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창세 전에 구원을 계획하시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원을 다 이루셨으며 성령은 복음을 듣는 자의 마음 속에 말씀으로 역사하신다.
믿음은 나의 결심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믿어지는 것"이다.
요한복음 19장
30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시인할 수 없느니라
믿기로 결심한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여 믿습니다" 다짐 했다고 성령 받은 것이 아니다.
성령은 말씀과 함께 능력으로 역사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는 것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를 구원하신 구원의 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고 살아나는 것이다.
성령의 능력은 환상이나 음성 꿈을 통한 계시 이런 신비적 체험이 아니라 복음의 말씀을 듣고 영적으로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이다.
요한복음 5장
25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현재 아들의 음성을 듣고 살아 난 자가 마지막 때도 신령한 몸을 입고 살아난다.
영생의 말씀이 그 속에 없으면 죽은 자이다.
첫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 창조되었다.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아담 안"에서 죽었다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난 자이다.
거듭남은 점차적인 변화나 수양이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는 것이다.
참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행위와 의로움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자이다.
로마서3장
28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함으로 존재론적인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참 신자의 회개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근본적으로 죄인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이다.
다시는 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회개가 아니라 현재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된 절망적인 모습을 깨닫고 나의 의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이다.
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영원히 죄사함 받고 의롭다함을 얻은 자들이다.
복음은 죄인을 정죄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임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게 한다.
율법의 행위는 나의 의와 성취를 내 세우지만 복음은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심을 증거한다.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이다.
그러므로 죄 가운데 살려고 하지 않는다.
은혜는 방종을 낳지 않는다.
로마서 6장
1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2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거듭난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드러내며 날마다 복음의 능력의 말씀을 붙들고 은혜의 깊은 바다로 나아간다.
빌립보서2장
13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이 세상 다 주고도 살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그러나 세상은 늘 우리 자신을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신앙도 결국 자기 증명의 도구로 이용하게 만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성취나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영생과 영원한 생명이 아들 안에 있다는 것을 증거하신다.
요한1서 5장
11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나의 공적을 들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빈손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들이는 것이다.
12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