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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피 중 부상당한 러시아 군인이 동료에게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고, 동료는 그의 머리를 총으로 쐈다. - 미국 비즈니스인사이더 6월 25일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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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호 방어 중 부상당한 러시아 군인이 우크라이나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균 소속 국제여단 군인 한명은 그의 몸통에, 다른 한명을 머리를 총으로 쐈다. - 미 뉴욕타임스(NYT) 7월 6일 보도
부상당한 전투원(군인)은 아군이든 적군이든 적절한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게 제네바 협약(Geneva Conventions)의 정신이다. 1864년 체결된 제네바 협약은 전쟁 당사국들이 전투 상황에서 지켜야 할 의무 조항을 담고 있는데, 부상병에 대한 적절한 조치도 그 중의 하나다.
위에 나온 러시아 군인도, 우크라이나군 소속 무장군인도 제네바 협약을 위반했다. 쉽게 말하면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누가 더 큰 범죄를 저지른 것일까? 전후 사정을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우크라이나군 측들이다. '범죄 규명'에는 사실 확인도 매우 중요하다.
러시아군의 범죄는 텔레그램에 올라온 한 영상을 근거로 미국의 비즈니스인사이터가 보도한 내용이다. 그 영상이 언제 어디서 찍혔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조작된 영상이든 아니든, 영상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팩트'일 가능성을 높다고 보고, 비즈니스인사이더가 보도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의 범죄는 외국에서 온 자원 용병들로 편성된 우크라이나 국제군단(국제의용군) 소속의 독일인 의사가 NYT에 제보한 내용이다. 사건 발생 날짜와 장소도 특정돼 있다.
예상 가능하듯이,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도 국제법상 전쟁 범죄가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언론이 이를 찾아내 국제사회에 알리는 게 '전쟁 저널리즘'의 출발점이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사건일수록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해야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군 부상병 이송/사진출처:우크라군 합참 페북
두 사건을 같은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지만, 상식선에서 한번 비교해 보자.
국내 언론에 따르면 6월 23일 한 텔레그램 채널에는 러시아군 몇 명이 대피하던 중, 한 군인이 드론의 공격을 받고 쓰러지는 모습의 영상이 게시됐다. 이 군인은 자기를 뒤따라오던 동료 군인에게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고, 동료는 곧바로 그의 머리를 총으로 쐈다.
영상 게시자는 "러시아 군인은 동료의 요청을 받고 부상한 그의 머리를 총으로 쐈다"며 이 사건이 일어난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지만, 따로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영상의 출처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이 사건을 보도한 미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러시아군이 다친 동료를 사살한 이 영상은 러시아군 내부에 만연한 '잔인한 문화'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의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이 영상을 "러시아군 내 만연한 잔혹함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ISW 전문가들은 나아가 "러시아군에서는 동료 병사들을 고의로 사살하는 사례가 있었다"면서 "프래깅(Fragging·고의적인 아군 살상)은 군대의 기강이 극도로 열악하고, 전술 지휘관과 부하들 사이에 (지휘체계 상의) 단절이 있으며, 인간 생명을 노골적으로 무시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부상한 동료를 사살하는 러시아군 병사/SNS 영상 캡처
이 영상 하나로 ISW는 전쟁 중인 러시아군 내부의 제반 문제를 구체적으로 적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우크라이나군의 범죄는 내부의 제보에 의해 폭로됐다. NYT는 나름대로 '팩트 체크'를 한 뒤 보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와 우라(Ura).ru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NYT는 6일 "우크라이나군 소속 무장군인은 도움을 요청한 러시아군 부상병을 고의로 사살했다"며 "이런 사건에 대한 제보는 한번이 아니었다"고 보도했다. 국제군단 소속으로 우크라이나군 제 59여단에 배속된 '선택된 중대'(Chosen Company)는 2023년 8월 23일 도네츠크주 아브데예프카(아우디이우카) 근처 페르보마이스코예 마을 남쪽의 러시아군 참호를 습격했다. 이 전투는 퇴역한 미군 장교 라이언 올리어리(Ryan O'Leary)가 이끌었다. 독일인 의사 카스파 그로세(Kaspar Grosse)는 중대원 약 60명의 군의관으로 참전했다.
공격은 우크라이나군의 승리로 끝났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러시아군은 참호 방어 과정에서 일부가 사망하고 일부는 도망갔다. 마지막까지 참호에 남은 러시아 군인은 2명이었다.
러시아군 포로를 사살한 우크라이나 국제의용군의 전쟁 범죄를 폭로한 미 NYT(위)와 이를 제보한 카스파 그로세/사진출처:스트라나.ua
그로세가 제공한 영상을 보면, 러시아 군인 한 명이 손을 들고 항복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부상한 한 명은 항복을 시도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군 드론 운영자는 러시아 군인이 참호에서 항복 표시를 하고 있다고 전달했다. 그러나 그리스 출신 군인(호출명 제우스)은 드론으로 참호에 수류탄을 떨어뜨렸다.
그날 저녁 무렵, 부상한 러시아 군인은 참호를 기어다니며 살려달라고 했다. 러시아어를 조금 아는 한 미국인(호출명 코사크)가 그와 대화를 시도했다. 부상병은 서투른 영어와 러시아어를 섞어가며 의료 처치를 요청했다. '코사크'가 군의관을 찾고 있었을 때, '제우스'가 부상병 가슴에 총을 쐈다. 숨을 헐떡거리며 그가 고통스러워하자 이번에는 코사크가 그의 머리에 총을 쐈다.
NYT는 "(군의관 그로세를 찾았던) '코사크'는 그로세의 의견을 듣고 그를 안락사시키기 위해 총을 쐈다"고 썼다. 또 “전쟁에서 부당한 살인이 계속되자, 그로세가 언론에 제보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우크라이나군이 공개한 전투 영상이다. NYT는 우크라이나군은 (악마의 편집으로) 러시아군의 사살이 전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 아니라, 전투가 한창일 때 일어난 듯한 인상을 안겨주었다"고 비판했다. 영상에는 러시아 군인의 항복 장면은 (편집 과정에서) 잘려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NYT는 또 "다양한 군사작전 중에 러시아군 포로를 사살한 데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미 매사추세츠 출신의 예비역 벤자민 리드(Benjamin Reed)의 주장을 소개하기도 했다. 리드는 "우크라이나의 신병 모집 담당자가 '제네바 협약을 엄격하게 지키더라도 항복하지 않는 전쟁 포로를 죽여도 되는 것'으로 설명했다"고 폭로했다.
안타깝게도 국내 언론에는 러시아 군인들만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잔혹한 군대 문화'속에 빠져 있다는 점만 부각되고, NYT 같은 세계적인 신문이 보도한 우크라이나군 전쟁 범죄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전쟁 저널리즘'의 기본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