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 시골에서 겸업으로 농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문득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어 할아버지에게 여쭤봤었는데, 그 때 들었던 이야기는 너무나도 무서워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농사일을 하다 보면 비닐 시트를 칠 때가 있다.
그런 때 고정시키기 위해 나무 말뚝을 박게 되는데, 이상하게도 우리 집에 있는 말뚝에는 모두 한 글자의 한자가 조각되어 있었다.
지금까지는 딱히 신경쓰지 않았지만, 다른 집의 말뚝에는 그런 글자가 쓰여 있지 않아 관심이 생긴 것이었다.
우리 집 말뚝을 구별하기 위한 표식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조각되어 있는 한자는 우리 집 성씨와는 전혀 상관 없는 글자였다.
궁금해진 나는 할아버지에게 말뚝에 적힌 한자에 관한 사연을 여쭈었다.
증조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고, 직접 체험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실인지는 모른다는 말을 한 뒤,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하셨다.
타이쇼 시대(1912.07.30 ~ 1926.12.25)의 초기, 아직 할아버지가 태어나지도 않았고 증조할아버지가 젊었을 무렵의 이야기라고 한다.
일의 발단은 증조할아버지가 살던 마을의 젊은이 2명(A와 B)이 땔감을 구하려고 산에 들어간 것부터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산에 들어가 서로 모습이 보일만한 거리를 두고 땔감을 줍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정오 무렵이 되어 A가 [슬슬 밥 좀 먹을까?] 라고 B에게 말하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B가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하고 사람이 내는 것이라고는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큰 목소리로 절규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A는 망연자실하고 있었지만, B는 폐 속의 공기가 다 빠져 나가도록 절규하고 힘 없이 쓰러졌다.
A는 당황해서 B에게 달려갔지만, B는 초점이 맞지 않는 공허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몸을 흔들고 뺨을 때려봐도 제정신을 차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A는 당황해서 B를 업고 산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어도 B는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들은 산에서 요괴라도 씌인 것이라고 생각해서, 근처의 절에 데려가 불제를 받게 했다.
그러나 B는 여전히 정신이 나간 채였다.
그리고 그 사건으로부터 1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한가로운 오후의 농촌에 소름 끼치는 절규가 울려퍼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무슨 일인가 놀란 근처 주민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더니, 방금 전까지 멀쩡하게 밭을 갈고 있던 장년의 남자가 허공을 바라보며 멍하니 움츠리고 있었다.
달려가서 어깨를 잡고 흔들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산에서 B가 겪은 일과 똑같았다.
그 후 가족은 그를 병원에 데리고 갔지만, 심신 상실 상태인 것 외에는 결론이 나오지 않았고 근처 신사나 절에서 불제를 받아도 마찬가지였다.
미신을 믿는 노인들은 산귀신이 마을에 나타났다고 벌벌 떨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증조할아버지의 마을 뿐 아니라 근처 마을들에서도, 절규한 후 정신을 놓아버리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사건이 일어난 시간도,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신상도 전혀 공통점이 없어서, 그야말로 무차별적인 것이었다.
증조할아버지가 괴이한 체험을 한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고 한다.
그 날 증조할아버지는 동생과 둘이서 논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저녁 무렵이 되어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자신이 작업하고 있던 곳 근처에 나무 말뚝이 박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 전까지는 분명히 전혀 없던 것이었기에, 홀연히 눈 앞에 나타났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갑자기 나타난 말뚝을 보며 증조할아버지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 속에서 [누구야, 이런 장난을 친 건!] 이라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런 방해되는 걸 다른 집 논에다 박아 놓다니...]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뽑아라, 뽑아라, 뽑아라, 뽑아라, 뽑아라, 뽑아라, 뽑아라, 뽑아라,] 하고 말뚝을 당장 뽑아내야 한다는 충동이 머릿 속 가득 찼다고 한다.
그리고 그 충동에 몸을 맡긴 채 힘껏 말뚝을 뽑아내려는 순간, 뒤에서 동생이 어깨를 잡아서 정신을 차렸다는 것이었다.
냉정을 되찾은 증조할아버지는 다시 근처를 살폈지만 아까 전의 말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동생에게도 물었지만 동생은 그런 나무 말뚝은 보지 못했다는 대답 뿐이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형이 무엇인가 눈에 들어온 듯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무엇인가를 뽑으려는 듯 허리를 굽히고 힘을 주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어깨를 잡았다고 한다.
