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第 六 章 少林風雲
하남(河南)을 지나는 여행객들의 공통된 습관이 있다.
그것은 숭산(嵩山)을 향해 예를 올리는 것이다.
그것은 숭산이 좋은 것이 아니라 바로 그곳에 소림(少林)이 있기 때문이다.
중원에 선종(禪宗)을 전파한 달마대사가 면벽수련을 한 후 유명해진 소림 사...
그래서 숭산은 여행객들에게 존경과 흠모의 장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여행객들의 당연한 습관은 바뀌었다.
그들은 숭산쪽을 향하되, 예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침을 뱉고 눈을 흘기는 것이다.
이유는 하나, 숭산에 있는 소림사가 불의(不義)를 보고도 눈을 감고 모른척하고
있기 때 문이다.
그러나 소림은 여전히 숭산에 있었다.
웅장한 소림사의 산문에 붙여져 있던 봉인(封印)은 언제부터인가 떼어져 있 었다.
그것은 소림이 수년만에 스스로 봉문을 해제한 것을 뜻했다.
그렇다.
소림은 삼패천이 나타남으로써 스스로를 봉문했다.
삼패천이 무림을 횡행하면서 엄청난 악행을 저지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 은
봉문이라는 미명하에 산문 안에 웅크리고 앉아 밤낮없이 불경만 외웠던 것이다.
그런데 봉인이 떼어지다니...
한 달여 사이의 일이었다.
소림사로 찾아드는 무림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비밀리에 첩지를 받은 구파일방의 인물들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비장함이 어려 있었다.
소림사는 중원무림의 태산이다.
소림은 각파에 첩지를 날렸다.
화산파의 참변이 그 계기가 되었다.
더 이상 구파일방이 봉문을 하고 있다가는 언제 또 다른 문파가 삼패에 의 해 영
원히 맥이 끊길지 모르는 일이었다.
앉아서 당하느니 대책을 강구해 보자는 것이다.
결과...
실로 오랜만에 숭산을 오르는 무림인들이 줄을 잇게 된 것이다.
그러나...
소림방장실은 무거운 공기가 깔리고 있었다.
정갈한 실내에는 하나의 원탁을 두고 5인의 인물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기도가 비범한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눈에는 하나같이 초조함과 근심, 불안의 빛이 흐르고 있었다.
문득 불진을 든 늙은 도인이 한숨을 쉬었다.
"휴우... 무량... 그들은 아마 더 이상 오지 않을 모양이오."
그 말에 팔순 가량의 홍색 가사를 입은 얼굴이 붉은 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미타불... 하지만 좀 더 기다려 봐야지요. 무슨 사정이 있거나..."
그때 반대편에 앉아 있던 늙은 거지가 화를 벌컥내었다.
"빌어먹을! 사정은 무슨 사정! 이만큼 기다렸으면 됐지, 얼마나 더 기다리 잔말이
오? 그들은 아마 오지 않을 것이오. 비열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자라목처럼
움츠리고 있으면 삼패가 잘 보아 주기라도 한단 말인가?"
거지는 바로 개방의 방주인 걸왕(乞王) 오운천이란 사람이었다.
그는 평소 성격이 불길같은 위인으로 바른 소리를 하기로 유명했다.
그는 아직도 성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이 덧붙인다.
"흥흥! 화산의 최후를 보고도 그런단 말이지? 쥐새끼같은 작자들... 그러고
있느니 차라리 삼패를 찾아가 발을 씻어주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텐데!"
그야말로 악담 (?)이었다.
이때 푸른 도복을 입은 인물, 청성(靑城)의 장문인은 담담히 말했다.
"너무 그들을 탓할 수 만은 없소. 자파의 안위를 생각해서 그러는 것이 니..."
그러나 걸왕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흥! 자파의 안위? 아니 이 자리에서 자파를 중시하지 않는 사람이 있단 말이오?"
맞은 편의 곤륜파의 장문인 곤륜우사는 그저 눈을 감을 뿐이었다.
장내의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고 있었다.
"그나저나 아미(峨嵋)만은 올 줄 알았는데... 아미타불..."
