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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상 최대의 덩케르크 철수작전 ]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2차 세계대전 초기, 절망적인 전황에서 연합군을 구원한 사상 최대 규모의 탈출 작전을 말합니다. 이 철수작전은 독일의 프랑스 침공 여파로 서부전선이 완전 붕괴되어 전면패배의 위기에 봉착해 있던 연합국에게 항전의지를 되살리고 사기를 크게 올렸으며, 향후 대반격의 단초를 제공했습니다.
세계 전사상 최대 규모의 해상 탈출작전이었습니다. 이와 비견되는 규모의 작전으로 한국전쟁 당시의 흥남 철수 작전이 있습니다. 이쪽의 경우 병사 10만 민간인 9만명 규모로 약간 작지만 대신 다이나모 작전과 달리 장비와 물자들도 적에게 넘기지 않고 대부분 성공적으로 철수시켰습니다.
1940년 5월 10일, 독일군의 전면적 침공으로 서부전선이 마침내 포화에 휩싸이게 됩니다. 베네룩스 3국은 물론, 영프 연합군도 각지에서 참패와 후퇴만을 거듭했으며, 독일군이 아르덴 산림지대를 돌파하고 뫼즈 강을 넘으며 연합국이 예측치 못한 대규모 우회포위기동으로 주력부대가 모조리 포위섬멸 될 위기에 빠졌습니다.
연합국은 아라에서 간신히 반격을 개시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독일군에 완전히 포위되고 맙니다. 독일군 구데리안의 기갑부대가 퇴로가 없는 연합군을 짓밟기 위해 빠른 속도로 진격하고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포위망에는,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계속되는 연전연패로 사기가 땅에 떨어진 영국·프랑스·벨기에의 군인 수십만 명이 갇혀 있었습니다. 프랑스 군 지휘부는 포위망 내부와 외부에서의 동시반격으로 이들을 구원한다는 계획을 실행하려 했으나 사실상 불가능한 계획이었습니다.
< 철수 결정 >
그 시점에서 연합군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단 하나였습니다. 영국 대륙 파견군 사령관 고트 장군은 벌써 며칠째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이미 처칠 수상으로부터 대륙파견군 전 병력을 프랑스로부터 철수시켜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진 상태였지만, 또 한편 현재의 직속 상관격인 프랑스의 베이강 원수로부터는 롬멜의 전차대를 저지하기 위해 출동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는 상태였죠.
그는 영국의 역대 어느 지휘관보다도 곤혹스런 선택을 내려야하는 입장에 처해 있는 자신의 운명을 원망했습니다. “내가 처음 청년장교로 군생활을 시작하던 그때, 오늘 이처럼 처참한 패배 속에 빠진 우리 영국군을 이끌게 될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마침내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우리는 영국으로 돌아간다.”
철수 항구로 선정된 덩케르크에서 배를 타고 반나절 남짓이면 영불 해협을 건너 영국의 남단 <도버> 항구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모든 전선에서 만신창이로 찢어진 영국군은 자력으로 전선을 탈출하여 덩케르크에 집결해야 하지만, 당장 그 부대들에게 철수명령을 전달하는 것도 큰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독일군이 영국군보다 더 빠른 속도로 덩케르크를 행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독일군 최선봉인 구데리안의 전차부대가 덩케르크로부터 불과 20km 앞둔 <아>운하에 도착한 5월 24일에는 철수명령을 받은 영국군 부대들이 덩케르크를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독일전차병들도 지금 자신들의 손에 영국대륙 파견군 잔존 병력 전체의 목에 걸린 밧줄의 한 끄트머리가 쥐어져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 그들은 이제 힘껏 그 밧줄을 잡아당기기만 하면 되게 되어 있습니다.
* 구데리안
25일 아침, <아> 운하에 임시 가교가 설치되고 첫 전차가 굉음을 울리며 그것을 통과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 한통의 전문이 날아 들었습니다. “귀관의 부대는 일단 현 위치에 정지하고 추후명령을 기다릴 것”
구데리안은 기가 막혔습니다. 무기조차 집어던진 적의 철수병력이 집결해 있는 덩케르크에 전차를 몰고 달려가 완전히 일방적인 집단학살을 감행 할 수 있는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포기하라니...!
절대로 제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명령을 내릴 턱이 없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었고, 더구나 히틀러 총통이 직접 내란 명령이었던 것입니다. 그 전날 오후에 룬트슈테트 원수의 A집단군 사령부를 예고 없이 방문한 히틀러가 난데없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2차 대전의 전 기간을 통하여 독일군이 저지른 가장 큰 작전상의 실패 중 하나이며 이 뜻밖의 행운으로 목숨을 건진 수십만 명의 연합군 장병들조차 끝내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전쟁이 끝난 후에도 수많은 역사가와 전술가들이 그 이유를 규명하기 위해 고심해야 했던 것과는 달리 히틀러가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 실제 덩케르크 해안에 불시착한 영국 비행기
전쟁이 터지고 난 지난 보름간 너무나도 수월하게 얻어온 손쉬운 승리가 히틀러로 하여금 새삼스런 조심성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스스로 전략의 천재임을 내세우며 장군들의 전통적인 전술이론을 비웃던 그였지만, 전차부대가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전선 깊숙이 진격해 들어가자 히틀러는 일말의 불안을 느꼈던 것입니다.
보급로가 길게 연장되고 취약한 옆구리가 노출됨으로써 금쪽처럼 아끼는 전차대가 적의 포위망에 걸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는 새삼스러운 조심성이 일어났던 겁니다.
더도 말고 딱 반나절만 더 전차부대를 돌진시켰더라면 덩케르크 백사장은 영국군의 집단묘지가 되었을 것이 틀림없었지만... 하여간 구데리안은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발이 묶여 버렸습니다.
* 영화에서...
덩케르크 시내의 지붕들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쌍안경으로 해안을 살펴 본 구데리안은 분노로 치를 떨었습니다. 철수하는 영국군이 개미떼처럼 새카맣게 항구의 백사장을 뒤덮은 채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직접 총통에게 전화를 걸어 전차의 캐터필러로 영국군을 깔아뭉개는 것쯤은 아주 식은 죽 먹기라는 것을 재차 설득했지만 히틀러는 결정을 번복하려들지 않았습니다.
