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정기산행지는 봉화산이었으나 철쭉이 시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래봉으로 변경하였다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에 위치하고 있는 바래봉은 세석평전과 함께 전국 제일의 철쯕 군락지다.
바래봉의 원 이름은 발악(鉢岳)이다.
'발(鉢)'은 '바리때'로, 나무로 대접 같이 만들어 안팎에 칠을 한 스님들의 밥그릇인데 그 '바리'가 '바래'로 변음된 것이다.
그런데 팔랑치 쪽에서 보면 바리때 모양보다는 스님이 쓰는 삿갓 모양이다.
그래서 이 봉우리를 삿갓봉이라고도 부른다.
정기산행으로는 매우 초라한 인원 10명이서 승용차 두 대에 분승하여 바래봉으로 출발하였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운봉쪽을 피하여 남원시 산내면 내령리 팔랑마을을 들머리로 택하였다
팔랑마을은 여유로워서 좋았으니 주민들이 주차료를 5천원이나 받아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겨우 일방통행이 가능한 산길로 대형버스들이 들어와서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도 매우 못마땅하였다.
팔랑치로 올라가는 길목에 운치있는 간판이 세워져 있는 지리산억새집이 보였다
이 집의 주인 김채옥 할머니는 KBS '인간극장' 전파를 타면서 유명해졌다.
김채옥 할머니는 지리산 팔랑치 팔랑마을로 열여덟 살에 시집을 와서 결혼 4년 만에 남편을 잃었다고 한다.
그녀는 남원 시내로 나갔다가, 20년 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산골소녀처럼 살아가고 있다.
할머니는 이 마을에서 200년 된 억새집이 편하다며 고집하고 있다.
시원한 그늘로 이어지는 산길을 한 시간 정도 오르니 해발 989m의 팔랑치에 다다랐다
팔랑치(八郞峙)란 삼한 중 마한 왕이 달궁에 성을 쌓고 있을 때 여덟 장수(郞)를 시켜 적을 막던 고개(峙)라 해서 생긴 이름이다.
철쭉꽃은 절정을 이루고 있었지만 꽃을 찾아온 사람들이 꽃보다 더 많아 보였다
사람아, 흰구름 앞에 흰구름 바라
가던 길 멈추고 요만큼
눈파리하고 서 있는 이것도 실은
네게로 가는 여러 길목의 한 주막쯤인 셈이요,
철쭉꽃 옆에 멍청히
철쭉꽃 바라 서 있는 이것도 실은
네게로 가는 여러 길 가운데
한 길이 아니겠는가? .........................................................................나태주 <봄날에> 부분
팔랑치에서 철쭉꽃불에 취해서 이리저리 흘러다니다가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한때 우리와 산행을 즐기었던 한인수 클레멘스, 조정자 베로니카, 한정순 수산나 가족이었다
우리가 못 보던 사이에 가족이 하나 늘어서 네 가족을 이룬 모습이 참으로 보기좋았다
우리나라 철쭉꽃의 축제는 남도 끝자락인 전남 장흥군과 보성군 경계에 있는 제암산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것이 바래봉과 세석의 철쭉으로 올라왔다가 소백산 능선에 가서는 주목과 어울려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다시 정선과 영월에 걸쳐 있는 두위산의 주릉 5km에 걸치는 수만 평에서 한바탕 연분홍 꽃 물결을 이루게 된다
그래서 제암산에서 바래봉, 세석으로 소백산에서 두위산으로 이어지는 이 철쭉꽃의 향연을 꽃봉화(꽃烽火)라 한다
바래봉은 지리산의 팔랑치, 부운치, 세동치, 세걸산, 정령치 능선과 연결돼 있다.
마치 한줄기처럼 이어져 보기 좋은 산세를 지니고 있다.
바래봉 철쭉은 사람의 허리 정도 크기로 4월 하순에 피기 시작하여 5월 하순까지 진한 색과 향을 뽐낸다.
