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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TheTankMaster님의 글에 대한 답글로 쓰여졌으나, 구체적인 사건과 정책 전반에 대한 저의 견해를 포괄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미시시피에서 살아남기라는 제목은 제가 어릴 때 보던 만화책 시리즈에서 따온 것입니다. <아마존에서 살아남기>는 실제 존재하는 시리즈로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나는데, 세계 제일 아마존에는 못 미치지만 마찬가지로 긴 미시시피 강은 아쉽게도 시리즈가 없을 것 같네요. 그러나 더욱 아쉽게도, 이 글은 재밌는 서바이벌 상식이 아닌 미국의 노동과 복지에 대한 저의 단편적인 인상을 다룹니다.
1. 미시시피는 지옥 밑의 불지옥인가
미시시피 주는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주입니다. 전형적인 남부의 작은 주인 미시시피 주의 대표 산업은 농업으로 남북전쟁 직전에는 노예제에 기반한 목화 농장 경영이 큰 수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남북 전쟁 과정에서 미시시피는 북군의 처참한 초토화 작전에 그대로 노출됐고, 전쟁이 끝나고 목화 농장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그 짧은 황금기(?)는 싱겁게 막을 내렸습니다. 이후 미시시피는 전형적인 남부 주답게 산업화의 혜택을 별로 받지 못하고, 짐 크로 법으로 불리는 제도들로 흑인들을 탄압과 린치, 투표권 박탈을 자행하였죠. 오늘날까지 이런 양상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 심지어 조지 플로이드 시위가 벌어진 작년까지 남부 연합 국기를 포함한 주기를 사용했기에 딥 사우스 스테이트로 악명 높았습니다. 그밖에 그나마 가장 잘 알려진 점은 상술한 것처럼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주라는 사실이죠.
그렇다면 이 가난한 주의 소득은 얼마나 될까요? 놀랍게도 1인당 GDP 기준 40,600달러로 엄연한 선진국인 한국과 이탈리아 보다 높고, 일본이나 영국과도 큰 차이가 없는 수준입니다. 이것이 몇년 전에 영국에서 이슈가 되기도 했죠. 물론 이것이 불평등이나 실업률 같은 다양한 지표부터 건강상태, 서비스의 접근성과 품질 등 생활과 밀접한 여러 요인까지 반영해주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생활상은 어떨까요? 먼저 얼마나 빈곤한 이들이 많은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빈곤율 통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2018년 기준 미시시피의 빈곤율은 19.7%로 미국 전체 평균인 11.8%보다 유의미하게 높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먼저 통계의 함정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빈곤하다는 것은 뭘까요? 어떤 강의에서 교수님이 부르주아지를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할 필요가 없는 사람'으로 정의한 것이 개인적으로 인상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그 울림과는 별개로 통계를 내기 위한 기준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보통 절대 빈곤율은 최저생계비 기준을 확정하고(이를 빈곤선 poverty threshold라 합니다), 소득이 그 아래인 가구를 빈곤 가정으로 보아 결과를 냅니다. 당연히 빈곤 기준은 나라나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세계 은행은 세계 빈곤선을 1일 생계비가 2달러 보다 낮은 1인 가구로 두는데, 이런 기준에서 미국이나 한국을 본다면 당연히 노숙자들조차 이에 해당되지 않아 사실상 빈곤이 없는 나라라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떨까요? 연방정부의 사회보장국은 60년대에 제정한 연방 빈곤선 산출 공식을 오늘날까지 물가 변동만을 반영한 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연방빈곤선의 기본 골자는 3인 가구의 생계 유지를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식료품 가격에 3을 곱한 것입니다. 이를 가구의 세전 현금소득과 비교하여, 낮으면 빈곤 가구로 분류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분류는 현실을 잘 반영하지 못한다 지적받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복지 제도의 존재입니다.
