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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받다
창 32: 1-32
이삭의 후예인 야곱의 생애의 이야기를 살펴보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이 상속한 아브라함의 언약의 복에 하나님의 장자로 참여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장자는 출생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적인 선택을 따라 택해졌습니다. 그래서 동생 야곱이 형 에서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장자의 복에 참여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삭의 가정에 두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 하나님의 뜻과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계략과 꾀를 통해 장자의 복을 빼앗았습니다. 그 때문에 형 에서의 미움을 사게 되었고 그래서 야곱은 가나안 땅에 가하지 못하고 형 에서를 피해 외갓집 밧단아람으로 피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따라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2아들과 하나의 딸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장자의 복을 얻었습니다. 이처럼 큰 가정을 이룬 야곱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지시하심을 따라 밧단아람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라반의 분노와 위협으로부터 하나님은 야곱을 보호하셨습니다. 야곱을 추격해오는 라반의 위협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장자 야곱을 보호하셨습니다. 그리고 라반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장자 야곱을 해하지 못하게 하신 하나님은 도리어 라반에게 상당하심으로 야곱을 하나님 나라의 장자로 인정하고 야곱과 평화의 언약을 체결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라반과 그 형제들이 하나님 나라의 장자인 야곱과 함께 제사를 드리고 한 상에 참여해서 먹고 마셨습니다. 그리고 각기 자기의 길로 갔습니다. 이후에 야곱은 계속해서 가나안 땅을 향해 여행을 합니다. 그것이 본문 말씀의 배경이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2절은 하나님의 천사를 만나고 여호와의 군대, 마하나임이라 한 이야기입니다. 3-21절은 에서의 마음을 사려는 야곱의 주도면밀한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22-32절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야곱과 씨름하심으로 야곱을 새롭게 변화시켜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으로 복주신 기사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합시다.
마하나임
1-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사자들이 야곱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보고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마하나임이라고 하였습니다. 마하나임이라는 뜻은 "두 진영"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두 진영는 뒤에서 라반의 추격으로부터 보호하고 한 진영은 앞에서 에서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하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자의 형상으로 야곱과 함께 하셨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와의 갈등으로 가나안 땅을 떠날 때도 벧엘에서 사닥다리 계시와 함께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28:13-1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꿈에 사다리 계시와 함께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야곱의 후손으로 땅의 티끌과 같이 번성케 하시겠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함께 동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야곱이 상속해야하는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언약하셨습니다.
이처럼 벧엘에서 야곱에게 나타나셨던 그 하나님이 이제 밧단아람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야곱과 함께 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의 형상으로 함께 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장자를 보호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에서로부터 하나님의 장자를 보호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을 떠나 밧단아람으로 간 것은 형 에서가 죽이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에서를 만나려고 할 때 하나님은 그의 군대를 보내서 야곱을 호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보고 하나님의 군대라 칭하고 마하나임이라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서의 마음을 사려는 야곱의 계획
이처럼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와 하나님의 군대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 자신을 보호하고 계심을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여전히 야곱이었습니다. 야곱은 속이는 자라는 뜻인데 여전히 야곱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의지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인간적인 계략과 꾀를 짜내고 있습니다. 사기꾼 야곱, 간사한 야곱의 주도면밀한 모습이 더 드러나고 있습니다.