온 지리산을 모두 태울듯이 거대하게 번지는 철쭉꽃불 속에 잠긴 우리들도 활활 타오름이 느껴졌다
새파란 열일곱 살
장박리 부잣집에 시집가더니
골골거리던 서방님 죽고 탈상도 안지나
떡갈재 철쭉꽃 몸살나게 붉던 날
쑥꾹 쑥꾹새 따라 달아났다고
멋모르고 온 산에 꽃불을 질렀네
때가되면 시들어 지고우는 꽃이 아니야
어느 봄날 미련없이 꽃잎을 벗어버리지
진한 연분홍 꽃향기 속에 묻히고 싶었네
쑥꾹 쑥꾹 애타는 쑥국새 울음소리
온 산에 꽃불을 질러대는.................................................................윤인구 <철쭉> 부분
바래봉 철쭉군락은 박정희 유신 독재정권 시절의 즉흥적인 개발정책 산물이라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70년대 호주에서 들여온 수많은 양떼가 사라지기까지 20여년 동안 바래봉의 자연이 훼손된 결과다
양떼들이 다른 풀이나 나무는 모두 먹어치웠지만 독성이 있는 철쭉은 먹지 않아서 철쭉이 우거지게 된 것이다
수만 마리의 양떼와 목동들이 다니던 바로 그 길을 탐방객이 무리지어 걷고 있는 것이다
봄날에, 이 봄날에
살아만 있다면
다시 한 번 실연을 당하고
밤을 새워
머리를 벽에 쥐어박으며
운디 해도 나쁘지 않겠다................................................나태주 <이 봄날에> 전문
바래봉을 눈앞에 두고 구상나무숲으로 들어가서 점심 도시락을 펼쳤다
숲속에는 우리들처럼 점심 식사를 하는 산행객들이 가득차 있었다
먼저 정상으로 올라간 네명의 동지들은 우리가 식사를 마칠 무렵에 내려와서 합류하였다
오월(五月) 한낮에 귓불 스쳐 바람 불고
은근하게 속삭이듯 입술을 달싹이는
철쭉꽃 흥건한 그늘에 샘물 같은 피가 돌아
함께 마냥 젖고 싶은 간지러운 빗발이 치면
나는 또 하릴없이 몸이 달아오르고
어눌한 시선(視線)이 부풀어 그냥 주저앉고 싶다..................................강세화 <철쭉꽃 붉은 입술> 부분
바래봉의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정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어서 아래에서 깃발을 펼쳤다
바래봉 철쭉의 백미는 팔랑치에서 약 1.5km 거리의 정상까지의 구간이다.
바래봉 정상은 지리산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도 손꼽힌다.
동쪽의 천왕봉에서 서쪽의 노고단까지 지리산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되고 굽이치는 암봉이 공룡등을 연상케한다.
그래도 정상의 사진은 포기할 수가 없어서 이름모를 여인들의 자태와 함께 담아왔다.
전북 남원시 운봉읍에 자리한 지리산 바래봉은 해마다 5월이면 진분홍 산철쭉 꽃으로 물든다.
전국 제일의 철쭉 군락지라는 유명세를 타고 한 달도 안 되는 개화기 동안 약 20만 명의 탐방객이 꽃구경을 온다
신록이 아름답기로 오늘 같으랴
가뭄 뒤에 단비 내린 날
산 속에 다투어 피어난
하얀 철쭉, 빨간 철쭉
어느 무명화가의 화폭인가
지나던 발길 예서 멈추니
탄성이 메아리 되어 퍼진다
갈 길 바쁘다던 여인들이
꽃 속에 꽃이 되어 미소지으니
꽃과 여인이 하나로 피어난다.........................................................김용진 <산철쭉> 부분
하산하다가 철쭉꽃이 가장 화려한 길목에서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미소를 머금고 포즈를 취했다
바래봉은 천혜의 요새로 숱한 역사의 질곡 속에서도 전화(轉禍)를 입지 않았다.
바래봉은 발길이 닿지 않았던 길지(吉地)로 정감록에서 10승지의 하나로 꼽았던 곳이기도 하다.
정감록은 '어진 정승과 훌륭한 장수가 나서 가히 오래 몸을 보존할 수 있는 곳' 이라고 적고 있다.
세상은 추위로 깊이 잠든다 해도
타오르지 않는 것은 불이 아니기
적시지 않는 것은 강이 아니기
스스로 스스로 강안(江岸)을 물들이는
지리산 철쭉들아,
스스로 스스로 숯이 되는 사람들아
불이 그리운 자는 또한 기리고 있으리
이 세상 적시는 물과 불의 축제
화부(火夫)의 야산에서 타오르는 축제...............................................고정희 <철쭉제> 부분
양떼가 떠나자 이곳에는 산딸기와 미역줄나무 등 다른 식물이 침입하여 산철쭉 군락의 경관을 해치고 있다.
자연의 복원력은 약 20년 동안 바래봉을 완강히 지키던 산철쭉 군락을 흔들고 있다.
일시에 철쭉 꽃망울이 터지듯 바래봉의 미래와 관련한 중요한 질문이 터져나오고 있다.
자연의 가차 없는 복원력을 막는 게 바람직할까, 또는 그것이 가능할까?
아니면 바래봉에만 있는 이 독특한 문화경관을 유지하는 것이 옳을까??
오늘의 산행 코스는 단순하고 짧아서 여유있는 걸음으로 다녀왔다
하산 도중에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 속에 발을 담그고 어린아이처럼 장난치며 놀았다
노루의 오줌과 산삼의 눈물과 선녀의 땀방울이 섞인 지리산의 물은 심신을 맑게 씻어 주었다
팔랑마을 주차장으로 내려갈 때는 지리산 억새집의 마당을 가로질러 갔다
김채옥 할머니는 산에서 고사리를 한 푸대 꺾어와서 마루에 앉아 쉬고 계셨다
김채옥 할머니는 인간극장 이후 유명세를 타게 되었는데 음식값이 비싸고 성의가 없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카페 게시글
山行을 다녀와서
바래봉의 꽃불 속에서 활활 타오르다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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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5.15 04:03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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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다운 모습 보기 좋습니다
산에 가면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던데
맞는 말 같지요
아.. 동행하지 못해 아쉽네요..
꽃들의 붉음속에서 화이팅하는 모습이 좋으네요..
즐감하고 갑니다~~
철쭉과 함께한 산행 여유롭고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