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가을 특선여행 1탄
(함양 화림동계곡 정자 순례 & 상림공원 가을 축제)
화림동(花林洞) 계곡
조선시대에는 ‘좌 안동, 우 함양’이라고 할 정도로 함양은 묵향의 꽃이 활짝 핀 선비의 고장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과거를 보러가는 길도 경상좌도 쪽 선비들은 문경새재를 이용했고, 경상우도의 선비들은 육십령을 이용했다고 하는데, 육십령이 함양군 서상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또한 학풍으로는 경상좌도는 퇴계 이황선생의 영향이 컸고, 경상우도는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의 학풍으로 이어져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함양은 남명 조식 선생보다 50여년 빠른 시기의 인물인 일두 정여창(1450~1504) 선생의 고향으로 일두 선생의 학풍이 번창하였습니다.
1552년 일두 정여창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제자들이 남계서원을 세워 일두 선생을 제향했다고 합니다. 이런 선비의 고장인 함양에 경상도를 대표하는 정자문화가 형성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 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함양군은 물 좋고 산 좋은 곳마다 정자가 자리하고 있는 국내 최대 정자문화의 메카입니다. 특히 화림동 계곡은 최고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정자들이 맑디맑은 계곡물과 어우러져 빼어난 절경을 과시하고 있는 곳입니다. 화림동의 그 많은 정자들은 조선조 선비들이 아름다운 계곡의 물과 숲, 꽃과 나무와 교유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남계천의 경관을 따라 경치가 빼어난 여덟 곳의 굽이마다 세워졌던 정자를 연결하는 길 이름이 '선비의 길'이라 명명된 건 당연한 귀결이라 생각됩니다. 함양은 선비의 고장답게 정자와 누각이 100여 채 세워져 있습니다. 벗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학문을 논하거나 한양 과거길에 잠시 머물러 주먹밥을 먹던 곳입니다. 화림동 계곡은 과거 보러 떠나는 영남 유생들이 덕유산 육십령을 넘기 전 지나야 했던 길목으로 예쁜 정자와 시원한 너럭바위가 많아 예부터 ‘팔담팔정(八潭八亭 · 8개의 못과 8개 정자)’으로 불렸습니다. 현재 농월정-동호정-군자정-거연정을 나무다리로 이은 6.2㎞ ‘선비문화탐방로에선 선비들이 지나쳤던 숲과 계곡, 정자의 자태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거연정(居然亭)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화림재 전시서(全時敍)선생이 1640년경 서산서원을 짓고 그 곁인 현 거연정 위치에 억새로 만든 정자를 최초로 건립했습니다. 1853년 화재로 서원이 불타자 이듬해 복구하였으나 1868년 서원 철폐령에 따라 서원이 훼철됐습니다. 1872년 화림재 선생의 7대손인 전재학 등이 억새로 된 정자를 철거하고 훼철된 서산서원의 재목으로 재건립했으며, 1901년 중수가 있었습니다. 계곡과 바위가 그림처럼 어우러지는 경관의 거연정은 화림동 계곡 정자의 백미입니다. 구름다리를 건너 다가가는 정자의 2층 누각 위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거연(居然)’은 주자의 시 정사잡영(精舍雜詠) 12수 중 ‘거연아천석(居然我泉石)’에서 딴 것으로 ‘물과 돌이 어울린 자연에 편안하게 사는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거연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중층 누각 건물이 주변의 기묘한 모양의 화강암 반석, 흐르는 계곡 물 등과 조화를 이루는 등 동천 경관을 대표할 만한 명승지입니다. 임헌회(任憲晦 · 1811-1876)는 “영남의 명승 중에서 안의삼동(安義三洞)이 가장 빼어나고, 그 중에서도 화림동(花林洞)이 최고이고, 화림동의 명승 중에서 거연정(居然亭)이 단연 으뜸”이라고 거연정 기문에 적고 있습니다.
거연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중층 누각 건물로 내부에는 벽체(뒷벽)를 판재로 구성한 판방을 1칸 두고 있는데, 각주로 네 귀퉁이를 받치고 대청과 방 영역을 머름을 두어 구분하고 있습니다. 방 상부는 간단하게 인방재를 건너고 판재로 막아 천정을 만들었습니다. 현재 3면에 낸 문은 모두 없는 상태입니다. 마루에는 장마루가 깔려 있는데, 이것은 원래 우물마루였으나 후에 변형된 것으로 함양군에서 원형복구를 추진 중에 있습니다.
