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죽음으로부터의 구원- 나의 거듭남
제가 거듭남을 경험한 당시의 모든 정황과 생각들을 소상히 쓰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겠습니다만 제가 이미 언급했던 바를 간략히 다시 씁니다. 저의 구원 간증은 참혹하고 비극적인 순간을 맞이하기 직전 일어난 것으로 제가 함부로 얘기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별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매우 어려서 교회를 몰래 조용히 다녀 본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 마자 제 어머니께서 수술을 받다가 의사가 수술시간이 길어지자 추가 마취제를 과도하게 붓는 바람에 뇌척수막염에 걸려 20개월 동안 누워계시다가 돌아가시기까지 동네 교회에서 찾아와서 찬송가를 부를 때 제가 듣곤 하였으며 그때 그 교회 장로는 항상 성경을 읽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들은 찬송들이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만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
<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며칠 후..> 등이었습니다. 37세의 어머니가 저를 남겨두고 떠나는 것을 견딜 수 없는 괴로움으로 여기며 저를 바라보실 때 저도 괴로워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2학년때인 1960년 저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1961년 어떤 야간 성경 공부반에 별 생각없이 나갔었습니다.
그후 고교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다녔습니다만 그 이전 그 동기는 1967년에 있었던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적은 수에도 불구하고 승리하는 것이 저를 주목하게 하였으며, 그뒤로 레온 유리스의 영광에의 탈출이라는 책을 읽고 많은 감동을 가졌고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섬기는 여호와에 관하여 알고 싶어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증인이 여호와에 관하여 가장 잘 알 것이라고 생각되어 거기에 나가기 시작하였는데 그들이 성경을 좀 억지로 푼다는 생각을 갖게되었고 그들에 의하면 안믿는 경우 죽으면 소멸된다는 말을 듣고 그렇다면 안믿고 소멸되어 없어지는 것도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뒤로 성결교회라는 곳에서 교리문답을 거쳐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런 뒤로 저는 교회안에서 고등부 학생회의 임원이며, 여러 활동들로 교회 생활을 하였습니다. 고교 시절 교회 나가기를 한번도 거른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고3때에도 당연히 교회에 꾸준히 나갔습니다. 그때 저는 항상 하나님은 존재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나의 것이 되지는 못하였습니다. 성경을 보아야지 하면서도 항상 뒤로 미루어지는 삶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972년 대학 2학년때 패혈증에 걸려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한달 반 동안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처음에 발가락에 무좀이 생겨서 그 무좀에 따라 발이붓고 나중에는 온몸에 열이 생기더니 열이 44도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때 알게된 것은 44도이면 피부가 발갛게 되며 46도가 넘으면 검게되어 흑사병처럼 죽어간다는 것이었습니다. 43도가 넘는 상태에서 3일을 지내고 다시 열이 떨어질때까지 6주가 걸렸습니다. 6주후 퇴원했을 때에는 그동안 배우고 공부했던 것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공부도 매우 힘들었고, 세상에 대해 그동안 매우 낙관적이고 희망적이었던 생각은 무너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충현교회나 여러 교회들을 다니며, 그럭 저럭 1년이 지났습니다.
그후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대학 3학년때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대학 3학년 여름 방학 동안에 저는 매우 심각한 고민에 빠졌으며 그것은 이 세상 모두가 부패하였으며, 죄로 가득하였고 인생들은 이기적이어서 남을 생각할 겨를이 없으며 또한 그들은 어디로 가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과 나자신도 그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저의 고민은 이 세상의 무엇이 없어서가 아니라, 세상에서 정의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으며, 저는 소위 자연스러운 것이 정의롭다는 자연적 정의를 추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교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사실 저는 대학 들어가자 마자 수많은 교회들을 찾아가보았지만 어디에서도 참 평안을 찾지 못하였고 많은 교회들은 공허하고 텅비어 있었으며 목사들은 자기가 믿지도 않는 것을 남들에게 믿으라고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결국 저는 두 가지 중대한 의문에 봉착하였는데, 하나는 하나님은 이런 인류의 비극을 구경만하고 있는가? 그분의 해법은 무엇인가? 였으며 결국 저는 세상에서 해답을 찾지 못해 죽을 수 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두번째 질문으로 나아가게 했는데 그것은 “ 만일 내가 죽는다면, 그 죽음 이후의 세계는 이보다 낫겠는가?” “ 만일 낫지 않다면 죽음을 연기해서라도 해답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과연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는가?”“ 없다면 천만 다행인데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가 이보다 나쁘다면 어찌하겠는가? “ 등의 의문이었습니다. 저는 부패한 자아를 어떻게든 소멸시켜야 하며 이 세상 전체 또한 소멸되어야 한다는 신념에 도달하였습니다.
모든 고민 끝에 저는 결국 1973년 9월 5일 수요일에 광화문 네거리에서 폭탄으로 자폭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한 신문사와 제 친한 친구에게 전해줄 유언의 멧세지는, 인류 세계는 썩었고 희망이 없으며 인생들은 속고 있다, 나를 따라 자폭하라, 는 멧세지를 쓰려고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미 그 이전에 폭탄을 제조해본 경험을 갖고 있었으며 저는 제가 만든 폭탄을 나무 밑에 묻어두고 폭파를 성공적으로 실험해본 경험이 있었습니다.(저보고 어떻게 만드는지 물어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점화장치를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그일을 수행하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점화장치를 전구의 필라멘트로 만들었고 그것에 전지를 달아 폭파시키는 방식이었습니다. (따라하지 마십시오)
8월 하순 저는 을지로 4가 화공약품 상가들을 기웃거리다가, “ 하나님이 과연 아무 일도 안하시고 이 세상의 비극을 구경꾼으로 구경만 하고 있을까? 과연 그렇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 하는 의문이 계속 솟아났으므로 저는 마지막으로 어느 교회에 나가 최후의 상담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곳은 제가 그동안 다녀본 100여개의 교회들 중의 하나였는데 그동안 저는 진리와 진실을 찾아서 무수히 많은 교회들, 카톨릭, 그리스정교회, 루터파, 원불교, 불교, 장로교, 감리교등을 다녀보았습니다.
