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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마음도 부처도 아니다(不是心佛)
남전 화상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사람들에게 말씀하지 않은 법이 있습니까?”
남전이 말했다.
“있다.”
승려가 말했다.
“어떤 것이 사람들에게 말씀하지 않은 법입니까?”
남전이 말했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다.”
무문은 말한다.
남전은 이 질문을 받고 곧바로 자기 집 재산을 다 털어놓았으니 꼴사납기가 이만저만 아니구나!
게송으로 이른다.
지나친 친절은 그대의 덕을 손상시키니,
말 없음이야말로 참된 공덕이 있는 것이네.
설령 푸른 바다가 변한다 해도
끝내 그대를 위해 말해주지 않겠네.
28. 오랫동안 용담을 사모하다(久響龍潭)
용담에게 덕산이 거듭 가르침을 청하다가 밤이 깊었다.
용담이 말했다.
“밤이 깊었으니 그대는 그만 내려가는 것이 어떠한가?”
덕산이 인사를 하고 발을 걷고 나갔다가 밖이 캄캄한 것을 보고 돌아와서 말했다.
“밖이 캄캄합니다.”
용담이 이에 종이 초에 불을 붙여 건넸다. 덕산이 막 받으려고 하는 순간, 용담이 갑자기 촛불을 훅 불어 꺼버렸다.
덕산은 여기에서 홀연 깨달은 바가 있어 곧 절을 하였다.
용담이 말했다.
“그대는 도대체 어떤 도리를 보았는가?”
덕산이 말했다.
제가 오늘 이후로 천하 노화상들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다음 날 용담이 법당에 올라 말했다.
“만약 이 가운데 어떤 사람이 이빨은 (맹수의)날카롭고 빽빽한 그것과 같고 입은 피를 가득 담은 (맹수의) 아가리와 같아서, 한 방망이를 때려도 머리를 돌리지 않는다면 훗날 외로운 봉우리 정상에서 나의 도를 세울 것이다.”
덕산이 마침내 법당 앞에 소초를 모아 놓고 손에 횃불을 치켜들고 말했다.
“현묘한 도리를 모두 통달했다 하더라도 터럭 하나를 커다란 허공에 두는 것과 같고, 세상의 온갖 이치를 설파한다 하더라도 물 한 방울을 거대한 골짜기에 던지는 것과 같다.”
그리고는 소초를 불태우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무문은 말한다.
덕산이 아직 촉관(蜀關, 촉 지방 즉 사천성)을 벗어나지 못했을 때는 마음이 분노로 가득 차서 말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었기에 일부러 남방에 가서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종지(宗旨)를 없애버리려고 하였다.
예주(澧州)로 가는 길에 이르러 한 노파에게 점심을 사 먹을 수 있는지 물었다. 노파가 말했다.
“스님, 수레 속에 있는 것이 무슨 책입니까?”
덕산이 말했다.
“금강경 소초요.”
노파가 말했다.
“경 가운데에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스님께서는 어느 마음에 점을 찍으려고[點心] 하십니까?”
덕산은 이 한 질문을 받고 곧바로 말문이 콱 막혔다. 비록 그러하였으나 노파의 말 아래 완전히 기가 죽지는 않았다. 마침내 노파에게 물었다.
“근처에 어떤 종사가 계십니까?”
노파가 말했다.
“5리 밖에 용담 화상이 계십니다.”
그러고는 용담에 도착하여 완전히 망하고 말았으니, 앞에 한 말과 뒤에 한 말이 서로 들어맞지 않게 되었다 하겠다.
용담은 부모가 자식을 너무 어여삐 여기면 추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그가 조그마한 불씨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는 황급히 더러운 물을 가져다가 곧바로 끼얹어 꺼버렸으니, 냉정하게 살펴보면 한바탕 웃음거리로다.
게송으로 이른다.
명성을 듣는 것보다 직접 만나 보는 게 낫고
직접 만나보는 것보다 명성을 듣는 게 나을 때가 있다.
비록 콧구멍은 구해 얻었으나
눈을 멀게 하였으니, 어찌 하리오?
29.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다(비풍비번,非風非幡)
바람이 절의 깃발을 날리는데 두 승려가 서로 논쟁하였다.
한 사람은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하며 옥신각신 이치에 맞지 않기에, 육조가 말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그대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두 승려는 두려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문은 말한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니, 어느 곳에서 조사를 볼 수 있겠는가?
