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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느티나무와 사리함 이야기 우리나라 절집에서 간혹 커다란 내진 기둥을 보고 싸리나무 재질이라고 하면서 신령스럽게 말하는 곳들이 있죠? 대표적인게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인데요. 묶어서 빗자루를 만느는 싸리나무가 싸리나무가 기둥으로 쓸만큼 실제 커질 수는 없겠죠? 실제 이런 곳들은 싸리나무가 아니라 느티나무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전에 입적한 스님들이 다비식을 거쳐 수습된 사리를 금동 사리함에 넣어 승탑(사리탑)에 넣기 전에 임시로 넣어놓는 통을 느티나무로 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하다보니 절집에서는 이를 두고 사리나무라 불렸고, 이게 민가에서 된발음이 되며 싸리나무가 된 것으로 추측한답니다. 그럼 왜 느티나무를 임시 사리 보관함의 재료로 사용했을까요? 그 것은 느티나무의 한문표기인 괴목(槐木)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槐 글자 자체가 나무 목(木)에 귀신 귀(鬼)가 붙은 형상이어서 영적인 의미를 내포한다고 본 것이지요. 암튼 큰 절의 일주문이나 본당 기둥을 두고 싸리나무라고 할 때는 느티나무려니 생각하시면 된답니다. ^^ 우리나라 목조 건축물의 재료 변천사 참고로 한반도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때까지 주로 참나무를 이용해 나무건축물을 지었고, 고려시대부터 느티나무와 소나무를 함께 사용했고, 조선시대 들어서 소나무 사용이 주류를 이룹니다. 시대에 따른 나무 사용의 변천 역시 각 시대상을 반영하는데요. 고려시대 느티나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앞서 말씀드린 목재 가공 기술과 공구가 발달되어 목재로써 다듬기 힘들었던 느티나무를 쉽게 가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대표적인 느티나무 기둥은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이 되겠고, 수덕사 대웅전 기둥, 해안사에서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전, 화엄사와 쌍계사의 대웅전 입니다. ^^ 그리고 조선시대 때 소나무가 많이 사용되게 된 것은 고려시대 때 목조건축물을 많이 지으면서 재료가 부족해지고, 농경사회에서 퇴비로 활용하기 위해 산에 있던 낙엽 등등의 유기물들을 채취하여 밭에 사용하면서 산림의 토양이 척박해진 탓에 느티나무나 참나무와 같은 활엽수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였다고 합니다. 즉, 척박한 토양에서 잘 자라는 소나무가 조선시대 때 사용할 수 있는 대안이었고, 목재로써도 훌륭했기에 그때부터는 나라에서 보호를 해가면서 소나무를 키워 목재로써 본격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지요. 참고로 현대에는 다시 이것이 역전되어 소나무가 참나무류의 활엽수에게 밀려나면서 활엽수가 산림을 뒤덮는 형국입니다. 산에 있는 낙업을 긁어다가 퇴비를 만들던 시대가 아니다보니 산림의 토양이 비옥해지고, 상대적으로 많은 영양분을 섭취하면서 빨리 자라는 참나무류의 활엽수들이 소나무를 밀어내며 다시 한반도 산림의 강자로 군림하는 것이지요. 여기에 소나무의 역병이라 불리는 불치병인 소나무재선충까지 가세하며 우리나라 소나무의 설자리는 점차 좁아드는 형국입니다. |
다음에 갈 때는 우리도 단체로 요런 복장을 하고 청수사와 기온거리를 한바퀴 돌아볼까요?
볼만하겠네요. 단, 한분이라도 반대하는 분이 있으면 안합니다. ^^;;
적당히 눌러도 그림이 되는 동네입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모임시간 7분을 남겨두고 밖으로 향합니다.
그러다가 석양 지는 모습에 황급히 뒤돌아서서 청수사 본당 무대를 향해 뛰기 시작했습니다.
돌아서 뛰어가는 길에 기모노를 단체로 빌려입은 친구들이 지나가서 몇컷 찍고...