“걱정 말아, 자네들의 전차는 파리를 함락시키는 더 큰 할 일이 남아있어. 그까짓 영국군 패잔병들 쯤이야 우리 공군이 토끼 사냥하듯 쓸어버릴 수 있을거야”
각 전선에 분산되어 있던 영국군이 덩케르크를 향해 퇴각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상당수의 프랑스군까지 뒤따라왔고, 철수작전을 알게 된 네델란드, 벨기에군 병사들까지 꾸역꾸역 덩케르크로 몰려들었습니다.
* 영화에서...
프랑스군 총사령관 베이강 원수는 산산히 잘린 통신 체계로 인해 철수작전이 개시된 지 이틀이야 지난 뒤에야 영국군의 단독철수 작전을 알게 되었지만, 포위된 프랑스 제1군까지 함께 데려가 줄 것을 고트장군에게 요청했고, 그것은 실로 오랜만에 이 노인이 보여준 지각있는 행동이기도 했습니다.
독일군의 포위망을 뚫고 덩케르크로 발길을 재촉하는 영국군 병사들이 목격한 것은 파국적인 종말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도로를 가득 메운 피난민들 중에서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을은 불타고 있었고, 여자들의 비명과 어린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 속에서 그들은 오직 “독일군이 온다”는 말을 주문처럼 중얼대며 무엇에 홀린 듯 다급한 발길을 재촉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도 없이 텅 비어버린 양복점에는 양복들이 그대로 걸려 있었고, 그런 경황 중에도 치즈와 포도주로 가득찬 주인없는 창고를 발견하여 전 중대원이 파티를 벌인 재수좋은 부대도 있었습니다. 철수하는 이들을 가장 괴롭힌 것은 독일 공군기들이었습니다.
폭격을 받아 도로 한가운데서 불타고 있는 트럭의 운전석에는 새까맣게 불타버린 운전병의 시체가 그대로 앉아 있었고, 주인 잃은 개들이 시체 사이를 뒤지고 다니며 먹을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독일 전투기의 소음이 들리면 병사들은 일제히 길 옆 도랑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비행기가 제 마음대로 하늘을 휘저으며 총탄을 퍼붓다가 돌아가면 다시 도랑에서 기어나와 먼지를 털고 갈 길을 재촉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지치고 초라한 행렬이 덩케르트를 향해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 영화에서...
< 철수시작- 다이나모 작전 >
영국 남부 켄트 주의 해안에서부터 템즈 강에 이르기까지 영국은 며칠 전부터 온통 북새통이었습니다. 영국 전역의 배란 배는 모두 해군성의 징발명령이 내려졌고, 이 배들이 모두 프랑스와 마주보는 도버 해안으로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다이나모 작전>이라고 명명된 이 철수작전에 가장 적합한 배는 구축함이었습니다. 속도가 빠른 이 배라면 하루에 두 번 이상 덩케르크까지 왕복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많은 병력을 실을 수 있지만, 당시 영국해군이 사용할 수 있는 구축함 41척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었고, 이들을 모두 불러 모으는 데만 석달 이상은 족히 걸릴 터였습니다.
그래서 내려진 궁여지책이 민간 선박들을 모조리 동원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템즈강의 유람선으로부터 구닥다리 증기선, 개인 소유의 호화 요트에 이르기까지 온갖 배가 망라되어 있었습니다. 배의 소유주인 민간인들의 불평 따위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징발대상에서 제외된 침몰직전의 낡은 어선과 소형 모터보트들의 주인들까지 자기 배를 이끌고 자발적으로 달려왔고, 자기 배를 그냥 해군에 넘겨 줄 것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그것을 조종하여 덩케르크까지 가겠다고 고집하여 해군 당국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포츠머드 항에서 온 어느 구식 증기선의 기관사는 관구사령관 윌리엄 제임스 제독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군님이 데리고 계신 젊은이들이 이 배의 구닥다리 엔진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지 걱정스러워서 그럽네다. 저는 이미 40년 이상 이놈을 몰아왔습니다요” 제독이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진짜 전쟁입니다. 총알이 빗발처럼 날아오는... 당신의 안정을 염려해서 말리는 겁니다.
노인이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고 말했습니다. “저, 실례지만...설마 장군께서 갈리폴리 전투를 모르시진 않겠지요? 저는 그때 거기서 싸웠습니다요”
그 지옥과도 같았던 1차대전의 사투를 제독이 모를 턱이 없었습니다. 노인을 두말할 것도 없이 자기 배를 끌고 철수 작전에 참가하는 것을 허락받았습니다.
1940년 5월 26일.
템즈 강의 거룻배, 연안 화물선, 도버해협을 왕복하던 페리선 등 각양각색의 배들로 구성된 선단이 덩케르크를 향해 출항했습니다. 그러자 해군당국에 의해 참가를 거절당하거나 그런 절차조차 생략해버린, 애국심에 불타는 시민들이 모는 온갖 배들이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13~14세의 어린 소년들로 구성된 해양 소년단의 연습용 돛단배, 경기용 요트들은 선도하는 구축함의 스피커가 아무리 되돌아가라는 권고방송을 내보내도 도무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괜찮아요. 우리도 군인 아저씨들을 한 다섯 명쯤은 태울 수 있다구요!”
해협을 건너는 일은 덩케르크 해안 집결을 끝낸 병사들의 탈출행로만큼이나 힘든 상황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등대의 불을 모두 꺼버린 데다가 선박에도 엄격한 등화관제가 실시되었기 때문에 항법 장치가 빈약한 민간 선박들은 오직 선도 구축함의 유도에 따라 칠흙 같은 밤바다를 헤쳐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바다 곳곳에는 영국 해군이 본토 방위를 위해 부설해 둔 기뢰가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랑스 땅이 점점 가까워 올수록 위험은 점전 더 증대되어 갔습니다. 독일군이 이미 칼레 해안에다 대포를 배치해 놓고 영국쪽에서 오는 모든 배들을 향해 열렬히 환영할 준비를 마쳐 놓았던 겁니다.
거기다 독일공군의 슈트카 폭격기들도 이 제발로 걸어오는 먹이들을 곱게 봐줄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런 배들은 속도마저 느려서 독일 전투기들의 폭격연습 표적으로 더없이 안성맞춤이었고, 워낙 밀집 대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폭격이 시작된다 해도 지그재그 대피행동조차 전혀 불가능했습니다.
선단이 프랑스 해역으로 진입하자 거기에 탄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표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대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폭격을 받은 해안의 유류저장 탱크에 불이 붙어 덩케르크의 하늘이 온통 검은 연기로 가득 뒤덮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연기가 연막구실을 함으로써 독일 전투기의 시야를 가려주고 있다는 것에서 그나마 어느 정도 위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해안을 향해 접근해 가던 선원들은 믿을 수 없을만큼 장엄한 광경에 숙연해졌습니다.
