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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빈장의 시놉시스☆]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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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잔의 시놉시스]
이석규 시집 / 해드림출판사(2014.10.24)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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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잔의 시놉시스
이석규
소리 없이 내리는 봄비를 바라보다가
그대와 나 사이에도
기회가 있음을 느낀
들녘애서 시들고 있는 이파리에
이따금 비가 내리므로
조금은 위안이 된다
눈 감을 수 없다
나를 텅텅 비워놓아도
배고프지 안도 않고
바람이 자꾸 나를 흔들어도
슬프지 않으므로
슬픔 때문에
내 꿈이 더욱 단단해지는데
그대는 멀리 떨어져 있고
바람과 돌과 나무밖에 보이지 않아도
그대를 그냥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아
건배
아까부터 그대
낮게 깔린 안개를 해치고 달려오는 소리가
탁탁탁
봄비 속에서 들렸다.
바다에서
이석규
집채만 한 파도 너머에 섬이 있습니다
갈매기 울어도
해당화 피고
해당화 꽃잎을 바람이 자꾸 흔드는
그 섬은 詩입니다
앗, 그런데
그가 보이지 않습니다
안개일까요?
내가 그가 되고 싶어서 그런 걸까요?
그가 없습니다
내가 남루해서 사라졌을까요?
그래,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아침으로 가는
파도를 타고
지금 막 생각난 시의 한 구절을
질겅질겅 씹습니다
그 구절 앞세워 섬에 갑니다
날마다 詩 한 줄 쓰려고
그가 주배인 섬을 바라보묘며
난 빈 배를 탑니다
파도치는 뱃머리 아직 견딜 만합니다.
청담대교 야경
이석규
누군가 기다릭다가 너는
외로워서 불을 켠다
그대 두고는 못 자
눈먼 파도 되어 달리는 꿈을
화르르화르르 사른다
기다리는 그 사람이 곧 올 것이라고 하면서
시간이 무덤으로 가는 것도 까먹고
묵묵히 기다리다가
그 꿈이
새벽이슬에 젖은 걸 안다
새벽이슬에 젖어 너는
혼자임을 깨닫는다
사라지면서
먼 사랑에 힘을 준다
파도
이석규
그러므로 바다에선 한마디로 미칠 것
가고 싶은 섬이 있으면
아직 닿지 못한 항구가 있으면
거기에 온 힘을 다 쏟아 부을 것
파도는 거품을 먹고 크고
거품은 재 눈물로 길을 내니까.
명태
이석규
얼렸다 풀렸다
내 고집을 바짝 말렸던
좀 비싸졌다.
장맛비
이석규
비가
바다로 간다
바다 냄새가
가슴을 찌른다
바다가
걷기 시작한다
비도
절뚝절뚝 걷는다.
매미
이석규
쓸쓸쓸
우리 어머니 길쌈하는 소리가 들린다
허리를 펴는 소리도 들리낟
그 소리 뒹 주름진 이마도 보인다
그러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쓸쓸쓸
매미가 울면 나의 불효가 쏟아진다
맨날 투정해도 그저 조용히 날 감사는 어머니
치마 끄는 소리만 크다
더위가 한창인 여름에
매미는 어머니 속에 있고
매미는 내 속에도 있어
쓸쓸쓸
매미가 울면 울 어머니
막 보고 싶다.
