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시집을 와서 30년인데, 지난 11월25일 처음으로 시댁 시제에 참석하였습니다. 나의 남편의 증조할아버지는 둘째라 증조할아버지를 시조로 선산은 양도면 길정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증조할아버지의 형님의 후손되신 분이 조상을 모시고 있고, 선산은 화도면 내리(장사곡) 즉 마니산 자락에 있습니다. 올해 시제를 위해 처음으로 본가 선산을 찾아갔습니다.
우리 남편은 전주 이씨 효령대군 금령부정파의 후손입니다. 효령대군(孝寧大君1대)의 둘째 아들 서원군 친(瑞原君 친 2대), 그의 셋째 아들 제천군 온(堤川君 蒀 3대), 그의 넷째 아들이 금령부정 경손(金寧副正 慶孫4대)입니다. 경손에게는 아들이 없었는지 서원군 친의 6남 청거수 혜(淸渠守 蕙)의 아들인 씨양부정 의손(義孫)의 아들인 림(琳 5대)이 양자로 대를 이어갔습니다.
림의 아들이 춘년(春年 6대)이고, 그의 둘째 아들이 고(皐 7대), 그리고 그의 아들이 응삼(應삼 8대)입니다. 그런데 그 응삼에게 역시 아들이 없어서 양자로 온 사람이 윤생(胤生 9대)입니다. 신기하는 것이 효령대군, 서원군, 제천군으로 이어가다 4대째 금령부정이 후사가 없었고, 림, 춘년, 고, 응삼으로 어어가는데, 또 4대째 응삼에게 후사가 없는 것입니다. 반복하여 네 번째 사람이 후사가 없습니다. 원리강론을 공부하면 4라는 숫자가 원리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고 알게 됩니다. 사위기대四位基臺 등 있습니다만, 왠지 4수를 완성케 못하는 한이 있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윤생 부터는 대가 끈켰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한민족의 수난 역사를 생각하면, 호적에 기재하기 전에 수난을 겪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일률적一律的으로 판단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일단 윤생 이후는 대가 끈기지 않고 이어가니 윤생의 핏줄이 시댁의 조상이 된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호적만으로 자세히 알아볼 수가 없지만, 윤생의 생부가 동백(東伯)으로 되어 있습니다. 생부 동백 견하(生父 東伯見下) 라고 써있는데, 동백이 사람의 이름이라면 서원군 친의 아들 혜의 또 다른 아들 음평부정 효손의 자손 중에 동백이라는 자가 있는데, 그의 아들이 아닌가 추측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먼저 입양된 씨양부정 의손과 음평부정 효손은 형제라 우리 시댁은 같은 서원군 친의 후손으로 대를 이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백에게 윤생이라는 아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어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동백이란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를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다 견하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기회가 있으면 전문가에게 문의하고 싶습니다.
윤생의 첫째 아들이 태진(泰진 10대), 그의 첫째 아들이 석구(碩耉 11대)입니다. 석구는 무과 甲科(갑과)第一人(제일인)及第(급제)出身(출신)이고, 奉正大夫(봉정대부) 中訓大夫(중훈대부)를 임한 사람입니다. 그의 아들이 도흥(道興 12대)이고, 도흥의 아들이 영록(永祿 13대), 그의 둘재 아들이 의택(義宅 14대), 의택의 아들이 회중(會仲 15대)이고 회중의 아들이 근우(根宇16대)입니다. 금령부정 강화종회는 근우부터 시작하여 근우의 묘을 시작으로 화도면 내리(마니산 자락)에 조상을 모시고 있습니다.