만약 여기에서 분명하게 볼 수 있다면 바야흐로 두 승려는 쇳조각을 산다는 것이 금덩이를 얻었고, 조사는 참을성이 없어 한바탕 허물을 드러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게송으로 이른다.
바람과 깃발, 마음이 움직인다는 말
한 장의 영장(令狀)으로 다스릴 허물일세.
그저 입을 열 줄만 알았지
말에 떨어진 줄은 모르는구나.
30. 이 마음이 곧 부처(卽心卽佛)
마조에게 대매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마조가 말했다.
“이 마음이 그대로 바로 부처이다.”
무문은 말한다.
만약 곧바로 깨달을 수 있다면, 부처의 옷을 입고, 부처의 밥을 먹고, 부처의 말을 하고, 부처의 행동를 할 것이니 곧 부처이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대매는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저울 눈금을 잘못 읽게 하였다.
어찌 알았겠는가?
부처라는 글자를 말하기만 해도 3일이나 입을 닦았다는 것을!
만약 이와 같은 사람이 ‘이 마음 그대로 바로 부처’란 말을 듣는다면 곧장 귀를 막고 달아날 것이다.
게송으로 이른다.
밝은 대낮처럼 명백하니
결코 찾지 말아야 한다.
다시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훔친 물건을 안고 죄가 없다 외치는 짓이다.
31. 조주가 노파를 간파하다(趙州勘婆)
어떤 승려가 노파에게 물었다.
“오대산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합니까?”
노파가 말했다.
“곧장 가시오.”
승려가 막 서너 걸음 걸어가자 노파가 말했다.
“훌륭한 스님이 또 저렇게 가는구나!”
뒤에 한 스님이 조주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 하자 조주가 말했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해 그 노파의 속임수를 알아보겠다.”
다음날 곧 가서 앞서와 같이 물으니 노파도 앞서와 같이 대답하였다. 조주가 돌아와서 대중에게 말했다.
“내가 너희를 위해 오대산 노파의 속임수를 완전히 간파해 버렸다.”
무문은 말한다.
노파는 다만 막사에 앉아서 작전만 짤 줄 알았지 도적이 든 줄은 몰랐고, 조주 노인은 진영을 훔치고 요새를 빼앗는 기술은 잘 쓸 줄 알았지만 또한 대인의 모습은 없었다. 점검해 보면 두 사람 모두 허물이 있다.
자, 말해 보라. 어디가 조주가 노파의 정체를 알아차린 곳인가?
게송으로 이른다.
물음이 이미 같으니
대답도 역시 비슷하구나.
밥 속에 모래가 있고
진흙 가운데 가시가 있도다.
32. 외도가 부처님께 묻다(外道問佛)
세존에게 어떤 외도가 물었다.
“말 있음도 묻지 않고, 말 없음도 묻지 않겠습니다.”
세존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외도가 찬탄하며 “세존께서는 대자대비하셔서 제 미혹의 구름을 열어 저로 하여금 깨달음에 들게 해 주셨습니다.”라고 말하고는 곧 예를 갖추고는 물러갔다.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외도는 무슨 깨달은 바가 있었기에 찬탄하고 물러갔습니까?”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마치 좋은 말은 채찍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다.”
무문은 말한다.
아난은 바로 부처님의 제자인데도 외도의 견해만 못한 것 같구나!
자, 말해보라. 외도와 불제자가 서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
게송으로 이른다.
칼날 위를 걷고
얼음 위를 달린다.
계단과 사다리를 밟지 않고
절벽에서 손을 놓아 버린다.
33.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非心非佛)
마조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마조가 말했다.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
무문은 말한다.
만약 여기에서 알아차릴 수 있다면 배우는 일을 다 마친 것이다.
게송으로 이른다.
길에서 검객을 만나면 모름지기 칼을 보여주고
시인을 만나지 못하면 시를 바쳐서는 안 된다.
사람을 만나거든 삼할만 말해야지
한 개 마음을 완전히 베풀어서는 안 된다.
34. 지혜는 도가 아니다(智不是道)
남전이 말했다.
“마음은 부처가 아니고, 지혜는 도가 아니다.”
무문은 말한다.
남전은 늙어서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하겠다. 냄새나는 입을 열자마자 집안의 추한 꼴을 밖으로 드러내 버렸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은혜를 아는 자가 드물다.
게송으로 이른다.
날이 맑으면 해가 나오고
비가 내리면 땅이 젖는다.
정성을 다해 모두 말하였지만
다만 믿지 않을까 두려울 뿐.
