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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건축을 열망하는 다윗
삼하 7:1-7
1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2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3 나단이 왕께 아뢰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
4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6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7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삼하 7:1-7 / [나단의 예언] 이제 다윗왕은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원수들로부터 그를 지켜 주셨기 때문에 자기의 왕궁에서 편안하게 살아갔다. 2) 그러던 어느날 왕은 자기만 좋은 집에서 살게 된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예언자 나단에게 이와같이 상의하였다. `나는 이렇게 송백으로 지은 왕궁에서 호화롭게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법궤는 아직도 천막 안에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되겠습니까?' 3) 나단이 아뢰었다. `무슨 일이든지 임금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하십시오! 여호와께서 임금님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4) 그런데 바로 그날 밤에 여호와께서 나단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5) `너는 나의 종 다윗을 찾아가서 이 말을 전하여라. `온 세상의 주인인 여호와가 네게 말한다. 너는 내가 거주할 성전을 지으려고 하느냐? 6) 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킨 날로부터 이제까지 한 번도 어떤 집에서 산 적이 없다. 나는 언제나 천막 안에 살면서 너희와 함께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7) 나는 그동안 수많은 사사와 영도자들을 내세워 내 백성 이스라엘을 양 떼처럼 돌보게 하였으나 그들 중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왜 나를 위하여 송백으로 집을 지어 주지 않느냐고 꾸짖은 일이 없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다시 모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짓겠다는 마음을 품습니다.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1-3) 다윗 왕국의 상황은 평안하고 삶이 안정된 시기였습니다(1). 주변의 모든 대적을 정복하고 참된 안정과 평화와 번영이 있었습니다. 이런 안정은 좋은 것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의 중심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여전히 뜨겁다는 증거가 오늘 본문입니다. 다윗의 마음 속에 자신은 왕궁에서 평안히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는 허름한 천막 속에 있다는 사실이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2).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불러 성전 건축의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나단은 다윗의 말을 듣자마자 감동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하나님과 관계된 것을 존귀히 여기고 더 잘 모시기 위해 애쓸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4-7)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내가 살집을 건축하겠느냐?”묻고 계십니다(5).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거하실 집을 건축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건물을 지어야 하나님이 그 안에 살아가실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수준에 맞는 건물을 지을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의 재물을 다 쏟아서 붓는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격에 맞는 성전을 지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름한 천막 속에 지내신 것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돈이 없어서, 능력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성막 속에 거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천막을 들고 다니며 유목생활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을 백향목으로 지으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7) 백성들이 거주하는 천막과 동일한 천막으로 세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사는 모습과 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서 함께 사셨습니다. 백성들도 천막에 살고 하나님도 천막에 거하시는 모습은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성육신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들과 함께 사시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성전에 사시는 줄로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실만한 그럴듯한 성전을 짓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성막을 통해서 백성들과 함께, 백성들의 중심에 계시길 원하셨습니다.
적 용 : 교회는 성도와 함께 성도들의 삶의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에 교회가 있고, 교회가 삶의 중심에 있습니까?
위대한 과학자 에디슨은 손목시계를 차지 않고 항상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채 일했습니다. 잠시라도 일하는 손을 멈추고 시계를 보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일은 ‘시간 위에 평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업적에 의해 평가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던 그는 어떤 일을 이루는데 2%의 영감과 98%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그는 축음기를 발명할 때 한마디 말을 입력시키기 위해 하루 18시간에서 20시간에 걸쳐 씨름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마음을 다졌고 결국 해냈습니다.” 우리는 근간에 포기하지 않고 인내로 이루어낸 결과가 있습니까?
< 설 교 >
하늘 집을 짓는 마음으로
삼하 7:1-16
양화진 선교사 묘지에 갔을 때 눈에 띄는 한 묘비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초기에 간호 선교사로 와서 30년동안 헌신한 Mabel의 비문입니다.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She hath done what she could.)
일찍이 청교도들은 서로 만날 때마다 이런 신앙고백을 나누었습니다. “단 한번밖에 없는 인생, 그것은 곧 지나갑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행한 것만이 영원히 남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는 받는 신앙이 있고 드리는 신앙이 있습니다. 받는 신앙이 시작이라면 드리는 신앙은 완성입니다. 받는 신앙이 이 땅의 축복이라면 드리는 신앙은 하늘의 축복, 영원한 축복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도 받았던 인물, 그리고 하나님을 몹시도 사랑했던 인물이 나옵니다. 바로 “다윗” 입니다. 그는 시작이 아름다웠고 완성이 아름다웠던 사람입니다. 그는 땅에서 복을 받았고 하늘에 복을 쌓을 줄 알았던 사람이었습니다.