야곱은 에서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의 밧단아람에서 있었던 사정과 자신의 부요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에서를 주로 칭하고 에서의 은혜를 받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내 주께 고하고 내 주께 은혜받기를 원하나이다."고 인사를 하게 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를 주라 칭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 주가 됩니까? 누가 하나님의 장자로 형제의 주가 되어야하는 것입니까? 27장 29절 말씀을 봅시다. "만민이 너를 섬시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이삭이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하는 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분면이 야곱을 하나님의 장자로 인정하고 모든 형제의 주로 확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여기서 에서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형 에서를 주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형 에서의 칼에서 죽임을 면하기 위한 야곱의 술책이 또 한번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들을 통해 들려오는 소식은 좋은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6절입니다.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기 위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심상치 않는 징조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야곱은 소유를 두 떼로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만일 형 에서가 한 떼를 치면 나머지 한 떼라고 피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9절 이하를 보니까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에 의지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야곱의 씨로 하여금 바다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이 번성케 하리라고 하셨던 언약에 의지하여 형 에서로부터 보호해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계속해서 형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선물을 준비합니다. 뇌물작전을 통해 형 에서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전략입니다. 그 선물을 여러 떼로 나누어 끈질기게 에서의 마음을 사려는 계략을 세웠습니다. 선물을 한 번에 주는 것이 아니라, 각 떼마다 거리를 두어 여러 번에 나누어 주면서 에서의 마음을 사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지극히 야곱다운 발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선물로 형의 마음을 푼 후에 형과 대면하면 형이 야곱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이 이스라엘로
선물을 보낸 후에 야곱은 얍복 나루를 건너 야곱 홀로 남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야곱과 날에 새도록 씨름하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을 이기지 못해서 환도뼈를 치니 위골되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손을 놓지 않고 울면서 축복을 간구하였습니다. 26절입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씨름하는 사람이 야곱에게 이름을 묻고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바꾸어주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레스링을 해서 당당히 이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았습니다. 야곱 즉 사기꾼이라는 이름을 벗고 이제는 이스라엘 즉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야곱을 이스라엘이란 이름으로 복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야곱과 겨루어 야곱으로 승리하게 하고 이름을 바꾸어 준 이유가 무엇입니까? 옛사람 야곱으로는 하나님의 언약의 복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장자로 택함받았지만 옛사람 야곱으로는 가나안 땅의 진정한 상속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언약 안에서 다시 새롭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새롭게 성별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간사한 야곱을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으로 복주시고 구별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기꾼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새로운 야곱인 이스라엘로 변화시키셔서 진정한 가나안땅을 상속하는 하나님의 장자로 성별하신 것입니다. 사기꾼 야곱이 변화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그 땅의 이름을 브니엘이라 칭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지만 하나님이 야곱의 생명을 보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브니엘이라 칭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는 의미
이 창세기는 야곱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책입니다. 다시 말해서 애굽에서 해방되어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확증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책입니다. 그들은 이처럼 야곱 이스라엘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옛언약백성입니다. 간사한 사기꾼과 같은 야곱을 하나님이 친히 변화시키셔서 거룩한 하나님의 이스라엘로 변화시키셨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통해 거룩한 백성으로 성별된 백성이라는 사실을 증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의 복은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변화되고 성별된 자만이 받을 수 있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언약의 복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스라엘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된 백성입니다. 그들은 이 언약의 복안에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그러면 이 말씀이 우리 신약의 백성들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구약의 야곱은 이스라엘로 변화되었지만 여전히 그는 사람 중보자요 사람 장자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 중보자요 사람 장자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친히 사람되심으로 이 땅에 오신 중보자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의 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은 육신의 방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통해 새롭게 성별되어야만 합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통해 새롭게 이스라엘로 성별되었듯이 우리 신약백성들도 하나님을 통해 새롭게 성별되어야만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기 이전에는 우리의 옛사람의 모습이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을 대항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적으로 거부하였던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듣고는 코웃음을 쳤던 가증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죄인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장자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한 길이 있는데 그 길은 하나님께서 내신 구원의 길을 통해 성별되는 것입니다. 그 길이 바로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길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새롭게 씻으셔서 하나님 나라의 언약의 복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친히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야곱은 얍복나루에서의 하나님과의 씨름을 통해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이스라엘로 변화되었지만, 우리 신약백성은 그런 방식이 아닙니다. 신약의 백성은 자신이 하나님을 대항했던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요 언약의 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 앞에 나옴으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리스도 앞에 나오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그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 나라의 장자로 구별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어떤 사람도 하나님 나라의 장자로 새롭게 변화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새롭게 씻으셨습니다. 죄인이었던 우리를 구별하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삼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의 복에 참여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들은 기억하시고 언약의 복을 충만하게 누리시는 성도가 됩시다. 아멘.
회고와 전망
창 32: 1-32
지난 주 말씀드린바와 같이 우리는 어려움을 앞두고 과거를 회고 하게되고 미래를 전망하게된다. 한 경우는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회고와 전망을 하게 되는데 이 전망과 회고가 삶에 많은 유익을 준다.
바울의 회고와 전망을 보면 딤후 4장에 언급되어 있다.
딤후 4:6-8절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에게니라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이와 같은 삶을 우리도 본 받아야 도리 것입니다.
