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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원을 5만원 만드는 비결
그날 밤 10시30분.
국립방사능검사실 접견로비.
검역관과 방역대원 2명이 유리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한사람은 키가 아주 짤막하고, 한사람은 아주 통통했다.
통통대원이 말했다.
“저 사람 오늘 된통 고생했지요?”
검역관이 웃으며 말했다.
“저런 신고 정신이 있기에 우리나라는 방사능에서 안전한 거야.”
“그래도 너무 한 거잖아요? 친구 애인들이라면서? 아무 죄 없는 사람을 몇 시간이나 고생시켰으니 친구고 애인이고 찢어 죽이고 싶을 겁니다.”
“신고는 저 사람들이 했나? 카페여사장이 했지.”
“그런데 그 카페이름도 이상하고 여사장은 아직도 행방이 모연하다던데요?”
“미찌마 이름 좋은데 그래?”
“믿지마 가 좋다구요?:”
“미찌마는 일본말이고 믿지마는 우리말이잖아?”
짤막대원이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제목이 같은데 경음악하고 노래하고 멜로디가 틀려요? 리듬이 달라요?”
“음, 그러고 보니 그렇군.”
“그 카페여주인 신고해 놓고 어디 갔을까요?”
통통대원이 말했다.
“집에 안 갔다면 불가마 갔을 거야! 여자들 피신처로 최고잖아?”
검역관이 점잖게 말했다.
“그렇게 할 일이 없어? 카페여주인이 불가마 갔건 모텔 갔건 그건 자네들하고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네. 공무원들이 근무 중 쓸데없는 잡담하면 이거야 이거!”
검역관이 손가락으로 짤막대원의 목을 자르는 시늉을 했다. 짤막대원이 얼른 한걸음 물러서며 항변했다.
“어디까지나 신고자의 안위를 걱정해서 그러는 거 아닙니까? 우리 같은 똘만이들이 여자 밝혀봤자 뭐해요? 허당이죠. 최소한 검역관 정도 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요.”
통통대원이 검역관을 거들었다.
“뭔 소리하는 거야? 우리 최고수석검역관님은 부처님 같은 분이라 여자 생각하는 수준이 우리하고 틀려요.”
통통대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짤막대원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실명 신고했으면 의당 나타나야지, 신고즉시 잠수潛水야? 잠수한다는 그 자체에 불륜 의심안할 놈이 어딨냐? 안하는 놈은 부처님이지. 안 그래?”
통통대원이 황급히 짤막대원의 입을 막았다.
“보복이 두려운 거겠지. 그렇죠? 최고수석검역관님?”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런데 저 사람들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혹시 폭력이라도 벌어지면 우리도 골치 아플 텐데요.”
“사람들 관상을 봐! 싸울 사람들인가?”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사람 멀쩡하게 생겼다고 안 싸우고 인물 좀 빠졌다고 순한가요? 여자 UFC보세요. 스타급인물인데 발차기하는 거 안보셨어요? 와! 죽이데요.”
“아, 론다로우지 말하는 거구나. 그 여자 이번에 홀리홈한테 한방에 깨졌잖아?”
“그 여자가 홀리홈입니까? 이름이 요상하네요. 홀리홈hollyhome이면 집 만드는 나무잖아요? 감탕나무요? 어쩐지 통나무처럼 차더라? 그런 발차기에 안 죽고 살아 난 게 다행이죠?”
“용어 좀 배우시게. 그런 걸 하이킥이라는 거야. 이런 건 로우킥. 요건 미들킥!”
“어이쿠. 헙! 흅!”
검역관이 격투기선수 흉내를 내며 짤막대원에게 용어를 설명는데 그 폼이 진짜 해괴했다. 마치 감탕나무 숲에서 며칠 굶고 기어 나온 늙고 늙은 불곰 같았다. 허지만 검역관의 시범보다 한 템포 늦게 방어하는 짤막대원은 더 웃겼다. 꼭 젊었을 때의 이주일 같았다.
