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카페의 노래/카슨 매컬러스/장영희/열림원
- 180의 신장에 기골이 장대한 사팔뜨기 여자, 부모에게 물려받은 가게의 주인, 미스 어밀리어 에번스
- 마을에서 가장 미남, 미스 어밀리어에게 청혼하기 전 2년은 착하게 삶을 꾸린 경험이 있는 망나니 악당, 결혼 10일 만에 쫒겨나 사고 치고 교도소에서 다녀온, 마빈 메이시
-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미스 어밀리어의 사촌, 꼽추 라이먼 윌리스
위 세 사람이 엮인 괴기스러운 사랑 이야기로 보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와 이들의 행각과 맞물려 변해가는 마을을 관찰하면서 사랑과 공동체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를 제공한다.
사랑에 대해서 작가는 2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이야기한다.
우선 사랑이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이다. 그러나 여기서 공동 경험이라 함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 속한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사랑을 주는 사람의 마음속에 오랜 시간에 걸쳐 조용히 쌓여온 사랑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사랑을 주는 사람들은 모두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사랑이 고독한 것임을 영혼 깊숙이 느낀다. 이 새롭고 이상한 외로움을 알게 된 그는 그래서 괴로워한다. 이런 이유로 사랑을 주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 딱 한 가지가 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사랑을 자기 내면에만 머무르게 해야 한다. 자기 속에 완전히 새로운 세상, 강렬하면서 이상야릇하고, 그러면서도 완벽한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여기서 사랑하는 사람이란 반드시 결혼반지를 사기 위해 돈을 모으는 젊은 남자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 아이, 아니,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인간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사랑을 받는 사람에 대해서도 얘기해보자. 아주 이상하고 기이한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불 지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증조할아버지가 되어서도 20년 전 어느 날 오후, 치호 거리에서 스쳤던 한 낯선 소녀를 가슴에 간직한 채 계속해서 그녀만을 사랑할 수도 있다. 목사가 타락한 여자를 사랑할 수도 있다. 사랑받는 사람은 배신자일 수도 있고 머리에 기름이 잔뜩 끼거나 고약한 버릇을 갖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랑을 주는 사람도 분명히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지만, 이는 그의 사랑이 점점 커져가는 데에 추호도 영향을 주지 못한다. 어디로 보나 보잘것없는 사람도 늪지에 핀 독백합처럼 격렬하고 무모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선한 사람이 폭력적이면서도 천한 사랑을 자극할 수도 있고, 의미 없는 말만 지껄이는 미치광이도 누군가의 영혼 속에 부드럽고 순수한 목가를 깨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사랑이든지 그 가치나 질은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대부분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기를 원한다. 거의 모든 사람이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간단명료하게 말한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힘들고 불편하게 느낀다. 사랑받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증오하게 되는데,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연인을 속속들이 파헤쳐 알려고 들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는 아무리 고통을 수반할지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가능한 한 모든 관계를 맺기를 갈망한다. 50-52
휴, 머리가 아프게 생각해 봐야 할 내용이다. 이것을 이해해야만 작가가 전개하는 소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데, 쉽지 않다.
삼각관계 - 마빈과 어밀리어, 라이먼과 마빈, 라이먼과 어밀리어 - 어느 한 쌍도 어울리는 쌍이 없다. 그리고 모두 한 방향이다. 인류 최초의 사랑이라고 하는 성경의 사랑도 한 방향이고 지구상의 가장 큰 종교 집단에서 말하는 사랑도 한 방향이다. 사랑에 대해 가장 많이 인용되는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의 시작은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로 시작해서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로 끝난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알고 온전히 알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야기에서는 등장인물도 중요하지만, 카페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지 작가는 이 카페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 적지 않은 분량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이 카페는 마을에 새로운 자부심을 가져다주었고 이는 거의 모든 사람, 심지어 아이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카페에 오기 위해 반드시 여기서 식사를 하거나 술을 사야 할 필요는 없었다. 5센트면 병에 든 시원한 음료수를 살 수 있었고, 그리고 그만한 여유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그러나 이 카페가 마을의 중심이 된 것은 이런 따뜻함이나 실내장식들, 그리고 밝은 불빛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이 이 카페를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데는 더 깊은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직까지 언급하지 않았던 모종의 자부심과 관계가 있다. 이 새로운 자부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삶이란 결국 값어치가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공장 주위에는 항상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 가족에게 필요한 음식이나 옷, 그리고 어느 정도의 고깃기름을 넉넉히 갖다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인생은 단지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얻기 위한 하나의 길고 어두운 싸움일 뿐이었다. 그런데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세상 돌아가는 방식이 그렇듯 모든 유용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으레 값을 치러야 하고, 오직 돈으로만 살 수 있다. 목화 한 포나 당밀 2파운드 값에 대해서는 따져볼 필요도 없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는 아무런 값도 매겨져 있지 않다. 삶은 우리에게 공짜로 주어졌고, 값을 치르지 않고 얻어진 것이다. 그러면 삶의 가격은 얼마일까? 주위를 둘러보면, 때때로 삶이란 전혀 가치 없거나 만약 있다고 해도 아주 미미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도 내가 처한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나 자신이 결국 가치 없는 인간이라는 자괴감이 밀려오지 않는가.
그러나 이 카페는 마을에 새로운 자부심을 가져다주었고 이는 거의 모든 사람, 심지어 아이들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카페에 오기 위해 반드시 여기서 식사를 하거나 술을 사야 할 필요는 없었다. 5센트면 병에 든 시원한 음료수를 살 수 있었고, 그리고 그만한 여유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미스 어밀리어는 체리 주스라고 불리는 핑크색의 아주 달짝지근한 음료수를 한 잔에 1센트씩 받고 팔았다. T. M. 월린 목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이 주중에 적어도 한 번은 이 카페에 들렀다. 아이들은 원래 자기 집이 아닌 남의 집에서 잠을 자거나 밥을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런 경우에 아이들은 예의 바르고 조심성 있게 행동하고,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카페의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때 그런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그들은 미스 어밀리어의 카페에 오기 전에 세수를 했고 카페에 들어올 때는 정중하게 문지방에 신발을 문질러 흙을 털었다. 카페에 앉아 있는 동안만은 단 몇 시간이라도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이 세상에 자신이 가치 없는 존재라는 쓰라린 생각을 조금은 떨쳐버릴 수 있었다. 104 - 106
이상의 본문도 카페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책에서는 카페에 대해 몇 군데 더 언급한 것으로 기억한다. 위와 비슷하지 않았나 싶다. 책을 펼치고 한 장을 넘기면 익숙한 문체를 만난다.
카페가 문을 닫은 지는 이미 오래 되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이 카페를 기억하고 있다. 11
무슨 줄거리의 소설이라고는 말할 수 있는데, 딱히 이런 소설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머리를 멍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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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은 보통 어린아이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성향, 즉 자기 자신과 세상의 모든 것들 사이에 즉각적으로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재능을 갖고 있다. 곱추는 그런 사람이었다. 40
이간질이라면 꼽추를 따를 사람이 없었다. 그는 소동거리나 구경거리라면 무슨 일이든 즐겼고,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기적같이 두 사람 사이를 떼어 놓을 수 있었다. 2년 전에 쌍둥이 레이니 형제가 주머니칼을 휘두르며 싸운 것도 꼽추 탓이었는데, 그 사건 이후 그들 형제는 서로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