시144:1-4절에보면 다윗이 골니앗을 죽인 사건을 회고하면서 징은 시입니다
** 그러면 다윗은 무엇을 회고하며 감사찬송 했습니까?**
1. 비천한 자를 알아주시고 생각해 주심을 회고하며 감사 찬송했습니다.
(1) 본문 3-4절에서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라 했습니다. 그는 인생을 두 낱말로 표현합니다. "헛것 같고" "그림자 같다"고 했습니다. 여기 "헛것"이란, 히브리어 "라헤벨"로서, "공기, 바람, 기식, 허무"등을 뜻합니다(시39:5). 그리고 "그의 날은 그림자 같다" (게첼 요벨:fleeting, shadow)고 합니다. 그림자에는 명암이 있습니다. 겉보기에 거대해도 가까이 가보면 허상뿐입니다. 그림자는 수시로 변합니다. 특히 석양에 져 가는 그늘은 순식간에 온 누리를 암흑세계로 만들어 갑니다.
(2) 과연 이렇게 신속히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우리 인생이 이루어 놓은 결과가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인생을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약4:14)라 했고,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벧전1:24)이라 했고, 인생의 삶을 "하나님 앞에 벌레요, 구더기 같은 삶"(욥25:5-6)이라 했습니다. 인생은 과연 망망한 우주 속에 티끌 같은 존재로 태어나 손바닥만한 날을 살고 가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하루도 평탄하지 않고 죄와 고통과 슬픔의 날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3) 그러나 다윗은 인생의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합니다.
본문 3절에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 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라 했습니다. 이런 무가치한 존재를 알아주시고, 생각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돌봐 주시는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발견하며, 자신의 삶의 고귀함과 소중함을 자각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마침내 천한 목동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 되게 하심을 깨닫고 큰 찬송을 오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로 하여금 더욱 더 위대한 성공을 누리게 하는 비결이었습니다.
2. 모든 대적들을 이기에 해 주심을 회고하며 감사찬송 했습니다.
(1) 본문 1-2절에 "나의 반석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저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치게 하시도다"라 했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들의 목동이었습니다. 그는 목동 중에서도 선한 목자였습니다. 양떼를 치던 중, 때때로 이리나 곰이나 사자가 나타나 양들을 움키면 생명을 내어 걸고 나가 싸워 사자와 곰을 이기고, 양을 살려내는 용사였습니다.
(2) 블레셋이 골리앗을 앞세워 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때, 사울왕과 온 나라가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이 때, 다윗은 전선의 형들을 위문하러 갔던 중 방자하게 하나님의 군대를 모독하는 적장 골리앗을 보았습니다. 그는 마침내 사울왕 앞에 찾아가 골리앗을 쳐 무찌르도록 허락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삼상17:36-37)
다윗은 사울의 허락과 축복을 받은 후, 적장 골리앗을 향해 돌진하여 외쳤습니다.(삼상17:45-17) 그는 마침내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이 승리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도와주신 은혜의 결과였습니다.
(3) 그는 그 모든 승리가 모두 하나님의 도와주신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고통과 고난과 소용돌이치는 삶의 와중에서도,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겸허한 자세로 승리케 하신 하나님앞에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3. 사명을 잘 감당케 하심을 회고하며 감사찬송 했습니다.
(1) 본문 144:2절 끝에 "내 백성을 내게 복종케 하시는 자시로다"라 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이스라엘에는 두 종류의 왕이 있었습니다. 의로운 왕과 불의 한 왕, 성군과 폭군, 믿음의 왕과 불 신앙의 왕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의로운 왕이요, 성군이요, 신앙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가 하나님 앞에 사명을 바로 감당하게 된 것이 자신의 명철이나 지혜나 결단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에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2) 그러므로 다윗은 바로 하나님께서 견고케 하시고, 백성들로 하여금 굴복케 하심으로 위대한 성군이 되었음을 회고하며 감사찬송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지난 한해동안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사명을 잘 감당했는가를 살피면서, 이 한해를 아름답게 마무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도 주어진 천직을 한해동안 잘 담당했다면,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43:14-21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오늘 우리는 본문말씀을 통해서 과거 속으로 넘겨지게 될 금년을 의미 있게 결산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가장 기쁘게 맞을 수 있는 지혜를 얻으려고 합니다.
본문말씀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그들의 불행했던 과거를 치유하시면서 새로운 희망을 갖도록 권면 하시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핵심은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날 것이라"는 19절의 말씀입니다.
