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고당 형님과 바둑을 두는데 허리가 아프다고 엄살을 떨길래, 왜 그러냐고 물었다.
아내와 돼지감자 파느라고 힘을 썼다고 했다.
매일 앉아서 바둑 두고 막걸리나 마시는 형님으로서는 그런 일 마저도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생색을 낼 만했다.
나 역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돼자감자로 깍두기를 담았다고 막걸리 안주로 나왔다.
익지 않아서 인지 맛이 없었다. 무로 담은 깍두기가 훨씬 낫다.
그러나 열심히 먹었다. 다행히 막걸리가 맛이 좋아서 형편없는 돼지감자를 도와주었다.
내가 맛 없는 돼지 감자를 열심히 먹은 이유가 또 하나가 있다.
언젠가 ‘나는 자연인이다’ 방송에서 돼지감자를 파서 김치를 만드는 과정을 보았는데, 화면을 보고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돼지감자가 당뇨에 좋다는 둥 그런 약삭 빠른 생각이 아니었다.
단순히 먹어보고 싶다는 것 뿐이었다.
그것이 실현되었다. 막걸리를 먹고 나서 형수가 돼지감자 깍두기를 조금 싸주셨다.
엄살장이 형님의 노동의 댓가를 드디어 맛 볼 순간과 그토록 기대했던 돼지감자 깍두기를 맛 보게 된 것이다.
나는 이런 것들을 소중히 여긴다. 엄청난 레시피를 가진 유명한 요리나 특별히 외국의 맛있다는 음식이 아니라, 내 주변에서의 소박하고 아무리 주고 받아도 부담없는 음식과 간단한 레시피의 요리를 좋아한다.
내가 소중히 여긴다는 의미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상어지느러미나 제비집이나 철갑상어 알로 만든 요리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나는 삶의 중요한 포인트는 철저히 자기 중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의 인문학이다.
자기 눈으로 세상을 볼 것, 자기 코로 냄새를 맡을 것, 자기 귀로 소리를 들을 것, 자기 가슴으로 여자를 사랑할 것.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의 시선이 아닌, 세상의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본다. 세상의 시선이란, 결국 돈, 전문가, 방송의 시선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남의 시선으로 살아간다.
남의 시선으로 살아가면 행복해지지 못하고 결국은 불행해 진다.
자기의 시선으로 살아가면 삶에 책임을 질 수 있지만, 남의 시선으로 살아가면 잘못해 놓고도 책임을 회피한다.
돼지감자 깍두기는 그래서 소중한 것이고, 물론 철저히 나의 시선이고 나의 삶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