그 교회에 나간 것은 1973년 9월 2일이었으며 저는 그 교회에서 예배가 끝난후 담임목사와 상담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 수요일 곧 1973년 9월 5일에 광화문에서 자폭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진행중이었습니다.
그날 그 교회에서 목사가 설교하는 중에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읽도록 요청하였습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읽을 때 왜 내가 이 사실을 몰랐던가? 하고 탄복하였습니다.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내가 지금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사 내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사시는 것이라”이 말씀이 바울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것이며 저에게도 당연히 적용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가 3일후에 자폭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죽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저를 이미 2천년 전에 죽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안하시고 이 세상의 비극을 구경만 하고 계시는 줄로 저는 알았었는데 하나님은 이미 놀라운 일을 완벽하게 그리고 깨끗하게, 내게 아무 상처도 입히지 않은채 성취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제가 크게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마자 저는 그 목사에게 왜 이제야 그 사실을 설교해주셨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자기는 항상 같은 취지의 성경 내용을 설교했다고 했고 저는 제 마음이 그만큼 낮아졌기 때문에 그 말씀이 저에게 들려와, 저에게 믿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날은 제 생애 가장 기쁜 날이 되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극히 홀가분한 마음으로 기쁨 가운데서 지냈습니다. 저는 그 날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저에게 영적 구원자가 되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육체적 구원자도 되어 주셨던 것입니다. 저는 눈을 빼내야 하고 손발을 짤라내야 하는 극한의 형벌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받아주신 사실을 알고 감격했으며 그분께 감사드렸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하나님은 수천번, 저에게 그 사건을 기억나게 하셨으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를 위해 피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십자가 사실을 이루심으로 그 참혹한 죽음으로부터 저를 구원하셨음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때에 저는 거듭났던 것입니다. 제가 이전에 세례도 받고 교회 생활을 했던 그 믿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새생명이 제게 임하였던 것입니다. 지금도 제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때 시점까지로 돌이켜 생각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앞에 그날은 제가 변화되기 시작한 출발점이었습니다.
또 한편으로 저에게는 과연 하나님은 살아계시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는 날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자폭하려는 그 위기의 순간에 그분은 저에게 나타나셔서 올바른 교회로 나가서 그 필요한 복음의 말씀을 듣게 해주신 다음 그것을 깨닫게 해주심으로 저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하셨던 것입니다. 그 날이후로 주 예수 그리스도는 저의 영적 구원자일 뿐아니라, 육체적 구원자가 되셨으며 저의 나머지 삶은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덤으로 거저 살아가는 삶이 되었습니다. 제가 그분을 언제라도 잊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 저에게 하나님은 살아있지 않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해오면 그것을 들어볼 가치가 있다고 제가 생각하겠습니까? 저는 종종 광화문에 흩어져 있었을 저의 시체 조각들을 상상해봅니다. 그날 이후로, < 주의 말씀 첨받은날… 기쁜날 기쁜날> 은 저의 참 기쁜날이 되었습니다.
누가 저에게 예배당 다니기 시작하면 구원 얻은 것이라고 말한다 해도 저에게는 분명한 경험이 그것을 반박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저 교회다니는 생활을 믿음으로 생각했던 그 믿음은 죽음으로 끝났기 때문입니다.
제가 성결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예수를 믿기로 결심한 이후 1973년 9월2일까지는 제가 어떤 상태나 영적 신분에 있었을까요? 저는 그것을 부르심의 기간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를 의롭다하시고 의롭다하신 자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롬 8:30) 제가 거듭남으로 의롭다함을 얻었고, 그 이전에는 부르심의 상태에 있었다고 저는 해석합니다. ( 제 해석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이제 새로운 목표를 향해서, 보다 크고 공효(功效)를 이루는 국가적 규모의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국가적 규모의 믿음 실현에는 법체계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하고 그것은 하나님의 법체계여야 하며, 그러므로 개인적 규모의 믿음에서는 하나님의 율법 여하가 크게 문제되지 않지만 국가적 규모의 믿음과 그 실행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주 하나님이 저를 통해 그것을 증명하실수 있도록 인도하시리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저의 이후의 삶의 간증에 관해서는 산발적이나마 < 전세살이를 축복하시는 하나님> < 회사에서 고사지내기><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과 교회행정> <외환위기와 나>
등에 나타나 있고 수시로 올려진 생활 간증들이 있습니다. 나중에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보다 상세하고 전체적인 삶의 간증을 쓸 수 있으리라 믿어집니다.
2020. 6. 22 일 엘리야후
저는 1973년 9월 2일 거듭났습니다. 그로부터 50년의 세월동안 주께서 저를 여러가지로 가르쳐 주셨으며
지금도 변함없이 그분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저의 영적 구원자일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 참혹한 죽음에서 구원해 주신 생명의 은인 구원자이십니다.
어찌 제가 그분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가 쇠미해진다고 조롱합니다.
그것이 저에게 무슨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구원자 이십니다!
2023. 9. 2 하토브