1. 여기까지 동행해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2. 한 해 동안 베푸신 축복과 은총을 구체적으로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3. 새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일을 행하실 축복의 장입니다.
**야곱의 회고와 전망을 생각해 보자 (창32:1-32절)**
역사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 그래서 현재가 과거로 미래가 현재로 다가오는데 감사 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과거를 청산하고 새 출발의 기회를 주신 것을 감사한다. 그리고 더럽혀지지 않는 미래가 우리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면서 회개하고 미래를 전망하면서 새 계획을 세우고 출발하는 기회가 되기 바란다.
**오늘 본문에 야곱은 ?(뒤꿈치를 잡음).**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의 손자요 부친은 이삭 모친은 리브가이다. 그는 주전 1836년 곧 이삭의 60세 쌍둥이의 후동으로 나면서 그 형 에서의 발뒤축을 잡은 고로 이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창25:26).
그 형 에서는 성질이 용맹하고 생각이 천박하고 들에서 사냥을 잘하나 야곱은 그와 반대로 성질이 유순하고 지혜가 예민하고 집에 있어 양을 치니 이삭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에서를 편애하였다(창25:27,28).
어떤 날 형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올 때에 주린 기색을 살피고 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샀다(창25:30-34). 그 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는 부친을 속여 형의 분노와 원한을 품고 해하려 하매 부모를 이별하고 1800리 되는 하란에 있는 외가로 피하여 가게 되었다(창27:).
20년간 외삼촌 집에 있어 목축하는 일로 봉사하고 그대가로 그의 두 딸 레아와 라헬로 아내를 삼고 그 종 실바와 빌하로 첩을 삼아 11명의 아들과 한 딸을 낳았다. 얍복 강가에서 밤에 천사를 만나 씨름하여 이기고 축복하여 주기를 간청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다(창32:22-28).
이와 같은 야곱이 외삼촌댁에서 가출하여 집으로 오는 도중 요단강 언덕에 이르러 과거를 회상하면서 은혜를 기억하는 내용이 수록되었다.
32:10"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리를 조금이라도 감당할 수 없사오니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라고 고백을 하게 된다. 우리는 이와 같이 역사가 바뀌는 때에 은혜를 감사하며 과거를 회상하고 떠남이 좋은 것이다.
1. 과거 회상하였다.
우리는 과거를 생각할 때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첫째는 고생한 과거가 기억 된다.
야곱이 나이를 묻는 바로에게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연세가 얼마뇨 ? "야곱이 바로에게 고하되 `내 나그네길의 세월이 壹百 三十年이 뉘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하였다 그와 같이 우리는 과거의 기억 중에 험악한 일들을 기억하게 된다.
야곱은 선택한 백성이었다. 그러나 자유의지를 잘 못 활용함으로 그는 평생에 고생을 면하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攝理적 역사는 공의 법을 살리면서 하나님의 예정한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도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잘 못될 때 고생을 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가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인 결과 자식들에게 속임을 받았었고 환난과 역경이 떠나지 않았고 고생을 면할 길이 없었다. 우리들도 함께 생각할 일은 하나님이 궁극적인 구원은 받게 하시되 잘 못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신다는 사실을 생각하여야 한다. 하나님이 책임이 아니고 우리들의 책임임을 기억하자 그래서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97년을 회고하면 항공기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해난 사고 교통사고 질병으로 사망하고 불구자가 된 사람들도 많았다. 이와 같이 우리는 험악한 세월을 보낸 과거가 필림이 돌아 가듯 기억에 떠 오른다.
둘째 축복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된다.
야곱은 두떼를 이루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가 출발 할 때 가진 것 없이 출발을 하였는데 일년 동안 먹고 입고 쓴 것을 보면 너무나도 많은 복을 주신 것이다.
"꿈을 이루어 주옵소서" 기원으로 출발을 하였는데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심을 감사한다.
1. 교회적으로 개척교회를 이루는 꿈을 이루었고 장로를 장립 하는 꿈을 이루었고
2. 가정을 이룩하는 꿈을 이룬 분들도 있고 어머님이 召天하여 평생의 꿈을 이룩한 분들도 있다. 사업장을 개업하여 소박한 꿈을 이루고 하나님께 감사 한 분들이 있고 자녀를 출산하여 기쁨을 누리는 분들도 있고 각양의 꿈을 이루는 결과를 가져 온 것으로 안다.