검역관이 다시 창 넘어 고객쉼터공원을 쳐다봤다. 검역관이 말했다.
“허지만 말이야! 저 사람들 방사능테스터기 사용법은 마스터한 셈이지? 그게 어디야?”
짤막대원이 검역관의 안색을 힐끔힐끔 살피며 말했다. 완전 내시 스타일이다.
“그런데요. 이번에 알았는데요. 방사능테스터기 사용법이 아주 잘못됐거든요.”
“뭐가?”
검역관이 고개를 휙 돌려 짤막대원을 쳐다봤다. 옆에 서 있던 통통대원이 움찔 몸을 움직여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체형에 비해 상당히 재빠른 동작이었다.
“저 여자도 테스트보탄을 잘못 눌러 일어난 사건이었잖습니까? 테스트보탄이 모찌방에 있으면 안 되죠.”
“국산이 더 좋다면서 수입 말 안 쓸 수 없어? 얼굴이라고 말해. 모찌방이 뭐야? 유치하게! 우리말이 더 유식해 보여!”
“쭉 내려 온 관습이라놔서요.”
짤막대원이 머리를 긁적였다.
검역관이 말했다.
“그것! 옳은 지적이야. 방사능테스터기의 음성테스터 버튼이 마스크에 있으면 오늘 저 여자 같은 실수가 언제든지 발생할 소지가 있지. 그 우아영이란 여자가 아무리 도치씨라는 사람 애인이라지만, 남자의 사타구니를 찌르는데 흥분 안 했겠어? 흥분하면 눈에 보이는 게 없잖아? 생각도 아득해 질텐데. 그러니까 엉겁결에 음성테스터버튼을 누른 거지. 충분히 심중이 가는 사건이야! 그 바람에 공연히 우리만 헛고생했지만 말이야!”
“그런데 저한테는 외제 사용하지 말라 그러면서 왜 수입품 쓰시는 거죠? 사람이 앞뒤가 똑 같아야 인격자잖아요?”
“내가 언제 외래어 썼다는 거야? 나는 쌍스런 외래어 안 써요.”
“이젠 거짓말도 잘하시네요. 방금 마스크라 그래 놓으시곤 아니래요?”
마스크란 말에 검역관이 하품보다 더 크게 입을 벌렸다. 너무 기가 막혔다.
“아 조 친구는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할 수가 없어! 그건 영어잖아 영어! 국제 만통어萬通語 몰라?”
“그런데 직원한테 성질은 왜 내세요?”
“아 미치겠네. 야! 통통!”
“네 최고수석검역관님!”
“나, 저 친구하고 말하면 숨이 막히고 가슴에 울릉증 와! 어쨌거나 저 짤막이 말은 옳아. 그러니까 당장 건의서 올리게. 아예, 마스크 아참! 조작부전면에서 음성테스트보턴을 빼든가 아니면 옆구리로 옮겨 판매하라고 강력대처하시게. 알았소?”
“네! 최고수석검역사님!”
통통대원의 기분 좋은 호칭에 어깨를 한번 으쓱한 겸역관이 창문 너머 국립방사능검역소 고객소풍공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저 사람들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 건가?”
짤막이가 말했다.
“제가 가서 물어보고 올까요?”
검역관이 눈총을 주며 핀잔했다.
“그렇게 할 일이 없어?”
짤막대원이 핵심을 말했다.
“최고수석검역관님 말처럼 린다로우지 같이 생긴 여자가 성질깨나 있어 보이던데요? 만약 저기서 싸우다 언론에 노출되면 최고수석검역관님 이거 될 수도 있잖아요?”
짤막대원이 손가락으로 까치발을 하고 검역관의 목 자르는 시늉을 했다. 자신보다 15cm나 작은 짤막대원의 손가락을 피해 목을 뒤로 젖히며 검역관이 말했다.