소림 장문인 공원선사의 기분은 씁쓸하기만 했다.
같은 불도로써 아미파만은 꼭 와줄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왠 파리가..."
아까부터 종리연은 왱왱거리며 허공을 나는 파리떼를 쫓느라 걸레가 다 된 섭선을
부치고 있었다. 아직은 완전히 한여름이 아니었기에 관도에 파리가 날아다니는
것이 약간은 이상했다.
그는 숭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숭산은 이제 멀지 않았다.
얼마나 갔을까?
문득, 그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을 느끼고 잔뜩 콧등을 찡그렸다. 뿐더러
파리떼는 더욱 극성스럽게 날고 있었다.
(왠 냄새가?)
그는 관도에서 약간 떨어진 숲속으로 방향을 옮겼다. 냄새가 나는 곳과, 파리떼가
날아가는 방향이 숲속이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갔을까?
"헉! 저게 뭐지?"
종리연은 부르르 떨었다.
한 그루의 나무!
나뭇가지에 무엇인가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 물체에 까맣게 파리떼가 달라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냄새의 진원지도 바로 그곳이었다.
그는 파리떼를 쫓았다.
수만 마리의 파리가 날아가자 종리연은 그 물체를 파악할 수가 있었다.
"으윽... 이... 이럴 수가!"
그는 벼락을 맞은 듯이 부르르 떨어야만 했다.
시신!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물체는 바로 사람의 시신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여인의 시신으로 발가벗기운 채 죽어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여인이 머리를 깎은 여승이라는 점과, 유린당한 채 복 부가
날카로운 칼에 갈라져 있다는 것이었다.
실로 인간으로써는 눈 뜨고 볼 수 없는 잔혹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한 일이었다.
숲의 여기저기에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한 두 명도 아닌 수십 명의 여승들이 죽어있었던 것이다.
여승들은 하나같이 유린당한 채 가장 참혹한 형태로 죽어 있었다.
그러나 가장 비참한 시신은 가장 안쪽에 있었다.
이번에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승이었다.
그런데 그 여승의 사지가 없는 것이 아닌가?
여승의 얼굴은 잔주름이 어려 있는 것으로 미루어 꽤 나이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사지가 잘렸을 뿐더러 유방마저도 도려 내어져 있었다.
종리연은 구역질을 느꼈다.
자세히 보니 눈도 파헤쳐지고, 혀마저 잘려 있었다.
"으으... 대체 어떤 자들이 이런 짓을...?"
종리연은 무서운 분노를 느꼈다.
그는 좀채로 분노할 줄 모르는 성품이었으나 이번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기분이었다.
문득, 그는 여승의 피부가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것을 느꼈다.
(사... 살아있단 말인가?)
그는 놀라 여승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이때였다.
"아아... 소용없는 일이오. 그녀는 이미 죽은 몸이오. 경련을 일으키는 건 햇살에
근육이 수축하는 현상일 뿐이오."
"...!"
종리연이 돌아서자 뒤쪽에서 눈물을 흘리는 한 명의 어부차림의 노인이 있었다.
어부노인... 바로 해노인이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다가오더니 떨리는 손으로 여승의 시신을 끌어 안았다.
"오오... 숙원(叔願)... 우리가 헤어진지 어언 사십 년이건만... 이런 꼴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그럴 줄 알았다면 그때..."
종리연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그는 노인이 죽은 여승과 과거에 연인(戀人)
사이였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가 있었다.
(이 노인은 누구이며, 이 여승은 또 누구일까?)
해노인.
그는 땅을 파고 있었다.
종리연도 가만 있을 수 없어 그를 도와 구덩이를 팠다.
구덩이가 파지자 해노인은 여승의 시신을 소중하게 묻었다.
그는 여승의 무덤 앞에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종리연은 한참을 기다렸으나 그가 일어설 기운을 보이지 않자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어... 노인장. 누가 이런 만행을 저지른 것입니까?"
해노인은 탄식하며 말했다.
"이 하늘 아래 또 누가 있어 이런 짓을 하겠나? 삼패를 제외하고는 말일 세."
"삼패...!"
종리연은 주먹을 움켜 쥐었다.