3. 개인으로는 어린이집 院長職을 정년 은퇴하는 일이 있었고 오래 동안 유사종교 연구위원장 職을 후배에게 물려주는 일을 하였고 재단 理事職을 맡아 재정 분과와 건축 분과의 일을 맡아 수종들게 되었고 선명회 서대문 지부장 職을 맡아 북한에 국수 공장을 세우는 일에 수종들게 되었다. 노회장 직을 맡게 되어 봉사의 기회를 주신 것 감사한다.
4. 일년 간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분주하게 살도록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일년을 회고하면서 감사 할 조건들을 찾아 감사하여야 하고 또한 일년 동안 어려웠든 일들을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한다.
독일에 손자 손녀가 와서 이들과 한 달의 휴가 철을 즐겁게 본 내게 되어 감사한다. 집사람의 칠순 잔치를 치르고 손녀의 돌 장치를 치러 감사를 드린다.
5. 국가적으로 위기를 맞아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정치적 위기, 금융 위기, 산업 현장의 위기, 부정 측 결을 위한 정의 구현 등 어려움이 많은 중 대통령의 위기를 말하지 않을수 없다. 이와 같은 상항에서 국가를 지켜주시고 안보 하여 주신 은총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와 같은 상항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도우신 것을 확신하였고 지금 믿고 있다. 아무리 어려움이 많아도 하나님은 그 때 그 때 마다 도우시는 역사를 보고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교회들이 선교에 주력하고 있는 이상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역사 하시고 도우실 것을 믿는다 우리를 위하여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역사를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득에 우리가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역사 하셔서 우리들을 도우신 것이다.
2. 우리는 미래를 전망하자
우리는 더럽혀 지지 않는 미래가 있고 새 일을 시작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상하지 않았든 에서의 추격이 찾아오고 있었다 우리는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인생이다 또한 새로운 좋은 일이 찾아오기도 하였다. 화해와 친교의 만남, 형제간의 쌍봉, 반갑고 기쁜 사건이었다.
우리 교회의 새 예산을 세우고 새 일을 경영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일을 생각하면서 소망을 가지자
3. 하나님께 기도하자
야곱은 인간의 수단과 방법이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결코 이 이상 버틸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쥐가 극도에 다다르게 되면 사람을 무는 것과 같이 우리도 극에 달하면 사람을 물고 덤비는 것과 같이 극에 달하면 못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자살을 하기도하고 흉악범이 되기도 하고 방랑자가 되기도 한다.
한데 우리는 무엇을 하여 문제를 해결 할 것인가 ? 오직 기도 할 것뿐이다. 야곱은 얍복강 언덕에서 밤 세 기도하였다 복을 하실 때까지 기도하였고 항복을 할 때까지 기도하였다.
그래서 결과는 승리자의 이름을 얻고 물러 선 것이다. 우리 교회가 할수 있는 일은 기도이다. 하나님께 생명을 걸고 기도하면 IMF의 한파 문제 될 것이 없고 경재적 위기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어두운 새 해를 밝은 새 해로 바꿀 수 있다.
엡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라.
얍복 강가의 씨름
창 32: 1-32
가나안을 향해 여행하는 야곱 일행에게 많은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전장에서 본 바와 같이 외삼촌 라반에게 해를 당할 위기를 간신히 벗어난 야곱은 본 장에서 또다시 절박한 상황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1. 귀향 길에 나타나신 하나님
1) 하나님의 사자를 만남
귀향 길에 오른 야곱에게 또다시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형 에서의 살기등등한 생명의 위협으로 인해 새로이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야곱에게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를 본 순간 하나님의 벧엘 언약을 떠올렸으며 하나님께서 사자들을 보내신 의도를 즉각 알아차렸습니다. 즉 그는 하나님께서 과거의 언약대로 형 에서의 칼에서도 구하시리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즉시 하나님의 사자들을 일컬어 '하나님의 군대'라고 명명하였습니다.
a. 귀향길에 만남(창32:1)
b. 백성의 길을 인도하심(행10:3-5)
2) 두렵고 답답한 마음
이미 하나님의 사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보호의 메시지를 받은 야곱이었지만 사람들을 통해 알아본 결과 형 에서는 여전히 그를 죽일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야곱의 마음은 매우 두렵고 답답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는 달리 상황은 전혀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야곱의 경우를 통해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이사야의 권면을 새로이 인식해야 하겠습니다.