고추잠자리
이석규
우리 어머니
콩나물 고르는 손이
힘들어 지쳐 있다가
밤새도록 사립문 닫지 못하여
적막과 씨름하는 내가
아직 닿지 못한 길을
넌짓 눈짓하며
며 뚝뚝 눈물 흘리네요
발자국
이석규
내 빈집에 남은
그대 발자국에서
술 냄새가 나서
내 빈 잔 같았지
그런데 곧 비가 내려
그 발자국 안이
소주로 채워졌지
주막 같은 그 흔적
그대의 술잔에 들어가
묵은 정에 묵은 술로
확 사라지고 싶었지
그 속에서라도
그대에게 사랑 실컷
주고 싶었지
스탠드
이석규
컴컴한 골목에서 하얀 그리움이 뚝, 뚝, 떨어지고요
낮에 쌓아놓은 생각들도 덩달아 피어나네요
쓰다 덮어 둔 시를 쓰고 있는데요
내가 쓰고 있는 시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요
밋밋한 책상만 쳐다보네요
하룻밤만이라도 그대와 나를 한번 바꾸어 살고 싶은데요
그대는
밋밋한 책상만 쳐다보네요
그대는
아까부터 들리고 있는 한숨 소리로
요지부동 엎드려 있는 시간의 무덤 속으로 가네요
아, 스탠드
책상 같은 이름이여 불면의 고리여 냉가슴이여
시여
낙서
이석규
나에게는 그대가 유일한 길이요
나머지는 상상에 맡기겠소
안녕.
민들레 영토
이석규
인사동 민들레영토 카페에서
누굴 기다리는 사람을 보면
기다림은 민들레꽃 같고
사랑은 그 꽃잎 같아서
시장기 치미는 사랑 하나
스친다.
엘리베이터
이석규
조각달
구름 속애 갇힌 듯
바람기둥을
비지땀으로 내려오는
풍선들
인사도 없이
인사도 없이 펑!
흩어지는
꽃 밥
나는 또 온종일
그리운 임 만날까
오르락내리락하겠지.
서울 낙타
이석규
외롭고 쓸쓸한 날엔 동대문 새벽시장에 갑니다
당신이 거기서 날 기다리는 것 같아서입니다
이 낯섦이 아주 즐겁기를 바랐으나
즐겁기는커녕 내 걸음이 너무 느려 오히려
미아 같습니다
당신을 생각하면 8월인데도 눈이 내려서
앞만 보고 걷고 잇는데
세상은 나를 비웃었고 그럴수록 나는
고통보다 더 큰 당신을 아주 많이 미워했습니다
새벽시장의 탐욕은
독신으로 늙어가는 중입니다
그 시장의 양심은
미소로 상생 중입니다
그렇고 그런 시장에서 당신을 만났으면
따뜻한 국밥에 소주 한잔하는 건데 아쉽습니다
앗, 물건을 잔뜩 사들고 가는 당신을 보입니다
당신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이 보입니다
할 수 없지요 다음을 기대할 수밖에요
당신 없는 이 거리를 기웃하다
쓸쓸한 상점에 들러
양말 한 켤레라도 사면서
당신 이름을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맹목의 끝은 허무이지만
게속되는 그리움의 끝은
미망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내게 오신다면
이런 새벽시장으로 오실 것 같아서
당신이 그리운 날엔 언제나 눈깔을 부리부리 굴리며
등에 큰 혹 단 채로
동대문 새벽시장에 가 있을 것입니다.
낙화일기
이석규
가지에서 내가 떨어질 때 누구도 스톱 하지 않았어 허공을 맴돌다가 바람한테 밀려왔어 바다가 보고 싶어도 난 발이 없어 발은 없어도 꿈 꿀 자유는 있어 그러니 제발 잊으라고는 말아 지금 난 밟고 가는 사람들은 밉지만 나는 발이 없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니? 나는 지금 비를 기다리고 있어 이를 테면 발이 없을지라도 비에 묻혀서라도 바다로 가고 싶어 답답해서 하늘만,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 바다로 가는 길은 보이지만 발이 없다는 것은 그냥 멀리서 행복을 빌라는 의미일까? 그 바다의 파도의 파열을 느껴.
가을에
이석규
가을에 들고 싶던 꿈의 시효가 지났는가
낙엽은 거리에서 휴지처럼 날리고
꽃순이 만나러 서울 간 갑돌이는
눈물바람으로 그냥 돌아왔다는 소문
받고 싶은 마음이 주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니
막차 끊어진 플랫폼에선 서둘러
커피 한 잔이 되는지
쭉정이 뽑아내는 농부의 굽은 허리를 지나든지
안 그 순간부터 그것은 그의 보석이었지
그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밀주였지
그러나
말없이 떠나가는 새를 안타깝게 바라볼 것이네
한 때 주구장창 내 노래였으니.