I.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마음 하나로
오늘 본문의 다윗은 많은 시련 끝에 임금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여러 강대국들을 다 무찔렀습니다. 나라가 평안해 졌습니다. 화려하고 웅장한 궁궐을 거닐던 어느날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는데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는 지금 천막 가운데 있구나.” 하나님 앞에 송구하고 또 마음이 아팠습니다.
인생의 절정을 누리고 있을 때에, 생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에, 여러분은 무슨 생각이 나던가요? 내 집을 살 때 하나님의 집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내가 행복할 때 하나님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다윗의 변함없는 영적인 관심을 보십시오. 그가 왕이 되어 아름다운 궁전안에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에 관한 관심은 조금도 퇴색되지 않았습니다. 가난할 때 곧잘 예수를 믿던 사람이 돈 꽤나 벌고 나면 하나님을 등지는 사람 종종 봅니다. 비천에 처했을 때 하나님 앞에 나와 몸부림하며 기도하던 사람들이 평안을 얻고 나면 주님을 저버리는 경우를 왕왕 보게 됩니다.
지금 다윗은 출세를 했습니다. 명성을 얻었습니다. 모든 사람 앞에 높임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관한 영적인 관심은 조금도 변하지를 않았습니다. “내 하나님의 장막은 초라한데 내 집은 너무 화려하구나.” 그래서 나단 선지자에게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열망이 생겼습니다.” 그때 나단 선지자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무릇 마음에 있는 바를 행하소서”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건축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역대하 22장에 다윗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지 않는 이유가 나옵니다.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그는 온유한 사람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찌라” (대상22:8-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살펴보면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주목할 수 있습니다. 역대하 6장 8절은 오늘 본문의 배경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내게 좋도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성전을 건축할 마음을 둔 이것 하나로 내 마음이 기쁘다. 내 마음이 좋도다.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제목이 「건축할 마음 하나로」「하늘 집은 짓는 마음으로」입니다.
다윗은 성전을 건축하는 마음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다윗의 이 마음입니다. 여러분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마음,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마음 하나로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II. 교회가 걸어온 길
세계적인 신앙잡지 「Pulpit」을 발행한 스피노스 목사님은 살아 있는 교회와 죽어가는 교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교실, 주차장 등 공간이 늘 모자라는 문제가 있다. 죽어 가는 교회는 공간을 염려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교회는 항상 변화한다. 죽어가는 교회는 늘 똑같다. 살아있는 교회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떠들고 재잘거리는 소리로 늘 시끄럽다. 죽어가는 교회는 죽은 듯이 조용하다. 살아있는 교회는 언제나 일이 많아 일꾼이 부족하다. 죽어가는 교회는 일이 없기에 일꾼을 찾을 필요가 없다. 살아있는 교회는 언제나 예산을 초과해서 쓴다. 죽어가는 교회는 은행에 잔고가 많다. 살아있는 교회는 새 얼굴의 사람이 많아 이름을 알기가 어려워 애먹는다. 죽어가는 교회는 해를 거듭해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살아있는 교회는 선교사업이 활발하다. 죽어가는 교회는 교회안에서만 움직인다. 살아있는 교회는 드리는 자(giver)로 가득차 있고, 죽어가는 교회는 티내는 자(tipper)로 가득차 있다. 살아있는 교회는 믿음으로 운영되고, 죽어가는 교회는 인간적 판단에 의해 운행된다. 살아있는 교회는 배우고 봉사하기 위하여 바쁘고, 죽어가는 교회는 지내기가 편안하다. 살아있는 교회는 활발하게 전도하고, 죽어가는 교회는 점점 굳어져 화석화되어 간다.」
「빌딩 이즈 미션」(B/D is Mission)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건물이 선교한다는 겁니다. 성전건축은 그냥 빌딩이 아니고 거기에는 목회적인 의미가 있고 신학적인 의미가 있고 선교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전도라고 하는 것이지요.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 가장 좋은 일은 성전을 건축하는 일입니다.
III. 다윗 :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이 많이 있겠지만 가장 오랜 기간동안 우리의 신앙 고백으로 남아있는 것이 바로 성전건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 사실을 깨닫고 복 받은 사람이 오늘 본문의 다윗이라는 사람입니다.