파괴된 부두를 가득 메우고 서있는 영국 병사들은 하나같이 초췌하고 피로에 찌든 모습이었지만 거기에서 무질서한 패주의 흔적 따위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방파제와 부두를 완전히 뒤덮고 질서정연하게 대오를 맞추어 도열한 대열의 선두는 이미 바닷물이 목까지 차오른 상태였지만, 병사들은 한결같이 대영제국 군인의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음이 역력했습니다.
그런 장병들의 머리위로 독일 공군기들이 제 마음대로 설쳐대고 있었습니다. 바늘 꽂을 틈도 없이 빼곡히 부두를 메운 병사들은 독일기가 기총소사를 퍼부으며 달겨 들어도 그저 그 자리에 납작이 엎드려 기총소사의 길다란 궤적이 자신을 피해 가기만을 기도할 뿐, 아무런 대피방법이 없었습니다.
철수선박들이 서둘러 병사들을 싣기 시작하자 독일 전투기들의 공격은 그 배들로 옮겨졌습니다. 600 여명이 탑승을 마친 구식 외륜선 파넬라호에 한 발의 폭탄이 명중하자 무수한 인간의 육신과 팔다리가 마치 폭죽놀이 화약의 불꽃처럼 해면위에 흩뿌려졌습니다. 당황한 민간이 항해사들이 서툰 대피행동을 시도하다가 서로 충돌하여 침몰하는 사태도 속출했습니다.
덩케르크 해안은 원래 조수간만의 차가 7m나 되는데다 파도조차 거칠고 높습니다. 작은 모터보트들이 거친 파도에 휩싸여 방파제 위로 내동댕이쳐지면서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런 경황에도 어느 군 지휘관 못지않은 침착함과 용기를 보여준 민간인 선장들도 간혹 있었습니다. 빙산에 충돌하여 침몰해 버린 그 유명한 타이타닉호의 승무원으로, 몇 안되는 생존자 중의 하나였던 라이톨러 퇴역 해군중령은 17세의 아들과 함께 자신의 요트 선다우너 호를 몰고 이 작전에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침착하게 자신의 배를 방파제에 접안시키고 병사들을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맨아랫쪽의 선복을 가득 메운 병사들만 해도 70명이 넘었고, 여기에다 갑판에 50명을 더 태우자 요트의 흘수선(물에 잠기는 선)은 거의 갑판까지 육박해 왔습니다. 130명을 태운 10인승 요트 선다우너는 독일 전투기들이 어지럽게 날고 있는 덩케르크를 뒤로 하고 도버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오후가 되어 썰물 때가 되자 상황은 더 나빠졌습니다. 수심이 약해져 아무리 작은 배조차도 해안 가까이 접안시킬 수 없게 되자 많은 병사들이 장비를 벗어 던지고 배를 향해 헤엄쳐 오기도 했습니다. 그 지옥과 같은 사투 속에서도 뱃사람 특유의 두둑한 배짱과 유머를 잃지 않은 선원들도 있었습니다. 연안 여객선 브라이튼 퀸 호의 어느 선원은 출항하기에 앞서 승선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병사들을 향해 쾌활하게 소리쳤습니다.
“포크스톤, 포크스톤으로 가시는 손님 또 안계십니까? 아, 좌석이 다 찼군요. 죄송하지만 다음 배를 이용해 주십시오”
용감하면서도 임기웅변적인 기지가 속출했습니다. 영국 해군의 소행정 정장 데이비스 대위는 일부러 자신의 배를 전속으로 항진시켜 수심이 낮은 모래톱 위에 좌초시켜 버렸고, 해안에서 헤엄쳐 온 병사들은 이 배를 발판으로 삼아 다른 수송선으로 옮겨 탈 수 있었습니다.
* 슈투카 급강하 폭격기, 내리 꽂힐때 내는 사이렌 소리가 끔찍해서 '제리코의 나팔'이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한명의 병사라도 더 태우기 위해 대형 선박들은 싣고 있던 구명보트를 모두 바다위에 내려놓았고, 보트에 올라탄 병사들은 연신 철모로 물을 퍼내며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노를 저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런 방법으로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으로 돌아오는데 성공한 보트들도 꽤 많았습니다.
승선작업이 계속되는 가운데 독일 공군의 슈투카 폭격기와 메사슈미트 전투기는 그들이 ‘덩케르크의 물오리 사냥’이라고 이름붙인 그 신바람 나는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병사들은 백사장에서 승선차례를 기다리며 전투기가 한번 급강하 할 때마다 배 한척이 박살나는 것을 꼼짝없이 지켜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5월 27일 아침부터 시작된 철수작전은 6월 2일까지 1주일간 계속되었고, 이 기간 동안 영불해협을 오가면서 철수병력을 실어 나른 선박은 거의 900척에 달했습니다. 이 배들이 구출해 낸 영국군은 20만을 넘었고, 10만 명 이상의 프랑스군도 이들을 따라왔습니다.
불합리한 명령에 분통을 터뜨리며 발이 묶여있던 구데리안의 전차들이 덩케르크로 쇄도해 들어온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나 지난 6월 4일 오후였습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그때까지도 해안을 가득 메운채 철수선을 기다리고 있는 프랑스군 병사들이었고, 이들은 모두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때 영국으로 건너간 프랑스, 네델란드, 벨기에군 장병들은 영국 군복으로 갈아입고 이후로도 5년간이나 계속된 본격적인 대독 전쟁에 동참하게 됩니다. 영국군에 자유 폴란드군단, 체코여단 등등의 이름을 가진 외국인 병사들이 유독 많은 것은 이처럼 개전 초기에 독일에 점령당한 유럽 각국의 망명자들을 모두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이 참패로 인해 자존심의 상처와 엄청난 손실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히틀러의 전술척 실책에다 군과 민간이 혼연일체가 된 헌신적인 철수노력에 힘입어 프랑스에 파견되었던 대륙 파견군 병력 대부분을 고스란히 본국으로 철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장병들은 곧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대독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 소중한 전력으로 거듭 태어나게 됩니다.
오늘날까지도 <덩케르크의 철수>라는 말은 일대 혼란속의 비참한 패주를 뜻하는 동시에 절대 절명의 위기속에서도 기적적으로 빠져나온 행운을 상징하는 말로도 기억되고 있습니다.