군자정(君子亭)
조선 5현이라고 알려진 일두 정여창 선생의 처가가 바로 이 정자가 있는 봉전마을이었습니다. 그가 처가에 머무를 때 자주 들렀던 곳에 전씨 문중의 전세걸 진사 등이 1802년에 선생을 기리면서 정자를 세운 것입니다. 해동군자(海東君子)가 쉬던 곳이라 해서 이름을 군자정이라 했다고 전해집니다. 정자 아래 계곡에 집채만한 바위 등의 볼거리가 있으며 바위에 올라 바라보는 밤하늘에는 별이 가득합니다.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수량이 많아 그 또한 볼만합니다.
동호정(東湖亭)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을 등에 업고 의주로 피난을 했다는 장만리 선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1890년경에 지은 정자입니다. 장만리 선생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서하면 황산마을에 내려와 지금 정자가 있는 곳에서 낚시를 즐겼다고 하는데, 선생이 즐겨 찾았던 그 물가에 정자를 세운 것입니다. 정자에 올라 바라보는 물과 너럭바위와 물 건너 숲의 풍경이 한가로우면서도 풍요롭습니다. 정자 천장에는 화려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눈에 띄는 것은 물고기를 입에 물고 있는 용의 조각입니다. 보통 용 그림이나 조각을 보면 여의주를 물고 있는 데, 이곳의 용은 물고기를 물고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말린 통나무를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해 비틀어진 흔적과 나무옹이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2층 정자로 오르는 계단 역시 통나무에 도끼질 몇 번으로 요철을 만들어 그대로 계단으로 기대어 놓았습니다. 정자를 만든 사람의 여유와 배포가 그대로 전해집니다. 바로 앞 계곡에는 너럭바위로 유명한 차일암(遮日巖)이 있습니다. ‘해를 덮을 만큼 큰 바위’라는 뜻인데, 200~300명은 족히 앉아서 쉴 수 있는 크기의 넓은 반석입니다. 바위 위 물살이 움푹 파 놓은 웅덩이들에 물이 들어차 잔잔한 얼룩무늬를 이룬 모양이 신비롭습니다. 이곳에 막걸리를 쏟아 붓고, 꽃잎이나 솔잎을 띄워 바가지로 퍼 마시는 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진정한 풍류를 즐길 줄 아는 한량입니다.
농월정(弄月亭)
굽이치는 물가에 백옥 같은 너럭바위가 하늘과 배를 맞대고 있는 곳에 화림동 최고 정자, 농월정이 있습니다. 농월정은 달을 희롱하며 논다는 뜻으로, 옛날 우리 선조들의 풍류사상이 깃들어 함양을 찾는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거쳐 간 곳입니다. 정자 앞 맑은 물이 급한 굴곡을 이루는 곳에 크고 납작한 너럭바위가 작은 들판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월연암(月淵岩)-. 바위 이름은 얼마나 낭만적인지. ‘달이 비치는 바위 연못’이란 뜻입니다. 너럭바위 위로 미끄럼 타듯 물살이 세차게 흐르고, 물길 따라 골이 깊게 패여 있습니다.
조선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해 예조참판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진주대첩 때 장렬히 전사한 이 고장 출신 지족당(知足堂) 박명부 선생이 광해군 때 영창대군의 죽음과 인목대비의 유배에 대한 부당함을 지목하다 고향 함양으로 유배 왔을 때 지은 정자입니다. 선생이 이곳에 머물면서 시회를 열기도 하고 세월을 낚기도 했다는데, 바로 앞 바위에 새겨진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屨之所)’란 글자는 ‘지족당 선생이 지팡이 짚고 놀던 곳’이란 뜻입니다.