미국에서 불평등과 후생을 논의할 때 복지제도는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물론, 미국이 복지 제도가 취약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고 유럽 국가들의 복지 프로그램을 기준으로 놓고 비교해 본다면 실제로 그러합니다. 그러나 미국의 복지 제도, 구체적으로는 푸드 스탬프라 불리는 SNAP와 근로장려세제 EITC 프로그램은 저소득 가구의 소득의 상당 부분을 보정하며 그 범위는 매우 넓습니다. SNAP는 빈곤 가구의 영양을 보충해주기 위해 식품 구매에 사용할 수 있는 바우처를 카드 형식으로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그 액수는 인당 월 평균 125달러로 소득에 따라 최고 수령액이 200달러에 이르기도 합니다. 한편 근로장려세제는 소득이 낮은 근로자에게 직접 세액 공재의 형태로 근로 장려금을 지급해주는 제도입니다. EITC 지원금은 소득 수준이 높아질 수록 점점 적어지기에 일자리를 가지고 근무만 하고 있다면 세전 임금이 적더라도 최소한의 세후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코로나 이전 기준으로 미국 전체 인구에서 SNAP의 혜택을 받는 대상자의 수는 약 4천만 명, EITC의 혜택을 받는 가구는 약 3천만 가구로 집계됩니다. 이들 가구 다수는 낮은 임금에도 상당 부분 이전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고, 일정 수준까지는 임금이 늘어도 세후 소득의 증가폭이 두드러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미국의 물가입니다. 미국은 한국이나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높은 소득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시장 경쟁과 넓고 풍요로운 국토로 인해 생필품인 식료품과 가전제품의 물가가 매우 낮은 편입니다. 물론 대중교통과 전기세, 외식비 등을 고려하면 막연히 싸다고 단언할 수준은 아닙니다. 그러나 낮은 임금으로도 생계를 유지하는 데 절실한 생필품을 조달하는 것은 비교적 쉬우며, 지역적 편차를 감안할 때 미시시피는 특히 물가가 낮은 편에 속합니다. 예컨데 미국 씽크탱크인 택스 파운데이션은 지역 물가를 지역에 따른 돈의 가치로 나타냈는데, 돈의 가치가 미국 전역을 통틀어 가장 높은(물가 부담이 가장 낮은) 미시시피 주에서 100달러는 116달러의 상대 가치를 가진다 합니다. 이는 가장 물가가 비싼 하와이나 DC의 85달러보다 자그마치 30달러 이상 차이가 나는 결과입니다.
결론적으로, 사회 곳곳의 수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적당히 사람이 잘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다른 선진국들을 초라하게 만들 정도로 부자나라일 뿐더러, 사회에 만연한 빈곤과 불평등이라는 한계 속에서도 다양한 제도와 미국적 특색들은 많은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양상은 특히 빈곤율 통계만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미시시피와 같은 가난한 주의 경우 더욱 두드러집니다.
2. 의회예산국 보고서 다시 읽기 - 그래서 미시시피는?
그럼 이제 다시 쟁점이었던 조 바이든 행정부의 2025년 이내 최저임금 시간당 15달로 인상 공약 법안(the Wage Act of 2021)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죠. 의회 예산국은 해당 법안이 2021년에 제정된다는 것으로 가정하고 다음과 같은 예상을 제시했습니다.
①최저임금의 인상은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의 근로 소득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미 상승한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근로자의 임금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90만명의 미국인이 빈곤층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②최저임금의 인상은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140만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이는 추계치로, 그 수가 100만 명을 하회하거나 200만 명을 상회할 가능성 또한 각각 3분의 1로 적지 않다.
③최저임금의 인상은 물가의 상승을 초래할 것이다. 이는 특히 최저임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가격이 낮은 재화와 상품에 두드러질 것이다.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에 소득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 가구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제 앞서 설명한 미국 고용시장과 후생의 특징을 통해, 위와 같은 분석을 보다 면밀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서, 장기간 활황이던 미국 경제에 큰 충격을 준 코로나-19 대유행의 여파 역시 함께 고려할 수 있겠죠. 다시 미시시피를 가져와봅시다.
코로나 직전 미국은 사실상 완전 고용을 달성한 상태로 평가받았습니다. 2019년 미국의 실업률은 3.7%고, 미국에서 경제가 가장 낙후되었던 미시시피 역시 5% 내외의 실업률을 유지하였습니다. 따라서 빈곤가구의 상당수가 실질적으로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지만 빈곤한 워킹 푸어 상태이고, 노동 시장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주어지는 EITC와 SNAP을 감안하면 미국 전역을 기준으로 한 연방 빈곤선 밑의 가구도 소득이 최저임금 수준만큼 낮지는 않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미시시피의 물가가 낮은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겠죠.
그리고 코로나로 인한 경기 위축은 대규모 실업으로 이어졌습니다. 실업률은 치솟았고, 일자리를 잃지 않았더라도 근무 시간이 단축돼 소득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았죠. 더욱이 실업률 통계가 잡지는 못하지만 정상적인 경기라면 노동 시장에 진입해야할 청년층 다수가 그러지 못했습니다. 또한 의료 보험을 포함한 미국의 복지가 근로 연계 복지로 노동시장 참여에 기반한 경우가 많았기에, 특히 많은 미국 가정에게 코로나는 더욱 혹독하였습니다. 즉, 미국 경제와 실질적인 빈곤 완화, 다양한 영역에서 보장성 확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고용이 예전만큼 회복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행히 현재 미국의 코로나 확산세는 계절적 변동과 백신 접종으로 상당 부분 진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지난 여름부터 경제활동이 상당부분 재개되면서 고용도 다시 원 상태를 향해 회복을 시작했죠.