< 보완, 덩케르크 철수작전 >
* 영국 공군의 분투
그동안 서부 전선에서 온갖 굴욕을 당한 영국 공군도 반격의 칼날을 뽑아들었습니다. 다이나모 작전을 지원하기 위하여 영국 공군은 가용 가능한 전투기가 총동원되어 덩케르크와 영불 해협의 제공권을 장악하기로 계획했으며, 비장의 신예기인 스핏파이어도 출격을 기다렸습니다.
프랑스는 지상에서의 반격을 통한 포위망 돌파를 뒤늦게 포기하고, 영국 측에 자국군도 데리고 가달라고 요청하면서 프랑스군 2개 사단이 후위를 맡아 지연 작전을 펼치기로 했습니다. 한편, 독일은 지상에서의 공세를 강화하는 가운데, 대대적인 항공 작전을 준비했습니다.
영국군은 첫 이틀 동안 45,000명을 탈출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나, 정작 그동안 탈출시킨 인원은 3만 명도 채 안 되면서 영국군 지휘부는 “망했어요”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그 직후부터 폭풍이 몰아치던 영불 해협이 갑자기 고요해지는 기적이 일어나면서 철수 작전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독일군도 이를 방치하지 않았습니다. 슈투카 등 88 등 주력 폭격기들을 대거 투입하여 덩케르크 해안을 무차별 폭격하고 철수 선단을 공격, 다수의 선박을 격침시켰습니다. 그러나 작전 기간 영불 해협의 구름이 짙게 드리우면서 철수하는 선단에 대한 정확한 공격이 어려웠고, 무엇보다 본토의 기지에서 발진하여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도전해오는 영국 공군에 맞서 힘겨운 사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영국 조종사들은 독일 폭격기들을 저지하기 위해 밥 먹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출격했고, 연료가 간당간당해질 때까지 싸우며 덩케르크의 대학살을 막아냈습니다. 5월 29일부터의 기상변화로 영국군은 훨씬 양호한 상태에서 작전이 가능해졌습니다.
항구뿐만 아니라 해변에서도 탈출 병력의 승선이 가능해졌고, 바다가 고요해지면서 탈출선들의 항해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어느 귀족의 보트는 정원의 30배가 넘는 사람들을 태우고 무사히 도착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9일 동안의 작전으로 영국은 총 338,226명을 철수시킬 수 있었습니다. 철수 병력은 영국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며, 이 기적과도 같은 철수로 영국 국민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습니다. 이후 영국 대륙 원정군은 재편성을 시작했으며, 프랑스와 벨기에 병력들도 각자의 망명정부 통제 하에 재조직을 시작했습니다.
* 영국에 도착해서...
작전 기간 동안 철수 선단은 구축함 13척, 대형 선박 9척, 그리고 소형 선박 200여 척, 총 272척이 침몰 및 파괴되는 비교적 가벼운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는 기상 조건 때문이기도 했지만 영국 공군의 결사적인 반격과 엄호 덕분이기도 했습니다. 영국 공군은 작전 기간 동안 총 4,822회 출격을 기록하며 무려 177기의 전투기의 손실을 입어야 했습니다.
프랑스 항복까지 영국이 서부 전선에서 입은 전투기 총 손실이 432기였습니다. 전체 손실의 40%를 덩케르크 철수 작전에서 잃은 것입니다.
곧 있을 영국 본토 항공전을 생각하면 엄청난 전력 손실이었으나 결과론적으로 독일이 영국에 시간을 주는 바람에 살아남았습니다. 덩케르크에서 영국 공군이 보여준 투혼은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독일 폭격기 슈투카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은 지상군 병력은 오히려 '공군 놈들은 독일 놈들이 폭격하고 있는데 어디서 자빠져 있는 거냐면서 공군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반응이 나왔던 것은 공중전 자체가 철수 작전이 진행 중인 해안가와 좀 떨어진 곳에서 전개되고 있었기 때문에, 정작 상공에서는 영국공군 전투기를 거의 볼 수 없었기 때문으로 그 결과 격추당한 조종사들이 철수 병력 대열에 합류하면 그야말로 싸늘한 시선에 푸대접을 받았다고 합니다.
* 프랑스군의 희생
후위를 맡은 프랑스군 2개 사단, 약 34,000명은 결국 탈출에 실패하고 독일군에 항복했습니다. 이들의 엄호가 아니었으면 철수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덩케르크 철수에서 이들의 활약은 상대적으로 묻히고 있습니다.
[ 영화, 덩케르크 ]
영화 <덩케르크>는 2017년 7월 개봉한 영국의 전쟁 영화입니다. 명장 크리스토퍼 놀란이 감독과 각본을 맡은 작품으로, 덩케르크 전투와 다이나모 작전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2016년 5월 현지 프랑스 덩케르크에서 촬영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이나모 작전>이란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 영국군을 포함한 연합군이 독일군에 밀려 포위되었을 때 9일 동안의 목숨을 건 탈출 작전을 말합니다. 민간인들의 작은 선박들까지 박박 긁어 동원하면서 34만 명을 구해낸 기적같은 실화였습니다.
<덩케르크>는 당시의 절박한 상황을 재현하면서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던 젊은 군인들의 모습을 실감나게 묘사 했습니다 .이 영화는 총 3가지 공간과 시간적 테마를 가지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놀란 감독은 자유자재로 시간을 재구성했 전작 <인셉션>과 <‘인터스텔라>처럼 실화의 시간을 재구성하면서 자신만의 작품이라는 인장을 찍었습니다.
즉 육해공을 배경으로 해변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하루, 하늘에서의 한 시간이라는 각기 다른 시간에서 진행된 사건들을 일직선의 평행선상에 놓고 마치 동 시간에 일어난 일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는 여러 개의 서로 교차하는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일직선 상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하루, 한 시간이라는 다른 속도로 전개됩니다.
덩케르크 해안에서의 일주일,
덩케르크로 향했던 민간선박들의 바다에서 하루,
덩케르크 탈출을 지원했던 전투기의 한시간.
전쟁영화가 관객을 매혹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전쟁의 참상을 실감나게 재현하는 스펙터클이라는 볼거리이고, 다른 하나는 참혹한 역사 속에서 휴머니즘을 강조한 극적인 드라마일 것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우리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도 위의 두 가치를 훌륭하게 구현해 낸 수작으로 평가되어 오고 있습니다.
* 토미
그러나 영화 <덩케르크>는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도 뚜렷하게 만족시키지 못하는 작품입니다. 2차 대전을 다루고 있지만 피비린내 나는 전투뿐 아니라 독일군의 그림자조차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날아드는 폭탄과 총알만 있을 뿐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다수의 군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개성적인 캐릭터를 구축하지도 않습니다.
