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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경제의 성지 ‘프릭 컬렉션(The Frick Collection)’
미국 뉴욕의 대표 미술관 중 하나인 ‘프릭 컬렉션(The Frick Collection)’. 철강 재벌 헨리 클레이 프릭이 살던 저택으로, 그의 사후 1500여 점의 소장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프릭 컬렉션
《미국 뉴욕의 예술적 고급스러움을 제대로 느끼려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바로 ‘프릭 컬렉션’이다. 5번가 70스트리트에 위치한 이 미술관은 티치아노, 벨라스케스, 렘브란트의 명작이 즐비한 보석 같은 곳이다. 특히 일명 ‘프라고나르의 방’이야말로 예술의 성지이자 경제의 성지라고 부를 만한 곳이다. 바로 이 방에서 이른바 ‘도금 시대’라 부르는 미 경제의 초호황기를 이끈 ‘금융왕’ 존 피어폰트 모건(1837∼1913)과 철강 재벌 헨리 클레이 프릭(1849∼1919)의 미적 취향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릭 컬렉션(The Frick Collection)의 대표 작품 중 프라고나르(Fragonard)의 '사랑의 단계(The Progress of Love)'라는 연작이 있다. '구애', '밀회', '화관 쓰는 연인', '연애편지'로 이루어진 이 연작은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그는 귀족들의 연애 장면을 여러 상징을 이용해 노골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구애'에서 나타나는 큐피드는 앞으로 이들이 사랑에 빠질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밀회'에서는 비너스가 큐피트를 막아서 이들의 사랑이 아직 이루어 질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한다. 마치 누군가의 눈을 피해 만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장면은 사랑에 빠진 남녀가 참지 못하고 서로를 갈구하는 듯 하다. '화관 쓰는 연인'에서는 마침내 이들의 사랑이 이루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화관은 이들의 결합을 의미하고, 이들 앞에 한 화가가 사랑의 증인이 돼 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 '연애편지'에서는 서로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다시 읽으며 서로에게 열정적이었던 시절을 회상한다.
프랑스 로코코 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e Fragonard, 1732-1806), ‘사랑의 단계(The Progress of Love)’ 4연작 중 ‘프로포즈(The Pursuit: The Progress of Love)’, 1771-1772, 캔버스에 유채, 318×216cm, 프릭 컬렉션, 뉴욕.
네 개의 그림 중 첫 번째 작품인 '추구(The Pursuit)'에서는 우아하고 호화로운 옷을 입은 세 명의 젊은 여성이 공원에서 봄 또는 여름 오후를 즐기고 있다. 갑자기, 장미가 만발한 항아리를 받치고 있는 거대한 돌 받침대 뒤에 숨어 있는 아주 젊은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모자를 손에 들고 젊은 여성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 장미를 준다. 이 갑작스런 출현에 아가씨들은 겁에 질린다. 화가는 자신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강한 몸짓을 사용한다.
장면은 그림의 아래쪽 절반을 간신히 덮고 하늘과 초목이 배경을 구성하는 위에 나타난다. 기념비적 인 분수가 오른쪽 상단 모서리를 차지한다. 돌고래에 앉아 있는 두 마리의 큐피드가 주인공을 관찰하고 있다. 그들의 위치는 아래 세 명의 여성 인물의 위치를 반영한다.
장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e Fragonard, 1732-1806), ‘사랑의 단계(The Progress of Love)’ 4연작 중 ‘은밀한 만남(The Meeting)’, 1771-1772, 캔버스에 유채, 318×244cm, 프릭 컬렉션, 뉴욕.
두 번째 장면인 만남(The Encounter)에는 추구(The Pursuit)의 두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어린 소녀는 공원의 다른 곳에서 구혼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해 벽을 기어올랐고, 그의 곁에는 사다리가 보인다. 그의 파트너는 놀랄까 봐 두려워 주변을 관찰한다. 구성은 동일하게 유지된다. 맨 아래에 놓인 만남 장면은 비너스와 큐피드를 상징하는 큰 대리석 조각상으로 덮여 있다. 비너스의 포즈는 그녀 역시 만남의 비밀을 지켜보며 경계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분홍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정원에서 젊은 남녀가 은밀하게 만난다. 한껏 멋을 낸 청년이 대담하게 사다리를 타고 담을 넘었다.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연애편지를 읽고 있던 아가씨는 가슴 뛰는 만남의 순간에 인기척을 느끼고 화들짝 놀란다. 프랑스 대혁명 직전, 구(舊)체제 안에서 온갖 호사와 향락을 즐기며 세상 변하는 줄 몰랐던 귀족들의 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작품이다.