이때 노인이 일어나더니 그의 손을 잡았다.
"젊은이. 노부의 부탁 하나를 들어 주겠나?"
"...?"
"아아, 죽은 여인은 바로 아미파의 장문인인 운암신니(雲岩神尼)일세. 나와 는 ...
아주 오랜 옛날 연인이었지..."
"..."
종리연은 그의 노안에 눈물이 글썽이는 것을 보았다.
"허허... 노부는 청성의 은퇴한 늙은이라네. 이번에 소림으로 급히 소식을 전하러
오다가 과거의 연인을 만나게 되었다네."
종리연은 해노인의 표정이 이상한 것을 느꼈다.
"나는 결심했네. 소림으로는 가지 못하게 되었기에 자네에게 이것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 것이라네."
종리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노인장께서는 어디로...?"
"노부는 그들을 찾아 가겠네."
종리연은 깜짝 놀랐다.
"아니... 노인장 혼자...?"
"허허허헛... 이 나이에 무엇이 두렵겠나? 늙은이라고 정열이 죽은것은 아니라네.
과거의 우유부단했음을 지금은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네. 그때 둘 이서 과감하게
무림을 떠날 것을... 헛된 명예욕과 자존심 때문에... 헛 헛... 이제는 깨달았네.
내가 가야할 길이 어디인가를..." "...?"
"자, 이것을 부디 소림에 전해주게."
해노인은 품속에서 하나의 비단 주머니를 꺼내 그에게 전했다.
"노인장..."
"껄껄...!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나? 나는 차라리 놈들을 하나라도 죽이고 연인을
따라 가겠네..."
휙!
해노인은 말과 함께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종리연은 그를 만류하려 했으나 이미 한 발 늦었다.
해노인은 돌아보지도 않고 날아간 것이었다.
그는 운암신니를 죽인 삼패천의 인물들... 지옥혈사대를 향해 쫓아간 것이 었다.
"..."
종리연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가슴은 무엇인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정의...
분노...
그런 단어들이 뒤섞여 그의 가슴을 박동케 하고 있었다.
"삼패..."
다음 순간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할 일을 깨달은 것이었다.
소림으로!
그것만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인 것이다.
종리연이 소림에 당도한 것은 그로부터 하루 반나절 만이었다.
그는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소림사 산문앞에 당도했다.
그러나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산문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승인들에게 저지당한 것이다.
"아미타불... 멈추시오."
여섯 명의 승려들이 그를 가로 막았다.
종리연은 정중히 포권하며 말했다.
"귀사의 주지 스님을 뵈오러 왔소이다. 급한 일이오."
그러나...
"아미타불... 먼저 시주의 관등성명부터 밝혀야 예의가 아니오? 폐사의 장문인께
서는 지금 바쁘신지라..."
종리연은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지금 한가롭게 그런 예를 논할 때가 아닌 것이다.
삼패가 소림을 치러 온다는 것을 알려야 하는 것이다.
"급하오! 어서 전갈을..."
그때였다.
문득 6인의 승려중 삼십대의 승려 한 명이 엇! 하더니 돌연 비웃음에 찬 음성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사형들... 소승은 저자를 알고 있습니다. 저자는 담간랑이란 별호로 불리우던
자입니다. 그런데 얼마동안 보이지 않다가 나타났군요. 후후... 아마 또 다시
무공을 배우려고 찾아온 모양이지요?"
"...!"
종리연은 그가 자신을 알아보는 것에 흠칫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담간랑은 과거 꽤나 얼굴이 팔린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종리연에게는 이미 아득한 과거의 일이 아닌가? 그는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소생은 확실히 그런 이름으로 불리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방문한 목적은..."
그러나 그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왜냐면 승려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기 때문이었다.
"후후후..."
"하하하핫..."
"킥킥킥..."
종리연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렇다고 무력으로 뚫고 들어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더욱 더 큰 오해를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였다.
사십대의 중년 승려가 돌연 눈을 부릅뜨더니 호통을 치는 것이 아닌가?
"썩 물러가라! 이곳이 어디라고 감히 찾아온 것이냐? 지금 한창 무림의 대사를
논의하고 있는데 너같은 강호의 쓰레기를 맞이할 소림이 아니다!"