양파
이석규
겉
― 이 어떤 것은 상업적이다. 채소 가게 좌판 위 올이 호박 배추에 당근 쪽파 쪽파 골라잡아요 저 바구니에 담긴 매끈한 양파. 삼겹살에 소주 끝내줘요 말만 잘하면 덤으로 한두 개 더 드려요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산다
속
― 껍질 이리저리 살핀다 살살 쓰다듬다, 문지르다, 벗긴다 머릿속이 갑자기 황해진다 눈 안에 이미 눈물이 꽉 차 어질어질 뽀얀 살 눈부시다 잃었던 입맛이 돈다 용망의 처음과 끝에는 여백이 없다 자른다 안에는 길이 여러 개 있다. 그 길은 서로 막혀 있고, 길마다 서커스단이 공연 중이어 나팔이 울리면 다시 어릿광대 옷을 입고 낙타의 무릎으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타야 한다 그때 불 꺼진 무대, 뒤 커튼의 비밀을 골똘히 생각하는 속은 넋의 노예다
요리
― 한다는 것은 조명이 들어오기 전 그 캄캄한 꿈의 장밋빛 무늬들 그러나 무대는 언제 여릴 줄 몰라서 연어처럼 고향에 이르기 전까지는 늘 꾸물꾸물, 식탁에 이르러서야 보름달을 보며 젓가락을 내민다.
길에서
이석규
안개 속에서 안개로 가다가 문득 안개에게 편지를 썼다
내 편지는 금방 날아갔지만 그대가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해를 따라 갔는지 바람을 따라갔는지 아직 아무도 소식이 없다
안개를 앞장세운 길은 늘 안개 속이다.
시인의 가을
이석규
잘 익은 과일들은 강남 졸부처럼 뻐기며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그때 나는
못 생긴 과일로
시장 후미진 골목 손수레에 누워 있엇다
사람들이 나타나 나를 흥정할 것이다
땡감 장수는 신 나겠지만 나는 무섭다
나는 잘 생기지도 않았는데 거기에
벌레까지 들어서 무섭다
그래도 어디엔가 한사람쯤은 좀 어리숙해서
사갈 사람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근래 나의 가을은 늘 희망적이다
지금 비록 땡감이지만 만약에
그대를 만난다면 아마도
감나무에 덜렁 하나 남은 홍시로 만날 것이다
곱게 단장했어도 이내 까치밥이 되는 홍시
미처 만나지 못한 그대와 나의 만남이
홍시 되어 까치가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대와 내가 우연하게라도 한번
만날 것 같은 이야기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자화상
이석규
세상이 내 생각을 덧없음으로 길들이려고 할 때
내 가슴에 잠든 꿈은 어찌나 순한지
명치끝에 근근 매달려 있다가
살려달라고는 비명도 못 지르고
껄떡이던 허기 따라간 후
이제까지 전화 한 통 없다
나는
그 전화 기다리는 사나이
하루의 마지막엔
늘 바다로 간다
바쁘게 주전자에서 막사발로 건너가는 선술집 막걸리
파도처럼 돌아가는 사나이
가끔 길을 잃고 허름한 여관방에서
별을 세는 사나이
그대가 부르지 못한 노래를 대신 불러주는 사나이
그대가 쓰다만 편지를 대신 쓰는 사나이
전화는 아직 감감한데
그대의 추억처럼 서 있는 사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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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펴내는 글
구름 속에서 신음하던 날
나는 꽃망울을 ‘시’라고 믿고 그것을 피우는 농부의 땀방울을 내 몫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 작업은 내 힘만으로 안 되어 고독했고 절망을 밥 먹듯 했다. 그럼에도 떠나지 못 할 뿐만이 아니라 그 일을 사랑한 죄지 야박하고도 성스러운 이 세계에 내 가슴에 떠돌던 꽃 하나 살리기 위하여 골방에서 자주 밤을 지새웠다. 나는 그 고통을 안았다.