다윗이라고 하는 이름의 뜻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살아갔던 사람, 하나님의 사랑을 참으로 많이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누구보다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만 생각하면 춤이나오고 하나님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왔던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만 바라만 보더라도, 꿈만 꾸더라도 시가 터져 나왔던 사람, 노래가 터져 나왔던 사람, 눈물이 쏟아졌던 사람, 춤이 덩실덩실 나왔던 사람 그가 바로 다윗이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다는 것은 서로 다른 차원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인가 아닌가를 가름할 수 있는 바로메타가 있습니다. 시금석이 있습니다. 내가 얼마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하는 걸 보면 압니다. 내 마음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직도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만 생각해도 좋고 주의 성전 뜰만 밟아도 좋고 바라만 봐도 좋은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내 가슴속에 터질 듯이 넘치고 있다고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내 삶속에 지금 충만히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의 표현을 원하십니다. 왜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받는 큰 축복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가장 고귀한 축복입니다. 다른말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복입니다. 이 땅에서 최고의 복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이요 그런 점에서 다윗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자원하는 심령, 기쁨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억지로 하지 않고 즐겁게 참여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귀한 것을 드려야 됩니다. 못 쓸 것이 아니라 가장 귀한 것을 드려야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돈이 없으셔서 우리에게 꿈땅비전에 동참하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물질을 지으신 창조주입니다.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참여하라고 하십니까? 하나님이 더 사랑하시려고, 더 은혜 주시려고, 더 복 주시려고 우리에게 참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할머니가 시장갔다 오시면 눈깔사탕이라고 하는 왕사탕을 사오셨습니다. 그 사탕 하나 먹으면 아까워 가지고 입에 넣었다가, 빨았다가, 때 묻은 손 가지고 꺼냈다가 또 넣다가 빨았다가 온 동네를 쫓아다니며 자랑을 했습니다. 사탕을 하나씩 나눠주고 우리 할머니는 손자들이 그토록 맛있게 사탕 먹는 모습을 봅니다. 할머니가 보니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할머니는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졌나 시험해 봅니다. “얘들아, 그 사탕 나 줘. 아...”
세 종류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놈은 “할머니가 어떻게 준 것을 또 뺏어?” 그러고 안 뺏기려고 줄행랑을 치는 놈, 어떤 놈은 그 왕사탕 그렇게 큰데도 불구하고 안 뺏기려고 아드득 아드득 깨물다가 혀도 깨무는 놈, 어떤 놈은 할머니가 달라니까 아깝지만, 그러나 할머니가 줬으니까, 사다주신 할머니가 달라는데 줘야지. 내가 눈물을 머금고 줘야지. 받아 가지고 “아~” 넣어주는 놈, 똑같은 자식입니다. 그 세 자식 중에 할머니는 누구를 사랑하겠습니까? 알사탕 10개 사왔는데, 3개 주고 봉지에 7개가 남았습니다.
할머니 드리기 싫어 도망간 손자들 다 제쳐놓고 할머니 입에 사탕 넣어준 손자에게 아예 사탕 봉지째 맡겨 버립니다.
이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이게 하나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더 줄 자를 찾습니다. 복 줄 아들을 찾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더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더 주실 사람을 찾고 있는 겁니다. “누가 더 기도 많이 합니까? 누가 더 전도 많이 합니까? 누가 헌신 더 많이 합니까? 누가 충성 더 많이 합니까? 누가 더 은혜에 보답합니까?” 그것을 찾고 있습니다.
IV. 네 이름을 존귀케 하리라
다윗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마음 하나로 복을 받았습니다.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고 했습니다. 네가 나의 이름을 높였기 때문에 내가 너의 이름을 높이겠다. 네가 나의 이름을 존귀하게 했기 때문에 내가 너의 이름을 존귀하게 해 주겠다.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말에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이름이 존귀해야 합니다. 왜요? 오늘 아침도 내 이름을 하나님이 지금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하는 이 시간에도 성령이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영광스런 보좌 앞에 우리의 이름을 불러 지금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나의 이름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내 이름을 기억만 하더라도 은혜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려고 할 때 가슴이 설레 여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 이름이 존귀함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상 위대한 사람은 그 이름이 영광스러운 사람이요, 그 이름에 추한 사람은 그 인생이 추한 인생 아니겠습니까? 신구약 성경에, 기독교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지만 가장 영광스러운 이름은 다윗이라고 하는 이름입니다. 성경에 수많은 사람이 나오지만 다윗의 이름이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보다도 사도 바울 보다도 심지어는 예수라는 이름 보다도 다윗이라고 하는 이름이 더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메시야를 기억할 때에, 병 낫기를 사모할 때에, 주님 만나기를 사모할 때, 뭇 심령들이 “다윗의 자손 예수여”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을 부를 때에 그 이름 앞에 다윗의 자손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예수님을 부를 때 다윗의 이름을 함께 기억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천군천사들에 쌓여서 하늘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우리 주님 이땅에 오실 때에 재림의 예수를 명명하는 그이름이 어떤 이름입니까?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라고 말합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할렐루야.