상림공원 꽃무릇 & 산삼축제
고운 최치원이 함양 태수로 부임했을 당시 함양은 비가 오면 위천이 범람해 홍수 피해가 심했습니다. 고운은 둑을 쌓아 강물 흐름을 바꾸었습니다. 그 둑에 나무를 심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나무는 숲이 되고, 그 숲은 나라 안에서 가장 크고 오래 된 인공 숲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봄 꽃, 여름 신록, 가을 단풍, 겨울 설경 등 사철을 통하여 그 절경을 맛볼 수 있는 아름다운 숲이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의 계절은 역시 가을입니다.
‘함양은 잊어도 상림은 잊을 수 없다’는 말도 사실 가을에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상림은 은행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비목나무, 노간주나무 등 120여 종, 2만 그루의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속에 조성되어 있는 오솔길은 연인들과 가족들의 대화와 사랑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으며 함화루, 사운정, 초선정, 화수정 등 정자와 최치원 신도비, 이은리 석불, 다볕당 등 볼거리도 다양합니다. 9월 중순경이면 함양산삼축제와 함께 약 6만 평의 상림 숲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꽃무릇 군락의 향연도 환상적입니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함양은 전체 면적 중에 산지가 78%를 차지하는 오지입니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 15군데이며, 이곳 토양에는 몸에 좋은 게르마늄이 풍부합니다. 함양은 전형적인 청정 산골로 예부터 산삼을 비롯한 약초가 많이 자생해서 중국의 진시황은 이곳에서 불로초라고 알려진 산삼을 구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산간에 종자나 묘삼을 파종 이식해 재배한 인삼인 함양 산양삼의 약효는 아주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외 소비자들에게 함양 산삼의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해 매년 산삼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하미앙 와인밸리’ 팜투어
타임지 선정 10대 슈퍼푸드 Wild-Grape(산머루)로 만든 웰빙 와인 제품을 브랜드화시켜 2007년 국제 와인대회 동메달 수상, 대통령 표창 및 국무총리 귀빈 선물로 채택되는 등 명성을 떨치고 있습니다. 지리산 해발 500m 고지의 그윽한 풍경과 함께 자유의 여신상 분수대가 있는 유럽식 정원의 낭만적인 분위기를 감상할 수 있고 와인동굴(숙성실) 견학, 와인 무료 시음, 와인 족욕 체험, 나만의 와인 만들기, 산머루비누 만들기 등 다양한 와이너리 투어를 즐길 수 있습니다.
오도재(지리산 조망공원)
뱀같이 구불구불하게 난 길은 새로운 명물로 각광받고 있으며, 오도재 정상 바로 아래에 조성된 지리산 조망공원에서는 지리산 주능선(노고단~천왕봉)을 한 눈에 바라보며 휴식할 수 있습니다. 대자연의 어머니라 불리는 지리산을 한눈에 바라보고 있으면 속세의 모든 근심을 잊고 호연지기가 절로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지리산 제1문은 오도재 정상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예부터 이곳에는 지리산의 다른 이름인 방장 제1문이 2개 있었으나 나무로 된 문은 6.25 때 불타 없어졌으며 돌로 만든 문이 아직 존재하고 있습니다. 2005년 초에 오도재 옆 금대산에서 돌로 만든 방장 제1문의 표지석과 바위에 새겨진 방장 제1문에 관한 칠언시를 찾아냄으로써 지리산 제1문의 역사성이 증명되었으며, 함양군에서는 2006년 11월 1일 지리산 제1문을 오도재 정상에 준공하였습니다.
용유담(龍游潭)
조선시대 김종직 선생이 함양군수 시절 오도재를 넘어와 국가 기우제를 지낼 만큼 사시사철 맑은 계곡물이 풍부하게 흐르는 아름다운 계곡으로, 예부터 신선이 노니는 별천지로 소문난 곳이었습니다.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방과 같이 패어진 수많은 바위들과 기암괴석들의 오목하고 볼록한 반석들은 절묘하여 일대 장관의 극을 이루고 있으며, 그 위 언덕에는 구룡정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전설을 뒷받침하는 ‘龍游洞天’ 각자와 원통형, 나선형, 약탕관형, 중발형 등 많은 돌개구멍이 난 바위들이 늘려 있어 신비롭습니다. 마적도사와 당나귀 전설 등 무궁무진한 옛 이야기들과 세진대, 천년송, 나귀바위, 장기판바위 등 기암괴석들도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