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완전한 형태로 복원된 『난중일기』 국내 최초 완역
400여 년 동안 묻혀 있던 을미년(1595) 일기 및 누락 문장 모두 수록
우리나라 전쟁 문학의 백미인 『난중일기』가 순천향대학교 이순신 연구소 노승석 교수의 번역으로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1592년 4월 일본의 조선 침략으로 시작되어 근세 아시아 판도를 뒤흔들어 놓은 7년간의 전쟁을 한 장수의 눈으로 기록한 『난중일기』는 전쟁을 맞은 인간 이순신의 고투를 남김없이 보여 주는 비망(備忘) 기록이다. 이순신이 초서로 몹시 흘려 쓴 일기의 친필 초고는 치열한 전투가 일어났던 해일수록 그 정도가 더욱 심하여 당시의 긴박함을 생생히 보여 준다. 그러나 이로 인해 후대인들은 이 일기의 상당 부분을 제대로 읽어 낼 수 없었고 오독되어 전해진 글자도 많았는데, 현대의 수많은 한글 번역본들 또한 이러한 오류를 바로잡지 못했다. 국내 제일의 이순신 전문가인 노승석 교수가 이전의 번역을 보완하여 펴낸 이 책은 이전의 모든 판본을 종합하여 한 자 한 자 검토하였고 누락되고 오독된 많은 부분을 밝혀내어 처음으로 수정했다. 또한 2008년 『충무공유사』 판독, 번역 과정에서 새로 밝혀진 「을미일기」 등 32일치 일기를 반영하여 지금까지의 『난중일기』 중 가장 완전한 정본을 세웠다.
처음 발굴된 「을미일기」까지 모두 반영한 새로운 정본
초고본 『난중일기』는 『임진장초』 및 『서간첩』과 함께 국보 76호로 지정되어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다. 이순신의 친필본인 초고본은 전편이 초서로 쓰여 있어 알아보기가 쉽지 않다. 특히 긴박한 상황에서 심하게 흘려 쓴 글씨와 삭제, 수정을 반복한 흔적이 자주 보이는데, 유난히 전쟁이 치열했던 임진년, 계사년, 정유년의 일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후대의 활자본에서는 이러한 부분들이 대부분 오독되거나 미상으로 남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여러 군데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전해졌다.
정조 때 이 초고본을 해독하여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를 간행했는데 ‘난중일기’라는 이름도 이 당시 편찬자인 윤행임과 유득공에 의해 붙여진 것이다. 그러나 이 전서본은 이서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내용이 누락되거나 달라졌다. 민감한 사항이 담겨 있는 부분은 제외하려는 편찬자의 의도가 반영되어 편집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로 인해 지극히 불충실한 활자본으로 남게 되었다. 이후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산하에 있던 조선사편수회가 초고본을 다시 한번 판독하여 ...(하략)
[알라딘 제공]
●베일에 가려졌는 적진포의 정확한 지명이 수록된 정본 난중일기, 옆에두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읽어보세요.
첫댓글 선거날
비오면 책방으로
비가 안오면 산으로~
마음을 정하고 있었는데
비가 안오는 바람에 산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주일 오후에는 서점에 한번 들러 봐야겠어요
난중일기 노승석교수번역 믿음사...
좋은 책 권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항상 건강 하시기를 바랍니다~^^
난중일기 정본.이순신의 리더쉽.쉽게보는 난중일기(학생용).증보교감 완역 난중일기.가있습니다. 그중 가장 읽기쉽고 이해가 빠른
증보교감 완역 을 찾아보세요.
최고의 장군 이순신,
왜 요즘은 그런 장군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심청정님의 글을 보니
여러 장르에서
이순신장군을 그렸지만
많은 부분에서 오류가
있었지 않을 성 싶군요
좋은 정보에 감사드립니다
오독되어 전해진
번역본들의 오류를
이순신 장군의 전문가인
노승석 교수께서
발견하고 많의 부분을
밝혀내어 처음으로
난중일기를 가장 완전한
형태로 복원 탄생시키셨군요
큰일을 해내신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이순신을 연구하는 전국 모임이 많이 있습니다.
이번 요트협회와 협의하여 *적진포를 향하여* 란 기치를 내세워 행사를 준비해 볼까 하는데 예상보다 많은 예산이 들어 구상 중에 있습니다.
해군사령부 에서 당연히 주관해서 적진포 전승기념 행사를 해야 하는데 그것도 왜군과 싸워 이긴 첫 전승인데 지명의 오류로 빛을 보지 못한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역사나
인물 조명에
오류가 있었다면
바로잡는 것이 당연하지요
학자마다
평가가 다른 것은
서글픈 현실이구요
뒤늦게
옳바른 역사를
바로 잡았다니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