V. 안정의 복을 주신다
성전을 건축할 마음 하나만으로 다윗은 안정의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해 주겠다”는 복을 내리고 있습니다. 사사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정되지 못했습니다. 또 광야여행 할 때도 안정감이 없었습니다. 구름기둥이 떠오르면 옮겨야 됐습니다. 법궤가 가는 곳으로 옮겨 다녀야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다윗과 그 자손들에겐 안정의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갈 때 삶이 안정되어지는 것, 가정이 안정되어지는 것, 자녀들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안정되어지는 것, 사회가 안정되어지는 것, 나라가 안정되어지는 것, 민족이 국가가 안정되어지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어떻게 안정될 수 있습니까? 영혼이 잘되어야 범사에 안정감이 있습니다. 마음이 안정되고 신앙이 안정되고 그 영혼이 안정되면 바로 너희들의 삶이, 사회가, 국가가 안정되는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는 것입니다. 법궤가 옮겨 다니면 이스라엘 백성의 안정감이 없습니다. 성전건축하고 법궤가 자리잡게 되면 온 가족들이, 온 백성들이 마음중심을 성전에 담게 될 것이고 그 순간 너희들의 가정이 안정되게 될 것이라는 것이지요. 너희들 영혼들이 성전에 뿌리내리는 그 순간 너희 삶이 안정되게 될 것이다. 온 백성들이 성전에 마음 담고 살아가는 그 순간 너희 국가가 안정될 것이다. 할렐루야. 다윗은 안정의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계속되어지는 12절 14절 15절 말씀에 보면 여러 가지 안정가운데 특별히 자손의 안정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내 위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네가 이땅에 살아가는 어느날 너는 조상들과 함께 죽겠지. 너의 자손들이 이 땅에 태어나 왕위를 계승하게 될텐데 그 왕위를 내가 견고하게 해 주겠다고 말씀합니다.
계속되는 말씀에 보면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네 자손들이 실수할 게야. 네 자손들이 죄를 지을 거야. 네 자손들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을 게야. 그러나 내가 저들을 왕위에서 쫓아 내지 아니할 것이다. 때로는 채찍을 들고 때로는 징계할 것이지만 너의 이름을 봐서 네 얼굴을 봐서 네 자손들을 내가 번성케 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솔로몬은 죄를 짓고 많은 허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대에 하나님의 은총을 거두지 아니하고 왕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다윗의 왕권을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경상남도 한 시골에 김성은이라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6.25때 군에 입대했고 그가 27살의 나이에 별을 달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다음에 어머니께 찾아가 인사를 드렸습니다. 경찰서장을 대동하고 어머니 앞에 큰절을 올리고 별이 달린 모자를 그 앞에 놓고 “어머니, 어머니 곁을 떠났던 그 자식이 별을 달고 어머니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시큰둥해 하셨습니다. “그 별은 언젠가는 떨어질 똥별이다. 나는 네가 하늘의 별을 달기를 원한다. 네가 어느 지역에 가서 어떤 위치에 있든지 거기서 복음 전하는 일, 성전세우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아니될 게야.” 이 사람은 4성 장군이 되었고 국방부장관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김성은 국방부장관입니다. 가는 곳곳마다 복음을 전했고 군부대에 수많은 예배당을 세웠습니다. 그가 전역한 다음에 하나님께서 주셨던 모든 땅을 다 팔아서 약수동에 한국교회가 낳은 예배당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예배당으로 꼽혀지는 약수동 신일교회를 세웠습니다. 성전을 봉헌한 다음에 예배당 사진을 구석구석을 찍어서 어머니 앞에 찾아갔습니다. “어머니 이 예배당 저희들이 지어서 하나님 앞에 봉헌했습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나는 네가 목사가 되기를 위해서 기도했다. 그런데 네가 목사는 되지 못했지만 이제야 네가 하늘의 별을 달았구나.” 그 예배당을 통하여 뭇 심령들의 하늘의 별이 되어서 오르게 될 것이다. 뭇 영혼 구원하게 될 것이다. 이제야 네가 땅에서 썩을 별이 아니고 떨어질 별이 아니고 하늘의 별을 달았구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VI.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복을 주신다
