에 자기 아들을 보내주셨다.
예수 그리스도 안은 전혀 다른 영역 곧 생명과 진리와 은혜의 영원한 영역이다.
그곳은 살아있는 곳, 그곳은 참된 곳, 그곳은 사랑이 있는 곳이다.
이 세상의 한 극만을 보지 말라.
이 어둡고 비참한 세상을 뚫고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의 생명과 진리와 사랑의 광채도 보라.
다른 철학적 신념, 종교적 위안, 문화적 수단, 자기계발적 처신을 의지하지 말라.
그것은 인간을 곧 시들게 만든다.
오늘 우리가 이 세계 현실에 절망하고 고개를 꺾을 수밖에 없더라도,
그것은 인간이 뿌린 씨앗이 번성한 이 세계의 한 극일 뿐이라는 것,
그러나 우리가 이 비참한 세상에서도 구원을 받고
영원한 생명과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차원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그것이 또 하나의 극이요, 그 극이 바로 우리가 믿고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 사실을 붙잡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더 이상의 방법은 없다.
2026. 5. 30
이 호 혁
첫댓글 주님만을 바라보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아멘! 위로와 소망의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