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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우리 아들이… 사고친 거 같아요
1982년 2월 26일 낮 12시 30분경.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있는 한일은행 본점에서는 소란을 피우는 한 청년과 은행 직원 간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두 사람이 뒤엉키는가 싶던 그때였다.
‘펑!’
은행 안에서는 느닷없이 커다란 폭발음이 들렸다. 이와 함께 화염이 치솟아 올랐고 은행 안에 있던 사람들이 긴급 대피하는 대소동이 벌어졌다. 시커먼 연기와 함께 은행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시커먼 연기 사이에서 사람들이 발견한 것은 피투성이 상태로 쓰러져 있는 두 구의 사체였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이번에 김원배 경찰청 수사연구관이 전하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은 1982년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한일은행 폭발사건이다.
우선 당시 상황에 대한 김 연구관의 얘기를 들어보자.
“현장에서는 두 구의 사체가 발견됐다. 한 명은 은행 직원으로 오른쪽 발목이 절단된 채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 문제는 나머지 한 구의 사체였다. 사람의 형체가 남아있지 않을 만큼 시신이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 얼굴은 물론 장기까지 모조리 파열돼 있었다. 그런 끔찍한 사체를 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조사결과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사체는 피의자의 것으로 드러났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밝혀낸 당시 상황은 이렇다.
은행 앞에 수상한 청년이 나타난 것은 이날 정오 무렵. 청년은 한참을 은행 앞에서 기웃거렸다고 한다.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은행에는 소수의 직원만이 교대근무를 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간인 탓일까. 아무도 이 낯선 청년을 주시하지 않았다. 청년은 경비가 소홀한 틈을 타 은행장 비서실까지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뒤늦게 청년을 발견한 비서실 김정록 차장(가명·38)이 청년의 앞을 막아섰다.
“어디 가십니까. 여기는 들어오시면 안됩니다.”
“여기 은행장 좀 만나러 왔어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글쎄, 내가 할 말이 있다니까.”
청년은 막무가내였고 김 차장은 청년을 제지하기 위해 온몸으로 막아섰다. 거센 몸싸움이 벌어지면서 두 사람이 뒤엉켜 바닥에 넘어지는 순간 폭발물이 터졌다. 청년은 폭발물을 몸 안에 지니고 있었던 것이었다.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김 차장과 청년은 현장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피의자는 누구일까. 가장 큰 문제는 피의자의 시신이 너무 심하게 훼손돼 육안으로는 신원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수사팀은 간신히 지문이 남아있는 왼쪽 손가락 하나를 발견, 경찰청에 지문감정을 의뢰했다. 하지만 당시는 지문 감정을 의뢰하면 최소한 일주일은 지나야 결과를 통보받을 수 있었다. 피의자의 신원조차 확인되지 않는 막막한 상황에서 이 사건은 갖은 추측들만 난무할 뿐 수사가 좀처럼 진척되지 않았다.
하지만 수사팀 입장에서는 막연히 기다릴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사건 발생 다음날인 2월 27일 오후 한 중년 남성이 강서구의 한 파출소에 찾아왔다. 강서구 ○○동에 사는 황만기 씨(가명·51)였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파출소를 찾아온 황 씨는 무척 초조한 기색이었다. 그는 경찰관을 붙들고 어제 발생한 은행 폭발사건에 대해 상세히 물었다. 그리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자신의 아들 얘기를 꺼냈다. 황 씨는 ‘우리 아들은 평소 외박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그런 애가 어제 자전거를 타고 나간 후 아직까지 귀가하고 있지 않다. 현재 연락도 두절된 상태다’라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황 씨는 혹시 자신의 아들이 어제 사건과 관련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며 몹시 불안해했다.”
‘자전거를 타고 나간 내 아들이 일을 낸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부모의 직감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일까. 당시 이 사건은 거의 모든 신문의 1면을 장식하며 큰 충격을 안겨줬는데 집에서 뉴스를 본 황 씨는 어제부터 연락이 닿지 않는 아들이 떠올랐고 갑자기 불안해졌던 것이다. 보고를 받은 수사팀은 즉시 황 씨를 대동, 피의자의 사체가 안치돼 있던 방배동의 시립행여장의소로 향했다. 그리고 황 씨로부터 ‘내 아들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피의자의 신원이 확인된 순간 아버지인 황 씨는 물론 수사팀도 충격에 휩싸였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 범인이 남긴 자필 메모.
피의자의 이름은 황재식(가명·24). 공직 생활을 하는 부모 밑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자란 인물이었다. 하지만 황 씨는 제각기 사회생활을 하거나 학업에 열중하고 있던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좀처럼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음은 김 연구관의 얘기.
