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의 시간] 부산 대저토마토 이렇게 자라납니다
“아따 밤새 마이 자랐네. 우째 이래 빛깔이 곱노.”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 2동에는 토마토에게 말을 거는 남자가 있다. 1년 중 낮이 가장 짧은 동지(冬至) 즈음엔 아침 8시, 해 뜨는 시간이 앞당겨진 요즘 같은 시기에는 아침 7시 토마토 농장으로 출근한다. 한바퀴 가볍게 돌고 난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토마토의 상태를 확인한다. 얼마나 잘 컸는지, 부족한 건 없는지 직접 눈으로 봐야 직성에 풀린다.
그렇게 40년을 살았다. 삼남매의 아버지인 그에게 토마토는 네번째 자식이다. ‘대저 짭짤이 토마토’로 유명한 부산 대저동에서 키움농장의 김승배(64) 대표를 만났다.
부산 대저동에서 나고 자란 김승배 농부롸 그의 손자가 대저토마토를 한 입 베어 물고 있다. /더비비드
◇바다와 강이 만나는 소금기 있는 땅이 준 선물
낙동강 하구의 삼각주에 있는 대저 지역은 연평균 15°C, 겨울철 온도는 5°C 내외로 온화하다. 바다와 인접하고 일조량이 많아서 겨울철에도 토마토를 생육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대저 토마토는 이 대저 지역에서 생산되는 토마토다. 염분을 머금은 토양에서 자라서 새콤하면서 짭짤한 맛을 낸다.
대저 토마토 중에서도 당도 8브릭스 이상에 지름이 62mm 이하 조건을 만족해야 ‘짭짤이 토마토’로 분류된다. 일반 토마토보다 크기가 작고 경도가 높아 저장성이 좋다. 기후, 토양, 시기 등 여러 환경 요소가 맞물려야 생장할 수 있기 때문에 희소한 작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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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토마토 중 크기가 작은 짭짤이 토마토. 선명한 검녹색 줄무늬가 특징이다. /더비비드
◇짭짤이 토마토와 한 평생을 산 남자
김 대표는 1959년생이다. 대저 지역에서 나고 자라 40년째 농업에 종사 중이다. 현재 총 3000평, 비닐하우스 20동 규모의 농장에서 대저 토마토를 재배하고 있다. 자신의 농장을 운영하면서 대저농협에서 감사를 맡고 있다. 대저농협의 신용 사업이나 경제 사업 등 전반적인 업무를 총괄하고 감독하는 자리다.
- 언제부터 토마토 농사를 하셨나요.
“토마토 농사 2세대입니다. 부모님이 1세대시죠. 대저동은 부산시로 편입되기 전까지 경상남도 김해군이었습니다. 낙동강 하구와 바닷물이 만나 쌓인 삼각주 지역이죠. 대저(大渚)란 지명 자체가 큰 모래 섬이란 뜻이에요. 그래서 토양에 염분이 많은데요. 어느 날 선조들이 이 지역에서 키운 토마토의 맛이 남다르단 걸 발견했습니다. 토마토에서 강한 짠 맛이 난거죠. 이 독특한 맛이야말로 땅이 주는 선물이라는 걸 선조들이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이 지역에서 토마토 농사가 활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제 경우 24살 군 전역 후 자연스럽게 부모님 일을 대물림 받았습니다. 그 당시엔 직업에 대한 선택권이란 게 딱히 없었거든요.”
부산 대저동에 있는 대저농협산지유통센터에서 만난 김승배 농부. /더비비드
- 대도시 부산에서 청년기부터 농사라.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동화 시스템도, 기계도 없이 오로지 몸으로 부딪혀야 했던 시절이라 힘들었습니다. 넓은 면적을 아우르지 못했죠. 현실에 불만이 생길 때마다 부모님과 갈등을 빚었던 것 같아요. 사실 나 자신과의 갈등이기도 했습니다. 직장 다니는 친구들은 말끔하게 입고 출퇴근하는데, 저는 매일 흙밭에서 뒹굴어야 하는 현실이 서러웠거든요. 세월이 지나서 돌아보니, 지금은 제가 가장 행복한 것 같습니다. 마음에 여유가 생겼거든요. 경제적으로도 그렇고요.”