다시 말해 영화는 특정 주인공을 내세우지도, 그에게 감정 이입을 유도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며 감동을 안겨 주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영화의 시간은 해안에서 탈출을 기다리는 군인들의 일주일, 구조를 위해 동원된 민간 선박의 하루 그리고 덩케르크로 향하는 전투기 조종사의 한 시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들 각자의 시공간은 영화 후반부에서 하나의 시간성을 갖게 됩니다.
언뜻 복잡할 수도 있는 구조를 띠고 있지만 이 작품이 보여 주고자 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바로 생존입니다. 눈앞에 고향 땅을 두고 무사히 살아서 돌아가고자 하는 생존에 대한 절실한 욕망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영웅적 주인공이 보여 주는 극적 드라마 대신 절박한 생존의 기록이 더욱 깊게 새겨져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동과 스트레스에 짓이겨지는 군인의 모습은 오히려 유혈이 낭자한 살육전보다 더 생생하게 전쟁의 공포를 안겨줍니다. <덩케르크>는 승리가 아닌, 살아있는 생존 자체가 곧 승리임을 영화의 시청각적 체험을 통해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적인 완성도 역시 놀라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놀란 감독은 애초부터 가급적 CG를 피하고 실사촬영을 고집해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리얼리즘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1,300여 명의 보조 출연자들과 실제 덩케르크 작전에 참여한 민간 선박 20여 척과 당시 전투기였던 스핏파이어를 새롭게 손을 보고 영화에 등장시켰습니다.
<덩케르크>는 금년도 제90회 아카데미상 편집상·음향효과상, 음향편집상을 수상했습니다.
[ 상세한 줄거리 ]
* 해안에서의 1주일
파죽지세의 독일의 전격전으로 연합군은 작은 해안 도시 덩케르크에 고립되고 맙니다. 절망에 빠져있는 연합군 장병들은 한편으로는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영국 육군 병사 토미의 분대는 처량하게 하늘에서 항복하라는 독일군의 삐라가 흩날리는 덩케르크 시내를 바삐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때 한 병사는 수도가 끊겨 호스에 남아 있는 물을 몇방울이라도 마시려고 애를 쓰고, 다른 병사는 담배 꽁초를 줍는 등 몰골들이 영 말이 아닙니다.그때 뒤에서 갑작스럽게 독일군이 사격을 가해 오고, 동료들이 하나 둘씩 쓰러지는 가운데 운 좋게 토미만 살아남았습니다. 토미는 혼비백산하여 총도 잃어버리고 목숨만 간신히 건져 도망칩니다.
그러다 바리케이드와 마주치는데 이번에는 앞쪽에서 총알이 쏟아집니다. 독일군이 아니라 프랑스군이었습니다. 토미가 독일군인 줄 알고 마구 쏘아댄 것이었습니다. 불어로 영국인이라고 소리치자 다행히 알아듣고 사격을 멈춰 이번에도 간신히 살아남습니다. 프랑스군은 토미를 철수 대열로 보내주지만 떨떠름한 표정을 짓습니다.
해안가에 온 토미는 구석으로 가 용변을 보려다가 시신을 매장하는 병사 깁슨(군복 명찰의 이름이 깁슨입니다)을 발견합니다. 토미는 시체를 묻는 깁슨을 돕고 물을 얻어 마십니다. 토미는 해안에서 승선하려고 줄을 찾아보지만 여기는 척탄병(영국군 근위대 중 척탄 근위대) 줄이니 딴 데로 가라는 등 쫓겨나면서 다른 쪽의 머나먼 승선줄을 바라봅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독일 공군이 폭격을 가해옵니다. 이때부터 관객은 영화 내에서 처음으로 슈투카 폭격기가 급강하 폭격을 할 때 나오는 특유의 사이렌 소리(당시 '제리코의 나팔'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를 듣게 되는데, 몸서리가 쳐질 정도의 끔찍한 소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폭격은 토미 쪽으로 점차 가까워지다가 토미 조금 옆에서 부질없는 대공사격을 하던 병사를 갈가리 찢어버리고 맙니다. 아슬아슬하게 폭격을 피하고 있는데, 근처의 아군이 도대체 우리 비행기들은 어딨냐며 분통을 터뜨립니다.독일기가 돌아가고 혼란이 수습되던 중, 토미와 깁슨은 시체들 사이에서 들것에 실린 채 방치되어 있는 아직 살아 있는 한 부상병을 발견합니다.
둘은 그 부상병을 실은 들것을 들고 잔교로 달려가고, 잔교 위에 빽빽이 있는 다른 영국군과 프랑스군들도 부상병을 위해 길을 열어줍니다.
잔교 초입에서 지키던 장교는 배는 2분 안에 출발하고 어차피 시간 내에 배까지 가지 못할 거라며 다음 배를 기다리라고 하지만 둘은 장교가 프랑스군들과 얘기하는 틈을 타 잔교로 진입합니다. 토미와 깁슨은 부숴져 있던 잔교도 아슬아슬하게 간신히 건너며 간발의 차이로 부상병과 함께 병원선에 오르지만, 승선을 감독하던 해군하사가 둘을 향해 내려서 줄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돌아가는 척하다 잔교 밑으로 내려가 숨습니다.
이때 볼튼 해군 중령은 가까이 온 해군 제독에게서 현재의 전황과 함께 철수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듣게 됩니다. 제독은 상황이 매우 안 좋아서 완전히 포위된 상태에 충분한 숫자의 배도 오지 않아 민간 선박들을 징발중이지만 잘해야 전체 병력의 1/10 이하인 3만명 정도나 구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처칠 수상은 우군인 프랑스군 또한 포함하여 전원 탈출시킬 것을 명령했다지만, 그 자리의 모두 그건 불가능하다 판단하고 제독은 그렇다면 영국군이 우선이라고 선언합니다. 이 때 또다시 시작된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병원선이 침몰하기 시작하고, 잔교 아래 매달려 있던 토미와 깁슨은 바다로 뛰어든 장병들을 구조합니다.
그러다가 배와 잔교 사이에 끼어 죽을 위기에 처한 스코틀랜드 병사 알렉스를 구해줍니다. 상황을 수습하던 볼튼 중령은 쫄딱 젖은 토미와 깁슨을 알렉스처럼 배에 타고 있다가 겨우 빠져나온 병사로 착각하고 바로 뒤이어 도착한 구축함에 오를 수 있게 해줍니다.