그래, 내게 시는 냇물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 냇물은 아직 바다에 들지 못한 낯선 어느 강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 강물이 바다로 가다가 곰 같은 자에게, 늑대 같은 자에게, 이리 같은 자에게 다치고, 꺾이고, 물리고, 더럽히지 않게 하려다가 가끔 하수구애 들었지만, 이것 하나만은 꽉 붙들어 키우려고 기를 썼다. 문득 어머니 베갯머리에서 들은 삼국지의 적벽대전이 생각난다. 유비와 제갈량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내 첫 시집을 이제 어머니 산소에 가서 읽어드릴 수 있을 것 같다. 태양의 눈에 밟혀 암시 받지 못 해 구름 속에서 신음하던 날과 바다를 좋아하지만, 바다를 겉으로만 사랑했던 날에 대한 얘기, 이것은 그 행동에 관한 얘기다.
2014년
이 석 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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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규 詩集 [※빈잔의 시놉시스※]
[ 평론 ] -
타고난 노스탤지어, 낙타의 시인
김재천
시를 쓸 때 우리는 대체 어떻게 시에 접근해야 하는가? 40몇 년 시를 써오면서도 늘 품게 되는 근원의 문제다. 우선 시가 뭐냐 하는 정의서부터 난감하다. 어느 것 하나를 들면 빠진 다른 것이 더 아쉽다. 아예 전부를 들어도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여전히 아쉽다. 그런 아쉬움 때문에 인류가 가지고 있는 문화 가운데 시가 가장 긴 역사를 지니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 제아무리 기를 써도 끝내는 아쉬움만 남는 작업이 시쓰기이다. 그러니까 아쉬움이 끊임없는 시에 대한 재도전의 에너지인 것이다.
그 연속되는 도전의 아픈 결과물을 가지고 이번에 시집 <빈 잔의 시놉시스>를 엮어내는 시인이 있다. 바로 시인 이석규다. 이석규 시인은 몸부림의 시인이다. 그는 노스탤지어의 시인이며 낙타의 시인이다. 그가 시집을 엮어내는 시점에다 금을 긋고 그의 몇 시편들을 해부해보고자 한다. 다음의 시 쓰기 일반론을 살펴본 다음 시인 이석규가 과연 무엇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감히 그의 시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다음의 시 쓰기 일반론은 수술대 위로 올라온 시인 이석규의 시편들에 주사하는 모르핀인 셈이다. 부디 진통이 잘 듣기를 소망한다.
어떻게 시를 써야 하는가? 그 물음에 적절한 답을 주는 시인이 있다. 바로 김수영이다. 김수영과 그의 시 풀이다. 적어도 시 쓰기에 있어서 김수영이 딜레당트(diletante)가 아니라고 여긴다면 우리는 비교적 우리가 의도하고 있는 질문에 대해서 딱 들어맞는 답을 얻어낼 수가 있다. 우선 김수영은 시 풀을 쓰기 위해서 풀밭에 가서 서 있다. 우선 김수영은 시 풀을 쓰기 위해서 풀밭에 가서 서 있다. 발품을 팔아서 풀 가운데 서 있다는 행위가 바로 온몸 시다. 시가 꼭 체험이어야 한다는 제약은 없지만, 사물의 한복판으로 온몸으로 직접 밀고 들어가야 보다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때 머리가 아니라, 심장이 아니라 온몸으로 파고들어 사물과 맞서는 것을 결과적으로 김수영은 사랑의 발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김수영이 한 일이 가만히 풀을 바라본 것이다. 프랑스 시인 랭보는 시인을 두고 고독한 견자라고 했다. 그 말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시인 혼자서 사물과 맞서야 하며 시인 혼자서 사물을 치열하게 관찰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본다는 행위가 없이는 적어도 살아있는 시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사물의 속성까지 섬세하게, 그러나 전체를 아우르며 끝까지 진지하게 주시해야 한다. 지금까지 김수영이 한 일이 딱 두 가지이다. 그 두 가지는 시를 쓰기 위한 절대 전제의 문제다. 그 절대 전제라는 필수의 문제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지만 그러나 이렇게 글을 쓰기는 간단해 보여도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다.