그 가파른 계단을 뛰어 올라가서 한컷 남긴 청수사 석양입니다.
저 뒤로 돌아와서 다시 촬영하고 싶었지만 약속시간을 못 맞출 것 같아 포기하고 이정도에서 마무리합니다.
밑으로도 한컷!
나가는 길에 청수가가 어떻게 산쪽에 붙여서 지어졌는지를 알 수 잇는 석축 한컷 남겨봅니다.
비스듬히 지어 올리는 일본 왜성의 원형을 이곳에서도 느껴볼 수 있습니다.
헐래벌떡 약속시간을 정확히 1분도 늦지않고 도착하니 이렇게 다들 모여서 기다리고 계시더라고요. ^^
자, 이제부터는 교토 거리 산책의 백미라고 하는 산넨자카(삼년언덕)과 니넨자카(이년언덕)으로
이어지는 청수사 연계 핵심 밤거리 산책입니다. 그야말로 인산인해입니다.
월요일 저녁인데도 이렇게 많다니...
서른 명이 한꺼번에 이동하다보니 리딩하는 입장에서는 진땀이... ^^;;
그 유명한 삼년언덕 입구입니다.
사진 정면에 보이는 버드나무처럼 보이는 나무는 사다레자쿠라라고 불리는 수양벚나무로
산넨자카의 명물 벚나무로 우리가 마지막 일정으로 찾아간 인화사의 수양벚나무와 함께
교토에서 가장 유명한 벚나무라고 합니다.
수양벚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처진 개벚나무, 능수 벚나무, 실벚나무 등으로 불리는데요,
원산지가 한국이라고 합니다. 도래인들과 함께 타국에서 고생이 많네요.
이 벚나무가 환하게 꽃을 피우는 봄에,
4월에만 볼 수 있는 미야코오도리 공연도 볼겸 가보고 싶어요. ^^;
46개 계단으로 이뤄진 산넨자카(3년언덕)의 원래 이름은 산네이자카(産寧坂)라고 합니다.
즉, 산모의 안녕과 순산을 기원하는 고개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넘어지면 3년 안에 죽는다 또는 수명이 3년 단축된다는
무서운 전설이 내려옵니다. 그래서 이곳을 산넨자카(三年坂, 3년 고개)라고도 부르는데 지금은
그 이름이 정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고개 계단이 가파르고, 돌로 되어 있어 비라도 내리면 미끄럽고 위험하니
주의하라는 뜻에서 생긴것으로 보입니다. 혹시라도 넘어지면 액땜을 위해 고개 아래 가게에서
파는 호리병박을 사면 된다고 하는데, 아마 이말은 호리병박 가게에서 지어낸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
이쪽에서 촬영한 삼년언덕을 보면 정말 굴러서 좋을 게 하나도 없을 것 같죠? ^^;;
정말 살 것, 볼 것, 먹을 것이 지천인 거리인데, 조금 빨리 지나온 듯해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음에는 훤한 낮에 여유롭게 가보시자구요. ^^
기모노를 빌려입고 포즈를 취하는 일본인 처자를 옆에게 같이 촬영해봅니다.
산넨자카와 니넨자카를 위시한 이 일대는 전통가옥 보전지구여서 옛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답니다.
니넨자카(2년 언덕) 거리에 진입했습니다.
이곳에는 민박을 하는 곳도 꽤 보이더라고요. 담에는 이런 곳에 묵을 수 있어도 좋겠어요.
갑자기 규슈 오이타에서 했던 농가민박 6채를 빌려서 했던 1박이 떠오르네요. 그때도 참 재미났었는데요. ^^
니넨자카 거리를 통해 도래인의 이야기와 기온축제의 기원이 담긴 야사카신사에 다다릅니다.
낮에 걸어도 좋지만 이 밤거리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T.T
가는 길목에는 고다이지(고태사,高台寺)라는 유명한 절이 오른쪽으로 있는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복을 빌기 위해 둘째부인인 네네가 지은 사찰이라고 합니다.