토미가 먼저 구조선 안으로 들어가고 뒤따라오던 깁슨은 담요조차 거절하고 배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채 홀로 갑판 쪽에서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던 알렉스는 깁슨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을 보지만 일단 배 안으로 들어가 토미와 함께 토스트와 차로 요기를 합니다.
깁슨이 왜 들어오지 않는지 궁금해진 알렉스는 토미에게 질문을 던지나 토미 역시 자세히는 모르고, 배가 침몰할 때에 대비해 탈출구에 가까이 있는 것이라 짐작하며, 자신 또한 문쪽에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러는 찰라, 구축함 역시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합니다.
물이 거침없이 차오르고 토미와 알렉스는 그대로 갑판 아래에서 익사할 뻔했는데 다행히도 밖에 있던 깁슨이 문을 열어준 덕분에 간신히 바다로 탈출합니다. 둘은 소형 구명정 쪽으로 헤엄쳐가고 배 위로 올라가려 했으나, 타고 있던 한 육군 소위가 배에 인원이 너무 많아 더 이상 올라오면 뒤집어지며 마침 수온도 적당해 저체온증에 걸릴 위험도 없다는 이유로 제지합니다.
어차피 이 작은 구명정으로 바다를 건널 수 도 없고 다시 해안으로 돌아가는 길이니 곧 올 다른 구명정에 타라고 하는데, 먼저 탈출했던 깁슨이 다행히 이미 배에 타있었고 남들 몰래 줄을 내려주어 다행히 토미와 알렉스는 배 끝에 매달려 같이 해안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아침이 밝고, 셋은 모래사장에 무기력하게 드러누워 있다가 대열에서 이탈해 어디론가 향하는 육군 하이랜더(스코틀랜드) 연대 병력들을 발견하고 알렉스가 다가가서 말을 건넵니다. 하이랜더들은 해안 한쪽에 좌초되어 있는 어선에 가서 밀물 때 배가 떠오르길 기다렸다가 탈출할 계획이라고 하자, 토미 일행도 자연스럽게 그들과 합류합니다.
배 안에 처박혀서 밀물을 기다리던 도중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들어오려던 사람을 토미가 낚아채는데 다행히 그는 독일군이 아니라 배를 버리고 피신했던 네덜란드 어부였습니다. 왜 배에 돌아왔고, 배가 뜰 정도의 밀물은 언제 시작하냐며 여러 질문을 하는 사이 독일군이 배에 사격을 가합니다. 배가 좌초된 위치가 독일군이 우굴우굴 하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놀란 분대가 반격하려 하지만 토미는 영점 사격하는 마냥 세 발이 탄착군을 형성하고 있는 탄흔을 보니 사격 연습을 하는 중이라고 추측하고, 반격하면 우리 위치만 들킬 것이라며 만류합니다. 그런데 밀물이 들어오면서 총알구멍으로 물이 새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를 메우려고 다가가던 한 병사가 이어지던 사격에 맞아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들켜버립니다. 이제 밖에서는 연습의 정도를 넘은 직접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분대는 독일군이 배가 아예 뜰 수 없게 만들려고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네덜란드인 선원은 무게만 줄이면 뜰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사격이 이어지자 병사들은 살아남기 위해선 누구 하나가 내려서 무게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나가면 총알받이가 될 판이니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자 알렉스는 이미 나갈 사람은 정해져 있다며 깁슨을 내보내자고 제의합니다. 그는 깁슨이 내내 말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을 근거로 분명 영어를 못하거나 독일식 억양이라 말을 못하는 것이라며 깁슨이 독일의 스파이일 거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하이랜더 분대원들은 계속 버티는 깁슨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고, 토미는 분대원들을 말리며 깁슨에게 말해보라고 설득하고 깁슨은 결국 프랑스어로 말합니다.
그는 매장하던 시체에서 옷과 인식표를 얻어서 영국 육군으로 위장해 배에 타서 덩케르크를 탈출하려던 프랑스 육군 병사였습니다. 분대원들은 깁슨을 영국군을 죽인 뒤 영국군 옷을 훔쳐 입은 프랑스 놈이라고 매도하며 배에서 쫓아내려 하자, 토미는 깁슨이 옷을 벗긴 시체를 묻어주는 걸 자기도 도왔으며, 프랑스군도 아군이고, 어차피 한 명 내려봤자 별 소용없을 거라며 그 와중에 침착하게 깁슨만 내보내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반대합니다.
그러는 와중 본격적으로 밀물이 진행되지만 그만큼 배에 물은 더 들어오는데 독일군의 사격은 계속되고 다 함께 총구멍을 막으려고 애쓰나 대원들은 총탄에 맞습니다. 계속되는 침수에 결국 분대원들은 배를 버리고 이미 수면이 높아져 다행히 독일군의 사격도 중지됐지만, 깁슨은 배를 탈출하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늦게 빠져나오다가 무언가에 걸려서 나가지 못해 그대로 익사하고 맙니다.
토미 일행이 탄 배가 침몰할 때, 지근거리에선 독일 폭격기에게 영국 해군 소해정이 폭격당해 침몰하고 있었고, 이 배에서 새어나온 기름이 주변을 뒤덮은 가운데 영국군 생존자들은 구조하러 온 민간선박 문스톤 호(아래 ‘바다에서 하루’에서 나오는 구조 소형선박)를 향해 기름 범벅이 되어서 헤엄쳐갑니다.
그때 영국 비행기에 격추된 독일 폭격기가 기름 바다 위에 추락하자 불바다가 되고, 깁슨을 내치자고 입에 거품을 물던 하이랜더는 불에 타 죽습니다. 모두 기름에 휩싸이기 직전까지 최대한 많은 병사들을 구하고 마지막에 문스톤 호가 속력을 내기 시작한 그 순간, 배의 선장인 도슨의 아들 피터에 의해 토미가 구조를 받게 됩니다.
한편 잔교에서 구조선을 기다리던 볼튼 중령은 바다 쪽을 바라보고 미소를 짓는데, 해안가의 병력을 태우고자 많은 수의 배들이 새카맣게 덩케르크로 몰려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큰 배, 작은 배, 어선 심지어는 고급 호화 요트까지 가릴 것 없이 군인들을 집에 데려가기 위해 선주들이 직접 배를 몰고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하늘에서 찢어질 듯한 사이렌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1대의 슈투카가 잔교를 폭격하기 위해 급강하를 해오고 볼튼 중령은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 조용히 눈을 감아 죽음을 맞으려 합니다. 하지만 그때 기적적으로 덩케르크 해안을 활공하고 있던 파리어의 스핏파이어의 활약으로 슈투카는 격추되고 영국군의 철수는 순조롭게 진행됩니다.