“제발 걱정 좀 붙들어 매슈잉? 친구 애인사이들인데. 싸우면 더 정들고 얻어터지면 사랑 더 깊어지는 거여. 사람 맹하긴?”
통통대원이 창문에서 시선을 떼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저 사람요. 우리에겐. 실토했지만, 만약 저 여자한테 들켰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뭘?”
“가지도 않은 후쿠시마 간 거요. 후쿠시마 간 게 아니고 다른 여자랑 낚시했다던데요.”
짤막대원이 눈빛을 빤짝이며 말했다
“바람피울 땐 무조건 잡아떼는 게 상책이라요. 팥을 콩. 콩을 팥! 5000원짜리를 50000원 짜리라고 우기면요. 그러면 5천원짜리가 5만원되는 수가 가끔 있거든요.”
검역관이 짤막대원에게 말했다.
“알았어요. 앞으로 자네한텐 뭐든지 5000원짜리로 연구비결재하지.”
짤막대원이 말했다.
“누가 받는대요?”
“그것도 싫음 말고.”
“요즈음 횡령으로 많이들 골로 가시던데요?”
“아! 통통! 나 울릉증 도진다. 어떻게 좀 해봐!”
통통대원이 말했다.
“전생의 업보나 팔자소관으로 생각하십시오.”
검역관이 머리를 흔들며 도진 울릉증을 달랠 때 짤막대원이 국립방사능검역소 로비창문 너머를 가리키며 급하게 소리쳤다.
“치고수석검역관님, 저 사람들 전부 꿇어앉는데요.”
“뭐? 누가? 어디서? 왜? 뭣땜에?”
“도치씨란 사람이요. 고객쉼터에서요. 이유는 모르겠구요. 사연도 모르겠구요. 그냥 꿇어앉는 것만 보이는데요. 아무래도 심상찮은 사건이 터질 조짐이걸랑요. 검역관님이 책임지셔야 할 것 같은데요.”
검역관과 통통대원 그리고 짤막대원이 유리창 앞으로 바짝 다가서 어두운 고객쉼터공원을 내다봤다.
국립방사능검역센터 작은 고객쉼터공원의 가로등아래.
도치씨가 기다란 벤치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고, 우아영을 비롯한 오진희, 이감독이 도치씨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높이 쳐들고 있었다.
첫댓글 골탕 먹이려다 오히려 대가로 벌을 받는 군요..
잘보았슴니다.
이럴 때 사용하는 언어가 있죠?
오지 싸다...ㅎ
멋진날되세요
도치는 너무나 허탈감에 빠저들었겠슴니다.
우아영의 일행에게 느껴지는 배신감 같은것
내입장 이라면 당장 절교 해버려 야지~ㅎㅎ
젠틀맨님은 돌아서면 또 여자 천지겠지만 도치씨는 사정이 여의치 못하네요...ㅎㅎㅎ
고운날되세요
방역관들은 아영이 일당들이 쇼하는걸 몰랐을까?
전혀 몰랐죠...남의 속을 어떻게 알겠어요?...ㅎㅎ
김일수님의 오늘은 멋진 주말로 기록되었으면 합니다
사람 여럿이 하나 골탕 먹일려면 쉽다더니
도치는 댑다 혼출이 났네요..
이유없이 당하고만 만 도치 어찌보면 바보 천치 같네요..
도치씨같은 사람이 있어 골탕먹이는 사람들이 즐겁죠...ㅎ
밤이 무척 깊었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행복한 낳되십시오
욕을본 도치는 사랑도 돈도 명예까지 한방에 날아가버렸네요..
골탕 먹이고 기본 양심이 잇었나 왜 아영은 눈물 흘리나.~~ㅎㅎㅎ
그렇네요
허지만 어딱합니까?
그것이 사랑의 댓가인걸요...ㅎ
고운 주말의 밤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