a. 두려움이 찾아오는 원인(히2:15)
b. 야곱의 두려움(창27:41)
3) 하나님을 바라보는 야곱
야곱은 형 에서에 관한 소문을 듣고 매우 두렵고 답답했지만 죄절하거나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매어 달려 기도할 차비를 차렸습니다. 그는 여전히 문제의 유일한 해결자를 하나님으로 본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본 야곱은 살아 계시는 인격적인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막연히 위기를 모면하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고 약속을 하시며 그 약속을 신실히 지키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고 간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a.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하나님(창12:1)
b. 감당키 어려운 은혜에 감사하여(창32:10)
2. 에서를 향한 야곱의 준비
1) 예물을 준비함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야곱은 형 에서에게 줄 예물로 암염소 200, 숫염소 20, 암양 200, 숫양 20, 젖 나는 약대 30과 그 새끼들, 암소 40과 황소 10, 암나귀 20, 새끼 나귀 10마리 등 총 580마리의 가축을 예물로 준비하였습니다. 성경은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잠21:14)고 말합니다. 야곱은 가장 좋은 짐승을 특별히 식별하여 준비했습니다.
a. 형의 은혜를 받고자(창32:5)
b. 형의 감정을 끌고자(창32:10)
2) 예물을 여러 떼로 나누어 보냄
정성을 다해 준비한 예물을 각각 떼로 나누어 종들의 손에 맡기고 자기 앞서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에서가 물으면 야곱이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라고 말하도록 하였습니다. 야곱은 점진적인 화해의 접근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형 에서의 마음을 서서히 풀어 갈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최소한의 안전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a. 근신과 더불어(잠3:21)
b. 도주를 위한 준비(창32:7-8)
3. 얍복 강가의 씨름
1) 홀로 남은 야곱
형 에서에게 예물을 순차적으로 보낸 야곱은 밤에 일어나 최종적으로 아내와 자녀들과 나머지 소유들을 건네주고 홀로 남았습니다. 홀로 남은 야곱은 그 밤을 꼬박 새워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홀로 밤을 새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세운 것입니다. 이렇게 홀로 있는 시간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대면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며 이러한 시간은 험난한 이 세상을 살아 나가는 성도들에게는 매우 필요하고 유익한 시간입니다.
a. 사람은 외로울 때 하나님을 찾음(시38:1)
b.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이 함께하심(요16:23)
2) 생사를 건 기도
홀로 기도하는 야곱은 밤새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였습니다. 그가 얼마나 간절했던지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의 환도뼈를 쳤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야곱은 브니엘에서 환도뼈가 위골되었습니다. 결국 야곱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합격 판정을 내리셨습니다.
a.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심(창18:2)
b. 성도를 위해 사역하심(히1:14)
3)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뀜
밤새 야곱과 씨름을 하고 난 하나님의 사자는 날이 샐 즈음에 이르자 야곱에게 이름을 물었습니다. 이름을 매개로 하여 하나님의 사자는 회개를 촉구하고 야곱은 자신의 죄를 거짓 없이 자백한 것입니다. 야곱으로부터 죄의 자백을 들은 하나님의 사자는 야곱에게 즉각 이스라엘로 개명할 것을 선언하고 명령하였습니다.
a.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창17:5)
b. 사래가 사라로(창17:15)
결론
창32장을 통해 야곱의 간절하고 끈질긴 기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야곱의 기도를 통해 기도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출처: 주는 포도나무 나는 가지 원문보기 글쓴이: 이종애
거침이 없는 축복
창 32: 1-32
나그네 세월 147년의 끈질긴 정상을 살아 온 야곱은 지금 그의 운명적인 임종을 앞에 두고 그의 자손들을 축복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야곱의 이 고백은 첫째로 언약의 하나님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둘째는 계대적인 축복의 하나님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이 모두는 야곱과 함께 하시면서 거침이 없는 보호와 축복의 하나님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야곱이 받은 축복은 어떤 축복입니까?
1. 벧엘의 축복입니다.