"...!"
종리연은 울컥 치받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자신이 과거 손가락질 받던 담간랑이라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의 얼굴이 희어졌다.
이때 또다시 한 승려가 호통쳤다.
"어서 물러가지 않으면 네 놈의 다리를 분질러 다시는 찾아오지 못하게 하겠다!"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종리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무력으로라도 뚫고 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바로 이때였다.
휙!
문득 바람소리와 함께 한 가닥 날씬한 교영(橋影) 하나가 산문 앞에 당도했다.
이어 옥구슬이 구르는 듯한 옥음이 울렸다.
"형부! 관두세요. 눈알이 삔 자들을 상대해서 무엇하겠어요?" "...?"
형부라는 말에 종리연은 의아하여 몸을 돌렸다.
순간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아니... 그대는...?"
미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종리연이 아는 여인이었다.
바로 무창(武昌)에서 처음 만났던 방여경이었다.
방여경은 또한 방의경의 동생이기도 했다.
방여경은 존래 하오문의 한 젊은 기재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만 언니인 방의경이 실수로 청년을 죽게 하고 말았다.
방의경은 문주가 된 이후 인간미보다는 철저한 조직력을 키우는 여인으로 변하고
있었다. 당시 젊은 기재였던 그를 훈련시킨다는 명분으로 심하게 내몰다가 그만
청년은 견디지 못하고 죽게되고 만 것이었다.
방여경은 그 일을 심하게 여겨 언니의 곁을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내내 언니의 비인간적인 면을 싫어하여 스스로 백치가 된 듯 연극하여
언니를 괴롭히고 있었다. 종리연을 만났을 때 그를 언니에게 보낸 것은 언니의
비정함이 종리연의 순박함으로 인해 동화되기를 바랬기 때문이었다. 자매의 의는
끊기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여경낭자..."
종리연은 반가왔으나 다소 어색했다.
그러나 방여경은 그의 소매를 잡고 눈을 흘겼다.
"낭자가 뭐예요? 처제라고 불러야죠."
"..."
종리연은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방여경은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축하해요. 그 사나운 언니를 그렇게 훌륭하게 길들이다니... 저의 기대가
맞았어요."
종리연은 이런 자리에서 쑥스러운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더욱 얼굴이 붉어 졌다.
방여경은 문득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왠지 기분이 이상해요. 원래는 당신을... 아니 형부를 조금 좋아 할 생각
이었는데... 이렇게 되니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종리연은 얼굴이 화끈해졌다.
설마 그녀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방여경은 화제를 돌렸다.
그녀는 오만한 눈으로 승려들을 바라보더니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승려들은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로 그들은 뭐가 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때 방의경은 품속에서 하나의 깃발을 꺼내보였다.
"저는 하오문(下午門)의 사자자격으로 소림을 방문했어요. 당신들의 그 잘난
장문인을 볼 수 있나요? 없나요?"
"...!"
책임자인 듯한 중년 승려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곧 말했다.
"아미타불... 공식적인 방문이라면 일단 장문인께 보고드리겠소이다. 두 분께서는
잠시 기다리시오."
"흥! 꽤나 절차가 까다롭군요? 그렇게 거드름을 피우는 소림이 어째서 그동안
죽은척하고 있었을까?"
그녀의 빈정거리는 말에 승려들의 얼굴은 붉으락 푸르락 하였다.
그러나 차마 여인에게 화를 낼 수는 없는지 씩씩댈 뿐이었다.
이윽고 두 명의 승려들이 산문 안으로 들어갔다.
종리연은 초조함을 금치 못했다.
(빨리 면담이 이루어져야 할텐데...)
이때 방의경이 다가오더니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어때요? 형부. 언니가 좋은가요?"
"..."
종리연은 이런 때 그런 말을 물어오는 방여경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싱겁게 웃을 뿐이었다.
"아아... 물어보는 내가 바보죠."
방여경은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무척이나 애처로워 보인다고 종리연은 생각하고 있었다.
방여경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녀의 눈에는 언뜻 물기가 반짝였다.