35. 천녀의 혼이 나가다(倩女離魂)
오조법연(五祖法演)이 어느 승려에게 물었다.
“천녀는 혼이 나갔다는데 어느 것이 진짜인가?”
무문은 말한다.
만약 여기에서 진짜를 깨닫을 수 있다면 곧 몸에서 나와 몸으로 들어가는 것이 마치 여관에서 하룻밤 묵는 것과 같음을 알 것이다. 만약 아직 그렇지 못하다면 결코 어지러이 헤매지 말아야 한다. 갑자기 육체(地·水·火·風)가 흩어지면 마치 끓는 물에 떨어진 게처럼 팔 다리를 버둥거리게 될 것이니 그때 가서 말해주지 않았다고 하지 말라.
게송으로 이른다.
구름과 달은 동일한데
계곡과 산은 각기 다르다네.
좋고도 좋구나!
하나인가, 둘인가?
▶『태평광기(太平廣記,978)』에 실려 있는 「이혼기(離婚記)」에 다음과 같은 천녀 이야기가 있다. 중국 형양 땅에 장감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예쁜 딸 천녀(倩女)가 있었는데, 장감은 농담으로 가끔 외조카인 왕주에게 천녀를 데려가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그 지방의 고관이 그녀의 미모에 반했다. 장감은 전날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천녀를 그 고관에게 시집보내려고 하였다. 왕주를 연모하던 천녀는 깊은 상심에 빠지게 되었다. 왕주 또한 운명을 한탄하면서 모든 것을 잊으려 그 곳을 떠나기로 했다. 왕주가 배를 타고 막 떠나려고 하는데 저편 언덕에서 '오라버니'라는 천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멀고 먼 촉나라로 도망가서 행복하게 살았다. 아이도 둘이나 낳고 5년 동안 행복하게 꿈같은 세월을 보내던 어느 날 천녀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녀는 부모의 가슴에 못을 박고 떠나오면서 생긴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늦게나마 부모님께 용서를 빌고 결혼허락을 받겠다고 다시 고향을 찾았다. 집 근처의 나루터에 도착한 왕주는 천녀를 배에 남겨 두고 혼자 장감의 집을 방문했다. 왕주는 장감에게 지금까지 촉에서 두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자 장감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감은 말했다. ' 이 사람아, 그게 무슨 소린가!' 내 딸은 지금 저 규방에서 오랫동안 병을 앓고 누워 있는데.' 이 말을 듣고 더욱 충격을 받은 것은 왕주였다.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아니 천녀는 저와 함께 살다가 지금 나루터 배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장감의 가족들은 규방에서 알고 있는 천녀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또 한편 장감은 천녀가 타고 있다는 배에 사람을 보냈다. 배에서 내려 수레를 타고 온 천녀가 집안에 들어서고, 규방의 병석에서 털고 일어난 또 다른 천녀가 마당에서 서로 마주치는 순간, 둘은 거짓말같이 하나로 합쳐졌다.
36. 길에서 도인을 만나다(路逢達道)
오조가 말했다.
“길에서 도에 통달한 사람을 만나면 말이나 침묵으로 대해서는 안된다. 자, 말해 보라. 무엇으로 대해야 하겠는가?”
무문은 말한다.
만약 여기에서 딱 맞게 상대할 수 있다면 참으로 유쾌하지 않겠는가?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모름지기 모든 곳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게송으로 이른다.
길에서 도에 통달한 사람을 만나면
말이나 침묵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뺨에다 곧장 주먹을 날리니
즉시 알아차리면 곧 깨달으리라.
37.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
조주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조주가 말했다.
“뜰 앞의 잣나무다.”
무문은 말한다.
만약 조주의 대답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면 앞에는 석가가 없고 뒤로는 미륵이 없을 것이다.
게송으로 이른다.
말은 사실을 드러낼 수 없고
말은 기틀에 들어맞지 않는다네.
말을 따르는 자는 목숨을 잃고
글귀에 막히는 자는 헤매게 되리라.
38. 소가 창문을 통과하다(牛過窓櫺)
오조(五祖)가 말했다.
“예컨대 물소가 격자 창문을 통과할 때 머리와 뿔, 네 다리는 모두 통과했는데 어째서 꼬리는 통과하지 못하는가?”
무문은 말한다.
만약 여기에서 돌이켜 외짝 눈을 얻고 한 마디 말을 할 수 있다면, 위로는 네 가지 은혜(四恩)에 보답하고 아래로는 삼계(三界)의 중생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그러하지 못하다면 마땅히 다시 꼬리를 잘 살펴봐야만 할 것이다.
