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날 간단하게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 건 아주 오래전의 일이
다.그러나 매번 일요일만 되면 창가의 의자에 온몸을 푹 파묻고 음악
을 듣거나 할일없이 책이나 보면서 하루를 보내기 일쑤였다. 일요일
은 원래 게으름의 요일이고 난 주중엔 무슨 고등학생처럼 바쁘게 생
활하기 때문에 뭐 하루쯤은 뒹굴면서 보내도 괜찮겠지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일요일의 해가 저물어 갈때쯤 창밖으로 보
이는 나들이에서 돌아오는 가족이나 커플들을 보며 (우리집은 관광지
근처에 있다)나의 아무것도 한 것 없음과 지독한 게으름에 대해서 화
를 내곤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종일 집에 있는 것은 오히려
피곤한 일이다. 하루종일 뭔가를 열심히 하고 저녁에 고등어라도 구
워먹으면서 그날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는 것이 훨씬 휴식다운 휴식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엉덩이를 잡아끄는 편안한 의자나 카
페온에서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재밌는 사람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가방에 카메라와 씨디피, 노트와 색연필을 챙겨들고 재빨리 뛰쳐 나
갔다.
가게에 들러 건전지를 3개나 사고 조그만 페트병에 든 이온음료를 샀
다. 걸어가는 동안 목이 마를것이라는 계산하에 산 것이지만 그건 정
말 멍청한 짓이 아닐수 없었다. 내가 가는 곳이 슈퍼 하나없는 아프리
카 오지도 아니고 거기서 사면 되는 것을 괜히 음료수만 미지근하게
만들고 만 것이다.
썬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까뮈의 이방인에서 처럼 눈부심에 누군가를
살해할지도 모를 정도로 선명하고 화창한 날씨였다. 혹시나 해서 입
고간 후드 자켓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돌아올 때까지 가방속에서
꺼낼 일이 없을 정도였다. 걸어가는 동안 내내 만약 오늘 집에 있었다
면 틀림없이 후회를 했을거야 라고 생각을 했다.
부산에는 오르막길이 정말 많다. '부산'이라는 도시의 이름도 원래는
어떤 산의 이름이었다고 하는데 걸어보니 정말로 실감이 났다. 멀리
보이는 산에는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서 마치 거대한 건물처럼
보였다. 러시아에서 정박한 사람들이 부산의 야경을 보고 어떻게 저
렇게 높은 곳에까지 건물이 있냐고 정말 깜짝 놀란다고 한다. 러시아
는 온통 평지 뿐일테니 놀라는것도 당연한 일이겠지만 부산의 산꼭대
기까지 집을 짓는 건축술은 과히 경의롭다고 까지 할 만하다.
가는 도중 감천항과 화력발전소가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꼭 들러야
지 하고 결심을 했다.
송도의 전경 - 정말 산꼭대기에 까지 빼곡히 집들이 들어서 있다.
사거리의 이상하게 생긴 육교에 올라가보니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
했다. 도심에서 바다를 바라 볼수 있는 고장에 사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건물들 사이사이로 보이는 밝은 파란색의 바다는 사람의 마
음을 괜시리 설레게 만들었다.
왠지 배가 고픔을 느끼고 산에 올라가기 전에 뭐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관광지라지만 일요일 오전에 문을 연 식당은 거의
없었다. 일요일 오전의 관광지 풍경은 전국에서 찾아온 호기심 가득
한 눈망울의 시끌벅적한 관광객들과 난 바다를 너무 자주 봐서 이제
는 안중에도 없어라고 말하는 듯한 무료한 눈을 가진 토박이들로 분
주했다. 그러나 그런 분주함 가득한 거리 구석구석에도 주의를 주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적막함이 있었다. 그것은 세계 어느나
라를 가든 마찬가지 일 것이다. 정오의 태양을 받으며 짧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골목길의 담벼락 사이나 버려진 공터나 느긋하게 잠이 든
강아지들에게서 그것을 분명하게 느낄수 있었다. 그런 구석구석의 풍
경속의 시간은 마치 멈춰있는 것만 같았다. 난 그런 평화로운 느낌이
좋다.
잠이 든 강아지
가까스로 왕돈까스를 전문으로 만들어파는 조그만 가게를 발견했다.
테이블이 5개정도 밖에 없는 아주 아담한 가게 였는데 안은 어설프게
중국풍으로 꾸며놨다. 가족들이 운영하는 가게였는데 그곳도 가족끼
리 일요일의 여유를 한껏 즐기려는 듯 친척들과 어린 아기들을 잔뜩
초대해서 자기네끼리 시끌벅적하게 뭔가를 만들어 먹으면서 놀고 있
었다. 내가 가게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들은 나를 손님이 아니라 무슨
이방인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마치 일요일 오전에 궂이
식당까지 와서 먹을 필요는 없잖아 하고 한숨을 쉬는 듯한 표정들이
었다. 젠장 다음번에는 반드시 평일에 여행을 가리라.