창세기 28장 18-19절에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게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위 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라고 하였습니다. {벧엘}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버린 후였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어쩔 수 없는 도망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의 어머니가 일러 준대로 1,800리 길이나 되는 하란의 자신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을 가고 있었습니다(창 27:43).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가는 길에 해가 졌습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돌 베개를 하고 유숙하기에 이르렀습니다(창 28:10-11). 야곱은 그곳에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에 보니 한 긴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있었습니다. 야곱은 그 사닥다리를 바라보고 있는데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창 28:12). 참으로 신기한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위에 서서 야곱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네가 누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야곱의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 하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받을 것을 약속해 주었습니다(창 28:13-14). 계속해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창 28:15). 그리고 야곱을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었습니다. 참으로 야곱은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고독과 피곤과 공포로 허기진 야곱에게 이 밤은 더 없이 안락한 위로의 밤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누워있던 자리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베개하고 누웠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을 따라 그곳에서 서원을 했습니다.
창세기 28장20-22절에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었다고 해서 도망갈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고독과 공포와 피곤함이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하고 서원하는 벧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2. 마하나임의 축복입니다.
창세기 32장 2절에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곳에서 라헬과 레아 두 아내를 얻어 자식을 낳고 거부가 되었습니다. 20년 세월을 보내면서 그는 부지런히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꾸만 자신의 재산을 확산시켜 나갔습니다. 거부가 된 야곱을 보고 라반의 아들들은 노골적인 불평을 했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살펴보니 옛날과 같지 아니했습니다(창 31:2).
이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창세기 31장 3절에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곧바로 자기 아내를 자기 양떼가 있는 들판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을 설득시켰습니다. 야곱은 마침내 벧엘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풍부한 양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와 식솔들을 거느리고 꿈에도 그리던 고향땅 가나안을 향하여 도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흘이 지난 후에 자기의 재산을 모두 가지고 도망을 갔다는 사실을 알게된 야곱의 외삼촌 라반은 그 형제를 거느리고 길르앗산까지 7일간이나 야곱을 추적해 왔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추격하는 라반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날밤에 아람사람 라반에게 꿈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창 31:24). 길르앗산에서 라반은 야곱을 향하여 너의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젯밤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기를 선악간에 야곱을 그냥 두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이 사실을 가리켜서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의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공수로 돌려 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나의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감찰하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창 31:42). 바로 이러한 은혜는 하나님의 군대 즉, 마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야곱의 귀향길에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어 야곱을 호위하게 했습니다. 야곱은 나중에 이 사실을 체험했을 때 하나님의 사자들이 야곱을 도우려고 야곱과 함께 이동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창 32:1-2).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부정 없이 일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한 결과 그는 거부가 되어서 그립던 고향 땅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입니다. 고향으로 가고있는 야곱에게 엄청난 위험이 닥쳤던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수고해서 얻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내 것으로 취하는 때는 온갖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유는 정직하게 열심히 일해서 많은 것을 얻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축복을 받았다는 것 때문입니다. 예전과 같이 비천한 사람이었으면 문제가 없겠지만 예전과는 아주 딴판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향 땅으로 돌아가는 야곱의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야곱에게는 통과해야만 될 절대절명의 관문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장자의 자리를 동생으로부터 빼앗기고 20년 동안이나 복수의 날을 기다리고 있는 자신의 형 에서의 보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가는 야곱에게는 거침이 없는 기적과 축복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3. 브니엘의 축복입니다.