"형부. 난 바빠요."
"...?"
"이곳에 온 것은 형부에게 한 가지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예요."
"...?"
"언니는 이 근처에 와 있어요."
종리연은 반가움을 느꼈다.
그는 지금이라도 당장 방의경을 만나고 싶었다.
그녀라면 자신의 답답한 심중을 어느 정도 이해해 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사실 자신의 무기력함과 무능함을 통탄하는 입장이었다.
화급한 소식을 가지고도 소림사의 산문에 붙들려 있는 자신의 모습이 한 없 이
어리석고 나약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언니는 하오문의 모든 힘을 동원하였어요. 그것은... 각로로 흩어져 소림으로
오고 이쓴 삼패천의 지옥혈사대를 저지하기 위해서예요."
종리연은 눈을 크게 떴다.
"지옥혈사대를...?"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옥혈사대의 무서운 힘을 누구 보다도 잘 아는 그다.
그들에게 하마터면 죽을 뻔 한 적도 있었다.
하오문이 아무리 방대한 인원과 조직을 가지고 있다지만 지옥혈사대를 상대 한다
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아니... 어떻게...?"
"걱정말아요. 언니는 그렇게 어리석지 않으니까요. 언니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지옥혈사대를 추적했어요. 그리고 최종적으로 소림으로 오기 직전 그들을 궤멸시킬
계획을 세웠어요."
"...?"
"아마 얼마후면 지옥혈사대는 거의 모두 전멸할 거에요. 하오문의 특수한 함정과
매복등에 걸려서 말이에요. 무공만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죠. 하오문은
그럴만한 능력을 충분히 지닌 방파에요."
종리연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그 무서운 지옥혈사대를 섬멸하겠다는
건가? 방여경은 속삭이듯 말했다.
"언니는 전력을 기울여 형부를 도울 거예요. 그것은 오직... 형부를 사랑하기
때문이죠."
종리연은 할 말이 없었다.
뼈속 깊숙이 방의경의 애정이 느껴지고 있었다.
시간은 자꾸만 흘렀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간 승려는 나오지 않았다.
종리연은 점점 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때였다.
문득 저 멀리 일단의 흑점들이 나는 듯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을 본 방여경의 안색이 급변했다.
"지옥혈사대에요!"
종리연도 부르르 떨었다.
(그... 그럼 의경이 저지하는 데 실패했단 말인가?)
이때 방여경이 급박하게 말했다.
"지옥혈사대는 도합 8로로 나뉘어 오고 있었는데 언니는 그 중 한 개로에만
자신이 없다고 했어요. 어떻게든 저들만 막으면 되요!"
종리연은 산문 앞에서 승려들이 어쩔 줄 모르고 있는 것을 보고 호통쳤다.
"무엇하는 것이오? 어서 경종을 울리시오! 저들은 삼패의 지옥혈사대요!"
그 말에 승려들은 혼비백산했다.
그들은 안으로 신형을 날렸다.
종리연은 단단히 마음먹으며 양손을 소매 속으로 집어 넣었다.
그는 혈월팔천도식을 이미 거의 깨달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므로 과거처럼 자신이 없지는 않았다.
문제는 얼마나 많은 지옥혈사대가 왔느냐는 것이다.
이윽고, 휘휘휙...!
옷자락 날리는 소리와 함께 혈포를 입은 인물들이 산문 앞에 떨어졌다.
그들은 줄 잡아 사오십 명 정도 되었다.
한결같이 인성을 상실한 듯한 무시무시한 안광을 가진 괴인들이었다.
그들은 일지겁천 조황백이 장차 천하를 정복하기 위해 양성한 천군(天軍)으 로
그들의 총 숫자는 삼천 명에 달했다.
한결같이 미약에 의해 신지가 상실된 자들이며, 남은 것은 흉성과 잔혹성 뿐이었다.
그들의 눈에서는 살광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
종리연은 그들이 공격하지도 않고 산문 앞에 멈추는 것을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우우우우우...!"
문득 산 아래 쪽으로부터 심혼을 뒤흔드는 듯한 장소가 울린 것이었다.
그 장소를 들은 순간 지옥혈사대는 모두 시립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휙!
