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우리가 중국에 해주고 싶은 말-‘부용치훼’(不容置喙)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니스트
입력 2023.04.25. 03:20업데이트 2023.04.25. 09:44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3/04/25/HBGEX5Q6IFABJHXZE2C4TPKUI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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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 불가”
대만 문제 원론적 발언에
中, 부용치훼라고?
그런 막말 들을 이유 없다
전임 문재인 정권의
친북·친중·반일·반미
윤석열 대통령 바로잡아
할 말은 하는 관계로 발전해야
한국의 정권 교체는 한국의 안보·외교적 지평(地平)에도 중대한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윤석열 정권은 미국과의 관계를 우호에서 친밀로 격상하고, 소원했던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로 이끌더니 중국에도 ‘할 말은 하는’ 여유를 보이기 시작했다. 대만 문제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아킬레스건 같은 존재다. 미국 말고는 누구도 건드리지 않은 문제다. 이것을 윤 정부가 ‘무력(武力)에 의한 현상변경 불가’를 내세우며 거론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부터)./뉴스1
대만해협에서 무력적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한국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 어찌 보면 원론적 입장을 천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원론적 입장이 시기적으로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직전에 한국 수뇌부 입에서 동시에 나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와 같은 언급이 미국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윤 정권의 외교적 노선 전환은 시대적으로 바람직하다. 특히 전임 문재인 정권이 거의 몰입하다시피 한 친(親)북한·친중국·반일·반미적 행보가 한국의 외교를 함몰시켜온 시점에서 이를 바로잡는 외교·안보적 균형은 한국의 생존을 위해서도 불가피하다. 그런 면에서 윤 정부의 외교·안보 노선은 전면적 우향우(右向右)라고 볼 수 있다.
시진핑이 중국을 이끌면서 중국의 한국 무시(無視)와 속국(屬國) 취급은 강도를 더했다. 한국의 좌파 세력이 득세하면서 한국 쪽의 친중국 아부도 농도를 더해갔다. 중국은 북한과 남쪽 좌파 세력의 대부(代父)처럼 행세하고 또 그렇게 대접받아왔다. 중국 주석이 한국을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공언하는가 하면 사드 배치 문제 등 안보 면에서도 마치 종주국인 양 행세해왔다. 교역·방역·어업 문제에서도 한국을 하대하는 언행은 노골화했다.
엊그제 한국수뇌부의 대만해협 발언에 대해 중국 당국은 부용치훼(不容置喙)라는, 거의 욕설에 가까울 용어를 썼다. 부용치훼는 직역하면 ‘말참견을 허용치 않는다’는 것이지만 이 용어가 극히 드물게 쓰이는 이유는 그 참뜻이 ‘주둥아리 닥치고 있으라’는 막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중국의 오만함과 한국 무시를 언제까지 참고 있을 것인가? 우리의 과거는 우리가 그렇게 대접받아도 어쩔 수 없을 만큼 약한 나라였다. 조선의 문화는 중원(中原)에 종속됐을 때 가장 선진적인 것으로 치부됐다. 사대(事大)의 극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제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의 문턱에 올라서고 있다. 세계가 우리의 의견과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더 이상 중국 대륙에 붙어있는 ‘껌딱지’ 같은 존재가 아니다. 한국은 자유와 민주주의가 나라의 기둥이 되고 법치가 생활이 되는 나라로 발돋움하고 있다. 중국에 대해서도 그것이 한국의 안위에 관계되는 것일 때 할 말은 하는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
우리는 중국의 체제에 언급하지 않는다. 중국이 어떤 이념과 사상으로 나라를 통치하는지 우리의 직접적 관심사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국의 문제다. 또 중국이 미국과 또는 다른 나라와 어떤 관계인지, 무엇으로 대립하고 있는지 상관하지 않는다. 미국과 척을 지면서 프랑스·독일·이태리 등의 지도자를 베이징으로 불러오는 중국의 저력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한국의 안위에 관한 것일 때, 그것이 한국의 국격과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 때 ‘할 말은 하는’, 존재감 있는 이웃으로 살기를 원할 뿐이다.
지금 한국은 ‘몸통’은 대륙에 붙어있는데 ‘머리’는 미국을 지향하고 있는 형국이다. 과거 세계 역사에서 약소국이 살아남는 길은 어느 한쪽의 강대국에 빌붙어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중진국으로 올라서고 있는 한국이 행세하는 길은 두 강대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의 선택은 한국을 속국시하는 중국이 아니라 한국을 전략적 동맹으로 삼는 미국일 수밖에 없다. 중국은 지난 천 년 넘게 우리를 대륙의 한구석에 가두어 손발을 묶었지만 우리는 지난 75년 동안 미국의 안내로 세계로 나와 자유민주주의를 이룩했다. 그리고 미국은 한국에 영토적 욕심이 없다.
문제는 이런 외교적 전환의 방향은 옳은데 그 속도가 가파르다는 데 있다. 그리고 그 배경이 국민적 공감의 결과 보다 미국의 대(對)중국 전략의 일환으로 이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일고 있다. 이런 걱정은 대한민국이 우수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나라로 부각되는 데 너무 자만해져서 일어나는 현상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