오무라이스를 먹으면서 낯선 동네의 풍경을 한껏 즐기고 있는데 그
대가족들은 텔레비젼에 온 정신이 팔려있었다. 텔레비전이 발명된 이
상 우리는 결코 낯선 여행을 즐기지 못하리라. 텔레비젼의 네트워크
는 실로 대단해서 내가 전국 어느 낯선곳에서 밥을 먹든 집요하게 따
라와서 집에서 보던 똑같은 방송을 보여주며 그래봤자 어차피 넌 한
국안에 있을뿐이야 하고 말해준다. 텔레비전은 우리를 영원히 떠날수
없게 만들며,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도 전세계의 소식들을 듣길 강요
한다. 그러한 소속감으로 가득한 텔레비젼의 발명은 세상 사람들의
결속력을 엄청나게 강화 시켜줬을 것이다.
송도 해수욕장을 지나 암남 공원으로 올라가는 언덕을 올랐다. 가는
길에 멀리서만 보아 왔던 산에 지어진 집들을 직접 볼 수 있었는데 그
동네에는 그 산아래에 바로 바다가 있기 때문에 정말 멋졌다. 하얀 페
인트가 칠해진 벽들과 파란 지붕은 마치 내가 지중해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그곳의 집은 대부분 가난한 집들이었는데 가
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건축가에게 의뢰해 지은 집들 답게 조잡하고
엉성한 느낌이었다. 거기다 상당히 오래된 느낌이 들었다. 세월이 지
남에 따라 녹슬고 무너져내린 벽에 어설프게 시멘트를 발라놓거나 판
자를 대어놓는 바람에 더 낡아 보였다. 그렇지만 난 그런 오래되고 소
박한 풍경을 좋아한다.
그곳의 집들은 예상외로 엄청나게 쌌다. 전봇대나 벽에 전세를 내놓
는 쪽지가 많이 붙어있었는데 조그만 자취방 하나가 전세금 100만원
에 월세 10만원이란다. 창을 열면 바로 바다가 보이는 황금 전망치고
는 정말 싼가격이 아닐수 없다. 서울에서 살인을 저지르거나 비밀리
에 잠적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곳이라는 생각을 잠시동
안 했다.
열려진 대문사이로 보이는 풍경 - 마당에서 바로 바다가 보인다
가는 도중 이상한 고기집을 하나 발견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조그만
공터가 있고 바다로 떨어지는 벽위에 문이 하나 있을뿐인 그런 곳이
었다. 도대체 어디서 고기를 먹으란 말인가?
산위에 도로가 나있어서 길은 구불구불했다. 추락하지않게 설치해놓
은 턱아래에는 절벽이 있었고 바다는 한없이 맑았다
이 나무는 자살이라도 할 생각인가
도로를 따라가다보면 암남공원으로 올라가는 본격적인 산길이 나오
는데 그산에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절벽'이 있다. '절벽'이라는 이름
은 내가 그냥 붙인 이름인데 정말 깍아지른 거대한 절벽들이 즐비한
곳이다.
절벽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름대로 구름다리 - 의외로 무섭다
절벽
절벽에서 마시는 맥주의 맛이란!
떨어지면 죽을지도 모른다
절벽을 오르는 암벽 등반가들도 보인다
꼭대기에 올라갔다
공원의 꼭대기-말이 공원이지 실은 높은 산이다-까지 올라갔다가 뒷
길로 내려갔더니 감천항이 보였다. 엄청나게 큰 항구였는데 거기에
러시아나 동남아쪽에서 물고기나 콘테이너 따위를 싣고 온 배들이 선
박을 한다.
감천항의 모습 - 들어갈수가 없게 철조망이 쳐져있다
감천항은 정말 넓은 부지였는데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끔 외
국인들이 한둘 맥주를 마시며 지나다녔는데 러시아에서 정박한 선원
들일 것이다.
감천항에는 비릿한 물고기 냄새가 났는데 그 냄새는 방금 잡아올
린 한두마리의 물고기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 (모르긴 몰라도)몇백
톤의 물고기에서 나는 엄청난 규모의 냄새일 것이다. 그것도 전세계
에서 잡아올린 물고기 말이다. 물론 난 인도네시아 물고기 비린내와
러시아 비린내를 구별할수가 없었다.
해질녁의 냉동창고 - 물고기 마스코트가 정말 귀여웠다
감천항을 빠져나와서 길을 잃고 말았다. 무슨 무슨 마을이라는 곳에
서 한참을 헤메다가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루트 - 우리집은 하단이다. 송도는 섬이 아닌것 같은데 왜 섬이라
고 불리는지 알수가 없다.
첫댓글 정말 멋진 여행기...!! 덕분에 간만에 바다구경하니..가슴이 다 울렁거리네여...
bravo!!!!!!!!같이 한잔 할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멋3진 여행기
나도 함 가봐야지....작년겨울땐가...영도가 나를 부른다 라는 느낌을 받은적잇는데..영도근처가 송도 맞지요? 부산도 둘러보면 볼게있구나..
멋지네여. 부산이 아름답다고 느끼긴 첨입니다. 내가 사는 곳에서도 한 번 시도해보고 싶다는....
정말 넘 멋져요~~일일 도보여행..나도 하고싶었는데..부산은 갈만한곳이 없다고 생각했엇는데...기회가 되면 꼭 가보고 싶어요..글고..퍼갑니다.
우왕~ 다 아는덴데 왜 사진으로 보는게 더 멋있을까요?? 우리집은 하단 옆 신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