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구장에서 지난 1일부터 공개적인 맥주판매가 허용됐다. 알코올 도수 6도 이상의 주류는 여전히 반입과 판매가 안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야구장에서 술이 해금돼 사회변화를 실감케 했다.
그동안 맥주는 일부 구장에서 음성적으로 판매됐다. 예외적으로 대전과 수원구장이 지자체의 승인을 받아 판매에 들어간 것이 지난해의 일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요람인 잠실구장의 맥주판매 허용은 그동안의 검은 거래를 양성화한다는 데 의미가 있고, 앞으로 지방구장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끼칠 것으로 보인다.
●술은 그라운드의 터부
술이 그동안 그라운드에 공개적으로 발을 붙이기가 어려웠던 것은 술이 갖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이다.
힘든 생활 속에서 스트레스를 분출할 곳이 마땅치 않은 관중들이 혹시나 술을 마시고 사고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공식적인 술 판매를 금지해왔다.
그러나 억지로 막는 것이 더욱 문제가 됐다.
음성적으로 들여온 술을 마신 일부 몰지각한 관중이 경기장 분위기를 흐트러뜨리며 안전사고를 많이 냈다. 그동안 야구장에서 발생한 몇차례의 대형 난동에는 다 술이 관련돼 있었다.
●술을 사이에 둔 숨바꼭질
지난 90년대만 해도 술을 몰래 들여오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방법이 동원됐다.
관중은 술을 안주머니에 몰래 숨기든지 플라스틱 생수통에 담아 구장 입구에서 소지품을 검사하는 지자체 청원경찰의 눈을 교묘히 피했다. 어쩌다 들키면 경기장 앞에서 승강이를 벌이거나 아예 마시고 들어왔다. 경기가 벌어지기도 전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관중이 많았다.
상인들은 스탠드 꼭대기에서 구장 아래로 줄을 연결해 캔맥주나 팩소주를 다량으로 들여왔다. 개당 1000원 남짓의 싼 팩소주를 검은색 비닐에 담아 든 채 “4000원” 하며 다니는 모습을 흔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맥주의 해금시대
그라운드에서 맥주판매 논의가 진행된 것은 개방으로 나아가는 사회변화의 흐름과 길을 함께한다.
군사정부 시절 꿈도 꾸지 못하던 일들이 지난 90년대 초 문민정부 이후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그 중 하나는 음지에서 행해지던 일을 양성화하는 것이고, 덧붙여 주류판매에 대한 논의도 민간업자들 사이에서 서서히 제기됐다. 사직과 광주구장은 이 과정에서 지자체의 승인없이 맥주판매에 들어갔다.
주류판매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불붙은 것은 2000년대 들어 구단이 구장을 지자체로부터 임대해 직접 운영에 나서면서부터다. 월드컵 때 축구장에서 맥주판매가 허용되자 형평성을 들며 허락을 요구했다.
잠실구장 운영관리본부(운영본부)는 민간위탁으로 바뀐 2000년부터 꾸준히 서울시(체육시설관리사업소)에 맥주판매 해제를 요구했고, 지난 3월 서울시와 홍보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진행하면서 OK 사인의 계기를 마련했다. 1일에야 그 결실을 봤다.
●맥주는 ‘야간 통행금지’와 같다?
잠실구장 운영본부 남승창 차장은 “맥주는 야간 통행금지와 같다. 지난 80년대 초 야간 통행금지를 해제할 때는 불안했지만 막상 해제하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지 않으냐”는 말로 맥주판매가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님을 설명했다. 시대의 흐름이 맥주판매를 자연스럽게 요구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른 이유도 있다. 음성적인 거래를 막음으로써 위생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하게 됐다는 것.
유통기한이 지난 맥주를 몰래 들여와 그라운드가 재고품의 처분장으로 악용되는 사례를 사전에 방지하는 효과도 누릴 수 있게 됐다.
●맥주판매의 노림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당장의 수익이다. 운영본부는 올 한해 잠실구장에서 팔릴 맥주를 20만~25만캔(350㏄ 컵당 2000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돈으로 따지면 4억~5억원이다. 눈길을 끄는 마케팅으로 한푼이라도 더 수익을 창출해야 할 운영본부로서는 적지 않은 수입이다.
그러나 속으로 들어가면 더 중요한 것이 관중 증대다. 주5일 근무제가 확산되면서 주말에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시민들에게 적은 돈으로 게임과 함께 시원한 맥주를 제공해 관중을 끌어모으겠다는 의도다. 또 판매 양성화를 통해 가족 단위의 건전한 모임이 정착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으냐는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