본문 32장 29-30절에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세일땅 에돔들에 있는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사자들에게 말하기를 외삼촌 라반에게 지금까지 붙잡혀 있었다고 전하라고 했습니다(창 32:3-4). 그리고 소와 나귀와 양떼와 노비를 보내면서 용서를 구했습니다(창 32:5). 그러나 에서에게서 돌아온 야곱의 사자들의 보고는 절망적이었습니다. 에서는 야곱이 왔다는 소식을 접하자 400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장자의 명분과 축복을 탈취해서 도망갔던 야곱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습니다(창 32:6). 야곱은 형 에서의 칼날이 심히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만약에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칠때 다른 한 떼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창 32:8). 그리고 야곱은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본문 32장 9절에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에서의 손에서 자신과 자기 식솔들을 구해달라고 했습니다(창 32:11). 야곱은 자신의 소유 중에서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선택했습니다(창 32:13). 암염소 이백과 수염소 이십과 젖나는 약대 삼십과 그 새끼와 암소 사십과 황소 열과 암나귀 이십과 그 새끼 나귀 열을 종들의 손에 맡기고 먼저 가게 했습니다(창 32:17). 이렇게 에서에게 먼저 예물을 보내는 것은 형 에서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하는 기대에서 행한 것입니다(창 32:20). 우리는 여기서 야곱을 붙들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어떠한 희생이 따를지라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자신의 고향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겠다는 야곱의 필사적인 의지를 볼 수 있습니다. 가나안땅 밖에서 아무리 풍요한 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야곱에게 있어서는 뿌리 뽑힌 나무처럼 허무할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훗날 유대인들의 신앙과 더불어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민족적인 단합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동기가 되었고 오늘날 잃어버렸던 땅을 다시 찾겠다는 시오니즘(Zionism)으로 승화되어 유대인들과 팔레스틴(PLO)의 거칠 줄 모르는 분쟁은 여전히 국제적인 문제로 남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 땅을 가고 싶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매우 간절했습니다. 왜냐하면 본문 32장 25절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야곱은 어떤 사람과 날이 새도록 씨름을 했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위골되게 했습니다. 그 사람이 야곱에게 말하기를 "날이 새려하니 나를 가게 하라"고 했을 때 야곱은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은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야곱이라고 하니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고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라"고 했습니다(창 32:28). 야곱은 황급히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고 하면서 야곱에게 축복했습니다(창 32:29). 이 사람은 신약에 나타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우리는 의심 없이 믿습니다. 야곱이 씨름하여 이긴 그 사람은 곧 제2위이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대면하고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불렀습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입니다. 간교한 야곱은 이제 언약의 상속자요 구속역사의 공적인 인물인 이스라엘로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란 뜻은 '우세하다'는 뜻이 있고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뜻도 있습니다. 통례적으로는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자'란 뜻입니다. 이것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인이 된 것과 그 맥락을 같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브니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 자는 모든 것을 해결받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곧 예수님의 얼굴입니다. 마침내 야곱은 20년만에 형 에서와 만났습니다. 에서의 400명의 종들은 고향 땅으로 돌아오는 야곱의 환영대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에서는 야곱을 향하여 내 동생아 하고 불러주었습니다. 에서의 가정에, 야곱의 가정에 평화의 계절이 왔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했던 이스라엘은 눈물로 형을 상봉하는 기적을 가져 왔습니다. 이것이 브니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놓지 말아야 합니다. 피투성이가 되어도 놓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나라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곧 세계가 가지고 있는 문제입니다. 금년에도 정치, 경제, 공해 등등으로 어려움이 예상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매어 달려야 합니다. 주님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에 이 세상 살아가는 지혜와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에 재물 얻는 방법과 재물을 선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4. 엘 벧엘의 축복입니다.
창세기 35장 7절에 {그가 거기서 단을 쌓고 그곳을 엘 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거기서 나타나셨음이더라}고 했습니다.
{엘 벧엘}이라는 말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미하는 엘과 벧엘이 합쳐진 말로 야곱이 벧엘에서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상기하면서 거기서 자신이 서원했던 내용을 온전히 이루도록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붙인 이름입니다. 야곱은 형과 작별한 뒤에 {숙곳}이란 지방의 세겜성에 임시로 장막을 쳤습니다(창 33:17).
야곱은 그곳에서 엄청난 아픔을 맛보았습니다. 그것은 야곱의 딸 디나가 그곳의 추장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욕보임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수모를 당한 야곱의 아들들이 보복을 계획하고 화친의 조건으로 할례를 거론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들은 자신들도 할례를 받을 것을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하몰의 아들들과 성문으로 출입하는 모든 남자가 다 할례를 받았습니다(창 34:24).
야곱의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제 3일이 되던 날에 저들을 습격하여 칼로 도륙을 했습니다. 이일로 인해 그들의 보복이 두려워서 벧엘로 도망가는 야곱을 위해 하나님께서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고로 아무도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35:5). 야곱은 그 옛날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이 그 하나님 앞에 서원했던 그곳에 단을 쌓고 그곳 이름을 엘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자기가 서원했던 대로 이루어진 역사를 재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들도 어쩔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반드시 하나님의 방문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방문한 그곳에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마다 하늘 문이 열리고 그 말씀이 하나님께서 직접하시는 말씀처럼 현장감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하나님의 천군천사의 보호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주님을 붙잡고 결단코 응답을 받아내는 브니엘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위험한 일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방문을 받아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나의 서원이 성취된 것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엘 벧엘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