이제 우리가 알아둬야 할 것이 김수영의 뇌의 속이다. 김수영의 뇌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라는 문제는 중요하다. 우선 김수영의 뇌를 채우고 있는 것은 간절懇切함이다. 간절하다는 것에는 세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진정성과 열정과 갈증이 그것이다. 진정성이 무엇인가? 어떤 사실에 대해서 진지하게 오래 지속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시를 쓸 때 어떤 상황을 묘사할 경우 적어도 사유를 염두에 둔다면 번재처럼 후딱 쓰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 밖의 열정이나 갈증은 그야말로 시 쓰기의 기본이다.
또 김수영의 뇌 속에는 기본적으로 자유가 자리를 잡고 있다. 사르트르는 실존과 본질을 이야기하면서 지금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실존이고 무엇다움이 본질이라고 간파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유는 인간만의 운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키르케고르 역시 자유는 전율이라고 찬양하고 있으며 프롬은 그런 자유를 적극적인 자유와 소극적인 자유로 구분하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는 그의 저서 <차이와 반복>에서 무한대의 자유인 노마드를 창조의 본체라고 지적하고 있는 만큼 무엇에 쏠리지 않는 균형 잡힌 자유 인식은 시를 시답게 쓰려는 시인들에게는 무엇에도 비견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고도 중요한 단서인 것이다.
자유에 이어 김수영의 뇌 속에 담겨있는 사상은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라는 칸트의 인간존엄 사상일 것이다. 김수영은 그 인간존엄 사상을 전적으로 받아들여 바탕으로 깔고 있다. 아니 그것을 승화시켜서 사물의 존엄까지, 더 나아가 모든 존재의 존엄까지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시의 바탕이 의미 있는 것으로 보다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어떻게 시를 쓰느냐고 하는 방법의 문제다. 김수영의 뇌 속에는 처음부터 무엇에도 휘거나 굽히지 않는 올곧은 정신으로 꽉 차 있다. 이미지에 대한 묘사에서도 역시 그렇다. 나중에 오규원이 그것에 대하여 이름을 붙였지만 날 이미지라는 것이다. 오규원에 따르면 날 이미지에는 사실적 날 이미지, 발견적 날 이미지, 직관적 날 이미지, 환상적 날 이미지 등 모두 네가지가 있다고 했다. 적어도 김수영은 자신의 시 풀에서 날 이미지를 극대화 시켜서 백 퍼센트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시인 이석규를 들춰보면 그가 바다에 노스탤지어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큰 묶음으로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가 있다. 먼저 그의 시 <바다에서>를 본다.
집채만 한 파도 너머에 섬이 있습니다
갈매기 울어도
해당화 피고
해당화 꽃잎을 바람이 자꾸 흔드는
그 섬은 詩입니다
앗, 그런데
그가 보이지 않습니다
안개일까요?
내가 그가 되고 싶어서 그런 걸까요?
그가 없습니다
내가 남루해서 사라졌을까요?
그래,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아침으로 가는
파도를 타고
지금 막 생각난 詩의 한 구절을
질겅질겅 씹습니다
그 구절 앞세워 섬에 갑니다
날마다 시 한 줄 쓰려고
그가 부재인 섬을 바라보며
난 빈 배를 탑니다
파도치는 뱃머리 아직 견딜만합니다
- 시 <바다에서> 전문
시인 이석규는 바다에서 파도를 보고 그 집채만 한 파도 너머를 인식하고 있다. 그는 한 섬이 파도 너머에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섬은 온통 시로 이뤄져 있다. 그 시의 섬에 갈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이 파도다. 파도이기는 하지만 예사의 파도가 아니라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 공평한 파도다. 막 생각난 시 한 구절, 채 굳지 않아서 싱싱한 구절을 질겅질겅 씹으며 빈 배를 타고 파도에 진행을 맡긴 그의 심사가 왜 편안하게 읽히는 것인지 그건 아마도 그가 가 닿고자 하는 섬이 바로 그의 시의 고향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어서 바다에 대한 그의 다른 시 <썰물 우체국>을 본다.