눈깜짝 할 사이에 한 사람의 신형이 떨어졌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듯 나타난 사람은 팔척의 장신이었다.
일신에는 청삼을 입었으며... 손에는 한 자루의 섭선을 쥔 얼음같이 찬 인간.
바로 조천백이 나타난 것이다.
무영비마 조천백이 나타나자 장내는 갑자기 북극으로 화한듯 음산해졌다.
종리연은 그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저자가...)
그는 과거 천상제일루에서 남궁환인과 함께 조천백을 본 적이 있었다.
당시 그는 너무나도 공포에 질려 있었다.
한편, 조천백은 으시시한 시선으로 산문을 노려보다가 종리연을 발견했다.
그는 잠시 의아한 빛을 띄더니 입을 열었다.
"이제 보니 네놈은 바로 그때..."
종리연은 문득 원한이 되살아 나는 것을 느꼈다.
남궁환인!
그를 죽인 자가 바로 조천백이 아니던가?
그는 이를 갈고 앞으로 나갔다.
"그렇소! 나는 종리연이오. 당신이 죽인 남궁환인은 바로 나의 사형이었소!"
조문백의 눈 가에 조소가 어렸다.
"흐흐... 너의 사형이라고? 그렇다면 더욱 잘되었군! 너는 복수를 해야겠 지?"
"물론이오!"
종리연은 안정이 흐트러지는 것을 느꼈다.
무인에게 있어 안정이 흔들린다는 것은 금기 중의 금기에 속한다.
이미 싸우지 않고도 패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방여경은 가슴이 바짝 오그라들고 있었다.
(어... 어쩌자고 형부가 저런 악마와...)
종리연은 소매속에서 손을 꺼냈다.
그의 손에는 한 자루의 혈월도가 쥐어져 있었다.
그것을 본 조천백의 눈이 번쩍 빛났다.
"으음...! 알고보니 너는 혈월객의 진전을 이었군!"
그는 으시시한 안광을 흘렸다.
"그렇다면 더욱 잘 됐다. 너를 사로 잡으면 그 역도들의 행방을 알겠지..."
그가 막 섭선을 흔드는 순간이었다.
"잠깐만. 우리의 승부는 아직 나지 않았어요."
문득 어딘가에서 서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
조천백은 시선을 돌렸다.
육척에 가까운 키를 가진 흑의여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등에는 오척장검을 꽂은 채 걸어오고 있는 여인의 등 뒤에서 하나로 묶은 흑발이
바람에 춤추고 있었다.
"사영! 당신이..."
종리연은 깜짝 놀랐다.
나타난 여인은 바로 마검성녀 단리사영이었기 때문이었다.
단리사영은 그를 바라보았다.
언뜻...
그녀의 차가운 눈 속에서는 알지 못할 부드러운 훈풍과 같은 것이 스쳐갔 다.
그녀는 종리연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취했다.
"당신은 이곳을 맡아주세요."
"...?"
종리연이 어리둥절할 틈도 없이 단리사영은 곧장 조천백을 향했다.
"귀하는 물론 우리의 승부가 나지 않았음을 인정하겠지요?"
조천백은 흠칫했다.
"낭자는..."
"당시에는 너무 경황중이라 당신과 겨룰 기회가 좋지 않았어요. 그러나 오 늘은
시간이 충분하니 멋진 대결이 될 것이에요."
조천백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단리사영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 역시 당시의 일로 일지겁천에게 수모를 당한적이 있었다.
고수는 자신의 적수를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진정한 고수라면 말이다.
조천백은 잠시 단리사영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여기는 비좁으니..."
휙!
그는 신형을 날렸다.
몸을 날리며 그는 명을 내렸다.
"소림을 쓸어 버려라."
그의 뒤를 단리사영의 날씬한 신형이 화살처럼 쫓고 있었다.
"사영!"
종리연이 그녀를 불렀으나 쫓을 수는 없었다.
바로 그 때 지옥혈사대의 공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입니다
즐~~~감!
즐독입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즐감합니다.
감사...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감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
지옥 혈사대 지옥으로 보내야 하겠지요 .
즐감 !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