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보내며 / 이헌 조미경
어린 시절 비가 주룩주룩 마당에 흩어져 어디론가로 이사 갈 때 뒤뜰에 나가면
어느 땐 빗방울에 포물선을 그리고 앉아 지루한 장마를 혼자 즐기는 잡초들 사이로
흉측한 그림에 깜짝 놀랄 일이 생기는 일도 있었다.
문득 잊고 있었던 고향에 대한 향수가 불현듯 그리웠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장마 때 비가 많이 내리는 날
학교 등교 길에 길에서 흔히 발견하는
물고기들이 오늘 갑자기 내 추억 속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길가다 무심코 내려다본 길에는 어른 검지의 두배는 됨직한 미꾸라지
물이 물어 난 길은 언제나 질척거리고 물이 튀어 학교에 도착할 때쯤이면
양말은 온통 젖어 있고 눅눅하고,기분 나쁜 꿉꿉 함은 어느새 시간이 지나
양말은 거짓말처럼 말라 있고 질척거리는 길을 우산을 받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반은 젖어 있던 나의 옷.
비가 개인 날 아침 나무에 맺혀 있는 영롱하고 맑은 물방울은 또 어찌나 귀여운지
나뭇잎에 맑고 투명한 동그란 보석들이 대롱 대로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지
어릴 적 추억이 생각나 가끔은 나뭇잎을 관찰도 하고 고개를 숙이고 들여다보는 나...
오늘처럼 비가 개이고 하늘은 찌뿌드하고 바람은 겨울로 향하는지 차갑기만 한 날
나무에 매달려 꽃처럼 피어나던 낙엽이 바람에 날릴 때
가는 세월을 붙잡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안고
그 시절 나에게 소곤거리던 자연이 또 한차례 변신을 꿈꾸는 요즘
나도 작은 변신을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