근우가 정해丁亥생으로 되어 있으니 역산(우리 남편이 경자년1960년생인데, 그 해부터 육십갑자를 역산했습니다)하면 1887년생이 됩니다. 1887년이라면 메시아 재강림 준비시대인 것 같습니다. 섭리적으로 메시아를 맞이할 때라서 그런지, 아니면 그 때부터 근대라 기록이 남아 있어서인지 모르지만, 그 때부터 자세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근우의 아들부터는 신기한 정도로 대대 아들을 4명 낳았습니다. 근우는 슬하에 선의, 상의, 명의, 순의의 네 아들을 둡니다. 그 중 둘째 상의(商儀 17대)가 남편의 증조할아버지고 나의 시댁 조상입니다. 그래서 선의의 후손이 본가 묘를 지켰고, 선의의 증손자가 되신 분이 본가 큰 어르신으로 시제를 주관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셋째 명의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증조 할아버지인 상의의 둘째 아들이 양자로 가서 대를 이어갑니다.
상의는 친부와 같이 슬하에 기현, 기창, 기경, 기성이라는 네 아들을 둡니다. 그 중 장님인 기현(起賢 18대)이 남편의 할아버지가 됩니다. (참고로 기창이 명의의 양자로 갔습니다.) 기현 할아버지도 슬하에 강수, 강윤, 강렬, 강묵의 넷 아들을 둡니다. 그 중 강윤(康允 19대)이 남편의 아버지이자 나의 시아버지 십니다. 실은 기현 시할아버지의 아들 중 막내 강묵 삼촌 댁은 대를 이어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시아버지도 슬하에 넷 아들을 두셨습니다. 아주버니, 남편, 시동생 두명입니다. 역시 여기서도 시동생 한 사람은 장애를 안고 장가를 못가고 타계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가 청평수련원(현 HJ천보수련원)에 가서 1세미혼축복을 시키고 축복가정을 만들었지만, 지상에서는 장가를 가지 못했으니 후사가 없습니다. 이렇게 보니까 이근우 조상님 이후에 넷 아들씩 낳은데도 꼭 아들 하나는 후사를 남기지 못했습니다. 선조 때는 종적으로 4수를 완성 못했는데, 근대에는 횡적으로 4수를 완성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내년 26년은 효령대군 탄생630주년이 됩니다. 당시 만90세까지 사셨다는 것 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현재 전주 이씨 중 효령대군의 후손이 가장 많다고 하니 대단합니다. 그런데, 번성하니 좋다고만 볼 수가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모국에 있을 때, 가계도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가르쳐주신 선생님이 “아들이 많다는 것이 그민큼 탕감하는 내용도 많다고도 볼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즉 탕감하는 내용이 많으니 소수의 후손으로 짊어지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으로 나누어서 탕감해야 후대에 이어갈 수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타락세계에서 그런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모드에 해당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참부모님께 축복을 받아 자녀를 많이 낳은 경우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런 글을 쓴 것이 혹시나 전주 이씨 가문에서 더욱 자세히 아신 분이 계신다면, 가르침을 받고 싶어서 입니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 그져 흥미를 느끼니 알아보는 뿐입니다. 내가 쓴 부분 중에 잘 못 쓴 것이 있다면 알려주십사 하는 마음입니다.
지금은 참어머님의 은사로 천보역사가 있으므로 큰 탕감내용도 홀로 쉽게 짊어질 수가 있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참부모님을 알고 축복을 받은 우리는 얼마나 복이 많은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참부모님께서 축복가정들에게 “신종족메시아”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횡적인 전도와 함께 종적인 조상들도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어느 선배가 하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 분은 어느 지역에 파송되면 우선 그 지역의 도서관을 찾아 그 지역의 역사부터 배운다 합니다. 전도할 때, 대상자의 과거 역사까지 올라가 그 사람의 배경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알아주고 이해해준다는 것입니다. 실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만족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과거 배경나 조상까지 알아주면 더욱 감동할 것이다고 합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해 못할 때가 많지만, 과거 배경과 조상을 알고나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도 공감하니 이렇게 가계도를 연구합니다. 기회가 있으면 시어머니의 조상, 시할머니의 조상 등도 알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