인력거꾼들도 이제 정리하고 고단한 몸을 쉬러 갈 모양입니다.
찾아보면 이런 고풍스런 건물들이 골목골목 즐비합니다.
사진찍는 것을 좋아하는 저는 하루종일 놀아도 싫증나지 않겠어요.
특이하게 생긴 탑이 있어서 촬영해봤어요.
돌아와서 찾아보니 대운원(다이운인, 大雲院)이라는 사찰의 기온가쿠(祇園閣)라는 탑입니다.
이 절은 오다 노부나가가 죽은 아들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찰이라고 하는데요.
기온가쿠 탑도 오다 노부나가가 1587년에 함께 지은 것인데 지붕을 동판으로 한 것이 매우 이례적입니다.
한발짝 더 들어가서 살펴보니 역시나 메이지시대 초기(20세기 초) 때 화재로 상당부분 재건된 것이라고 하네요.
기온카쿠는 1928년에 (쇼와 3년)에 완성된 건물로 일본 15대 재벌 중의 하나로 꼽는
오쿠라 재벌의 설립자인 오쿠라 기하치로가
별장으로 지은 것의 일부라고 하네요.
지붕을 동판으로 지은 것은 오쿠라가 기부를 하면서 금각사와 은각사 이후의 동각사 개념을
넣은 것이라고 합니다. 알고보면 정말 어느 것 하나 이야기의 끝이 없어요.
드디어 야사카신사의 일주문 격인 도리이에 걸어서 닿았습니다.
야사카신사입니다. 기온신사라고도 불렸던 곳입니다.
일본의 3대 마츠리(전통축제)의 하나인 기온 마츠리가 7월 한달 내내 벌어지는데,
그 시작이 바로 이 야사카신사이고 이 신사에서도 한달 내내 행사가 벌어진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야사카신사가 중요한 이유는 고구려 도래인인 이리시오미(伊利之使主)가 창건한 곳이기 때문이죠.
창건 당시부터 그 위상이 대단하여 헤이안시대 후지와라 가문부터 도쿠가와 가문에 이르기까지 1천년간
역대 권력자들의 비호를 받으며 지금의 위치를 확고하게 지키는 신사입니다.
모시는 신은 일본 천황가의 시조 신인 아마테라스(태양의 여신)의 오빠인
스사노오미코토와 그 일가입니다. 바람의 신, 혹은 태풍의 신으로 불리는 스사노오를 모시는 주 신사는
지금 독도문제로 우리와 사이가 좋지 않은 시마네현의 이즈모신사입니다.
즉, 이즈모 신사로부터 스사노오 신을 권청(勸請, 주 신사로부터 신을 분양받는 개념)해 온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이즈모신사가 있는 지역의 특징을 살펴봐야 합니다.
이번 후기 몇편엔가 앞서 적은 것 같은데요, 이즈모신사가 있는 곳은 일본의 서해,
즉, 우리의 동해와 접해 있는 곳으로 연오랑 세오녀의 고향인 포항과 가장 가까운 일본지역입니다.
따라서 서기 157년에 일본으로 가서 왕이 되었다는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와
이즈모신사 스사노오는 일정부분 연관성이 있다고 추측되기도 합니다.
특히 이즈모 지역은 바닷가여서 바람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과 두려움은
당연한 것이기에 바람의 신으로 스사노오를 모시는 것일텐데요.
기원 전후로 기존에 넘어가서 이즈모 지역에서 어업을 하던 도래인들이 있어서 바람의 신을 모셨는데,
태양을 모시는 신라 쪽 사람들(연오랑 세오녀)이 넘어가서 이를 물리치고, 정권을 잡았을 지도 모릅니다.
일본 고대사에서는 태양의 신인 아마테라스와 스사노오 중에서 아마테라스가 결국은 이겨서 일본 전체를
지배하는 것으로 나오거든요. 좀 복잡하지요? ^^
저녁 등을 켜 놓고, 어떤 의식이 벌어지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하고 있더라고요.