프랑스 로코코 화가 장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e Fragonard, 1732-1806), ‘사랑의 단계(The Progress of Love)’ 4연작 중 ‘사랑의 왕관(The Lover Crowned)’, 1771-1772, 캔버스에 유채, 318×243cm, 프릭 컬렉션, 뉴욕.
세 번째 장면인 '왕관을 쓴 연인'은 앞의 두 장면의 전체적인 구성을 존중하지만, 사랑의 꽃이 만발하는 것에 상응하는 특히 꽃이 만발하고 다채로운 환경에서 이루어진다. 이제 비밀이 요구되지 않는다. 두 연인은 공원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고 옆에 있는 열린 악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탬버린이 점수 위에 놓여 있다. 심지어 오른쪽에는 화가가 나타나 두 주인공을 그린다. 배경의 조각품은 이제 고대 사랑의 신인 큐피드의 조각품이다. 그는 잠이 들었는데, 아마도 이런 감정을 불러일으킨 화살을 던진 후였을 것이다.
프랑스 로코코 화가 장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e Fragonard, 1732-1806), ‘사랑의 단계(The Progress of Love)’ 4연작 중 ‘러브 레터(Love Letter)’, 1771-1772, 캔버스에 유채, 317×217cm, 프릭 컬렉션, 뉴욕
마지막 장면인 '러브 레터(The Love Letter)'는 사랑의 관계의 완성에 해당하며, 여기서 두 몸의 결합으로 표시된다. 젊은이는 자신이 그녀에게 보낸 연애편지를 읽고 있는 젊은 여성을 껴안는다. 부부는 이전 장면에서와 같이 화단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오른쪽에는 고대 여신과 큐피드를 대표하는 동상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다. 여신은 결혼과 다산의 그리스 여신 인 헤라 (Hera) (로마의 Juno) 일 수 있다.
사랑의 편지에서 관찰할 수 있는 구성은 매우 독창적이다. 작품은 사실적으로 그려진 인물과 다채로운 배경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중앙의 여성 캐릭터는 손에 편지를 들고 있다. 그녀의 시선은 구도상 촉각적인 감정을 자극하며, 이 순간의 긴장감과 기대감을 시사한다. 또한, 배경에 위치한 남성 캐릭터의 모습은 그림에 깊이와 드라마를 추가하며, 사랑의 복잡한 감정과 비밀스러운 요소를 더욱 강조한다.
18세기 프랑스 귀족의 방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 공간은 프랑스 로코코(Rococo) 화가 장오노레 프라고나르(1732∼1806)의 ‘사랑의 단계’ 4연작을 중심으로 꾸며졌다. 원래 프라고나르의 그림들은 1771년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의 애첩 뒤바리 부인을 위해 제작됐다. 1899년 모건이 이를 30만 달러에 사들여 그의 영국 런던 저택을 장식했다. 모건이 사망한 후 이 그림들은 프릭에게 넘어가 지금처럼 전시되고 있다. 이렇게 프라고나르의 그림들이 두 재벌 모건과 프릭 모두를 사로잡았다니 눈길이 더 많이 갈 수밖에 없다.
빛과 그림자 함께 지닌 헨리 프릭
제럴드 켈리(Gerald Kelly)의 ‘헨리 클레이 프릭(Henry Clay Frick, 1849-1919)의 초상화’(1925). 사진 출처 프릭 피츠버그 박물관
여기서 ‘프릭 컬렉션’을 세운 프릭이 어떤 사람인지 잠시 살펴보자. 그는 1849년 미 펜실베이니아의 한적한 시골에서 태어났는데, 철강 산업에 필요한 석탄 공급을 독점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남북전쟁 후 미 대륙 전역에 철도가 놓이면서 철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와 손잡고 미국의 철강 산업을 일으켜 부를 쌓게 된다.
탁월한 기업인처럼 보이지만 프릭의 성공 이면에는 잔인한 노조 탄압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그는 노조에 가입한 탄광 노동자를 내쫓았고, 이로 인해 발생한 1892년 홈스테드 파업을 사설 용역을 동원해 잔인하게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10명이 숨지고 60명이 크게 다쳤다. 이 일을 계기로 그 자신도 테러를 당해 총상을 입었지만 결국 살아났다. 그야말로 19세기 말 미 고도 경제성장의 영광과 어둠을 한 몸으로 겪은 기업인이다.