게송으로 이른다.
통과하면 구덩이에 떨어지고
되돌아가면 오히려 부서지네.
이 하찮은 꼬리란 놈이
참으로 매우 기괴하도다!
39. 운문의 말에 말려들다(雲門話墮)
운문 문언(雲門 文偃)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밝은 빛이 고요히 온 세상을 비추니...”
한 구절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운문이 갑자기 말했다.
“그것은 장졸 수재(張拙秀才)의 말이 아닌가?”
승려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운문이 말했다.
“말에 말려들었구나!”
후에 황룡 사심(黃龍 死心)이 이 이야기를 들어 말했다.
“자, 말해보라. 어디가 이 승려가 말에 말려든 곳인가?”
무문은 말한다.
만약 여기에서 운문의 뛰어난 작용처와, 이 승려가 어째서 말에 말려들었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면 인간과 천상의 스승이 될 만하다. 만약 아직 분명하지 않다면 스스로도 구제하지 못할 것이다.
게송으로 이른다.
급한 물결에 낚시를 드리우니
미끼를 탐내는 놈이 덥석 무네.
입을 열자마자
목숨을 잃어버리도다.
▶장졸수재(張拙 秀才)가 처음엔 선월(禪月) 선사의 지도하에 있다가 석상경제 선사를 찾아뵈었다. 그때 석상 선사가 묻기를 "그대의 성은 무엇인가?"라고 하자, "성은 장(張)이고 이름은 졸(拙)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석상 선사가 "교묘함(巧)을 찾아도 얻을 수 없는데 졸렬함(拙)이 어떻게 왔는가?"라고 말하자 깨달은 바가 있어, 다음과 같은 게송을 지었다.
"밝은 빛이 고요히 온 세상을 비추니, 범부, 성인, 일체중생이 모두 나의 가족일세.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으면 전체가 드러나니, 육근이 조금만 움직여도 구름에 가려지네.
번뇌를 끊으려 하면 거듭 병이 더해지고, 진여에 나아감도 또한 삿된 것일세.
세상의 인연따라 막힘이 없으면, 열반과 생사도 허공의 꽃이로다."
40. 물병을 차서 넘어뜨리다(趯倒淨甁)
위산 화상은 처음에 백장의 회상에서 전좌(典座)를 맡고 있었다. 백장이 장차 대위산(大潙山)의 주인을 선발하려고 수좌(首座)와 함께 대중들 앞에서 한 마디씩 하게 하여 격식(格式)을 벗어난 사람이 갈 수 있도록 하였다.
백장이 물병(淨甁)을 들어 땅 위에 놓고는 물었다.
“물병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자네는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
수좌가 이에 말했다.
“나무토막이라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
백장이 이번에는 위산에게 물었다. 그러자 위산은 물병을 발로 차서 넘어뜨리고는 나가버렸다. 백장은 웃으며 말했다.
“제1좌가 산자(山子,위산의 호 혹은 촌놈,어리숙한 사람)에게 졌구나.”
그리하여 위산에게 명하여 개산(開山)하게 하였다.
무문은 말한다.
위산의 한바탕 용기도 백장의 올가미를 뛰쳐나와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어찌하겠는가? 자세히 살펴보면 무거운 것을 편히 여기고 가벼운 것을 편히 여기지 않았다. 무슨 까닭인가? 보라! 두건을 벗어버리고 쇠칼을 걸머졌도다!
게송으로 이른다.
조리와 나무국자를 내팽개치고
정면으로 돌파하여 장애물을 끊었네.
백장의 겹겹 관문도 멈추게 하지 못하니
발끝에서 부처를 삼대처럼 쏟아 내네.
▶전좌(典座):선원에서 여러 승려의 방과 이부자리, 음식 등을 담당하는 소임
▶두건(盤頭):머리를 싸맨 두건, 여기서는 위산영우가 전좌의 직을 수행하는 것을 이르는 말. 삭발한 머리에 두건을 쓰고 주방에서 일하는 모습을 가리킨다
41. 달마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다(達磨安心)
달마가 벽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조(二祖)가 눈 속에 서서 팔을 끊고 말했다.
“제자의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오니 바라옵건대 스승께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달마가 말했다.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너를 위해 편안하게 해 주겠다.”
이조가 말했다.
“마음을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달마가 말했다.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무문은 말한다.