* 바다에서의 하루
병사들을 구하기 위하여 덩케르크로 항해 중이던 문스톤 호는 침몰해서 끄트머리만 간신히 떠 있는 배에 올라가있던 육군 소위 한사람을 발견합니다. 그를 구조한 뒤 담요를 가져다주고 피터(선장 도슨의 아들)와 조지(피터의 친구)가 위로해보려 하나, 큰 충격을 받은 소위는 완전히 공황상태에 빠져있습니다.
조지는 따뜻한 티를 가져다주며 배안이 더 따뜻하니 안으로 가지 않겠냐며 권하지만 소위는 신경질적으로 컵을 뿌리칩니다. 아버지 도슨은 조지에게 아마 그는 지금 갑판이 더 편할 거라고 말해줍니다.
소위는 배가 가는 방향을 보며 도슨에게 어디로 향하는 거냐고 묻자 덩케르크로 간다는 대답을 듣고 당황하기 시작한다. 유보트의 공격으로 타고 있던 배가 침몰했던 소위는 이런 작은 배로 덩케르크에 가봐야 어차피 죽을 거라고 말하며 제발 배를 돌리자고 애원합니다.
도슨은 일단 선실에 누워 안정하라고 하고 피터는 그를 선실에 안내하며 티를 한 컵 더 갖다 주겠다고 합니다. 조지는 도슨에게 가서 그가 겁쟁이냐고 물어보지만, 도슨은 그는 피격당한 충격으로 제정신이 아니고 평생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 도슨
피터는 소위가 있는 선실의 문고리 쪽을 쳐다보며 잠시 고민을 하다가 선실 문을 잠가 버립니다. 아마도 제정신이 아닌 소위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그를 가둔 것입니다. 잠시 뒤 소위는 문이 잠긴 걸 깨닫고 길길이 날뛰면서 문을 열라고 소리치기 시작하여 도슨은 피터에게 문을 열어주라고 합니다.
뒤늦게 피터가 문을 열었지만 소위는 이미 천장 문을 통해 선실 밖으로 나온 뒤였습니다. 그는 배를 돌리지 않을 걸 숨기려고 자신을 가뒀다고 생각하고 흥분하기 시작합니다. 이성을 잃은 그는 키를 잡아챈 뒤 진로를 돌리려 난동을 부리고 이를 말리던 조지가 튕겨져 나가 선실 아래로 떨어지면서 금속 설비에 뒤통수를 심하게 부딪칩니다.
피터는 심한 부상을 당한 조지를 간호해줍니다. 조지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면서 점차 위독해지고, 아픈 상태에서 비록 자기는 공부는 못하지만 큰일을 해내 지역 신문에 자신이 이름이 실리는 것이 소망이었다고 말합니다.
이후 문스톤 호는 스핏파이어 전투기 한 대가 격추당해 바다 위에 비상 착수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도슨은 스핏파이어를 향해 배를 몰지만 피터는 조종사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며 그냥 가자고 합니다. 하지만 도슨은 그래도 생존자가 있을 수도 있으니 꼭 전투기 쪽으로 가자고 합니다.
한편 콜린스(아래의 ‘하늘에서의 한시간’에서 나오는 조종사)는 조종석 유리창이 망가져서 열리지 않아 꼼짝달싹 못하고 익사 바로 직전까지 가는 위기에 처했는데, 다행히 피터가 노로 유리를 깨트려서 구조합니다.
곧이어 폭격으로 침몰한 소해정과 그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침몰한 민간선박(토미 일행이 탔던 배)에서 헤엄쳐온 병사들을 구조하고, 약간 제정신으로 돌아온 소위도 이를 돕습니다. 바다에서 문스톤 호 위로 올라와서 배 아래 쪽으로 가는 병사들에게 피터는 아래쪽에는 부상자(조지)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지만, 구조된 병사 중 하나였던 알렉스는 피터에게 그는 이미 죽었다고 얘기합니다.
피터는 슬픔에 빠지고, 알렉스는 모포로 시신을 덮어줍니다. 그리고 곧이어 이를 보지 못한 소위가 피터에게 재차 걱정되는 표정으로 조지가 괜찮아지고 있냐고 묻자, 피터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소위는 안도하며 자리로 돌아가고, 이를 본 도슨은 피터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잘했다는 몸짓을 합니다. 병사들을 구출하고 불길을 피해 빠져나가나 싶었지만 독일군 전투기 한 대가 문스톤 호를 노리고 접근합니다.
도슨은 당황하지 않고 키를 잡은 피터에게 자신이 지시를 내리면 즉시 방향을 틀 것을 지시합니다. 침착하게 적기가 근접할 때까지 기다린 도슨은 적기가 사격을 가하는 타이밍을 노려 배를 틀고 기관총탄은 아슬아슬하게 배를 비껴갑니다.
더 큰 목표가 잔뜩 있었기 때문에 적기는 재차 공격하는 대신 그대로 덩케르크 해안으로 향하고, 문스톤 호는 마침내 모든 위기를 벗어납니다. 콜린스는 적기의 기종까지 단번에 알아 보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도슨에게 의문이 생기는데 도슨은 자기 아들이 공군 파일럿이었다고 얘기해줍니다. 콜린스는 피터가 공군이냐고 하자 피터는 자기가 아니라 자기 형이라고 말해주며 전쟁 초기에 전투기를 타고 싸우다 전사했다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도슨이 공군에 관련해서 어느 정도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복선은 깔려 있었습니다. 덩케르크로 가던 도중 3대의 스핏파이어 편대가 자신들 위로 지나갈 때 도슨은 보지도 않고 스핏파이어라고 말합니다. 조지가 어떻게 저 비행기를 보지도 않고 알 수 있었냐고 하니까 롤스로이스 멀린 엔진을 언급하며 아름다운 엔진 소리로 유추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해줍니다.
또한 영화 내내 도슨은 감정적인 모습을 잘 보이지 않고 전투기가 문스톤 호를 공격하려는 와중에도 침착하게 대처할 정도로 평정심을 유지했습니다. 그가 유일하게 감정 변화가 크게 나타나는 때는 콜린스를 구조 할 때였습니다. 배의 엔진이 과열되서 고장날 수 있다는 피터의 경고에도 큰 소리를 내며 '아직 살아있을 수 있다'며 무리를 한 것을 보면 공군으로 활동하다 죽은 장남을 가슴에 묻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국으로 돌아온 뒤 피터는 조지의 이야기를 신문사에 전해주고 조지는 생전의 소망대로 지역 신문사에 영웅으로 실리게 됩니다.