어쨌든 프릭이 1901년 카네기 철강회사의 지분을 정리하면서 받은 돈은 3000만 달러였다. 그는 이 막대한 돈으로 뉴욕 한복판에 자신의 저택을 지었다. 한 블록 전체를 매입하는 데 200만 달러를 썼고, 여기에 300만 달러를 들여 르네상스식 건축물을 올렸다. 오늘날 화폐 가치로 대략 1억5000만 달러(약 2000억 원)를 총건축비로 투입한 것이다.
프릭의 저택을 장식할 그림에 투여된 돈에 비하면 건축비는 상대적으로 미미해 보인다. 그는 응접실 공간을 꾸미기 위해 모건이 소장했던 프라고나르의 연작을 구매했는데, 이때 그가 지불한 돈이 125만 달러였다. 부지 매입비가 200만 달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액수다. 이 외에 그가 소장한 1500여 점의 작품 가치는 총건축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높았다.
‘도금 시대’ 대저택이 미술관으로
프릭이 이처럼 정성을 다해 짓고, 값비싼 미술품으로 꾸민 그의 대저택이 바로 오늘날 프릭 컬렉션이다. 그는 1919년 생을 마감하며 자신의 뉴욕 저택과 자신이 모은 미술품을 사회에 되돌려주겠다고 선언했다. 단순히 공간과 작품만 내놓은 것이 아니라 미술관을 운영할 수 있는 기금으로 1500만 달러도 기부했다. 결국 이 같은 그의 유언에 따라 그의 부인이 사망한 후 1935년부터 그의 저택은 프릭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공개됐다.
프릭 컬렉션 내 ‘프라고나르의 방’.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프릭 컬렉션
오늘날 프릭 컬렉션 내 프라고나르의 방은 1916년 저택이 완성됐을 때의 모습과 거의 동일하다. 프라고나르의 사랑 연작뿐만 아니라 의자나 탁자 같은 가구, 거기에 놓인 조각과 도자기 모두 처음 프릭이 연출한 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니 이 방에 들어가는 것은 미국식 자본주의가 남긴 빛나는 순간을 마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경제 호황기를 ‘황금시대(Golden Age)’라고 부르는데, 미 경제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 시기는 이와 달리 도금 시대, 즉 ‘길디드 에이지(Gilded Age)’라고 부른다. 길디드라는 용어는 금박이 입혀져 있다는 뜻으로, 미국의 부가 겉만 번지르르하지만 속은 비어 있는 벼락부자라는 조롱의 의미가 담겨 있다.
사실 이 시기 미 경제를 이끌었던 경제인을 부를 때 쓰이는 말도 무시무시하다. 바로 ‘로버 배런(Robber Baron)’, 즉 강도 귀족이 그것이다. 프릭뿐만 아니라 모건, 록펠러, 카네기 같은 금융인과 기업인을 부를 때 이 타이틀이 자주 따라붙는다. 이들이 독점을 통해 경쟁 기업을 제압하고, 노조를 짓밟으며 부도덕하게 부를 모았다는 점을 비판하기 위한 용어다. 그럼에도 ‘강도 같은 귀족’이 주는 어감만큼은 정말 살벌하다.
그런데 프릭 컬렉션을 방문해 특히 프라고나르의 방에 들어가 보면 ‘길디드 에이지’나 ‘로버 배런’이라는 용어가 정확한 표현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너무나 고상하고, 너무나 고급스러워서 감탄을 연발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벼락부자나 강도 귀족으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품위가 넘쳐난다. 유럽의 어느 명문가의 저택도 이보다 더 우아할 수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곳인데, 사실 여기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프라고나르의 방이나 프릭 컬렉션의 건축과 내부 인테리어, 미술품 구매는 상당 부분 프릭이 영국의 아트 딜러 조지프 듀빈(1869∼1939)의 조언을 받아들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트 딜러 만나 예술적 결실 완성
듀빈은 유럽의 예술품과 미국의 자본을 연결한 전설적 아트 딜러다. 그는 단순히 작품을 중개하는 상인이 아니었다. 미국의 신흥 재벌들에게 미술 멘토이자 컬렉션 조언자였다. 그는 “유럽에는 예술품이 넘쳐나고, 미국에는 돈이 넘쳐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양쪽을 연결하는 데 비즈니스 감각을 발휘했다. 그는 프릭뿐만 아니라 모건, 록펠러 2세, 헌팅턴 등 도금 시대를 대표하는 거부들의 컬렉션을 사실상 독점 관리했다.
결과적으로 듀빈의 안목은 미국의 미술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유럽을 대표하는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의 명작 상당수가 그의 손을 거쳐 대서양을 건넜다. 오늘날 프릭 컬렉션뿐만 아니라 미국의 주요 미술관들이 유럽의 명품으로 가득 차 있는 배경에는 그가 신대륙 미국에서 유럽의 미술품 판매 활동을 역동적으로 벌인 결과가 자리하고 있다.
