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초, 보탑사를 들머리로 하여 오른 적이 있는 만뢰산을
재차 방문하는 길이었다.
어이 없는 사고들로 인해 지난 여름부터 가을이 다 가도록 괄목할
만한 산행(Moun-tour)을 하지 못한 터에 가벼운 나들이 삼아서.
진천 김영식과의 재회가 전제되어 있기에 쉽게 나서게 되었을 것이다.
그가 열악한 대중교통으로 인한 문제의 해결사로 나설 것이니까.
건립 역사는 일천하나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3층 목탑형 불전으로
내부 계단을 통해 상층까지 오르게 된 특이한 양식이 시선을 모은다.
높이 42.7m로 우리나라 불전중 가장 높다는 이 건물은 사계의 권위자
신영훈씨의 역작이라고.
김영식 / 보탑사 대웅보전 앞 / 함께 산행하기는 1980년대 말 폭설로 덮힌
겨울 태백산에 오른 후 처음이다.
문외한이 뭘 알아 왈가 왈부 하겠는가.
단지, 비구니의 사찰이라니까 불전이 비록 이색적이라 해도 여성스럽게
느낄 수 있는 양식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김영식에게는 남다른 심미안이 있다.
여승들의 섬세함을 간파했는가.
솔과 단풍이 조화를 이룬 경내의 숲 앞에서 심취했는가.
이동을 주저하고 있다.
만뢰산에 오르는 중 / 한 동안 산을 등진 탓에 무릎의 저항이 심하다며 조심스러운 김영식.
결국 정상 중간쯤인 여기에서 그는 하산로를 택했다.
2004년 공군은 만뢰산 정상의 이 헬기장에 강철판 패드를 깔았단다.
그런데 지금은 말끔히 철거되었다.
군(軍)의 작전과 긴급 환자 수송상 필요한 헬기의 안전한 이착륙을
위해서 깔았던 건데 진천군 의회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었다고.
산의 정기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해발 612m 만뢰산(萬賴)의 옛 이름은 만노산이었단다.
진천의 옛이름인 '만노군'(삼국시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지금은 충북 진천군 진천읍과 충남 천안시 병천면의 경계가 되지만.
국립지리원이 발행한 5만분의 1 지형도의 만근산(萬筋山)은 오기(誤記).
만뢰산 정상의 늙은 山나그네
마냥 기다려야 할 김영식에겐 많이 미안하나 태령산 ~ 김유신 장군 생가
코오스를 택하고 말았다.
산객들의 쉼터(정자)가 정상 바로 너머(태령산 쪽으로)에 새로 건립되었다.
진천의 남산골 두 여인이 내 일행이 되었다.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이 산에 오르기 위해 먼 인천에서 오다니?
대단한 열정을 가진 애산가들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
내가 진천을 인천으로 잘못 들은 것.
그렇다 해도 소도시 생활에서 중년 여인끼리 초행의 산길을 택하는
과감성과 열의만은 높이 살 수 밖에.
기다리고 있는 김영식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두 여인을 두고 그냥
달아날 수는 없었다.
더구나 김영식과 같은 마을 분들이라는데.
사진: 연곡저수지 갈림길 임도 직전의 벤치에서.
지루하게 기다리던 김영식으로부터 전화가 오고 있는데 저 아짐씨들 만만띠네.
기다리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왕복 400m 앞의 태령산을 두고 그냥 하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김유신 장군의 태실 태령산 정상이다.
배낭이 놓인 곳에 태가 묻혀 있단다.
화랑정(상)과 활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