이빨 빠진 늙은 오랑캐가 십만 리 뱃길을 일부러 왔으니 바람도 없는데 물결을 일으킨 격이라 하겠다. 끝에 가서 제자 한 사람을 얻었으나 또한 육근을 갖추지 못했다.
허허! 사(謝)씨 집 셋째 아들놈은 네 글자도 모르는구나!
게송으로 이른다.
서쪽에서 와서 곧바로 가리키니
부촉함으로 인해 일이 벌어졌네.
총림(叢林)을 요란하게 만든 것이
원래 바로 너로구나!
▶사삼랑 불식사자(謝三郎 不識四字):사씨네 셋째 아들은 네 글자도 모른다. 세상 사람 누구나 다 아는 것도 모르는 일자무식을 표현한 중국속담. 사삼랑은 아무개라는 뜻으로 배움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고, 사자(四字)는 개원통보(開元通寶)와 같이 동전의 표면에 새겨진 네 글자인 전문(錢文)을 말한다. 여기의 뜻은 말귀도 알아듣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으로서, 달마가 일으킨 평지풍파는 도리어 세상을 구제하는 큰 일이었고, 팔이 하나 없는 혜가는 도리어 세계의 실상을 온전히 볼 수 있는 안목을 얻었다는 숨을 뜻을 모르면 안된다는 말.
42. 여자가 선정에서 나오다(女子出定)
예전에 문수가 여러 부처님들이 모인 곳에 이르자 마침 여러 부처님들이 각자 본래 처소로 돌아가시는데, 오직 한 여인만이 세존 가까이에 앉아서 삼매에 들어 있었다.
문수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째서 여인은 부처님 가까이 앉을 수가 있는데, 저는 그러지 못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이 여인을 깨워 삼매로부터 일어나게 하고는 직접 물어 보아라.”
문수가 여인 주위를 세 번 돌고, 손가락을 한 번 튕겨 범천에까지 들리도록 그 신통력을 다 부려 보았으나 삼매에서 나오게 할 수 없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설사 백 명, 천 명의 문수라도 이 여인을 선정에서 나오게 하지 못할 것이다. 아래쪽으로 십이억 항하사 국토를 지나면 망명보살이 있으니 그가 능히 이 여인을 선정에서 나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잠시 후 망명보살이 땅으로부터 솟아나서 세존께 절을 하였다. 세존께서 망명에게 여인 앞에 가서 손가락을 한 번 튕기게 하니 여인이 이에 선정으로부터 나왔다.
무문은 말한다.
석가 늙은이가 이 한 바탕 촌극을 꾸몄으나 시원치는 않았다. 자, 말해보라. 문수는 일곱 부처의 스승인데 어째서 여인을 선정에서 나오게 하지 못하였으며, 망명은 초지보살인데 어째서 도리어 나오게 할 수 있었는가? 만약 여기에서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면 끊임없는 사량분별이 그대로 부처님의 큰 삼매가 될 것이다.
게송으로 이른다.
나오든 나오지 못하든
그도 나도 자유를 얻는다.
귀신의 머리와 도깨비 탈,
실패도 마땅히 풍류인 것을!
43. 수산의 죽비(首山竹篦)
수산 화상이 죽비를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는 말했다.
“너희들이 만약 죽비라고 부른다면 (법에) 저촉되는 것이고, 죽비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사물에) 위배되는 것이다. 너희들은 한번 말해 보라. 무엇이라 부르겠느냐?”
무문은 말한다.
죽비라고 부르면 저촉되고 죽비라고 부르지 않으면 위배되니, 말을 해도 안 되고 말을 안 해도 안 된다. 빨리 말해 보라! 빨리!
게송으로 이른다.
죽비를 들어 올려
죽이고 살리는 명령을 행하도다!
위배와 저촉이 번갈아 쫓으니
부처와 조사도 목숨을 비는구나!
44. 파초의 주장자(芭蕉拄杖)
파초혜청 화상이 대중들에게 말씀하였다.
“그대에게 주장자가 있으면 내가 그대에게 주장자를 줄 것이고, 그대에게 주장자가 없으면 나는 그대의 주장자를 빼앗을 것이다.”
무문은 말한다.
다리가 끊어진 물을 이것에 의지하여 건너고, 달도 없는 마을로 이것과 벗 삼아 돌아가오니, 만약 이것을 주장자라고 부른다면 쏜살같이 지옥으로 들어가리라.
게송으로 이른다.
제방(諸方)의 깊고 얕음이
모두 이 손아귀 가운데 있도다!