계속해서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왕조는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왕조를 통하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탄생하시고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으리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예수 이름 앞에 사단은 두려워 떨게 될 것이며 다윗의 왕가를 통하여 태어난 예수의 이름 앞에 하늘문이 열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땅에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가장 복된 축복은 영생의 축복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우리가 복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바로 너의 왕위를 통하여 태어날 예수를 통하여 영원한 나라를, 하늘의 왕국을, 하나님 나라를 내가 건설하게 될 것이니라.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우리가 조심스럽게 읽어내려 가다보면 아주 우리의 관심을 주목시키는 한 구절이 나옵니다. 11절 마지막 부분에 보면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무슨 얘기이겠습니까? 네가 나의 집을 짓겠다구. 아니야. 너는 내 집을 지을 수가 없어. 나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겠다구. 아니야. 나는 집이 필요없는 존재야. 나는 성전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야. 이 성전이 아니더라도 나는 얼마든지 영광받을 수 있고 이 성전이 아니더라도 나는 얼마든지 이 땅을 구원할 수 있어. 네가 내 집을 짓는다고. 아니야. 네가 내 집을 짓겠다는 마음을 가진 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한다면 내가 너를 위하여 영원한 집을 짓는 것이 은혜가 아니겠더냐. 네가 나를 위하여 집을 지을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지어주겠다. 할렐루야. 하늘의 집을 지어 주리라. 그래서 하늘 집을 짓는 마음으로 우리는 성전을 건축할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다는 마음 하나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해 주셨고 영원한 나라를 건설해 주셨고 다윗의 영혼을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여 하늘 집을 지어 주셨던 것이지요. 성전 건축을 하려던 자신의 꿈은 하나님의 거절로 실현되지 않았지만, 다윗은 솔로몬 시대에 이루어질 성전 건축을 위해 금과 은을 모으며 힘을 다하여 예비하기 시작했습니다.(대상29:2)
다윗은 그의 왕국이 자신이 집권중인 당대에만 대과없이 번영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통치하는 단견을 가진 왕이 아니었습니다. 먼 후 대를 바라보면서 ‘국가 백년 대계’를 세워 후손을 위해 현 시점에서 자신이 담당해야 할 일감을 찾아 미리 준비하는 경륜있는 통치자였습니다. 다윗 왕국은 후손들에게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빚을 지게 하는 나라가 아니라, 조상이 준비해 둔 풍성한 물질적,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으며 태어나게 하는 나라였습니다.
비록 성전건축은 허락하지 않았으나 다윗이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뜻대로 행하려는 진심을 하나님께서는 깊이 인정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집, 곧 다윗 왕조를 영원히 견고하게 세워주시겠다는 영원한 언약을 주셨습니다.
기억하십시다. 자기가 지은 집에 자기가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지은 집에 내가 사는 겁니다. 이 땅에서도 내가 집 짓는 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뿌린 대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도 내가 지은 집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복을 받고 너무 감사해서 울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종이 무엇이관대 이 복을 주십니까? 종의 집이 무엇이관대 이 엄청난 복을 주십니까? 종의 자식들이 무엇이관대 이 엄청난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더란 말입니까?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울며 울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인생은 집을 짓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있고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에서 인생은 집짓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믿음의 집을 짓고 있습니까?
오 헨리의 단편 소설 중에 「20년 후」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교회 안에서 지금 똑같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십년 후 이십년 후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집을 짓지 못해서 이 땅에서 자신의 성전을 짓지 못해서 하늘 영원한 집에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십년후에도 교회의 구경꾼으로 이십년후에도 신앙의 방관자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불행한 대열에 여러분 가운데 누가 서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비극적인 일이겠습니까? 성전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나의 집을 지어주는 것입니다. 하늘 집 영생의 집을 지어 주시는 축복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성전을 지었습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 집을 짓는 잘세 잘짓고 잘짓세 하늘 집을 잘 짓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