* 하늘에서의 한 시간
편대장의 1호기, 파리어의 2호기, 콜린스의 3호기 등 이들 "포티스 편대" 스핏파이어 전투기들은 항공 엄호를 위해 덩케르크로 출격합니다. 편대장은 연료량을 계속 살피라고 주의를 주는데, 파리어는 70갤런, 콜린스는 68갤런이 남아 있음을 확인합니다.
콜린스는 왜 이들이 영국과 최단거리인 칼레에서 후퇴하지 않는지 질문하지만 편대장은 칼레도 이미 함락되었다고 합니다. 곧 독일의 매서슈미트 전투기를 만난 편대는 짧은 공중전 끝에 승리하지만 편대장기가 격추됩니다. 콜린스의 꼬리를 문 매서슈미트를 파리어가 격추하는 사이 엄호를 받지 못한 편대장기가 격추되고 만 것입니다.
* 파리어
그리고 파리어는 전투 중에 맞은 총탄으로 연료계가 고장난 것을 발견하고 콜린스에게 자신의 연료계가 고장났으니 콜린스에게 주기적으로 연료가 얼마 남았는지 알려 달라고 말하며 지금은 얼마 남아있냐고 묻자 콜린스는 50갤런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복귀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는 콜린스에게 파리어는 임무가 있으므로 그냥 가자고 하고 대신 분필로 계기판에 남은 연료량과 그 연료량을 체크한 시각을 적으며 주기적으로 연료를 알려달라고 합니다. 이후 편대는 소해정을 공격하려는 하인켈 폭격기와 호위전투기 2대를 발견합니다.
호위전투기 1대는 콜린스가 격추했고 폭격기는 파리어가 반파시키자 소해정 폭격을 포기하고 방향을 바꿉니다. 콜린스는 연료량이 이제 15갤런 남았다고 주의를 주지만, 파리어가 호위전투기 2대 중에 한 대가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려는 찰나, 적기 한 대가 나타나 콜린스를 공격합니다.
파리어가 그 두번째 적기도 격추했지만, 그 전에 콜린스의 전투기가 피격되어 바다 위에 비상 착수해야 할 상황이 됩니다. 파리어는 콜린스가 바다 위로 무사히 착수하고 손을 흔드는 것을 보며 떠나갑니다. 콜린스가 비상착륙하기 직전 알려준 15갤런 남은 연료량을 토대로 귀환 시각을 계산하던 파리어는 그 순간 또 다른 폭격기를 발견하고 소해정과 문스톤 호를 공격하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이때 토미 일행이 어선에서 탈출해 소해정 쪽으로 가는 장면도 얼핏 볼 수 있습니다).
파리어는 연료계와 자신의 앞에 있는 폭격기를 번갈아 보며 갈등하다가 결국 귀환을 포기하고 폭격기를 잡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는 와중, 추가로 독일군 전투기가 한 대 나타났지만 파리어는 한참을 애쓴 끝에 간신히 전투기와 폭격기를 모두 격추합니다.
그 순간 연료가 완전히 바닥나 버리고 파리어의 전투기는 무동력 상태로 플랩을 내린 채 글라이더처럼 덩케르크 해변을 활공하게 됩니다. 연료가 바닥나 프로펠러가 멈추는 순간 영화 내내 찢는 소리를 내면서 긴장감을 조성하던 음악마저 멎어버립니다.
파리어는 그 상황에서도 볼튼 중령을 포함한 아군을 공격하려고 급강하 중이던 슈카카 1대를 격추하고 해안에 모여 있던 아군들이 환성을 지릅니다. 잠시 해안 쪽을 바라보던 파리어는 이후 독일군이 진주한 덩케르크 북쪽 해안에 비상착륙합니다.
착륙 이후 파리어는 전투기가 적에게 넘어가지 않도록 조명탄으로 전투기를 불질러버립니다. 불타는 자신의 전투기를 보면서 파리어는 동요하거나 후회하는 표정 없이 담담하게 독일군에게 포로로 붙잡힙니다.
* 스핏파이어 기
* 영국으로 귀환
드디어 문스톤 호는 영국에 도착합니다. 배에서 내리는 아군 숫자를 세던 육군 부사관은 이 조그마한 배가 도대체 몇 명이나 구조한 거냐며 놀라움을 표시합니다. 소위는 도슨과 피터, 들것에 실려 나오는 조지의 시신을 잠시 바라봅니다. 콜린스가 입고 있던 공군복을 보고 한 육군 병사는 공군은 한 게 뭐냐고 퉁명스럽게 말하고 지나갑니다.
그러나 곧바로 뒤에 서있던 도슨이 배에 탄 우리 모두가 공군의 활약을 다 봤다며 콜린스에게 기운을 줍니다. 한편 항구의 한 노인은 생환한 병사들에게 잘했다고 격려를 던지며 담요를 나눠줍니다. 알렉스는 우린 그저 돌아왔을 뿐이라고 말하자 그거면 충분하다면서 위로합니다.
노인은 손을 더듬으며 자신의 앞을 지나던 토미의 얼굴을 어루만지는데, 이를 통해 그가 맹인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토미보다 앞서가던 알렉스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고 그 노인이 자길 보지도 않으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고 여기고 화를 (사실 도망쳐온 자신에게) 냅니다.
* 콜린스
다음날 아침 알렉스는 기차역에서 꼬마에게 여기가 어딘지 물어보고 신문을 하나 달라고 합니다. 창문으로 신문을 넘겨받고 일면 표지만 살짝 본 알렉스는 전쟁에서 지고 돌아온 자신들을 사람들이 비웃을 것이라고 생각해 차마 읽지 못하고 토미에게 신문을 건네줍니다.
이 대사로 보아 알렉스에게는 깁슨이 죽고 자신은 살아 돌아온 데에 대한 죄책감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생환한 군인들에게 맥주와 먹을 것을 주며 환영했고 토미는 신문에 실린 윈스턴 처칠 총리의 그 유명한 연설을 읽습니다.
토미가 읽는 연설문을 배경으로 해안가에 버려진 수많은 영국군의 철모와 무기 그리고 장비들, 집으로 돌아와 조지의 이야기가 실린 신문을 보는 도슨과 피터 가족, 자신의 전투기가 완전히 불탈 때까지 담담하게 기다리고 포로가 되어 잡혀가는 파리어, 그리고 다시 토미를 비추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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