나는 먼 바다의 우체국
우표와 집배원이 없어도 죄가 되지 않는 우체국
그대 부뚜막에서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 안에까지
배달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 우체국
멀리 있어도 함께 있는 것처럼 살자는 우체국
그게 유일한 힘인 우체국
게와 바지락이 개펄에 나왔다가 다시 숨는 사이
아까부터 그대 얼굴이 보이게 우체통에 가두는
썰물 우체국
-시 <썰물 우체국> 전문
시인 이석규가 노래하고 있는 먼 바다의 우체국은 그와 세상을 잇는 매개물로서의 우체국이다. 다시 말해서 바다와 그를 매개하는 역할을 우체국으로 하여 맡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집배원이 없어도 죄가 되지 않아서 집배원을 내보내고 오롯이 자아만 남게 하고 썰물에도 그대 얼굴을 우체통에 가두는 우체국, 그 가없는 아름다움에 가슴이 그만 쨍그랑 울리는 느낌이다. 바다 다음으로 큰 구분을 할 수 있는 것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다.
시인 이석규의 다음 시 <매미>를 본다.
쓸쓸쓸
울 어머니 길쌈하는 소리가 들린다
허리를 펴는 소리도 들린다
그 소리 뒤에 주름진 이마도 보인다
그러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쓸쓸쓸
매미가 울면 나의 불효가 쏟아진다
맨날 투정해도 그저 조용히 날 감싸는 어머니
치마 끄는 소리만 크다
더위가 한창인 여름에
매미는 어머니 속에 있고
매미는 내 속에도 있어
쓸쓸쓸
매미가 울면 울 어머니
막 보고 싶다
- 시 <매미> 전문
우선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쓸쓸쓸>이라는 의성어다. 슬프거나 쓸쓸한 사람이 듣는 매미 소리는 쓸쓸할 거라는 화자의 의중이 다분하게 들어가 있는 의성어라서 단박에 우리의 귀청을 뚫고 시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이 시를 가만히 읽다 보면 시가 온통 청감각인 소리로 이뤄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인 이석규는 그의 기억을 소리로 구체화하고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길쌈하는 소리, 허리를 펴는 소리, 치마 끄는 소리가 그가 기억하고 있는 익숙한 어머니의 소리이다. 소리에 이어 그의 시 세계를 다르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낙타에 대한 애틋한 애정을 노래하는 것이다. 다음 시 <서울 낙타>를 보자.
외롭고 쓸쓸한 날엔 동대문 새벽시장에 갑니다
당신이 거기서 날 기다리는 것 같아서입니다
이 낯섦이 아주 즐겁기를 바랐으나
즐겁기는커녕 내 걸음이 너무 느려 오히려
미아 같습니다
당신을 생각하면 8월인데도 눈이 내려서
앞만 보고 걷고 있는데
세상은 나를 비웃었고 그럴수록 나는
고통보다 더 큰 당신을 아주 많이 미워했습니다
새벽시장의 탐욕은
독신으로 늙어가는 중입니다
그 시장의 양심은
미소로 상생 중입니다
그렇고 그런 시장에서 당신을 만났으면
따뜻한 국밥에 소주 한잔하는 건데 아쉽습니다
앗, 물건을 잔뜩 사들고 가는 당신이 보입니다
당신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이 보입니다
할 수 없지요 다음을 기대할 수밖에요
당신 없는 이 거리를 기웃하다
쓸쓸한 상점에 들러
양말 한 켤레라도 사면서
당신 이름을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행복의 끝은 허무이지만
계속되는 그리움의 끝은
미망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내게 오신다면
이런 새벽시장으로 오실 것 같아서
당신이 그리운 날엔 언제나 눈깔을 부리부리 굴리며
등에 큰 혹 단 채로
동대문 새벽시장에 가 있을 것입니다
-시 <서울 낙타> 전문
외롭고 쓸쓸한 날에 찾아가는 동대문 새벽시장에는 8월인데도 눈이 내리는 슬픈 <당신>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서인데 그 그리움의 끝이 미망이라고 서둘러 단정한 시인은 미망이 아니기를 간절하여서 눈깔을 부리부리 굴리며 등에 혹을 단 그대로 또 동대문 새벽시장에 가 있겠다고 한다. 낙타로 하여 동대문 새벽시장에 가게 만드는 고통보다 큰 <당신>, 꼭 새벽시장으로 오실 것 같은 <당신>은 도대체 누구일까? 그러나 시인은 그 주인이 피폐한 영혼의 구원으로서의 주인이라고 쉽게 단초하지 않는다.