그런데 여기서 최저임금의 변수를 한 번 생각해봅시다. 사실 이미 시간당 15달러 이상을 최저임금으로 설정한 시애틀 같은 부유한 도시는,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시시피의 경우 최저임금 인상이 실질적인 임금을 강제로 끌어올리는 효과를 낳을 것이고,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실업의 충격 역시 미시시피가 더 극심할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는 비단 실업뿐 아니라, 물가 상승에도 똑같이 해당되는 일이겠지요. 이미 미시시피의 많은 근로자는 이전소득의 영향으로 빈곤 가구로 집계되지만 실제로는 복지 정책으로 많은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실업이 증가하고 물가가 상승한다면 미시시피는 가장 가난한 주이면서 최저임금 인상의 역효과에 가장 잘 노출되는 지역이 될 것입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연방정부의 최저임금은 엄밀히 말하면 미국 전역의 전 직종을 커버하는 것이 아닙니다. 연방정부의 최저임금을 규율하는 공정근로법의 대상자는 주 간의 경제 활동에 종사하는 직종, 대규모 사업체, 학교, 병원 등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합법적으로 최저임금을 준수하지 않는 일자리가 여전히 미국에는 존재하며, 현재 최저임금이 시장임금과 큰 차이가 없기에 이것이 두드러지지 않을 뿐입니다. 급격한 최저 임금 인상이 최저임금의 미준수를 불러올 것이고, 이것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일일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측이 가능합니다.
한편 이전 글에서 간단히 언급한 바가 있지만, 미국에서는 현재 종래의 노동 법규를 적용할 수 없는 플랫폼 노동 형태가 이미 미국 전역에 광범위하게 확산되었습니다. 이들을 종래의 노동법규에 포섭하려는 법안들이 여럿 있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대책은 내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발생된 실직자들은 다수가 생계 유지를 위해 이에 플랫폼 노동에 활발히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은 종래의 노동과 달리 의료보험이나 최저임금 등 노동자에 대한 효과적인 보호와 보장이 부족합니다. 곧, 최저임금 이상을 받는 전통적 노동 시장의 1등 노동자와 받지 못하고 불안정한 플랫폼 노동을 전전하는 2등 노동자로 여태껏 미국에는 드물었던 노동 시장의 위계화와 단절이 조장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런 역효과에 가장 취약한 지역은 역설적으로 미시시피를 위시한 가난한 지역들이겠지요.
물론, 임금 상승의 정책 수단으로서 최저 임금제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4년 이내 두 배 이상 인상과 같은 급진적인 수단을 따르지 않더라도, 4년 간 년 1달러 수준의 점진적인 인상 혹은 시간당 15달러 달성년도를 2029년으로 조정 정도면 보다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3. 결론
한국에서 최저임금 액수는 사회 정책의 대표로 여겨졌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하면 노동자 권리를 지지하는 좌파고 반대하면 시장 경제를 중요시하는 우파라는 식으로요. 그러나 최저임금제는 전형적인 복지의 수단도 아닐 뿐더러 철학적으로 기만적인 제도입니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가 직접 나서야할 일이지, 마찬가지로 다양한 약자를 포괄하는 자영업자나 사업주들에게 전가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편 현실적인 관점에서, 최저임금제는 좌파의 정책, 우파의 정책이 아니고 '고용을 감소시킬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임금을 인상시킬 수 있는 정책'입니다. 이처럼 정책에 대한 논의는 막연히 정의와 부정의로 나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념의 관점에 따라 임의로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정책에 관한 논의가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낡은 '관성'을 뛰어넘을 수 있길 희망해봅니다.
참고자료
Congressional Budget Office(2021). The Budgetary Effects of the Raise the Wage Act of 2021. Congressional Budget Office Report. Feb 8. ( The Budgetary Effects of the Raise the Wage Act of 2021 | Congressional Budget Office (cbo.gov) 접속일자 18.02.21)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Economy at a Glance: Mississipi. ( Mississippi Economy at a Glance (bls.gov) 접속일자 상동)
김미곤 외(2009). 최저생계비 계측방식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첫댓글 평소 최저임금제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사용자에게 전가한다는 느낌이었는데.. 글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워싱턴주랑 미시시피주의 환경이 같지 않다는게 문제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