하늘을 받치고 땅을 지탱하니
어디서나 종풍(宗風)을 떨치도다!
45. 그는 누구인가(他是阿誰)
동산의 (오조) 법연 노스님이 말했다.
“석가와 미륵도 오히려 그의 종이다. 자, 말해보라. 그는 누구인가?”
무문은 말한다.
만약 그를 분명하게 볼 수 있다면 마치 번잡한 네거리에서 자기 친아버지를 만난 것과 같아서, 다시 다른 사람에게 아버지가 맞는지 안 맞는지 물어볼 필요가 없으리라.
게송으로 이른다.
남의 활을 당기지 말고
남의 말을 타지 말라.
남의 잘못을 말하지 말고
남의 일을 알려고 하지 말라.
46. 백척간두에서 진일보(竿頭進步)
석상 화상이 말했다.
“백 척 장대 끝에서 어떻게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인가?”
다시 옛 사람이 말했다.
“백 척 장대 끝에 앉은 사람은 비록 도(道)에 들어 왔으나 아직 참된 것은 아니다. 백 척 장대 끝에서 모름지기 한 걸음 더 나아가야 온 우주에 온 몸을 드러낼 것이다.”
무문은 말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몸을 뒤집을 수 있다면 어느 곳에선들 존귀하다 불리지 않겠는가? 비록 그러하다 하더라도, 말해보라! 백 척 장대 끝에서 어떻게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인가? 허어!
게송으로 이른다.
정수리 위의 눈을 감아버려서
저울의 첫 눈금을 잘못 읽는다면,
아낌없이 목숨을 버릴 수 있더라도
한 장님이 뭇 장님을 이끄는 것이다.
47. 도솔의 세 관문(兜率三關)
도솔 열화상은 세 가지 관문을 만들어 배우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번뇌망상을 헤치고 불법을 찾음은 다만 견성(見性)하기 위함인데, 지금 그대의 성품은 어느 곳에 있는가?
스스로의 성품을 알게 되면 바야흐로 생사에서 벗어나는데, 죽음이 다가왔을 때 어떻게 해탈할 것인가?
생사를 벗어날 수 있다면 곧 갈 곳을 아는데, 육체(地·水·火·風)가 흩어지면 어느 곳으로 가는가?”
무문은 말한다.
만약 이 세 가지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곧바로 어디에서나 주인이 되어서 인연을 만날 때마다 곧바로 종지(宗旨)에 부합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급히 삼키면 쉽게 배부르지만 꼭꼭 씹어 먹어야 다시 배고프지 않느니라.
게송으로 이른다.
한 순간에 무량한 세월을 두루 살펴보니
무량한 세월의 일이 곧바로 지금이네.
지금 이 한 순간을 꿰뚫어 보면
지금 꿰뚫어 보는 사람마저 꿰뚫어 보리.
48.건봉의 외길(乾峰一路)
건봉 화상에게 어떤 승려가 물었다.
“시방의 부처님들이 한 길로 열반문에 들었다 하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길이 어느 곳에 있습니까?”
건봉이 주장자를 집어 들어 허공에 한 획을 긋고 말했다.
*주장자:수행승들이 지니고 있는 지팡이.
“여기에 있다!”
나중에 그 스님이 운문에게 다시 가르침을 청했다.
운문은 부채를 집어 들고 말했다.
“이 부채가 뛰어 33천에 올라가 제석천왕의 콧구멍을 찌르고, 동해의 잉어를 한 방망이 때리니 비가 물동이를 기울인 듯 쏟아진다.”
무문은 말한다.
한 사람은 깊고 깊은 바다 밑을 걸어가서 흙을 까불러 먼지를 일으켰고, 한 사람은 높고 높은 산꼭대기에 서서 흰 파도가 하늘까지 넘치게 하였다. 꼼짝 못하게 하기도 하고, 자유롭게 놓아주기도 하니, 각각 한 손을 내밀어 선(禪)의 종지(宗旨)을 떠받쳐 세웠다. 마치 양쪽에서 달리던 두 사람이 서로 맞부딪친 것과 같아서 세상에 정면으로 대적할 사람이 없으나, 바른 눈으로 살펴보건대 두 노인 모두 아직 길이 있는 곳을 알지는 못했다.
게송으로 이른다.
미처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이미 도달하였고
혓바닥을 움직이기도 전에 벌써 말해 버렸네.
설령 한 수 한 수 기선을 제압했다 하더라도
다시 향상(向上)의 도리가 있음을 알아야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