“황재식의 성장환경을 살펴본 결과 이렇다 할 문제점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중산층의 가정에서 특별한 어려움 없이 자란 평범한 청년이었던 것이다.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보였다. 하지만 주변인들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유달리 내성적인 성격이었고 말까지 더듬거리고 있어 대인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다.”
하지만 황 씨가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지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범행 전 황 씨가 극심한 심리적 갈등을 겪어온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다음은 주변인들의 진술 등을 종합한 김 연구관의 얘기다.
“황재식은 5년 전 서울의 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만다. 심한 마음고생을 한 황재식은 1년간 열심히 준비해 재도전했으나 또 낙방하고 만다. 두 번 연속으로 대학입학에 실패한 그가 겪은 좌절감과 소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래들이 모두 캠퍼스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에 비해 자신의 모습은 너무도 초라했을 터였다. 결국 그는 이듬해 군대에 입대하게 된다. 다행히 그는 별 문제없이 군대생활을 마쳤다. 82년 전역한 그는 또다시 서울의 한 대학에 응시했다. 그러나 결과는 이번에도 낙방이었다. 수차례 계속된 대학입시 실패로 인한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심한 스트레스를 겪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황 씨는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후 황 씨는 더욱 말수가 줄어들고 의기소침해졌다고 한다. 당시 이웃주민들은 “겉으론 멀쩡해보였으나 이따금 정신이상자처럼 엉뚱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조사결과 수사팀은 “연이은 대학입시 실패로 심한 좌절감을 느껴오던 피의자가 대학진학을 포기한 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저지른 범행”이라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황 씨의 범행은 단순 우발범행이 아니었다. 수사팀은 황 씨가 세운 치밀한 범행계획서를 확보했다. 당시 황 씨가 1차 범행 장소를 신탁은행 본점으로 계획했다가 한일은행 본점으로 변경한 사실도 드러났다.
하지만 황 씨가 왜 하필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은행을 무대로 범행을 계획했는지에 대해서는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아 의문을 더했다. 대학입시 실패로 인한 좌절감 및 열등감 그로 인한 사회부적응 등의 이유만으로 그와 같은 범행을 저지른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황 씨는 내성적이고 여린 성격으로 이렇다 할 말썽을 일으킨 적도 없었다. 또 경제적인 면에서도 은행강도를 저지를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범행에 사용한 폭발물도 황 씨가 직접 제작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어떤 경위로 그가 사제폭발물을 만들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끝내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는 인터넷은 물론 PC통신도 없던 시절이라 요즘처럼 온라인을 통해 사제폭발물 제작 방법을 알아내는 것도 불가능했다. 따라서 경찰은 황 씨가 서적 등을 통해 관련 정보와 지식을 얻었을 거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한편 황 씨는 범행 사흘 전인 2월 23일 ‘범행계획서’까지 작성해놓고 실행에 옮긴 것으로 드러나 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황 씨의 방에서는 무려 4페이지 분량의 범행계획서가 발견됐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 계획은 훌륭하게 성취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준비도 철저히 해야지. 하나의 실수도 허용치 않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계획이다. 내일 모레 즉 26일 은행을 털러 간다. 아침운동을 하고 나서 세수하고 미리 준비해 둔 물건들을 가지고 자전거로 간다. 준비한 물건들은 사과상자 2개, 이 속에는 바지, 긴 코트, 신발, 검은 장갑, 철사 등을 넣어야겠다. 집에서 나가기 전에는 목 귀 손 등을 화장하고 면장갑을 낀 뒤 트레이닝 셔츠를 입고 나간다. 자전거 뒤에는 사과상자를 싣는다. 그리고 범행건물(서울신탁은행) 뒤에 자전거를 세운 후, 그 건물 구석진 곳에서 옷을 갈아입는다. 입구에서 회장(은행장)의 행방을 전화로 확인한 뒤 회장실 옆 화장실로 일단 들어간다. 회장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가지고 간 폭탄으로 위협, 이들의 발목을 철사 줄로 차례차례 묶는다. 그리고 회장에게 돈을 보관하는 직원에게 돈을 가져오라고 지시한다. 회장이 거는 전화내용도 같이 들어야 한다. 직원이 돈을 가지고 오면 이 직원도 위협해 발목을 묶은 뒤 다시 서로가 양 손을 묶도록 한다. 마지막 경고를 한 후 빼앗은 돈을 가방에 넣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온다. 도주는 건물 입구에서 택시를 타고 마포 쪽으로 간다. 그 곳에서 내린 다음 옷을 갈아입은 뒤 서울대교쪽 영등포 고속도로를 거쳐 집으로 간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