- 정말 40년간 외길만 걸었나요.
“사실 잠깐 딴짓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막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쯤 됐을 때 일이 너무 하기 싫었습니다. 농사의 농자만 들어도 지겨운 나날이었죠. 농촌 지역이다 보니 아이들 교육 문제도 있었고요. 그래서 6년간 도시에서 다른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힘들더군요. 농사가 재미없고 더 이상 매력 없다고 느껴져 관둔 건데 다시 돌아왔습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속담처럼 제가 가장 잘하는 게 농사였던 거죠. 딴짓을 하면서 깨우친 게 많아서 그 이후 농사에 더 열중입니다.”
대저 토마토가 나무 줄기에 매달려 있는 모습. /더비비드
◇와인 속 포도처럼 ‘떼루아’를 품은 토마토
대저 토마토를 보다 값지게 만드는 건 ‘희소성’이다. 대저 토마토는 2012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지리적 표시제’에 등록됐다. 대저 1, 2동을 벗어나면 대저 토마토라는 원산지 상표권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떼루아(프랑스어로 ‘풍토’라는 의미로 자연환경으로 인한 작물의 고유한 풍미)를 최대한 살리려면 추운 겨울에 과실을 맺어야 한다. 이 떼루아를 위해 생산성 좋은 수경재배나 양액재배 방식 대신 토경재배를 고집한다. 한정된 지역에서 제한된 시기에 오로지 땅에서만 키웠다는 특성이 맞물린 대저 토마토는 이 과정을 통해 귀하디 귀한 몸이 된다.
- 대저 토마토 재배 과정이 궁금합니다.
“전체적으로 9개월이 소요됩니다. 사과나 배 같은 과수 다음으로 작기가 긴 편이죠. 우선 8월 하순에 토마토 씨앗을 파종합니다. 싹을 한 45일 정도 키워서 9월 말이나 10월 초에 본 밭에 옮겨 심어요. 이후 벌을 통해 자연수정하지만 인공 수분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겨우내 난방을 하면서 키우다 보면 1월 말부터 토마토가 익기 시작합니다. 농가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2월 수확을 시작해 3~5월에 집중적으로 출하가 이뤄집니다. 화방(토마토 꽃이 피어나는 토마토 꽃줄기) 하나에 4~5개의 열매가 열리는데요. 보통 한 나무에 평균 20개 정도의 생산가치가 있는 토마토가 수확됩니다. 아주 귀한 녀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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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바로 먹기 좋게 익은 대저 토마토, 1~2일 놔뒀다가 먹으면 좋은 대저 토마토 상태. /더비비드
- 대저 토마토의 생장에 꼭 필요한 조건이 궁금합니다.
“온도, 햇빛, 물 세 가지가 중요한데요. 그중에서도 일조량이 핵심입니다. 대저동이 위치한 김해평야는 최적의 토마토 재배지에요. 산이 없는 벌판이라 일단 해가 뜨면 해가 질 때까지 그늘진 곳 하나 없이 쨍쨍하죠. 최고의 장점입니다. 온도의 경우 과실이 집중 생장하는 겨울에 각별히 신경을 씁니다. 겨울철에는 야간에도 9도~10도의 기온을 유지하기 위해 난방기를 가동해야 하죠.”
- 일조량과 기온이 중요하다면 여름에 키우는 게 수월하지 않나요.
“실제로 여름엔 열매를 맺는 데까지 45일이 걸리지만 겨울엔 일조량이 부족해서 100일~120일까지도 소요됩니다. 그럼에도 겨울 재배를 고집하는 이유는 오로지 맛 때문입니다. 강수량이 많은 여름철엔 땅의 염도가 낮아집니다. 그만큼 토마토의 떼루아도 옅어지죠. 여름철엔 높은 기온 때문에 토마토의 덩치도 빨리 커지는데요. 맛도 싱겁습니다. 여름철에 키우면 조그마한 덩치에 풍미를 압축하고 있는 대저 토마토의 매력이 사라지죠. 대저 토마토는 겨울 추위를 인고하며 자란 봄의 전령이에요. 희소가치가 뛰어나죠. 정말 ‘별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