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행 눈사람
황유원
눈사람 인구는 급감한 지 오래인데
밖에서 뛰놀던 그 많던 아이들도
급감한 건 마찬가지
눈사람에서 사람을 빼면 그냥
눈만 남고
그래서 얼마 전 눈이 왔을 때
집 앞 동네 놀이터
이제는 흙이 하나도 없는 이상한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만들어놓은 눈사람을 봤을 때
그건 이상하게 감동적이었고
그러나 그 눈사람은
예전에 알던 눈사람과는 조금 다르게 생긴
거의 기를 쓰고 눈사람이 되어보려는 눈덩이에 가까웠고
떨어져 나간 사람을 다시 불러 모아보려는 새하얀 외침에 가까웠고
그건 퇴화한 눈사람이었고
눈사람으로서는 신인류 비슷한 것이었고
눈사람은 이제 잊혀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였다
눈사람에서 사람을 빼고 남은 눈이
녹고 있는 놀이터
사람이 없어질 거란 생각보다
사람이 없으면 눈사람도 없을 거란 생각이
놀이터를 더욱 적막하게 만들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눈사람은 아무 미련 없다는 거
눈사람은 녹아가면서도
자신을 만들어준 사람의 기억을 품고 있고
이번 생은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어쩌면 그런 생각만이 영영 무구하다는 거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게 아니라
눈과 사람의 합산
오직 사람이 만들어낸 눈사람만이
천국에 간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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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행 눈사람 / 황유원
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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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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