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5월 11일 “오늘의 말씀 묵상 편지”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내가 그를 위하여 그것을 받고 그를 위하여 속죄하리라. 그는 주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아론의 아들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중의 성막문옆에 있는 제단의 사면에 뿌릴 것이며 그는 또 그 번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요, 제사장 아론의 아들들은 제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가지런히 놓고 그때에 아론의 아들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제단 위 불 위에 있는 나무에 가지런히 놓을 것이되 그 내장과 다리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불로 드리는 제사라. 주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1:4-9)
('Then he shall put his hand on the head of the burnt offering, and it will be accepted on his behalf to make atonement for him. 'He shall kill the bull before the LORD; and the priests, Aaron's sons, shall bring the blood and sprinkle the blood all around on the altar that is by the door of the tabernacle of meeting. 'And he shall skin the burnt offering and cut it into its pieces. 'The sons of Aaron the priest shall put fire on the altar, and lay the wood in order on the fire. 'Then the priests, Aaron's sons, shall lay the parts, the head, and the fat in order on the wood that is on the fire upon the altar ; 'but he shall wash its entrails and its legs with water. And the priest shall burn all on the altar as a burnt sacrifice, an offering made by fire, a sweet aroma to the LORD.)”
임마누엘!!
오늘 말씀 탐구의 주제는 ‘안수(按手)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모세는 하나님께 드릴 예물이 번제이면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드릴 번제물의 머리에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안수'를 히브리어 두 단어로 나눠져 있습니다.
'안(按)'은 'samak(사마크)'. ’기대다(lean upon)‘, ’두다‘, ’놓다(lay, put)‘, ’떠 받치다‘, ’지탱하다(uphold, support), 한글개역에는 “공급하다”, “얹다”, “안(수)하다”, “누르다”, “붙들다”, “의지하다”, “돕다” 등의 의미로 번역하였습니다).
사마크의 가장 잘 알려진 용법은 손을 얹는 것, 즉 안수를 뜻하는데 사용된 것입니다. 제물에 관한 레위기의 규례에서 제물을 드리는 자는 자기에게 해당하는 생축을 몸소 가지고 와서 자기 손을 그 생축의 머리에 얹었으며, 이렇게 하여 제물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그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나타내며, 유죄의 경우에는 그 죄를 동물에게 전가하는 것을 나타냅니다(특별히 레 16:21).
생축에 손을 얹는, 즉 안수 행위는 제사장의 위임식에 관한 규례(레 8장, 참조: 출 29장), 곧 그리스도의 사역(참조: 히 10:19-23)과 그의 사역자로 부름 받은 자들의 사역에 영적 적용과 관련된 많은 의식(딤전 4:14, 딤후 1:6)에 관한 규례에서 현저하게 나타납니다.
사마크는 '지탱하다, 떠받치다, 지지(지원)하다, 의지하다' support라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습니다(암 5:19). 이스라엘 백성은 사람이나 국가를 신뢰하지 말며(왕하 18:21, 겔 30:6), 그 힘으로(시 37:24)와 말씀으로(시 119:116) 의인을 붙들어 주시는(시 37:17)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배워야 했습니다. 신자도 이렇게 넘어지는 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시 145:14) 전 생애를(시 71:6) 안전과 확신에서 살 것입니다(시 3:5).
‘수(手)’는 히브리어 'yad(야드)'. 손(hand), 능력(power), 기념비, 기념 건조물(monument), 굴대, 축(axle), 장부 (tenon), 곁에 머물다(stay side), 부분(part), 시간(time)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 탐구를 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야드의 기본적인 의미는 '사람의 의지의 기능들을 수행하기 위해 사용된 팔의 끝부분'입니다.
이 용어는 문자적으로 좋든 나쁘든(창 4:11), 일반적인 일의 기능을 행하는 사람의 손에 대해 사용됩니다(창 5:29). 동해보복법("손에는 손")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받은 신체 부위에 해당하는 신체 부위를 파괴하는 형벌입니다.
"손"이란 말이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이 여러 가지라는 사실은 신학적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이런 관용어들은 손의 용도가 넓다는 데서 나온 것입니다. "어떤 사람의 손 안으로(혹은 아래에)"라는 어구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책임, 돌봄 그리고 지배를 포함하는 권한을 나타냅니다. 사람은 이런 권한의 보호하에 있을 수 있다. 아마르나 서신에 나오는 가나안인들의 어휘 바-디-우(ba-di-u)는 '그의 손안에(in his hand)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다른 창조물을 "그의 지배하에" 두게 되었습니다(창 9:2). 하갈에 대한 사라의 권한(창 16:6, 창16:9), 보디발의 집에 대한 요셉의 권한(창 39:3-8), 이스라엘에 대한 모세와 아론의 권한(민 33:1), 그리고 아람에 대한 다윗의 권한(대상 18:3), 이 모든 것은 이 어구로 표현됩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생명에 대한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그의 돌보심, 주권, 그리고 심판에 맡겨둡니다(시 31:5, 시 31:15, 삼하 24:14). 더구나 이 관용어는 어떤 사람이 '자기 손안으로 인도될 때 그에 대한 승리'를 묘사합니다. 반대로, 구원은 '어떤 사람의 손 밖으로 인도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종종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원수들을 '이스라엘의 손 안으로 인도할' 것이며(창 49:8, 수 6:2) 이스라엘을 '원수들의 손 밖으로 인도하리라'고(출 3:8) 약속하였습니다. 도피성은 피의 보수자의 '손에서부터' 무고한 살해자의 '구출'을 제공해 주었습니다(민 35:15).
손은 '능력(power)’이나 '힘(strength)을 상징합니다(신 8:17). 신 32:36은 "그들의 손이 가버렸다"고 말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힘의 상실을 묘사하였습니다. 모세의 손은 이집트에 대항한 재앙에서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 맹렬하게 사용되었습니다(출 10:12-15).
야드는 '소유'라는 의미를 전달합니다. '소유'는 손의 일반적인 기능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손에'라는 어구는 종종 이런 의미를 함축하곤 합니다. 이스마엘 사람들은 요셉을 그들의 소유물로 취했습니다: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창 39:1). 여호와께서는 자기가 다윗 왕국을 그의 아들의 손에서 취하시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왕상 11:12, 왕상 11:31-35).
야드는 '복종'이란 의미를 나타내는데 사용되었습니다. 복종은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의 수하에 두다'라는 문구로 표현됩니다. 대상 29:24에서 "...여러 아들이 솔로몬 왕에게 복종하니"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여러 아들이 그들 자신을 솔로몬 왕의 수하에 두니'입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에게 반역하지 말고 그에게 '복종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손을 대는 것'은 4가지의 기본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 이 어구는 죽이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창 37:22, 창 37:27).
둘째, 이 단어는 축복의 의식적인 의례에서 사용되었습니다(참조: 창 48:17).
셋째, 특별한 직무나 일을 위임할 때는 대개 손을 대는 것이 수반되었습니다(참조: 모세가 여호수아를 취임 시킨 사건과 행 13:1-3).
넷째, 대속이라는 중요한 신학적 개념은 언제나 희생 짐승에 손을 대는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염소에 손을 댐으로써, 민족의 죄를 염소("대속물")에게 전이 시켰습니다. 각 사람들은 이런 표현을 사용하여 자기들의 죄가 희생 짐승에게 전이되어 그 짐승들이 그 죄를 짊어졌다고 묘사하였습니다(출 29:10-19, 레 1:4).
마침내 이런 비유적 표현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일에서 성취되었습니다(골 2:14).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이 우복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