아마도 시인은 자신이 이루려고 하는 시에 대한 성취가 많이 늦다고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걸음을 낙타로 삼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 낙타는 준비된 여행자이다. 비록 느리기는 하지만 아무리 사막이라고 해도 사막의 가운데를 터벅터벅 견디며 걸어가는 끈기의 상징이다. 자신의 탁월한 상징인 낙타를 탄 시인 이석규의 탄탄한 걸음을 지켜보아야 하겠다. 그것이 무엇이든 모두가 바쁘게만 치닫는 우리 시대에 대한 희망이기 때문이다. 다음 시 <자화상>을 보자.
세상이 내 생각을 덧없음으로 길들이려고 할 때
내 가슴에 잠든 꿈은 어찌나 순한지
명치 끝에 근근 매달려 있다가
살려달라는 비명도 못 지르고
껄떡이던 허기 따라간 후
이제까지 전화 한 통 없다
나는
그 전화 기다리는 사나이
하루의 마지막엔
늘 바다로 간다
바쁘게 주전자에서 막사발로 건너가는 선술집 막걸리
파도처럼 돌아가는 사나이
가끔 길을 잃고 허름한 여관방에서
별을 세는 사나이
그대가 부르지 못한 노래를 대신 불러주는 사나이
그대가 쓰다만 편지를 대신 쓰는 사나이
전화는 아직 감감한데
그대의 추억처럼 서 있는 사나이
- 시 <자화상> 전문
무엇이 시인 이석규의 가슴에서 이탈했을까? 그것은 순하기 짝이 없이 꿈이다. 그러나 꿈이 그를 떠나갔기 때문에 가슴이 휑한 그는 아플 대로 아파서, 지독하게 아파서 <그대가 부르지 못한 노래를 대신 불러주는 사나이>이며 <그대가 쓰다만 편지를 대신 쓰는 사나이>가 된 것이다. 이제 시인 이석규는 또 <허름한 여관방>에 모로 누워서 청명한 밤하늘의 <별>을 또랑또랑 셀 것이다. 온전히 길을 잃은 그대를 대신해서 말이다.
제한된 지면 탓으로 그 밖의 송곳같이 예리한 그의 다른 시들을 살피지 못해서 아쉽다. 아니 나머지 시를 몽땅 수술대에 눕혀서 해부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다음을 기약한다. 아무튼 <타고난 노스탤지어, 낙타의 시인> 이석규. 오늘 우리 모두에게 오랜만에 읽을 만한 시집을 읽게 해준 그의 말할 수 없이 큰 수고에 대해 많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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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4의 글 ◆
노동의 시인 이석규
그는 절망을 등짐으로
훌쩍 오십여 년을 살아온 가장 민초다운 민초이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탈탈탈 쇳소리가 난다.
그의 입에서는 쇠못 냄새가 칼칼하게 난다.
따라서 그의 시에서도 쇠못 냄새와 쇳소리가 난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들녘에서 시들고 있는 이파리에/이따금 비가 내리므로/
조금은 위안이 된다>며 시집《빈 잔의 시놉시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는 모두
그의 숨 가쁜 신음이다.
- 김재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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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규李錫奎 시인∥
∙ 1954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나
∙ 2006년 CHOL 문단작가와
∙ 2008년 월간 시사문단으로 등단했으며
∙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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