그제야 증조할아버지는 요즘 한참 마을을 뒤집어 놓은 사건을 생각하고, 만약 동생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자신도 폐인처럼 되어 버렸을 것이라는 생각에 간이 콩알만해졌다고 한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증조할아버지가 사는 마을에서 일어난 희생자만 10명을 넘었을 무렵, 촌장과 마을 유지들에 의해 마을 회의가 열렸다.
촌장은 요즘 일어나는 사건에 관해 이 마을 뿐 아니라 주변 여러 마을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고, 마을끼리 협의를 통해 대책을 간구하고 있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전했다.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분간 시간이 걸린다며 내놓은 방안은 난데 없이 나타난 나무 말뚝을 봐도 뽑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증조할아버지의 예상은 맞았던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촌장은 [농사일에 쓰는 말뚝에는 자신이 박은 것인 걸 확인할 수 있도록 어떤 표식을 조각하세요.] 라고 말했다.
설령 이상한 나무 말뚝을 보게 되더라도 잘못 착각해 뽑아버리지 않게 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마을 사람들 중에서는 지금 사건이 일어나는 원인에 관해 묻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촌장은 [사람의 원한이나 동물의 귀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 외에는 잘 모릅니다. 영향을 미치는 범위가 굉장히 넓은 걸로 봐서는 무척 강력한 힘을 가진 무언가라고 밖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만약 피해를 당하게 되면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는,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렇게 정신을 잃은 사람을 신사에 데려갔을 때 신주에게 들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쫓아낼 영혼 같은 건 하나도 씌여있지 않습니다." 라구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신주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여우에 홀리거나 귀신이 씌인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사태를 일으키고 있는 무엇인가의 힘에 끌려 들어간 나머지, 마음이 망가져 버렸다는 것이었다.
즉, 무엇인가의 영향 아래에 놓여서 심신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의 영향을 받은 탓에 심신을 상실한 것이라 아무리 절과 신사를 찾아가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촌장은 [말뚝만 뽑아내지 않으면 무서워 할 것은 없습니다.] 라는 말을 하고 냉정해지라고 사람들을 독려한 뒤 해산시켰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그 일을 체험한 증조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이 돌아간 후에도 촌장을 찾아가 계속 물고 늘어졌다고 한다.
그러자 촌장은 이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고 한다.
[유령이나 귀신, 신과 사람 사이에는 모호한 약속 같은 게 있다네. 상대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거나, 정기적으로 제물을 바치거나 하는 것 말일세. 그들은 그걸 어기면 벌을 내리지만, 약속을 지키면 문제는 없지. 하지만 이번 사건을 일으키고 있는 건 그런 논리만으로는 해석할 수 없어. 신주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그 무엇인가는 스스로가 단지 그 곳에 있는 것만으로 사람이 정신을 잃을 정도의 영향을 준다고 하네. 나도 거기까지밖에 듣지 못했어. 저주하거나 벌을 내리려는 의도가 없는데도, 존재 그 자체가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거야. 그런 끔찍한 존재라면, 차라리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게 하는게 낫네.]
그리고 얼마 뒤, 증조할아버지가 살던 마을에서는 신사를 짓기 시작했다.
괴이한 사건의 희생자는 인근 마을을 포함해서 계속 나왔지만, 그 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신사가 완성될 무렵에는 끝내 전혀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무 말뚝은 무엇인가를 봉인한 영적인 주술의 한 종류로, 그것을 뽑아 내면 무언가의 힘의 일부가 해방되어서 그것을 본 인간이 미쳐 버리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신사를 세움으로서 그 무엇인가는 다시 단단히 봉인되었고, 괴이한 사건은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우리 집안에서는 나무 말뚝에 우리 집안의 물건이라는 표식을 조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의문이 남아 우리 옆집 나무 말뚝은 표식이 없다고 할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그러자 [사람이라는 건 말이다, 위험이 목에 들이 닥치지 않으면 금방 잊어 먹는단다. 지금은 별로 말뚝에 표시를 하는 집이 없지만, 이 근처의 M씨네 집과 S씨네 집은 아직도 하고 있을테니 보고 오거라.] 라고 말씀하셨다.
확실히 M씨네 집과 S씨네 집의 말뚝에는 모두 한자 한 글자가 조각되어 있었다.
[지금도 표시를 조각하고 있는 집은 대부분 그 때 희생자가 나왔거나 그 친척의 집일거야.] 라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이미 한참 된 옛날 이야기지만, 혹여라도 다시 내 눈 앞에 나무 말뚝이 나타나지는 않을까 두려웠던 이야기였다.
출처-http://vkepitaph.tistory.com/
첫댓글 신기하당...
그 존재 되게 억울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