초반에는 의례를 하다가 자기들끼리 틀렸다고 살짝 웃기도 하는 등
왠지 알바 혹은 자원봉사 느낌이 나는 신녀들이었는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자못 진중해지는 분위기였습니다.
어떤 뜻을 갖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했습니다만 모르겠어요. ^^
야사카 신사의 본당입니다. 자랑스런 고구려 도래인들의 위상을 볼 수 있는 곳이지요.
야사카신사 바로 옆에는 마루야마공원이 있고, 바로 그 옆에 우리나라 마지막 왕인
순종이 묵었던 장락관이라는 호텔이 있는데, 밤이 늦고, 피곤해 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패스하고
곧바로 기온거리(야사카거리) 쪽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야사카신사 동북쪽 출입구에서 한컷!
요렇게 단체촬영을 하면서 늦으시는 분 기다리는 게 노하우랍니다. ^^
도라님이 성큼성큼 앞장을 서십니다.
드디어 갑자기 큰 번화가가 나옵니다. 기온거리 중에 하나인 야사카거리입니다.
갑자기 불야성을 본 회원님들 당황하셨어요? ^^
다음편은 기온 거리의 이야기와 마지막 밤의 일본 교요리 성찬과 정원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첫댓글 발견이님 후기 기다리는 마음을 아시나요? ㅎㅎ
청수사의 석양 잘 잡으셨네요.
볼거,살거,먹을거 많다는
산넨자카 거리를 바삐 지나칠수 밖에 없었으니
지갑이, 제 입이 울었을거에요 ㅎ
기모노를 입은 많은 사람들을 보며 우리나라의 인사동이,서촌이,북촌이,전주 한옥 마을이
한복의 물결로 가득 하기를 바래 봅니다.
얼마전 창경궁에 갔더니
한복 입은 관광객들이 있더라구요.
넘 이쁘다고 마구 추켜 주었습니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거리에서 맘껏 즐기시라고 자유시간을 못드린 건 저도 못내 아쉽습니다.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이 되실까 저어되어... T.T
환한 대낮이었더라면 좀 더 낫지 않았을지...
안나님도 계시네요...
여행은 삶의 에너지예요 ^^
네. 안나님도 함께 즐기셨어요. 에너지 팍팍 얻어서 왔답니다. ㅎ
교토의 골목길~ 여전히 재미지고 아름답네요~^^
우리에게도 이런 골목길이 남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서울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 같아요.
부산의 이바구길이 조금 이런 느낌이려나? 인사동은 완전 퓨전 골목이 되어서 그닥... T.T
(정말 살 것, 볼 것, 먹을 것이 지천인 거리인데, 조금 빨리 지나온 듯해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음에는 훤한 낮에 여유롭게 가보시자구요. ^^)라고 말씀하진 발견이님...그때는 꼭 참석할 겁니다~
저도 후딱 지나친게..참많이 아쉬운 거리였거든요~
글쌔 교토는 얼마나 걸어야 조금이라도 만족이라는 게 느껴질까요?
4박5일로 한 스무번쯤 가면 조금이라도 족함이 느껴질까요?
요즘 들어 5년 만에야 다시 책 쓰고 싶은 생각이 고개를 들고 있어요.
그래서 해파랑길 단행본은 내년 가을을 목표로 생각하고 있는데, 잘 될런지 모르겠어요.
일본 걷기여행책을 쓰라고 주변에서 권유하시는데, 이대로 한 5년쯤 후에는 한번 생각해볼 지 모르겠어요. ^^
책 출판되면
저요 저요!!!!!
저 1번!!!!!
찜!
산넨자카의 밤거리가
몇해전 다녀왔던
운남성의 따리고성 같은 느낌도 들었고
띄엄띄엄 보이는
관광객용 인력거가
마치 192~30년대를 배경한
영화의 한 장면속으로 시간여행온듯한
느낌도 들었어요
발바닥은 좀 아프다고
투덜댔지만
마음은 흡족한
교토의 가을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