한편 미 신흥 재벌들은 듀빈이 선별한 미술품을 소장하면서 또 다른 정체성을 얻게 됐다. 벼락부자나 강도 귀족으로 불리던 악명 대신 ‘미술 컬렉터’나 ‘문화 후원자’라는 고상한 타이틀이 더 자주 따라붙기 때문이다. 결국 미술품 덕분에 이들의 평가는 악덕 기업가에서 문화예술 후원인으로 변신했다.
실제로 오늘날 프릭이라는 인물을 브리태니커 사전에 검색해 보면 그의 이름 뒤로 세 개의 용어가 순차적으로 나온다. 기업인, 미술 컬렉터, 자선가가 그것이다. 이제 그는 기업으로 돈을 벌어 미술품을 모아 그것을 사회에 아낌없이 환원한 자애로운 인물로 기억된다.
‘부자가 헛돈 쓰는 일은 없다’는 말처럼, 프릭이나 동시대 미국의 성공한 기업인들이 미술품에 쏟아부은 막대한 돈은 처음엔 과시적 소비로 조롱받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들의 삶을 새롭게 비추는 명예로운 등대가 되고 있다. 프릭 컬렉션 내 프라고나르의 방은 이 같은 변화의 생생한 증거이다. 프라고나르의 방은 프릭이라는 자산가의 엄청난 돈과 듀빈이라는 아트 딜러의 탁월한 안목이 빚어낸 독특한 예술적 결실로, 시간이 갈수록 더 빛나게 될 것이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 1732–1806). ‘자화상(Self portrait)’, 1770년.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 1732–1806) : 중요한 시적 화가로 평가받는 18세기 프랑스 로코코 회화의 거장으로 주요 작품은 <그네(The Swing)>(1967). 초기에는 변호사의 도제였으나 곧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프랑수아 부세의 제자가 되었으며 그후 아카데미 프랑세즈에서 로마 바로크 시기의 작품들을 모사하면서 그림을 공부한 후 살롱전에 데뷔했다. 렘브란트, 루벤스, 조반니 바티스타 티에폴로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그림에서는 인물보다도 환상적인 의상과 장식적인 표현이 강조되었다. 초기의 로코코 회화에서 후기에는 신고전주의적인 주제로 방향이 바뀌었으며, 프랑스 혁명 후에는 점차 잊혀 졌지만 후대에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시적 화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 1732–1806). ‘그네 (The Swing/Les Hasards heureux de l’escarpolette)’, 1767. 캔버스에 유채, 81×64cm, The Wallace Collection, 런던.
18세기 프랑스, 루이 15세(Louis XV) 치세의 궁정과 살롱 문화는 쾌락, 연애, 유희를 예술로 즐기던 시기에 로코코(Rococo)는 바로크(Baroqu)의 장엄한 종교·역사 주제 대신, 사랑과 장난, 관능과 유희를 주요 테마로 삼았다. ‘그네’는 그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로코코의 “가볍지만 세련된 감각”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 그림은 원래 귀족 후원자가 ‘연인과의 밀회 장면을 즐겁게 그려 달라’고 주문한 작품이다. 프라고나르는 이를 단순한 풍속화가 아니라, 사랑의 장난과 비밀스러운 관능을 회화적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신화나 종교를 빌리지 않고, 당대 귀족들의 실제 연애풍속을 은밀하게 드러냈다.
중심장면은 젊은 여인이 그네에 앉아 공중으로 높이 솟아오르고 왼쪽 아래 남성은 관목 속에 숨어 치마 속을 올려다보는 연인이다. 오른쪽 뒤 그네를 밀어주는 노인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연인의 밀회를 돕는다. 큐피드(Cupid) 조각상의 ‘쉿’ 제스처는 비밀을 지켜달라는 알리바이를 암시한다. 색채는 파스텔 톤의 분홍, 연두, 하늘빛이 어우러져 가벼운 쾌락의 세계 연출하고 자연은 무성한 정원, 빛과 그림자가 춤추는 듯한 분위기로 사랑의 무대로 꾸며졌다. 분위기는 현실적 사건이지만, 꿈결 같은 판타지로 표현하여 현실과 환상의 경계한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 1732–1806), ‘칼리로이를 구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시키는 코레소스(Coresus Sacrifices Himself to Save Callirhoe)’, 1765년.
[출처: 동아일보 2025년 09월 22일(월) 〈양정무의 미술과 경제(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이영일 ∙ 고앵자 yil2078@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